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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른 잿빛 제작발표회 현장 -
" 율이 긴장되니?"
" 쪼꼼이여."
" 오늘 아마 율이한테 많은 관심이 쏟아질 거야."
" 네 엄마가 말해주셨어요."
모든 촬영이 끝이 나고 한 해가 지난 지금 율이는 7살을 맞이했다. 그동안 소속사와 수현 등 여러 관계자의 보살핌으로 율이의 노출을 최대한 막긴 했지만, 피터의 반박기사에도 좀처럼 식지 않은 관심에 율이는 다니던 유치원까지 관두며 몇 달을 칩거 생활로 버텨야 했다. 잠깐의 외출에도 터지는 플래시 세례를 고작 7살 율이는 의연하게 이겨나갔지만 오늘은........ 리안은 벌써 걱정이 앞선다.
"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영화와 관계된 질문만 받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장내는 사회자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초미의 관심 리안과 율이의 질문을 막아버린 지금의 상황이 기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 뭐 하자는 거야. 리안은 그렇다 치고 너무 애를 감싸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 글쎄 피터 측에서는 아니라고 반박기사를 내긴 했는데........ 그쪽에서 극비리에 진행하느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고 이거 원. 막아버리는데 파고들기도 그렇고"
" 저만 믿으세요."
" ?"
의미심장한 미소로 전화를 걸며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에 선배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 네 접니다. 지금 제작발표회현장이에요. 역시나 영화 얘기 말곤 다 입을 막아버리는데요?"
" 그럴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럼 비용은 언제쯤........"
" 기사가 터지는 데로 바로 입금해 드리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일은........"
" 걱정 마십시오. 절대 누설될 일 없습니다. 시작할 듯 하네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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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이미 정의원 댁에서도 이해해주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들어."
"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 자식을 아비가 키우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 약속했잖아! 절대 건드릴 일없다고 그 말 벌써 잊은 겁니까!!"
" 그러게 뒤를 캐고 다닐 거면 조심성이 있었어야지."
" !!"
" 네까짓 게 아무리 많은 걸 알고 갖고 있다고 해서 그 말에 힘을 실어줄 조력자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게냐? 어리석은 놈."
" 당신 말대로 그래 내가 알고 갖고 있어도 상관없는 거라면 왜 대체 왜.... 아니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니 율이는........."
" 요즘 기사를 볼 때마다 신경이 거슬려. 조그만 녀석이 맹랑하게 그 나이에 딴따라라니. 어쩌겠니. 개떼들이 파헤치기 전에 내 안에 품어 숨통을 끊을 수 밖에."
' 쨍그랑'
권 회장의 말을 듣던 민영이 앞에 놓인 컵을 그의 옆으로 집어 던진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컵처럼 민영 또한 부서져 내린다. 이미 제 손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기사는 그를 불안하게 했고 기어이 권 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결과였다.
" 데려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당신 손아귀에 말라버리게 만들지 않아!"
" 하하하 듣던 중 가장 재밌는 말이구나. 뭐하나 이룬 것도 없으면서 말은 참 잘도 하는군. 지금 네가 할 일은 그저 정 의원댁 심기나 거슬리지 말고 결혼식이나 제대로 올리는 것 뿐이야."
권 회장의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함에 민영의 발걸음은 무거움을 떠나 무서움이 묻어난다. 그의 말대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김 비서 들어오라 해."
민영이 나간 후 권 회장의 부름으로 그가 들어왔다.
"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 흠. 그래 그 아이에 대해 알아봤나?"
" 말씀하신 데로 피터 잭슨과 접촉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아직 자세한 내막은 극비인듯싶지만 회장님과의 관계를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이긴 합니다. 막으시려 하신다면 가능하시겠지만....."
" 아니 흘려."
" 네?"
" 흘리도록 해. 그리고 그 아이 소속사가 리안이 있는........."
" 네 GR입니다."
