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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페이크 라이프.
작가 : 빈둥남
작품등록일 : 2017.9.9

인기 장르소설 작가였던 박건호. 소설 속 엑스트라인 금발 미소년 '노아'가 된다. 왜? 하필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 본격 생존을 위해 주인공에게 빌 붙는 엑스트라 이야기. 페이크 라이프!

*표지는 무료 이미지 입니다.

 
episode 5. 시장선거 #8
작성일 : 17-10-15 12:24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8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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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나와 루시아는 도주중이였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싶었다. 몇 시간을 뛰었는지 모르겠지만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루시아는 자존심 때문인지 전신에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면서도, 약한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최근 꾸준히 체력단련을 한 나도 이리 힘들 진데, 전혀 부족함 없이 자란 특권계층의 영애에게는 말 할 필요도 없으리라.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이제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안정권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드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사실 나보다는 그녀가 더 문제였다.

 

 “아 정말 힘드네요. 더 이상은 무리! 저기 나무에 기대서 조금 쉬도록 하죠.”

 

 “…….”

 

 나는 일부러 못 견디겠다는 듯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나무에 기대어 털썩- 앉았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루시아는 오기로라도 거부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터벌터벌 걸어와 내 옆에 안착했다.

 

 “…….”

 

 “…….”

 

 우리 둘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들리는 숨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볼까요?”

 

 “…….”

 

 굳이 괜찮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고, 루시아도 따라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휘청거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붙잡았다. 다행히 땅에 곤두박질치기 전에 잡았다. 나는 루시아를 부축해 다시 나무에 기대어 놓았다. 그녀는 인상을 찡그린 채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는 의심 가는 것이 있어서 하이힐까지는 아니지만 루시아의 굽이 있는 신발을 벗겨내었다. 그러자 퉁퉁 부은 발이 드러났다. 이 독한계집애. 이지경이 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니.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미련하게 아무 말도 안하고 버틴 그녀에 대한 원망도 있었고, 지금껏 그녀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한 자책감도 있었다.

 

 “꺅.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루시아가 새빨개진 얼굴로 기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채였기 때문이었다.

 

 “…….”

 

 나는 묵묵히 루시아의 아킬레스건 바깥쪽에서 조금 윗부분을 꾹 눌렀다. 내가 알기로 붓기에 좋은 마사지법 중 하나였다. 따뜻한 물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여기서 그런 것을 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

 

 루시아는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바동거렸다. 아파하는 거냐? 부끄러워하는 거냐? 한가지 만 해주렴.

 

 “야. 그만해. 그만하라고!“

 

 “…조용히 해.”

 

 “…….”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반말을 내뱉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써 민망한 기분을 무시하며, 알고 있는 기술을 총동원해 루시아의 발을 주물렀고 그녀는 이내 지쳤는지 저항을 포기하고 내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노아식 에스테틱(?)을 모두 끝마치고, 우리 둘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크흠.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을 때 그것을 깬 것은 루시아였다.

 

 “…책임져”

 

 “푸흡.”

 

 입안에 뭔가 있었다면 반드시 뿜었을 거다. 그만큼 강렬한 한방이었다.

 

 내가 아연실색한 얼굴을 하자 루시아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파하하하. 얼굴 좀 펴지? 솔직히 누가 더 아깝겠냐. 지나가는 사람 백 명한테 물어보면 모두 나라고 대답할걸.”

 

 “뭐 그렇겠죠.”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이런 산속에서 행인 백 명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재벌 집 딸내미와, 빈민가 고아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였다.

 

 “…미안.”

 

 방금은 경박하게 웃다가, 지금은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하는 루시아. 애 왜이래. 나 몰래 약 먹었니?

 

 “그게 무슨? 지체되고 있는 것 때문에 그런 거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영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니까.”

 

 흠. 답지 않게 자기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서 저러는 건가? 뭔가 착각하나본데 넌 원래 민폐 캐릭터였단다. 그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는 약간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 체격이 조금만 더 컸다면 업어서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루시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녀의 입으론 난생처음 들어본 ‘미안’이란 단어는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의미였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야.”

