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어르고 달래는 말투로 말할수록 반감이 거세졌다.
‘당신이 뭘 알아? 뭘 얼마나 알아서 그런 판단을 내리는 건데?“
“화 낼 일이에요.”
“뭐가.”“화나고 슬플 일이라고요.”
“…….”
그가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난 사정없이 지독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며 또박또박 정나미 떨어질 말을 내뱉었다.
“당신이 아무리 하찮게 생각할 일이라도, 내겐 하나도 하찮지 않은 일이니까. 내가 화 낼 일이라 말 하면…….화나는 일이라고요.”
“화나는 일이라고 말하면?”
“네. 내 마음이 화나고 슬프다고 말하는 일이면, 화나고 슬픈 일이 맞아. 하찮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
목소리가 떨려왔다.
아주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월급과 위로금조의 돈을 챙겨드리고 왔음에도 마음의 죄책감과 무거운 감정이 하나도 상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천금 만금 무거워져서 감정의 폭풍까지 감당하기엔 너무나 지치고 힘이 들었다.
과거의 힘들었던 날들을 기억하게 만든 그가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화나고 슬픈 내 감정을 받아 줄 생각이 아니면…….이해 못하면 그냥 가요.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어차피 당신은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이라도 그가 떠나주지 않으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감정이 넘실거린다.
“말해. 또, 왜 그러는지.”
“말하기 싫어요.”
“왜!”
“히스테리 부릴 것 같아서.”
“부려 봐.”
“부려 보라고요?”
“그래. 부려.”
“당신이랑 내가 무슨 사인데 히스테리를 부려요.”
그가 내 어깨를 부서져라 틀어쥐었다.
“무슨 사이냐고?”
“네.”
“아무 사이 아니라고?”
“네.”
“사귀자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가라앉고 눈빛이 위험스럽게 빛났다.
“난, 허락 안 했어요.”
“말로만 그런 거잖아. 마음은 안 그러면서.”
“아닌데요?”
“거짓말 마.”
“대단한 궁예 나셨네요.”
“싫어!”
그가 차갑게 거부하며 나를 껴안는다.
“나도, 싫다고요!”
‘이런 식의 접근은. 무작정 밀고 들어와서 제멋대로 굴려는 거…….끔찍해.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하는 행동들. 너무 역겨워.’
“나가기 싫어요? 내가 나가 드릴까요?”
“…….”
“내가 나가죠.”
“가지 마!”
돌아서는 내 뒤에서 그가 억세게 끌어안는다.
“하지, 마요!!”
몸을 흔들며 빠져나오려 애써도 그의 팔은 점점 더 몸을 옥죄어 올 뿐이었다.
나는 결국 그의 팔을 붙잡고 억지로 떼어내다가 잠시 떨어진 그의 팔목을 힘껏 물어버렸다.
“악!”
그에게서 단발마의 비명이 흘러나왔고 난 그의 팔을 문 채로 웅얼거렸다.
“나가라고 했잖아요. 나가라고.”
“아, 아파…….”
그가 고통스럽게 미간을 찡그리며 잦아든 목소리로 속삭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
크게 소리치며 밀칠 줄 알았다.
예상대로라면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엄살을 부리거나 욕을 한 바가지는 내뱉고 갈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손찌검을 한다거나 뭐든 화풀이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그런 행동들 중에서 어느 것도 보이지 않은 채로 작은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아파. 이거…….이젠 놓아줄 때도 되지 않았나?”
팔뚝을 물고 있던 입술을 치우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화 나 죽겠어.”
커다란 손이 머리칼을 만지며 달래듯 쓰다듬는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심술궂은 입가로 다가와 웅얼거리는 목소리 하나라도 들을 것처럼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묻는다.
“화가 난 이유가 뭐지?”
나는 결국, 화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불만을 토해냈다.
“당신이 너무 좋다가 밉다가 한단 말이야!! 그냥 나쁜 놈이던가, 좋은 놈이기만 하던가. 하나만 하면 좀 좋아? 사람 헷갈리고 혼란스럽게…….”
그리고 난 그날,
그의 앞에서 당장 탈진할 것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미안해. 나쁜 놈이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