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목표달성?!
"너의 근성을 내게 보여달란 말이다!"
우렁차게 외치며 강철이 촉호의 옆구리를 세게 후려친다.
<뻐억 - 우직>
갈비뼈가 부러져 버리는 촉호.
극심한 통증과 함께 후속타들을 전부 허용하고 만다.
결국 그는 막대한 데미지를 입고 나가떨어져 버린다.
"끄허... 어억... (이번 건 너무 컸다. 움직일 수가 없어.)"
"역시 여기까지인 건가? 촉호, 너도 나의 근성을 막을 순 없었다. 전투고의 전교생과 수천만 솔로부대의 무게를 짊어진 나 강철의 근성을 말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싸워본 적이 있는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그런 싸움 말이다. 그런 적이 없었다면 네가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웃기지 마라!"
"응?"
그때 촉호가 벌떡 일어난다.
그는 강철의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격통 속에서도 마음속으로 흑여우 소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위해 싸워본 적 있냐고?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그런 싸움을 해봤냐고?'
"내게도... 내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이 있다! 그녀를 위해선 절대로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어!"
"대단하군 촉호. 너 역시도 이 시대의 근성가이였단 말인가...? 좋다!"
강철이 야구배트를 바꿔 잡는다.
마치 홈런을 노리는 9회말 2아웃의 4번 타자와도 같이 비장하다.
"둘 중 누구의 근성이 더 강한지 판가름해보자! 와라 촉호! 마지막 한 방으로 모든 걸 끝내자!"
"좋다 강철! 승부다!"
촉호도 지지 않고 남은 체력과 마력을 오른손에 모두 짜 넣는다.
블링크고 뭐고 없다.
승부는 기술 대 기술이 아닌 근성 대 근성의 대결이 될 거였기 때문이다.
두 사나이가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곧이어 촉호의 오른손과 강철의 야구방망이가 충돌한다.
<콰앙>
전투고 강당 전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언가 길쭉한 것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야구배트였다.
<깡 - 그르르>
그것은 경기장 밖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낸다.
그렇다면 승자는 촉호란 말인가?
그는 주먹을 여전히 꽉 쥔 채 장갑 밑으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
그러나 눈빛에는 어떤 사물의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선 채로 기절해 버린 것이다.
그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강철이 어깨로 촉호의 몸을 받아준다.
<투욱>
전투불능이 된 촉호와 의식이 남아있는 강철...
"와아아아!"
전투고의 남학생들이 기뻐 날뛴다.
허나 다음 순간 강철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모두를 경악게 한다.
"기권. 시합을 기권합니다."
"예?"
진행요원도 놀라서 묻는다.
어떤 미친놈이 S대 합격해 놓고 필요 없다고 재수 선언한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틀림없이 기절해서 전투 불능이 된 것은 촉호다.
그런데 왜 강철이 기권한 건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강철은 이윽고 의문들에 대답하듯 입을 뗀다.
"이 녀석의 근성이 나보다 강했습니다. 촉호는 내 배트를 날려버렸지만, 난 그의 오른손을 날려버리지 못했죠.
게다가 그는 데미지 누적으로 기절하면서까지 오른손 주먹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몸은 꺾이고 기절했을지언정, 근성만은 꺾이지 않았단 증거. 그러므로 대결은 저의 패배입니다."
강철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강직한 기권.
그는 의료요원에게 촉호를 넘겨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당을 빠져나간다.
상대의 기권으로 인해 1차 예선의 마지막 경기를 이기게 된 촉호.
그 사실도 모른 채 꿈속에서 흑여우 소녀와 잔디밭을 즐겁게 뛰어논다.
어찌 됐건...
"승자, 히로촉호!"
1차 예선 통과라는 값진 목표를 달성한 촉호였다.
그날 저녁, 춘회파 아지트의 넓은 앞마당에서 성대한 고기 파티가 열린다.
촉호와 아라가 맨 처음 아지트에 들어왔던 날처럼 특별한 날에만 열리는 고기 파티.
오늘은 1차 예선을 통과한 촉호를 위한 축하의 의미가 있었다.
리더인 붉은머리 춘회가 미성년자답게 사이다를 높이 치켜들며 모두에게 말한다.
"자, 다들 1차 예선을 뚫은 촉호를 향해 건배!"
"건배!"
앞마당에 모인 멤버들이 소리 높여 외친다.
모두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탄산음료 잔을 단번에 비워버린다.
다음은 흥겨운 파티가 시작된다.
메이드 사야가 숯불에 직접 구워주는 야생 멧돼지 구이가 오늘의 메뉴다.
채식주의자 케이타만 빼고 다들 굶주린 야만인들 마냥 멧돼지 구이에 달려들어 그 쫄깃쫄깃 감칠맛 나는 육질에 푹 빠져든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다들 오늘만은 걱정근심 다 놓아버리고 파티를 즐긴다.
소식가 제로가 일찌감치 부른 배를 두드리며 물러나 격렬한 락음악을 노래한다.
헤비메탈이었는데 파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BGM이 되어준다.
"Everybody scream~~~!"
