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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7. 규칙 아래에서
작성일 : 17-06-21 22:53     조회 : 33     추천 : 1     분량 : 9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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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규칙은 간단해. 쓰러지고 10초 안에 일어나지 않으면 패배. 끝까지 일어서있는 인형이 승리. 먼저 세 번을 이겨야 해."

 

 "그것 참, 마음에 듭니다."

 

 첼은 단 하나의 룰만을 제시하는 그녀를 비웃었다. 헤일린은 인형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 옆에 제뉴어리도 있었다. 첼은 그녀가 연약해보이기만 했다. 그래, 저런 혼혈따위는 간단히 이길 수 있었다. 첼은 또래에게 퀄리오를 져본 적이 없었다. 검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그에게 퀄리오는 간단한 것이었다.

 

 "아, 그리고 할 거면 돌링 시스템을 깔았으면 좋겠는데."

 

 "돌링 시스템?"

 

 "여긴 심판을 할 만한 이가 없으니까. 이 칩을 기계에 넣으면 이 시스템이 심판이 되어줄 거야. 가령 제뉴어리의 인형이 쓰러지면 바로 열을 셀 거라는 거지."

 

 "좋아요."

 

 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겠군. 돌링 시스템은 비싸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저 여자가 갖고 있는 거지? 하지만 의문은 접었다. 지금은 동양인 혼혈과 제뉴어리 자식을 밟아줄 때였다. 제뉴어리의 표정은 수심에 가득차있었다.

 

 "단, 명심해두렴."

 

 "뭘요?"

 

 "지금부터 난 제뉴어리야. 우린 하나지. 네가 나에게 진다는 건 제뉴어리에게도 진다는 거야. 알겠니?"

 

 "내가 질 일은 없어요."

 

 진심으로 첼은 열받았다. 라리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리첸은 그녀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돌링을 한다고? 돌링에 한해서 철저히 이국인인 네가? 리첸은 검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헤일린에 대한 흥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들은 페리헬 백작이나 러셀 부인을 찾을 생각도 안하고 퀄리오를 관람하고 있었다. 원래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법이었다.

 

 

 7. 규칙 아래에서

 

 '돌링 시스템을 오픈합니다. 정신력과 마력, 전선을 체크합니다. 게이지를 충전합니다. 인형의 체크를 다시 한번 확인해주실 분은 지금 칩을 빼주십시오.'

 

 헤일린이 동전 같은 걸 기기에 넣자 시스템은 빠르게 가동되었다. 귀족이라고 어린 첼도 마력이 있었다. 시스템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인형의 게이지를 보여주었다.

 

 '가정용 돌링을 시작합니다. 무기는 사용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 바로 실격입니다. 주의해주십시오. 첼님의 빈즈, 제뉴어리님의 제밀 모두 5초 후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5초인가. 첼은 투박한 병정인형을 노려보았다. 그 너머의 헤일린도 노려보았다. 이길 거야. 퀄리오라면 내가 이긴다고! 헤일린은 무표정으로 첼을 바라보고 있었다. 3,2,1! 첼의 인형, 빈즈가 제밀에게 덤벼들었다. 제밀은 피하려다 바닥에 고꾸라졌다. 빈즈는 큰 덩치가 앞으로 오자 뒤로 움직였다.

 

 "뭐야, 못 하는 거야?"

 

 "바닥에 넘어졌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제뉴어리는 불안감에 제밀과 헤일린을 바라보았다. 헤일린은 조금 난감한 표정이었다.

 

 "아, 역시 크니까 조절하기 힘드네. 이번엔 운이 좋았는 걸."

 

 첼의 인형은 2세대였다. 제밀보다 작고 섬세한 모형으로, 1세대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빈즈의 움직임은 그만큼 빨랐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또래 중에서 마력이라면 빠지지 않는 이가 첼이었다. 퀄리오에서 마력은 곧 강함이었다. 돌링에서 유래한 것이니만큼 마력도 중요했다. 헤일린의 말에 첼이 안심했다. 빈즈는 첼의 의지대로 제밀의 복부를 강타했다. 제밀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역시 첼이 최고야! 첼 화이팅!"

