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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와서 내게 했던 말은 조금 황당했다.
“입술 색이…….너무 붉어.”
“예?”
잦은 체기로 색이 바란 입술과 파리한 안색을 숨기기 위해 했던 진한 화장에 그는 불만이 역력해 보였다.
“싫어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에 까칠하게 반문했다. 그러나 그는 불만스러울지언정 사실대로 까칠하게 되받아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아니, 그냥 좀 빨간 것 같아서.”
“지워요?”
“아니.”
내 표정에서 싫은 티가 역력해 보였는지 그도 딱히 더 뭐라 말할 순 없는 듯 했다.
‘지우라고 했으면 당신이라도 짜증을 부렸겠지.’
“정말, 안 지워도 돼요?”
“응.”
“싫은데도?”
“그렇게 엄청 싫은 건 아니니까. 예뻐!”
그가 귀엽다는 듯이 볼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여전히 미간은 불만스럽게 찡그러져 있었지만. 그래서 그의 표정은 밝으면서도 어두운 기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주름지겠다.”
난 그의 미간에 손을 올려서 주름을 펴내려갔다.
“주름 져도 우려스러울 나이는 아니니까.”
그는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미간을 구겼다. 그의 변화 없는 표정이 하는 말은 분명했다.
‘맘에 들지 않지만 참아는 볼게.’
갑작스럽게 산발적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왜 또 웃어?”
“뚱한 애처럼 보여서요.”
“뭐?”
그의 인상이 한층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웃음을 참아 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볼을 붙잡고 입술에 키스 했을 뿐.
처음이었다. 그와 이런 저런 스킨십을 해 온 것치고는 아주 늦은 첫 키스.
그럼에도 왠지 그러고 싶어졌다.
그가 불만을 쏟아낼 빌미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
이런 나의 생각을 눈치 챈 것인지, 아니면 그 역시 그러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맞이하는 태도는 사뭇 전투적이었다.
강하게 몸을 붙잡고 밀어붙이듯이 하는 키스는 아니었지만, 입술을 맞붙인 순간부터 입술을
핥다가 원을 그리듯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집요한 혀끝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지금 불만과 욕구를 아주 강하게 표출 시키고 있음을.
태도는 신사적이었으나 키스는 야만적이었다.
입술을 핥다가 안으로 톡, 톡, 들어가는 혀끝은 매끄러운 붓 끝이 간질이듯 몸을 전율하게 만들고, 안으로 밀려들어올 때는 새벽이슬이 잎사귀에 떨어지듯 경쾌한 박자를 자랑하며 입 속을 두드린다.
입 안으로 쑥 밀려들어와 질척한 물기가 묻어나는 혀끝이 입 안 구석구석을 핥고 빨아댄다.
빙빙 돌며 약 올리듯 입 안을 희롱하고 잇몸과 입천장을 혀끝으로 긁다가 더 안 쪽으로 쭉 밀려들어온다.
그런 이후엔 치고 빠지듯 쑥 빠져나가 허전하게 만들고 아쉬움에 진저리 칠 때쯤에야 다시 입술을 툭툭 두드리며 밀고 들어오는 것을 반복한다.
혀와 혀가 맞붙어 질척한 농탕질을 벌이고 몸이 떨어져 있어도 그에게 꽉 붙어 있는 것처럼
마음의 속박을 느낀다.
키스는 격렬하고 뜨거웠다.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홧홧한 열감에 코끝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촉촉하고 간지럽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표정의 그를 너무나 많이 닮아 있는, 평범하지 않아서 기분 좋아지는 그런 키스에 안심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그가 왔다.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릴 찾을 것이다. 그런 안심.
그에게 입술을 지울 기회를 줬으면서 난 미약한 반항을 내비쳤다.
“이게 뭐에요. 다 지워졌잖아.”
“그래? 그럼, 다시 발라.”
그가 거만하게 말하지만 표정은 다시 못마땅해져 있다.
‘저렇게 미간을 구기면서 다시 바르라니.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바르면 또 지울 거면서.”
“내가?”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문한다.
“그럼 아니에요?”
“그럴 리가. 내가 그렇게 고리타분한 남자로 보여?”
‘솔직히 좀 그런 것 같은데요.’
“아뇨. 당신이 그럴 리가요.”
나는 마음과 다른 말을 뱉으며 미소 지었다.
‘아무렴 어때. 이렇게 노력하고 아닌 척 심술부리는 남잔데.’
그는 내 주의를 흩트리려는 듯 지금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약은 잘 챙겨 먹었나?”
“네. 오히려 살이 3kg이나 쪘거든요? 오죽했으면 한약에 살찌는 약을 넣은 건 아닌지 의심했을까.”
“근데 왜 이렇게 말라보이지?”
“오해도 정도껏 하세요. 내가 굴러다니기를 바라는 거야. 뭐야.”
부러 불퉁거리며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뭔가 불만스러워 보였다.
“아닌 것 같은데. 빠졌는데…….”
“쪘다니까요. 사람이 말 하면 좀 믿죠?”
“아냐. 아냐. 좀 더 쪄야 해. 너무 말랐어.”
그가 또 불만스럽게 미간을 구기는 게 싫어서 난 그에게 다가가 팔목을 힘껏 빨아들였다.
혈관이 힘차게 뛰고 있는 하얀 팔뚝을 빨아들이고 핥으며 조금은 변태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여실히 구사하면서도 그것은 그의 주의를 흩트리기 위한 방법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촙!”
“팔뚝 말고 다른 곳에 이런 자국을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가령 허리 아래라던가.”
“윽, 이 변태!”
그가 평상시 느물거리는 모습으로 돌아가 은근한 말투로 종용한다.
“종종 이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가능할까?”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내가 오늘만 당신 팔을 물고 말까봐? 아주 여기저기 울긋불긋하게 괴롭힐 거라고.’
눈을 반달로 접으며 그에게 안겨들자 그의 입술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아~ 좋다.”
“아아, 어지러워요. 잡고 흔들지 좀 말라고요.”
“어지러워?”
“네! 그냥 껴안고만 있으면 안 돼요?”
사실 며칠 전부터 계속 체한 속이라 울렁거림을 참기 위해서였지만 그에겐 다른 이유를 들어서 말했다.
‘안 그래도 걱정 많은데 저 남자한테 걱정을 더 얹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얼마만의 포옹인데 포옹하다가 토하는 건, 정말 에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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