" 위약금을 줘서라도 빼내. 혹시 알아 할리우드에 진출할 녀석이라면 이것보다 좋은 이용 거리가 어디 있겠어. 크크크"
권 회장의 철저한 계산속에 놀아날 아이를 생각하니 김 비서는 몸서리가 쳐진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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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이 어때"
" 나보다 더 긴장을 안 해. 후후후 걱정하지마 오늘 사전에 영화홍보 외엔 다른 질문은 못 받게 해놨으니 생각보다는 덜 할 거야."
" 그럼 다행인데.........실은 너한테 못한 말이 있어."
" 응? 무슨 말? 어? 잠깐만"
통화하는 리안에게 민이가 다가온다.
" 형 지금 나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 수현아 나 지금......."
" 응 어서 가봐."
" 중요한 얘기면 지금 빨리 얘기하면 안 될까? 걱정되는데."
" 아냐 끝나고 얘기해. 잘하고 와."
" 보고 싶다."
" 나도 보고 싶어."
리안과 통화를 마친 수현은 며칠 전 걸려온 술에 취한 민영의 전화가 신경에 걸렸다.
" ................"
" 여보세요?"
" .................."
" 여보세...."
" 나야......"
" 누구......."
" 민영이."
" ?"
생각지도 못한 그의 전화에 수현은 당황했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 온 연락이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이토록 지워졌다는 것에 그녀 자신도 놀라웠기 따름이다.
" 무슨 일이야........."
" 잘.......지내?"
" 그 말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어. 너에게 다시금 전화가 와 나와 율이를 걱정해주길 근데 지금 와 듣고 보니 그 말처럼 무책임하고 무심한 말이 없는 거였네."
" 미안해........"
"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나도 율이도 너무 잘 지내고 있으니. 그러니까 이렇게 술 마시고 다시는 전화할 필요 없어."
" 수현아......... 다시 떠날까? 우리 정말 아무도 못 찾는 곳으로......."
" ......... 무슨 말이야?"
" 여기서는 너희가 있을 곳이 없어."
" 그게 무슨 말이냐고!!"
" 그 사람....... 조만간 율이를 데려갈 거야........."
" ..........뭐? 그 사람이라면............ 혹시"
" 맞아. 백호 기업 권용한 회장 내 아버지."
" !!!!!!!!"
" 당신하고 율이...... 그 사람 손아귀에서........지키고 싶었어...... 후....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흑흑"
민영이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그토록 지키려 했던 사람들인데 자신의 힘으로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비참하고 한심했다. 버려서라도 지키려 했는데 모진 상처들을 주어서라도 지키려 했던 사랑인데
" 그동안 넌 뭘 한 거야. 그런 사람이라면 진작 누구인지 말을 해줬어야지!!"
" 미안해..........."
" 그렇게 우리 버리고 간 거면 기를 쓰고라도 막았어야지!!"
" ...................맞아. 내가......... 너무 한심한 새끼라....... 방법을 찾지 못했어....... 시간 탓만 하며......"
" 울지 마! 울지 말란 말이야!!"
" 율이 당신한테서 데려올 거야.."
" 도대체 왜........? 이제 와서 왜!!"
" 알려질 테니까."
" ..............."
" 자신의 손자라는 게."
" 그래서 미리 손을 쓰려 애를 데려간다고? 웃기는 소리 말라 그래.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아."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민영은 이미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가 손을 써보기도 전에 권 회장은 모든 것을 알고 막아놓았고 그의 말대로 민영은 얼마 남지 않은 결혼식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수현은 두렵다. 그의 말대로라면 권 회장 그 사람은 지금 누구보다도 율이를 노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데려가려 할까. 강제적으로 율이를 그녀와 떼어놓는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쓰는 거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 방법이라면 여론도 그녀의 편이 되어줄 테지만 민영의 말을 들어봤을 때 그건 어불성설이다.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치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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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제작발표회도 거진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이미 공지한 데로 예상 밖의 질문은 아직 나오고 있진 않았지만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시한폭탄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 라이어 일보 정민우 기자입니다.'
