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3. Twisted Hero
작성일 : 17-06-21 22:34     조회 : 33     추천 : 1     분량 : 769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3. Twisted Hero

 

 헤일린 페리헬은 천성적으로 관찰자 역할을 선호했다. 그건 헤일린 본인이 당했던 비슷한 일이었어도 그랬다. 공정함에 의거하지 아니한, 사람에 의한 구조 속에서 헤일린은 한번 도망쳤었다. 그녀 자신에겐 적어도 그럴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헤일린, 동생들과의 사이는 어떠느냐?"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백작님."

 

 "그러면 쓰나. 동생들과 잘 지내야 한다, 헤일린."

 

 백작부인이 초대한 티타임은 그녀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지루하고 답답했다. 산소 수치를 백작이 낮추는 것 같은 기분도 들 정도였다. 백작이 온다하여 페리헬 저택에 대부분이 차를 마시러 왔다. 그 중에는 라리마와 그 또래들도 많이 보였다. 라리마는 백작부인 바로 근처에 앉아서 백작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게다가 차를 마시면서도 헤일린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제 30분인가. 시간이 느렸다.

 

 "네, 그러면 좋지요."

 

 "그래, 라리마가 곧 결혼하면 보기 힘들어지니 많이 놀아주거라. 아직 이 아이는 애정이 많이 필요한 나이니까."

 

 애정인가. 본론을 꺼낸 백작의 눈빛이 협박처럼 다가왔다. 또, 또, 또! 백작의 입에서 라리마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좋은 일은 없었다. 밀려오는 지긋지긋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라리마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보았던 경극처럼, 화려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라리마가 사교활동을 일찍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도 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백작님."

 

 당신이 결혼시장에 일찍 내던졌으면서 아이 취급하는 건가요? 헤일린은 스스로를 순한 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페리헬은 그녀의 공격성을 자극하고는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른이었다. 아이였던 때와는 달랐다.

 

 "라리마, 내가 너를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셀리가 그녀의 눈짓을 보고 선물상자를 가져왔다. 셀리에게서 상자를 받아든 라리마가 기뻐하는 반응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언니께서 직접 준비하신 건가요?"

 

 "그래, 곧 네 생일이라고 들었단다. 여자아이는 예쁜 옷을 좋아하니까 기다리게 하긴 싫어서. 어서 풀어보렴."

 

 "네, 물론요!"

 

 라리마는 빠르게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푸른 회색에 프릴이 달린 원피스였다. 파스텔 톤의 코트도 있었는데, 이는 라리마가 좋아하는 색이기도 했다.

 

 "어머나, 정말로 예뻐요!"

 

 "전에 네가 추천했던 가게에서 맞춰온 거란다. 마음에 드니?"

 

 "제가 추천했던 가게요?"

 

 "그래. '린셀'말이야."

 

 린셀이라는 말에 라리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헤일린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그날 일이 다시 떠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적인 티타임 자리였다. 헤일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요, 백작님? 라리마는 역시 저런 밝은 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오, 그렇구나. 라리마, 정말 어울려. 아드리안 백작을 만나러갈 때 입고 가면 어떠니?"

 

 "그, 그럴까요?"

 

 라리마의 얼굴에 홍조가 피었다. 숙녀를 위한 옷이라 약혼자와의 자리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라리마는 그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소문에 의하면 아드리안은 라리마를 한 여성으로 아껴준다고 했다. 둘이 같이 있으면 그렇게 다정해보일 수 없다며 다들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라리마. 그 분이 그리 좋으니?"

 

 "헤일린 언니도 참! 부끄러워요!"

 

 헤일린의 말에 라리마가 얼굴을 가렸다.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웃을 때, 테이블 끝에서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 제뉴어리. 미안. 설탕을 집으려다가 그만."

 

 "첼, 제뉴어리한테 그러지마~ 괜찮냐?"

 

 옆에 있던 이가 그를 도와주는가 싶더니 찻주전자도 엎어버렸다. 뜨거운 차가 제뉴어리의 바지에 쏟아졌다.

 

 "앗, 미안!"

