책을 읽을 때 종이의 내음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좋아하지만, 그 부피와 무게감이 간혹 번거로울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웹 소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틈틈이 짬을 내어 읽기에 최적이다. 조금씩 웹 소설에 심취하며 글을 읽던 어느 날 은발의 여기사 시그리드가 내게 찾아왔다. 웹 소설을 많이 접한 이에겐 시그리드가 수없이 많은 회귀물 로맨스 판타지 중 하나일 뿐이지만, 처음으로 회귀물 로맨스 판타지를 접한 나는 마치 신세계가 열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
책의 시작은 매우 강렬했다. 죽음 끝에 다시 5 년 전의 삶으로 돌아간 여기사가 있다. 그녀는 예전의 삶이 규칙을 지키는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그릇된 삶이었기에 이를 반성하고 다시 한번 그녀의 길을 새롭게 걷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올곧은 신념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정의를 구현한다. 물론 과거와 달리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친구들과 돈독한 우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고, 오드 아이의 신비로운 눈을 가진 흑기사 베라무드와 가슴 떨리는 사랑을 경험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굽이굽이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길로 향할지, 저 길로 향할지의 선택은 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하지만,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내린 선택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고민하며 후회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만약 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고 바른길을 향해 다시 한번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에 시그리드에게 더 매혹되었던 것 같다. 실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과거를 바로잡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에게 나 자신을 대입해 본 것이다. 독자들이 회귀물을 좋아하는 것도 각자의 이유로 모두 다르겠지만, 인간의 선한 의지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선호가 느껴진다. 예전보다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진 듯 보이나,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이 악한 것을 멀리하고 선한 행동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의 마음은 청와대 게시판에서 동의를 많이 얻는 국민청원을 보아도 잘 느껴진다. 근래 들어 약자를 향한 비겁한 자의 행동과 인간이라면 결코 해선 안 될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는 것도 계속 볼 수 있다. 때로는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의를 막고 다시 정의로운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유한하므로 반드시 막을 내려야 하는 연극 무대에 오른 단원처럼, 각자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열렬한 갈채를 받으며 퇴장하는 숙명을 지닌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잘못된 선택과 후회는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삶 아니 우리의 삶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지만, 실수를 발판 삼아 더 나은 삶을 위해 한발씩 나아가는 영혼의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사람이기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