 

 “그럼 뭔가요?”

 

 “…나랑 같이 있어서 이런 일을 겪은 거잖아.”

 

 “…….”

 

 …그런 건가. 사실 루시아의 말이 맞다. 그녀 곁에 있었기 때문에 원 플러스 원으로 잡힌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당연히 납치범이 욕을 먹어야 하지, 왜 납치대상이 미안해한단 말인가.

 

 “별소리를 다하네요. 저 같은 프로 인질한테 이 정도는 여유죠.”

 

 장난스런 나의 말투에 루시아는 작게 미소 지었다.

 

 “후후. 그런가?”

 

 “이젠 그만 일어나시죠.”

 

 나는 일어나서 루시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것을 잡고 일어났다.

 

 그때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울림이 느껴졌다. 이런 밤중에 등산 동호회가 단체로 약수를 찾으러 온 것은 아닐 테니. 당연히 우리를 잡으러온 도적단 놈들일 것이다.

 

 이 급박한 상황에 루시아는 체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혼자가.”

 

 “미쳤어요? 그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에요?”

 

 “제정신이니까 그런 거야. 저들은 나를 귀중한 인질이라고 했지. 그러니 괜찮을 거야. 아직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너는 달라.”

 

 “…….”

 

 내가 잠시 말을 못하는 사이, 루시아는 이어서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이 발로는 얼마 가지도 못해. 그러니 내 걱정 말고 어서가.”

 

 “…….”

 

 머리로는 루시아의 말이 옳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온다. 하지만 어떻게 소녀를 저 흉악한 놈들한테 내던지고 도망간단 말인가. 그리고 괜찮을 거라는 보장은 누가 했단 말인가. 비록 죽이진 않더라도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불공평하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고민은 생각보다 짧았다. 나는 나보다 더 키가 큰 루시아를 양손으로 들어 안고 미친 듯이 달렸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놔.”

 

 “…무거우니까. 가만히 있어요.”

 

 “뭐?! 이게 뒤질래?”

 

 내 말은 조금의 가식도 없는 사실이었다. 루시아가 내려달라고 아등바등 거리는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년놈들이 저기 있다!”

 뒤에서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발에 더 힘을 주었다..

 

 “내려 달라고. 이러면 우리 둘 다 잡혀.”

 

 “…….”

 

 “내려 이 병신아!”

 

 “입 다물어!”

 

 “…….”

 

 루시아가 꽥 소리 질렀고, 나도 지지 않고 마주 소리를 질렀다. 제발 조용히 좀 있어라. 정신 사나우니. 되도록 살도 좀 빼고. 지금 칼까지 같이 들고 있다고!

 

 뒤에서 나는 인기척이 점점 커져가는 걸 느낀다.

 

 “거기 서라. 잡히면 죽는다!”

 

 어느 사내의 외침. 너 같으면 서면 죽는데 서겠냐. 이 새끼야. 그 이후로도 나는 최후까지 힘을 짜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도적무리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젠장. 프로 인질다운 최후로군. 노아로 살면서 쉽게 풀린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루시아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알베른은 보이지 않았고, 익히 아는 얼굴인 자칼과 리더로 짐작되어지는 사내는 무리 중에 있었다. 고맙게도 수뇌부들께서 직접 행차하셨군.

 

 “저 입이 걸걸한 년은 몰라도 넌 곱게 안 끝난다. 애송이. 네놈들 때문에 이 많은 사람들이 개고생을 했으니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겠지?”

 

 무척 상기된 얼굴로 씹어뱉듯 말하는 자칼이었다. 나는 순진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헤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제 안 그럴게요.”

 

 “입 닥쳐! 전혀 영혼이 느껴지지 않잖아.”

 

 흠. 들켰네. 그렇다면 느끼게 해주지. 나의 진심을. 너에게 닿기를….

 

 “잘못했어요오. 용서해주세오. 이제 안 그럴게요오.”