 

 "거기,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숙부님. 저희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제뉴어리가 차를 못 마시게 되었어요."

 

 "이봐, 하녀. 얼른 새 찻잔과 차를 준비해."

 

 제뉴어리의 하녀가 그의 바짓단을 찬 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그걸 본 소년들은 미안하단 표정을 지우고 살짝 웃었다. 겉으로야 백작에게 별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 하는 것이지만, 제뉴어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실수로만 보기에 너무나 절망적이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하녀의 말에도 그는 말이 없었다. 제뉴어리는 한쪽 손으로 병장 인형을 꼭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나갔다.

 

 "칫, 재미없게."

 

 작게 말하는 소리에 들은 또 장난을 쳤느냐고 그들을 나무랐다. 첼 형제는 유독 제뉴어리에게 장난을 많이 쳤다. 첼 형제뿐만 아니라 짖궂은 다른 형제들도 그러했다. 헤일린의 시선이 첼 형제에게 닿자, 라리마가 그녀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너무 신경쓰지 마셔요. 제뉴어리는 원래 말수도 적고 화도 안 내는 걸요. 분명 옷이 젖어서 나간 걸 거예요."

 

 "그렇구나, 라리마. 하지만 저 아이들은 좀 너무했다."

 

 "네?"

 

 "백작님이 계신 곳에서 실수를 하다니, 다도 교육을 다시 받아야겠구나."

 

 "헤일린."

 

 백작 부인이 작게 헤일린을 불렀다. 헤일린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박수까지 치며 부인에게 말했다.

 

 "페리헬 가는 기본 교양이나 매너에 매우 충실하죠. 저 아이들을 보니 아직 기본적인 것을 모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페리헬 가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입니다. 기본적 소양을 위해 첼이라는 아이에게 다시 교육 선생을 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귀족이라면 적어도 티타임에 대해서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 소양을 논하는 것에 부인은 부정할 어떤 말도 찾지 못 했다. 게다가 헤일린은 형제 중에서도 유일한 미혼 성인이었다. 그녀의 말은 집안의 일을 담당하는 부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네 말이 옳구나, 헤일린."

 

 부인은 제 일을 늘린 첼을 살며시 노려보았다. 안그래도 라리마의 결혼 준비로 피곤한 참이었는데, 짐을 더 주는 장난꾸러기들이 좋아보일리 없었다. 첼과 그 동생은 부인의 시선에 난감해졌다.

 

 "네 말대로 하마, 다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하지만 첼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첼의 어머니가 나섰지만, 부인은 오히려 그녀를 타일렀다.

 

 "오, 제발. 다시 저 아이에게 기회를 주세요. 제가 확실히 교육시킬 선생을 잘 모집해보지요."

 

 "나쁘지 않군요, 부인. 동생아, 부인의 말대로 첼에게 다시 배울 기회를 주자."

 

 백작까지 동의하니 첼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다시 이 나이에 예의범절을 배운다고? 친구들에게 우스갯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 10세 이전에 이미 기본 소양을 다 배우는 귀족 사회에서는 광대가 되는 꼴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마저 말리지 못 했다. 첼은 어머니를 보다가 부인을 보았다.

 

 "……"

 

 아니, 정확히는 부인 근처에 있는 라리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라리마는 몇 번씩 첼과 시선을 마주봤지만, 이내 헤일린을 보고는 다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헤일린은 라리마와 첼이 시선을 교환하는 것을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왜 첼이 라리마를 최후의 보루처럼 바라보는지 현재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날 티타임은 첼이 웃음거리가 될 미래를 떠안은 걸로 마무리되었다. 첼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향했다. 어머니가 그를 붙았으려 했지만 그는 어머니한테조차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걔네들 모두!"

 

 그러고보니 퀄리오에서 제뉴어리를 처음 봤을 때에도 첼이 있었다. 제뉴어리의 병정 인형을 깔봤던 아이였군. 앳된 얼굴 뒤로 숨겨진 잔혹함이 참 아이다웠다. 순수한 만큼 잔혹한 게 아이니까. 일단 어디로 갈지는 뻔하군. 헤일린은 셀리에게 제뉴어리의 방이 어딘지 물었다.