 

 또래들 사이에 군림하는 첼은 응원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길 것 같은 첼을 응원했다. 제밀의 게이지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다. 제밀은 경계선 근처까지 밀려났다.

 

 "끝이다!"

 

 빈즈는 날아올라 발차기를 날렸다. 가볍게 첫 승인가? 훗, 역시 나야. 승리감에 부풀어오르는 순간, 첼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2세대 인형은 이게 문제라니까."

 

 빈즈의 발목이 한 손에 잡혔다. 그리고 멀리 내던져졌다. 거인이 소인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빈즈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마력의 충격파로 인해 바닥에 던져진 상태였다. 미약한 충격파가 눈에 보였다.

 

 '10, 9, 8, 7, 6, 5, 4, 3, 2, 1. 첫 번째 돌링, 제뉴어리님의 제밀 승리. 5분 뒤 두번째 돌링을 재개합니다.'

 

 다들 갑작스레 벌어질 일에 당황했다. 제뉴어리마저 제밀의 움직임과 힘에 놀랐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빈즈는 일어나지 못 했고, 제밀이 이겼다.

 

 "말도 안 되는......."

 

 "인형, 다시 점검해봐 어서. 돌링은 엄격하단다, 특히 시간에."

 

 헤일린을 잠시 바라보던 첼이 재빨리 인형을 집었다. 상태는 괜찮았다. 단지, 힘에 의해 충격을 받은 것 뿐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야. 그래, 내가 질 리가 없지. 곧 두번째 돌링이 시작되었다. 예상 외의 상황에 다들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가 시작되었는데도 빈즈가 움직이지 않았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던 탓이었다. 아까처럼 한 손에 잡혀서 내던져진다면, 또 질 것이었다. 제밀은 큰 손과 두꺼운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있었다. 제밀의 관절은 의외로 유연한 모양이었다. 목마저 한 바퀴 돌아보이자, 첼이 소리쳤다.

 

 "장난하는 겁니까! 경기 중에 무슨!"

 

 "아, 신경쓰지마렴. 제밀은 꽤 무거운 편이라서 말이야. 네가 덤비지 않을 때 연습해봐야하지 않겠니?"

 

 목각 인형인지라 무겁긴 했다. 움직임을 연습해보지 않은 터라 헤일린은 조금 난감했다. 빨리 움직이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헤일린은 두 손을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한 쪽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우스꽝스러운 춤 같아서, 사람들은 작게 웃었다. 돌링 중에 춤추는 선수는 헤일린밖에 없을 것 같았다. 리첸은 라리마에게 말했다.

 

 "야, 네 언니 거물이다. 정말 재밌네."

 

 "리첸님, 헤일린 영애가 걱정도 안 되십니까?"

 

 "안 되는데? 저렇게 잘 놀고 있잖아."

 

 아드리안이 그만하라며 경고했지만, 그 말을 들을 리첸이 아니었다. 라리마는 첼과 싸우는 헤일린을 복잡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가 왜? 제뉴어리를 위해 왜 나서는지 제뉴어리 본인도 몰랐다. 하물며 라리마라고 알 턱이 없었다. 라리마는 누굴 응원해야할지 고민했다. 아니, 빨리 경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지금은 백작과 러셀 부인이 온다해도 말려질 상황이 아니었다.

 

 "날 무시하지 말라고! 제대로 해!"

 

 결국 화난 첼이 반말까지 하며 빈즈를 움직였다. 빈즈는 제밀의 뒤를 공격했다. 제밀은 한발짝 앞으로 감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게이지는 아주 조금 줄어들었다. 빈즈의 게이지는 아까의 공격으로 반이나 줄어있었다. 초조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제대로 하자고? 진심이니?"

 

 "그래! 나 정말 화났다고!"