 

 “…이게 나랑 장난하나?”

 

 나도 이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장난하는 거 맞아.”

 

 “…….”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자칼은 서슬 퍼런 기세로 칼을 뽑았다.

 

 “너에게 일대일 대결을 신청한다. 자칼. 피하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도 검을 뽑았다.

 

 “푸하하하. 저 꼬마가 뭐라는 거야.”

 

 “그거 재밌겠는 걸? 크크큭 ”

 

 장내의 사내들은 앙천대소하며 즐거워했고, 오직 자칼만이 모욕이라도 당한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계속 도발했다.

 

 “왜? 네가 좋아하는 일대일이잖아. 설마 두려운 건 아니겠지.”

 

 어차피 그의 말처럼 이제는 곱게 끝나긴 틀렸다. 루시아와는 달리 나는 아무 가치도 없는 소년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쉽사리 죽어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동안 열심히 검술을 익혔다고 한들, 이중 한명이라도 이길 수 있을까? 얼굴에 분칠이나 하는 호스틀 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승산을 올리려면 무조건 일대일 대결로 유도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칼이 적임이었다.

 

 그동안 관찰해온 결과, 그는 단순하지만 자존심이 강하다. 나 같은 애송이한테 공개적으로 지목당한다면 체면 때문이라도 결코 거부하지 못하리라. 게다가 그는 먼저 용병과 일대일을 대결을 제안하는 등 난전보다는 결투를 선호했다.

 

 “씨발. 좋다. 천천히 갖고 놀다 죽여주마. 이 꼬맹이는 이제 내거니까. 아무도 끼어들지 말도록!”

 

 “…….”

 

 자칼이 선언하듯 말했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여유로운 척을 하지 못하고, 바짝 긴장해서 자세를 잡았다.

 

 

 자칼이 팔도 내려놓은 채 무방비한 자세로 나에게 다가왔다. 방심이라고 봐도 좋고, 강자의 여유라고 봐도 좋으리라. 그는 그렇게 어슬렁거리듯 다가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검을 휘둘렀다.

 

 ‘보인다.’

 

 나는 자칼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도저히 못 피할 만큼의 속도는 아니었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며 날라 오는 날붙이. 나는 결코 맞부딪칠 생각을 하지 않고 피했다. 체격차이와 근력차이는 분명 존재하기에 합을 나누는 것은 결단코 피해야했다. 타격을 흘리는 기술도 존재하지만 그건 달인들이나 가능한 기예였다.

 

 -휘이익

 

 이번엔 좀 더 빨라졌다. 자칼의 검이 결국 나의 왼쪽 어깨를 찢어놓았다.

 

 ‘크윽’

 

 나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이번에 이어서 연속공격이 들어왔다면 난 분명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칼은 ‘천천히 갖고 논다’라는 말을 지킬 작정인 듯싶었다.

 

 “칼 맛이 어때 애송이?”

 

 그렇게 말하며 피가 묻은 검신을 혀로 핥는 자칼. 이 변태새끼. 확실히 정상은 아니구나.

 

 “…니 엄마다!”

 

 나는 패륜적 드립과 함께 기습했다.

 

 챙-

 

 가뿐히 받아 넘기는 자칼. 회심의 공격은 너무나 쉽게 막혔고, 공격권은 다시 그에게 넘어갔다.

 

 -휘이익

 

 오른쪽 어깨로 날라 오는 검. 이번엔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피했다.

 

 -휘이익

 

 이번엔 내 왼 다리를 향했다. 정말 가까스로 피했다. 이번에도 연환해서 공격했다면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자칼은 낄낄거리며 웃길 바빴다.

 

 “큭큭큭. 피하는 꼴이 영락없는 쥐새끼로군.”

 

 “지랄. 일대일 대결에서 친구 도움이나 받는 호로 자식 주제에!”

 

 “…….”

 

 이번 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자칼의 역린을 건드린 듯 지금껏 장난기 넘치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으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단숨에 숨통을 끊어주지. 네 입을 원망해라 애송이!”