" 네"
" 지금 초미의 관심사는 아시다시피 권율 군에 대한 얘기인 건 알고 계십니까?"
그의 말 한마디로 장내에 모인 기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궁금하고 담고 싶던 내용이기에 그들의 총구는 주저 없이 율이를 향하고 있었다.
" 피터 잭슨에 관한 질문이라면 이미 말씀드렸다 시피........."
" 아니요. 피터 잭슨의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 ?"
" 권율 군이 백호기업........"
"!!!!!"
그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곧이어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한다.
" 어......어? 저 사람 피터.....피터 잭슨 아니야?"
극비리에 내한 중인 할리우드 VVIP 그리고 이슈의 중심인 그가 직접 나타난 것이다. 피터의 등장으로 잠시 멈춰있던 카메라 셔터가 다시금 불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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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고?"
" 백호 몰라? 한국 하면 백호잖아. TV며 반도체며....."
" 거기서 왜? 무슨 일로 우리 영화에 투자를 한다는 거야? 내가 감독으로 그 정도 기대주인가?"
" 그게 좀 이상하긴 해."
" ?"
" 수현 씨 아들 얘기를 엄청 물어봤나 봐."
" 리안이 아니라?"
" 응. 율이 캐스팅명단에 들어있냐부터 시작해서 자신들이 뭐라더라 여하튼 기자들도 아니고 그런 걸 왜 궁금해해. 말 그대로 율이는 아역에다 신인이잖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 그 얘기 언제 들었어?"
" 어제. 투자 얘기라 피터랑 상의해 볼까 하다 영 찜찜해서........"
안젤라의 말대로 단순히 기업 이름을 홍보하려는 투자도 아닌 이미 이름이 알려진 리안의 후원도 아닌 정말 율이에 대한 거라면 그들의 행동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 리안제작발표회 언제지?"
" 오늘?"
안젤라의 말에 피터가 재빨리 일어나 옷을 갈아입는다.
" 어디 가려고?"
" 발표회 장소랑 시간 나한테 보내."
" 어?"
" 빨리!!"
" 어...어"
급히 문 앞을 나서는 피터가 수현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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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또."
" 백호 율이랑 무슨 관계야?"
" !!"
" 우리 쪽에 수없이 전화가 왔어. 명목상 영화투자문제였지만 그 사람들 네 천사한테 엄청난 관심을 보였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잖아."
" 그....... 그건........."
" 시간 없어 빨리 말해."
수현은 리안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피터에게 먼저 하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차분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 너의 천사를 데려가?"
" ............그래."
" 그렇게 둘 거야? 리안은?"
" 아직 말 못했어. 오늘 얘기하려 했는데........그리고 나에게 연락 온게 없는 걸 보니 그 사람들도 섣불리 움직이진 못하는 거 같아."
"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니지."
" 어?"
" 움직일 수 없게 만드려는 거야."
" ?"
수현과 통화를 마친 그가 상황을 정리해 본다. 과연 자신이 그들이라면 제일 쉽고 빠르게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 안젤라"
" 응 지금 알아봤는데 심나 호텔 7F 오후 3시"
" 알았어."
" 설마 거기 가려는 건........"
" 지한테 전화해서 통역 좀 붙여줘."
" 뭐!! 오 마이 갓.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상태로 뭘 어쩌겠다는 거야."
" 안젤라 이건 상의가 아니라 통보야. 당장!!"
지금 시각 2시 11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피터는 액셀을 밟는다. 목표는 한 곳. 그의 예상이 맞는다면 그들이 수현을 꼼짝없이 천사와 떨어트릴 손쉬운 방법. 그 방법을 가장 잘 노출할 수 있는 장소는 거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