 

 중년의 귀족 남성과 부인들은 첼의 무례함에 미간을 구겼다. 아무리 화나도 연장자에게 저리 반말로 소리치다니. 첼에게 교육선생을 붙였다는 소문이 있더니 붙일 만한 이유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페리헬 가 귀족 영식이 저리 무식해서야, 교육을 다시 시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저런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해야겠어. 부인들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언짢음을 표현했다.

 

 "그래, 알았다."

 

 헤일린의 대답은 이미 상관없었다. 빈즈가 제밀에게 끝없이 덤볐다. 그 기세가 무서울 정도였다. 헤일린은 차분하게 빈즈의 공격을 피했다. 거리를 한 번 재보니 피하는 건 쉬웠다. 제밀은 다시 한 번 빈즈를 잡았다. 이번엔 허리였다. 허리를 양쪽으로 잡은 제밀이 머리 위로 빈즈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씩씩한 걸음으로 경계선 부근까지 걸어왔다. 빈즈는 발버둥쳤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왜, 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소재의 차이야."

 

 제뉴어리가 말했다. 사라스와 친구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제뉴어리는 경기 중인 제밀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밀은 목각 인형이니까. 네 인형의 소재보다 더 단단하고 센 거야. 제밀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던 건 내 마력이 부족해서 였어."

 

 "아냐, 제뉴어리."

 

 "네?"

 

 "네 마력이 부족한 게 아니란다. 소재가 무거운 건 맞지. 나무 소재라고 마력이 더 있어야하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집중력과 자신감이지."

 

 "집중력과 자신감?"

 

 "그래."

 

 "하, 하지만……"

 

 "내 이름은 헤일린이야. 호칭은 누님이 좋겠구나."

 

 "헤일린 누님, 그게 무슨 말이죠?"

 

 낯을 가리는 제뉴어리가 헤일린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헤일린은 드디어 이름을 불러줬구나, 라며 속으로 기뻐했다. 지금은 순수하게 기뻐할 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말을 튼 건 좋은 징조였다.

 

 "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기겠어? 제밀은 곧 너야, 제뉴어리."

 

 마력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력과 집중력의 싸움, 다들 그렇게 말했고 제뉴어리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충격에 제뉴어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눈이 흔들리는 걸 헤일린은 잠시 마주보았다. 그 순간에, 제뉴어리는 오로지 헤일린 그녀만 보였다. 매서운 산 하나라도 넘겨버린 듯한, 아름다운 눈동자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헤일린은 살며시 웃어주고는 빈즈를 대련장 밖으로 던져버렸다. 마력을 잃어버린 빈즈가 대리석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10, 9, 8, 7, 6, 5……'

 

 세지마, 숫자 세지 말라고! 젠장! 첼은 헤일린을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돌링 시스템은 잔인할 정도로 공정했다. 세번째 돌링을 곧 제개하겠다는 말과 함께 다시 침묵했다. 또 다시 제밀의 승리였다. 첼의 친구들은 이제 첼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야, 첼. 이건 아무래도 네가 질 것 같다."

 

 "아니, 이미 진 게임 아냐? 저 무식한 인형한테 어떻게 이겨. 게다가 지금은 제뉴어리가 아니라고."

 

 "맞아, 맞아."

 

 사라스만이 조용히 그의 곁을 지켰다. 그래도 형이라고 곁을 지킬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첼이 지는 경우도 다 생기겠다며 수군거렸다. 어른들은 이미 첼의 편이 아니었다. 첼이 제뉴어리를 무시해왔다는 말은 아이들로부터 어른들의 입으로 퍼졌다. 첼은 이 상황을 타개해줄 라리마를 올려다보았지만, 첼에게는 사라스와 빈즈밖에 없었다. 라리마는 혼란스럽다 못해 정신이 없었다. 라리마는 왜 사랑하는 언니가 제뉴어리따위를 감싸고 있는가만을 생각했다. 제가 버린 이였다. 가치는 없을 터였다. 페리헬 가에서 제 맘대로 되지 않는 건 없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어머님, 아버님은 어디 계시죠?"