 

 -휘이익

 

 여태껏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더더욱 빨라진 검격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탓인지 공격로는 단순해졌다.

 

 -휘이익

 

 ‘오른쪽.’

 

 나는 왼쪽으로 몸을 틀어 피했다.

 

 -휘이익

 

 ‘왼쪽’

 

 이번엔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피했다.

 

 -휘이익

 

 ‘다시 오른쪽’

 

 이대로는 결국 피하다 지쳐서, 쓰러지게 되리라. 나는 이번에 승부수를 띄웠다. 자칼이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내 몸이 회전했다. 그리고 역수로 잡는 검. 로이드와 같은 매끄러운 동작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했다. 짧은 훈련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푸욱

 

 나는 잊을 수 없는 그 감촉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어ㅇ.”

 

 자칼은 목이 꿰뚫린 채로 말 그대로 ‘어버버‘ 하며 쓰러졌다.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그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

 

 장내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내가 자칼을 쓰러트렸다는 것을…. 실력 차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내가 승리자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이성을 차린 것은 무리의 리더였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자칼이 이런 소년에게 쓰러지다니.”

 

 리더는 그렇게 탄식하듯 말하며 활을 내게 겨누었다.

 

 “좋은 결투였다. 소년. 하지만 살려줄 순 없겠구나.”

 

 나는 어떻게든 다시 시간을 벌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활을 든 사내의 말투에서 결코 꺾이지 않을 단호함을 엿보았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이제는 무리구나.

 

 누구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 한명만이 그러지 않았다. 바로 루시아였다. 그녀는 내 앞을 가로 막으며 소리쳤다.

 

 “그만둬요! 방금은 정당한 결투였어요. 그래도 끝까지 노아를 해쳐야겠다면 우선 나부터 넘어야 할 거에요.”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루시아의 목소리였지만, 사내는 무심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럴 수는 없다. 형제가 죽었으니,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저년을 치우도록.”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이. 하나둘씩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루시아가 끌려가는 꼴은 보기 싫다.

 

 나는 눈에 독기를 품고, 그녀를 내 뒤로 밀었다.

 

 “…노아.”

 

 루시아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나는 묵묵히 검을 들었다.

 

 “좋은 눈이군. 잘 가라.”

 

 사내가 막 시위를 당기려고 할 때. 거대한 짐승이 달려오는 것 같은 울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찾았군!”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거구의 사내. 저 압도적인 존재감. 멀리서 봐도 알겠다. 리암 팰콘이었다.

 

 수상한 난입자에, 무리의 리더는 당황하는 표정 없이 뒤로 돌며 활을 겨누었다. 실로 유려하다고 표현할 만큼 매끄러운 동작.

 

 -피윳

 

 

 순식간에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리암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면서도 거대한 검을 가뿐하게 휘둘렀다. 그것도 한손으로.

 

 -픽

 

 화살이 힘없이 꺾이며 땅에 떨어졌다. 그제야 표정이라고 불릴만한 게 생긴 리더. 그는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

 

 “니 엄마다!”

 

 거구의 사내, 리암이 지척까지 다가오자 도적단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선두에 두 명이 검을 휘둘렀지만, 리암이 더 빨랐다. 그 거대한 검이 빗살 같은 속도로 횡으로 그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지막지했다. 도적 두 명이 동시에 상체와 하체가 양단되며 쓰러진 것이었다.

 

 “…….”

 

 믿을 수 없는 신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가, 사내 한명이 소리쳤다.

 

 “킬링베어다!”

 

 그리고 파문이 퍼져나갔다.

 

 “이런 미친. 그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발데아를 호위 하는 게 아니었나?”

 

 “곰 센빠이!”

 

 마지막은 바로 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가 나타날 줄이야. 기뻐서 절로 나온 외침이었다.

 

 어쨌든 순식간에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도적들. 오직 리더만이 싸늘하게 말했다.