"예에!"
윌리엄과 클라이드가 신이 나서 몸을 흔든다.
가면 같은 메이드 사야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이렇게 모두가 즐겁게 놀고 있는데, 정작 파티 주인공인 촉호는 구석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한 까닭이었다.
'아라는 잘 지내고 있을까? 아무리 네파리안 선배와 아스나가 강하다고는 해도 마계는 위험한 곳인데... 그리고 오늘 시합은 내가 솔직히 진 게 아니었나? 강철이라는 그 녀석 강했어... 으으, 게다가 다음 상대가 하필 윗키라니! 그 전기깡패 녀석...'
"하아..."
고기를 뜯다 말고 땅이 꺼지라고 한숨 쉬는 촉호.
그걸 본 붉은머리 소년이 자몽쥬스를 건네며 묻는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 표정이 많이 어두운데."
"춘회 선배."
촉호가 빨강과 주황의 중간색을 띤 자몽쥬스를 한 모금 들이킨다.
시큼해서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그냥 머리가 좀 복잡하고 가슴도 답답하네요."
"혹시 아라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정곡을 파고드는 춘회의 말.
"음... 맞아요. 아라가 여기 없는 게 걱정되고 답답하고, 또 다른 여러 생각들도 저를 괴롭히네요."
촉호가 병든 닭처럼 맥없이 대답한다.
붉은머리 리더는 싱긋 웃더니 손바닥으로 촉호의 등짝을 냅다 갈긴다.
<찰싹>
"아야!"
"네 걱정들을 해결해 주지!"
"정말요?"
촉호가 맞은 등을 문지르며 고개를 돌린다.
과연 춘회파의 리더가 이번에는 어떤 신비한 마법으로 걱정과 고민을 해결해 주려는 걸까?
촉호의 마음이 기대 반, 궁금함 반으로 두근거린다.
그러나 이번에 춘회가 선보인 것은 화려한 마법이 아닌 간단한 말 한마디였다.
"아무 걱정 하지마!"
"......?"
걱정하지 마라니 고작 그건가?
촉호가 실망하자 춘회가 부가 설명을 해준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 그것들에 대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예, 있긴 있네요."
"그렇담 걱정하지 마!"
"?"
촉호는 허탈해한다.
어이도 없고, 성의도 없는 말 한마디지 않는가?
누군 진지하게 고민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데, 저 빨강머리 자식은 속 편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
약간은 부아가 치민 촉호가 따지고 든다.
"만약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그럼 또 걱정 하지마!"
"......"
촉호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는다.
그를 위해 리더 춘회가 흙바닥에 나뭇가지를 분필 삼아 표를 하나 그려준다.
[ 삶에 걱정이 있나요? 아니요. 그럼 걱정마세요.
삶에 걱정이 있나요? 네.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네. 그럼 걱정마세요.
삶에 걱정이 있나요? 네.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아니오. 그럼 걱정마세요. ]
천천히 표를 들여다보는 촉호.
엉터리 같은 표였지만 의외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이 공식대로라면 세상에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붉은머리 미소년이 입을 연다.
"어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지? 그럼 가슴 쫙 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구! 예에~ 고기파티! 제로 노래 열라 못한다!"
말을 마친 춘회는 자글자글 구워진 멧돼지 바베큐를 향해 달려가 버린다.
"훗. 못 말리는 선배로군."
촉호도 씩 웃은 다음, 푸짐한 고기 더미를 향해 블링크한다.
주말이 평소와 다름없이 무난히 지나가고, 행성은 또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한다.
Savior. 2007년 10월 12일 (월)
날씨는 맑고 하늘은 끝없이 높다.
이번 주부터 파랑 도시는 본격적인 청합제 기간을 맞이했다.
각계의 거물급 인사들과, 높은 수준의 토너먼트를 치르는 학생들을 스카웃하려는 스카우터들이 도시에 판을 치는 가운데, 우리의 히로 촉호는 아침 일찍 블루고 강당으로 들어선다.
윗키 로셀리나.
촉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2차 예선의 첫 상대인 악명 높은 신입생 1인자다.
작은 악마처럼 미소 지으며 윗키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 죽기에는 좋은 아침이지?"
"하하. 글쎄..."
난감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촉호.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각오를 다진다.
'자,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보자!'
촉호의 눈빛이 번뜩인다.
시합은 채 1분도 못 채우고 끝나 버렸다.
물론 전기소녀 윗키의 일방적인 압승.
촉호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윗키의 전격 앞에 주먹 한 번 뻗어보지 못하고 케이오 당해버렸다.
허나 아쉬움은 없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가 들것에 실려 가면서 생각한다.
'에구구... 저런 깡패가 내 공주님이 아닌 게 다행이지. 그에 비하면 아라는 얼마나 연약하고 귀여운가? 마계에서 돌아오자마자 꼭 끌어안아 줘야지.'
그렇게 촉호의 첫 청합제 도전은 2차 예선 첫 경기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비록 탈락했지만 몸도 마음도 훌쩍 성장해버린 촉호였다.
- 히로 촉호와 청합제 예선. 끝 -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