 

 "잠시 급한 용무가 있어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 아드리안에게 일을 맡긴다고 하셨지."

 

 "아드리안님, 경기를 중단시켜주세요."

 

 "네?"

 

 "라리마!"

 

 백작 부인의 말도 라리마에게 들리지 않았다. 라리마는 어딘가 정신이 나간 눈빛으로 아드리안에게 말했다. 아드리안의 소매가 구겨지고 있었다.

 

 "아드리안님, 말려주세요. 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요. 오늘은 제 생일이라고요.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라리마는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드리안은 제 소매를 잡은 손을 부드럽게 빼냈다. 라리마는 아드리안의 이름만 계속 부르고 있었다.

 

 "아드리안님, 아드리안님, 아드리안님…."

 

 망가진 인형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텅빈 눈빛에 아드리안이 멈칫했다. 아드리안 앞에서 라리마는 늘 사랑스러운 소녀처럼 행동했다. 몸짓도 행동도, 눈빛마저 그랬다. 순간 살아있는 이가 맞는가 의심했다. 그 때 리첸이 말했다.

 

 "교만한 예비 신부로군."

 

 그 말에 라리마가 리첸을 돌아보았다. 리첸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190cm가 넘는 그는 위압감으로 그녀를 억누르고 있었다. 평소의 한량이 아닌지라, 라리마는 흠칫했다.

 

 "뭘 견딜 수 없는 거지? 내게는 이해가 안 되는데. 자 보라고. 가련한 소년을 위해 저 영애가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이 상황에 네가 피해보는 건 없을 텐데, 라리마."

 

 "아니야, 이건."

 

 라리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리첸은 말을 이었다. 라리마의 혼란이 무엇 때문이든 그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계속 볼 수 없는 거지? 원래라면 그대가 말렸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대는 백작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인가?"

 

 "……"

 

 "그렇습니다, 라리마. 게다가 돌링은 제국의 스포츠입니다. 신성한 돌링을 제가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경기 중에 제 3자가 방해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지켜온 규칙이었다. 제국인인 아드리안은 돌링을 사랑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강제로 중단한다해도 페리헬 가의 평판만 나빠질 것이었다. 라리마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된다, 라리마. 끝나면 아드리안이 정리할 테니까."

 

 피해보는 게 없다고? 아냐! 난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힘든 거라고! 왜 모르는거야! 리첸의 말에, 라리마는 속으로 소리쳤다. 첼이 뒤에 또 협박을 할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 외의 많은 것들이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세계는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기분이 뭔지 몰랐다.

 

 

 ***

 

 경기는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헤일린의 움직임은 이제 매끄러웠고 자유로웠다. 다소 무거운 목각 인형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제밀을 응원하고 있었다.

 

 "제밀 멋지다!"

 

 "제밀 힘내!"

 

 아이들은 병정 인형의 움직임에 환호했다. 첼의 친구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밀은 길고 두꺼운 다리로 빈즈를 차버렸다. 돌려차기, 발 걸기, 암바, 펀치 등등 다양한 공격에 관중은 신나했다. 제밀을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빈즈의 게이지도 줄어갔다. 첼은 정말 안 되겠는지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 때, 돌링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

 

 "무슨 일이지?"

 

 "대련장 조명이 이상한 걸."

 

 '전선 이상, 전선 이상. ……을 시작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기기의 한쪽 전선이 끊어져있었다. 대련장 조명이 다시 켜지자, 상황이 분명해졌다. 움직이지 않는 쪽은 제밀이었다. 돌링 시스템은 말이 분명하지 않았다. 말이 끊기다가 이제는 말이 없었다. 기기에는 사라스가 서있었다.

 

 "저 아이가 선을 끊어놓은거야!"