 

 “아무리 유명한 용병이라도. 상대는 하나다. 당황하지 말고 공격해라.”

 

 그의 말에 사기를 회복한 도적들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리암은 그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이 보고 있다가 씨익- 웃으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킬링베어의 쯔바이핸더가 움직였다.

 

 -채애앵

 

 도적하나가 간신히 칼을 맞부딪치긴 했으나 헛수고였다. 무슨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철퇴를 내려친 듯 도적은 일합을 못 견디고 찌그러지며 머리가 깨졌다.

 

 그 틈에 일제히 달려드는 도적들. 리암이 이번엔 검을 일자로 내지르자, 두 명이 꼬챙이가 되어서 끔찍한 광경으로 숨을 거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에도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아니, 무슨 저런 괴물이 있단 말인가. 그 악명 높은 도적들을 베는 게 아니라 수수깡 부수듯 박살내고 있었다.

 

 내가 놀라는 그 짧은 순간에도, 생명들이 덧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리암의 일합을 견뎌 내는 자가 없었다. 한번 휘두르면 최소 한명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이건 공식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활을 막거나 피하며, 심지어 도적들을 이용해 역으로 동료의 활에 맞게끔 유도했다. 보고도 의심이 가는 반사 신경이었다.

 

 킬링베어라는 닉네임답게 마치 흉포한 곰처럼 날뛰는 리암. 다행히 그를 막지 못하면 전멸이라는 공통적인 위기감 덕분이었을까. 도적들은 나와 루시아에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전력의 반이 통째로 날아간 도적무리들. 리암은 계속되는 활의 견제가 거슬렸는지 기회를 엿보다가 단숨에 달려들어 리더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내가 은연중에 두려워하고 있던 사내였는데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전의를 상실한 도적들은 도망가기 바빴고, 리암은 노련한 사냥꾼처럼 단 한명도 놓치지 않았다.

 

 “…….”

 

 정말 혼자서 수십 명을 학살했다. 그 대범한 바이칼이 그를 보고 긴장한 이유를 나는 여실히 깨달았다. 정말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전투 중 엔 악귀 같은 잔혹함을 보여주었지만 같은 편으로서는 이보다 든든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감격에 겨워 거구의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곰 센빠이.”

 

 “응? 그게 뭔 소리냐.”

 

 그것을 끝으로 리암은 나에게 관심을 끊고, 루시아에게 다가갔다. 크윽. 스타에게 외면 받은 팬의 마음이 이러할까.

 

 “무사하오? 아가씨.”

 

 루시아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는 얼굴이었다.

 

 “보는 대로요. 근데 리암 당신이 어떻게 여길.”

 

 “아가씨 부친께서 보냈소. 이만 만나러 갑시다.”

 

 “…그래요.”

 

 그 이후에도 둘은 나의 존재를 잊은 듯 담소를 나누었지만, 괜찮다. 살아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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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pisode 4. 에이스는 바로 나야 나, 나야나! #5 2017 / 10 / 5 246 0 7427   
26 episode 4. 에이스는 바로 나야 나, 나야나! #4 2017 / 10 / 3 267 0 7203   
25 episode 4. 에이스는 바로 나야 나, 나야나! #3 2017 / 10 / 1 254 0 5723   
24 episode 4. 에이스는 바로 나야 나, 나야나! #2 2017 / 9 / 30 247 0 5869   
23 episode 4. 에이스는 바로 나야 나, 나야나! 2017 / 9 / 29 270 0 6124   
22 episode 3. 악녀의 초대 #6 2017 / 9 / 28 266 0 4762   
21 episode 3. 악녀의 초대 #5 2017 / 9 / 27 253 0 2818   
20 episode 3. 악녀의 초대 #4 2017 / 9 / 26 280 0 5638   
19 episode 3. 악녀의 초대 #3 2017 / 9 / 26 267 0 7643   
18 episode 3. 악녀의 초대 #2 2017 / 9 / 24 277 0 5591   
17 episode 3. 악녀의 초대 2017 / 9 / 22 259 0 5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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