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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6 18:58
[응모]_검은 든 꽃_로맨스판타지_은소로
  글쓴이 : 김엇박
조회 : 428  
내가 처음으로 글의 힘을 믿게 된 계기가 있어. 식물인간을 통조림에 비유한 글이었지. 모든 것이 들리고, 보이고, 선명한데도 사람들은 나를 죽은 생선 정도로 여기는 거야. 처음에는 같은 참치였을지언정 지금은 죽어 산패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검은 든 꽃」의 주인공 에키네시아(애칭 에키)가 그랬어. 처음은 아무것도 모르던 그저 평범하다고 자부하던 영애였지. 그러나 불현듯 나타난 마검에 몸을 빼앗겨버렸고 덕분에 알게 된 거야. 자신에게는 마검의 힘을 증폭시킬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기사로선 최고의 축복인  무武의 재능이.

그러나 그 재능이 꽃처럼 발현하기도 전에 세상은 쓸려나가기 시작했어. 마검에 몸을 빼앗겨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도 마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력을 끌어 모았지. 차라리 누군가가 죽여주기를 바랄 때도 있었을 거야. 상상해 봐. 평범하게만 살던 네가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고, 말하고, 끝내는 울부짖던 누군가를 하찮은 고깃덩이로 만드는 광경을.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과 뜨겁게 흐르는 육신의 땀 속에서 너무도 뜨거웠음에도 한순간에 차갑게 쏟아지는 것들을 말이야. 그리고 유일하게, 그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내 절규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았을 때,

"그녀라고……원해서 이걸 쥐었겠나."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을 테지."

각인되어버리는 거야. 오직 그 사람만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리듯이.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

마검을 쥔 미친 악마가 아닌 진짜 자신을 봐준 유일한 사람. 마지막까지 회생할 기회를 주려던 사람. 하지만 그마저 제 손으로 죽였을 때의 절망감.
이 부분에서 작가가 여주인공 에키를 얼마나 강인한 사람으로 설정했는지가 느껴져. 마지막 빛처럼 여겨지던 사람을 내 손으로 죽였는데도 무너지지 않아. 그녀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하고 끈기와 책임감, 그리고 죄책감이 얼마나 질긴지 와닿지.

그 이후로 2년 째, 마검에 물든 후로는 6년째가 되자 겨우 마검으로부터 몸을 되찾았어. 하지만 늦었어. 모든 걸 잃었으니까. 그래서 뒤늦은 각성으로 대화가 가능해진 마검과 함께 기오사 시리즈의 검을 모아 다시 돌아가는 소원을 빌어.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마검을 얻고 진짜 에키네시아로서 검사가 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그저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뿐만이 아니라 독자에게 설명해야만 하는 의무와 설명충이 되지 않기 위해 조절해야 하는 괴리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니까. 그게 말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쓰다보면 꼭 필요한 설명과 내가 넣고자 하는 설명이 뒤섞여서 스토리를 늘어지게 만들어버려. 그런 점에서 은소로 작가는 상당한 노련미가 엿보여. 이 분 어디 산 속에 숨어 있던 재야의 고수가 아니었을까?

특히 세계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오사 시리즈의 매력이 엿보여. 각자의 조건에 따라 주인을 선택하고 주인들은 그 검의 힘을 쓸 수 있지. 그 이상의 조건을 충족한 몇몇은 검과 대화를 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 예시가 성검과 마검인데 각각의 성격이 또 달라서 글을 읽는 재미를 향상시켜. 후반부엔 이 둘의 케미도 상당하고.

어쨌든 모든 일의 시작점으로 돌아온 에키는 드레스를 입고 검을 쓰는 기사가 되지. 참 어색하지 않아? 드레스를 입은 기사라니. 그러니 다른 기사들이 가만 놔두겠어? 근데 강해. 엄청 강해. 쩌리들이나 장비 탓하지 진짜 강자는 드레스를 입든 구두를 신든 그냥 강해. 그래서 더 멋져.

비록 의도는 유리엔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예뻐 보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나로서 받아들이라고 밀어붙이는 부분이 여성기사에 대한 그간의 편견을 뒤바꿔버려. 무조건 기사의 프레임에 자신을 덧씌우고, 여성으로서의 것들을 포기한 ‘기사’ 에키네시아가 아닌 그저 ‘강한’ 에키네시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하지만 그 강한 에키네시아도 유리엔에 대한 감정만큼은 여리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과거 마검에 휘둘렸다는 죄책감과 또 다시 그렇게 될까 하는 두려움, 자신이 감히 그에게 비할 바가 되겠냐는 자기비하가 깔려있으니. 그저 첫눈에 반하고, 살을 부대끼며 정이 붙는 가벼운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를 볼 수밖에 없는 섬세한 설정과 진중한 애정이 느껴져서 더 눈이 가는 작품이야.

요즘 이런 작품이 보기 드물어서 슬퍼. 다들 클리셰적인 요소로 채우거나 그들이 사랑하게 됐어야만 하는 이유를 두루뭉술 지나가버리는 작품들이 흔하니까. 이건 모래사장 속에서 발견한 흔한 유리알인 줄 알았다가 나중엔 다이아몬드라는 걸 깨닫게 되는 작품이지. 원석이는 표현을 붙이기가 오히려 송구스러울 정도야. 아주 촘촘히 다듬은 탓에 벌써부터 광채로 빛나거든.

이미 상당한 구독자수로 그 인기와 실력을 증명하지만 단순히 웹소설을 읽는 마니아들만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작품이라고 말할게. 깊이감, 긴장감, 섬세함,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강약 조절까지 나에게는 완벽한 작품이었어. 부디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 좀 더 늘어나기를. 웹소설이 한층 발전해 서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장이 되기를. 그 때까지 뒤에서 응원하는 독자로서 글을 남겨. 그대의 펜 끝에 재력과 인기가 깃들기를. 그러니 글 많이 써주세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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