 

 "어쩜 저리 형제가 똑같이 무례할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비난의 화살이 사라스에게 향했다. 첼은 역시 내 동생이라며 씨익 웃었다. 사라스는 형의 웃음에 같이 따라 웃었다. 사라스는 첼 바라기였다.

 

 "첼, 너는 사라스가 왜 저러는지 모르는구나."

 

 "그야 나를 위해서지! 이제 움직일 수 없을 걸?"

 

 빈즈가 돌격했다. 그 돌격에는 이제 비판이 따라붙었다.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없었다. 이기기만 한다면, 제뉴어리를 이길 수만 있다면! 저 천한 여자의 미소를 밟아줄 수 있다면! 승리에 눈이 먼 첼은 제밀의 고개가 살짝 움직이는 걸 보지 못했다.

 

 "저대로 밀어서 선 밖으로 내보낼 셈인 것 같아요!"

 

 "안 돼!"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제밀을 보고 싶었다. 헤일린의 구겨진 표정을 보고 싶었다. 제뉴어리의 눈물이 보고 싶었다. 그래, 그것이 첼이 바라는 것이었다.

 

 "아?"

 

 "움직였어? 전선은 분명 끊어졌을텐데."

 

 대리석 바닥에 떨어진 인형은 제밀이 아니라 빈즈였다. 제밀이 오른쪽 다리로 빈즈를 선 밖까지 차버린 것이었다! 제밀은 곧은 발차기 자세로 있다가, 천천히 다리를 내렸다.

 

 "와아아!"

 

 "대단해!"

 

 설마 직접 마력을 쓴 거야? 첼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헤일린을 바라보았다. 리첸은 가볍게 휘바람을 불었다. 꽤 하는 걸. 제국인의 실력이라고 해도 믿겠어. 라리마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백작부인이 그녀를 재빨리 뒤에서 받았다.

 

 "라리마, 이제 끝났다. 이제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절대로 괜찮지 않았다. 라리마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헤일린을 내려다보았다. 헤일린은 안도한 듯, 작게 웃고 있었다. 돌링 시스템이 말했다.

 

 '무형 전선 복구 완료, 무형 전선 복구 완료. 시스템을 점검합니다. 영상을 확인합니다. 10, 9, 8, 7, 6, 4, 3, 2, 1, 0. 제뉴어리님의 제밀 승리. 축하드립니다.'

 

 "말도 안 돼."

 

 "형!"

 

 '10초간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패배, 3번 먼저 이겨야 승리. 라는 조건으로 모든 승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가정용 돌링 시스템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이용해주십시오. 이 시스템은 베니아 제국에서 직접 관리되고 있으므로 자세한 문의사항은 제국의 돌링 부서로 따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헤일린은 기기로 가서 칩을 빼내었다. 무형 전선 복구라니, 퀄리오에서 들어본 적도 없었다. 헤일린은 제뉴어리에게 인형을 건네주었다. 제뉴어리는 헤일린에게서 인형을 건네받았다. 아니, 제뉴어리가 받은 것은 승리였다. 자존감 그 자체였다.

 

 "축하해, 제뉴어리. 이겼네."

 

 "헤일린 누님."

 

 "몸 쓰는 일에는 자신없지만, 이런 거라면 잘해서 다행이야. 널 도울 수 있어서."

 

 제뉴어리는 목이 매였다.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이 마음 속을 가득채웠다. 첼은 그들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아냐! 제뉴어리는 나한테 이길 수 없다고!"

 

 "무슨 말이니?"

 

 "그야! 무형 전선 복구라니 이상하잖아?"

 

 "이상하지 않아. 제뉴어리의 인형은 1세대 부품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1세대?"

 

 "그래. 1세대는 시험에 가까웠어. 뒤에 나온 2세대에 비하면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지. 그래도 1세대 부품이 계속 판매되는 이유는 1세대만의 장점 때문이야. 1세대는 전선이 끊어져도 부품 자체의 비상 마력으로 전선 복구가 되거든. 가정용이라 복구가 좀 느리긴 했지만, 제밀은 결국 이겼어."

 

 "설마, 그런 거 난 모른다고!"

 

 "게다가 맨 처음에, 분명히 말했지 않니? 나한테 지는 건 제뉴어리에게도 지는 거라고."

 

 "!"

 

 "나와 제뉴어리는 한 팀이었어. 이제와 그걸 부정하려는거니?"

 

 할 말이 없었다. 헤일린은 고요한 눈으로 첼을 내려다보았다. 첼은 러셀부인이 뛰어오며 저를 부르자 화가 났다. 어머니 앞에서 부끄러운 꼴을 보인 것은 다 저 여자 때문이었다. 첼은 근처에 서 있던 기사의 검을 빼들었다. 사람들은 치기 어린 행동에 놀랐다. 레이디의 몸에 상처가 날 수도 있었다.

 

 "그만하거라."

 

 그녀의 앞을 막아선 건 아드리안이었다. 아드리안은 의자로 첼의 공격을 막았다. 리첸이 첼의 목을 쳐 기절시켰다. 러셀 부인은 첼과 헤일린이 무사한 것에 안도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룰 아래에, 승부가 끝났습니다. 경기를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깔끔한 마무리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랬다. 러셀 부인은 사라스와 첼, 기사 한 명을 데리고 연회장을 떠나려했다. 헤일린은 사라스를 붙잡았다.

 

 "사라스, 라고 했던가."

 

 "네?"

 

 "넌 비겁한 아이가 아니야. 형을 잘 붙잡아줬으면 좋겠구나. 너흰 아직 어리니까 기회는 충분해."

 

 "……죄송했습니다."

 

 사라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헤일린은 이제야 정말 안도한 표정이었다. 리첸은 그녀의 옆에 서서, 모자가 돌아가는 걸 같이 보았다.

 

 "괜찮은 거냐?"

 

 다시 평소의 말투인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첸도 그녀를 향해 더 묻지는 않았다. 아드리안은 조금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 말했다.

 

 "몸은? 어디 다치신 데 없으십니까? 헤일린 영애, 다치실 뻔했습니다."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니 염려마십시오."

 

 아드리안은 이곳저곳 그녀를 살폈다. 조금 놀란 것 빼고는 괜찮아보였다. 헤일린은 아드리안이 참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 상황을 마저 정리하겠다며 그녀를 떠나갔지만, 다른 이들에게 갈 때까지도 그녀를 걱정했다.

 

 "제뉴어리, 넌 괜찮니?"

 

 "네. 누님께선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헤일린은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위층으로 고개를 올렸다. 라리마가 제뉴어리와 헤일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황망한 표정이었다. 헤일린은 라리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지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제뉴어리는 라리마가 무서운지 헤일린의 숄을 살짝 잡았다. 헤일린은 제뉴어리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대체 왜?"

 

 라리마는 나란히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을 보았다. 헤일린은 언제나처럼 라리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리마는 헤일린이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제 마음 속 어딘가가 일그러진 것 같았다. 헤일린이 그 원인이었다. 라리마는 어린 날, 헤일린을 마중나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래, 그 때도 헤일린은 저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리마는 머리가 빠르게 식는 것 같았다. 그녀는 웃고 있으나, 웃고 있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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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Wine day 2017 / 6 / 24 47 1 4805   
8 8. Can be a doll? 2017 / 6 / 21 35 1 7747   
7 7. 규칙 아래에서 2017 / 6 / 21 34 1 9752   
6 6. 검은 갑주(2) 2017 / 6 / 21 24 1 5065   
5 5. 검은 갑주 2017 / 6 / 21 24 1 6216   
4 4. 갑주(甲胄)를 두르고 2017 / 6 / 21 26 1 7826   
3 3. Twisted Hero 2017 / 6 / 21 33 1 7693   
2 2. 투영(投影) 2017 / 6 / 21 67 1 8079   
1 1장- 1. 귀국 (3) 2017 / 6 / 21 318 2 7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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