 

 "저깁니다, 아가씨."

 

 그녀의 생각대로 첼은 제뉴어리의 방 앞에 있었다. 호흡이 거칠었으나 진정할 기미는 안 보였다. 첼의 표정은 이미 제뉴어리를 죽일 것 같았다. 셀리와 헤일린은 조금 떨어진 구석에 몸을 기댔다.

 

 "야! 제뉴어리! 안 나와? 내가 너 때문에 티타임에서 얼마나 쪽팔렸는 줄 아느냐고! 이 나이에 차 마시는 걸 다시 배우게 되었어! 야! 나와서 한 대라도 맞으라고! 널 안 때리고서는 죽을 것 같으니까! 다 네 탓이야, 미친 놈아!"

 

 제뉴어리의 방문을 부실 듯, 발길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첼은 어렸고 문을 부실만한 힘은 없었다. 치기어린 발길질은 오래가지 못했다. 첼은 이번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 방으로 돌아가려나봐요, 아가씨."

 

 셀리가 작게 속삭였으나 귀에 잘 들려오지 않았다. 첼은 어른스럽지 않았다. 금방 진정하고 갈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첼답지 않은 행동을 유발하는 배후라도 있나? 헤일린은 돌아가자고 요청하는 셀리를 무시했다. 조용히 첼이 향한 방향을 보았다. 첼의 방이 있는 본저택이긴 했다. 헤일린은 신중하게 첼의 뒤를 밟았다. 첼이 향한 곳은 차기 백작부인의 방이었다.

 

 "전해줘. 내가 왔다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도련님. 라리마 아가씨는 곧 결혼하실 몸이십니다. 이리 방문하시는 건 예의에 어긋납니다."

 

 "누가 원하는대로 해준건데 날 이리 홀대하지? 어이! 라리마!"

 

 첼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데도 큰 소리를 내는 것이 못내 불안했는지, 방문이 열렸다.

 

 "라리마, 너 아까 나 무시하더라?"

 

 "첼, 진정해."

 

 "너라면 그 분께 자비를 구할 수 있었잖아. 어째서 날 배신한 거지? 제뉴어리따위, 네가 먼저 괴롭히고 싶어했으면서!"

 

 "내, 내가 언제? 난 그냥……"

 

 라리마가 말을 더듬었다. 첼은 라리마가 심하게 눈치보던 것을 기억했다. 그 시선이 어떤 이들에게 닿아있었는지도.

 

 "웃음 거리가 되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말이야, 난 네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줬잖아.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지?"

 

 아, 들어선 안될 말을 들은 것 같아. 그녀의 마음이 상황과는 반대로,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한순간 들었던 분노와 실망감이 의아스러웠을 정도였다.

 

 안 돼, 안 돼, 안 돼! 라리마의 머리에 온갖 상상이 들이닥쳤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이 전부 헛수고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 상상의 끝엔 저를 경멸하는 아드리안이 있었다. 아니, 완전한 끝에 서 있는 건 아드리안이 아니었다. 표정조차 보여주지 않는 여인이 있었다.

 

 "첼, 내가 다시 말씀드려볼게. 그러면 된 거지?"

 

 누가 들어도 라리마의 목소리는 꽤나 다급했다. 첼은 그제야 조금 만족한 표정으로 라리마에게 경고했다.

 

 "네가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지 알아. 진실을 알리는 것도 못할 짓은 아니지. 네가 잘 보이고 싶은 그 사람은 꽤나 원칙적인 것 같으니까!"

 

 짙은 눈썹은 끝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첼은 사나운 표정으로 라리마를 노려보았다. 라리마는 첼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래, 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날 바라보지 않는데도 그 때 날 지배하고 있었어, 그 사람은……"

 

 "아가씨!"

 

 라리마는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다. 주저 앉은 그녀가 주변인에 의해 방안으로 이끌려갔다.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아가씨! 계속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헤일린이 벽에서 몸을 뗐다.

 

 "아가씨."

 

 "돌아가자. 원하는 정보는 다 얻었어."

 

 그녀는 가벼워 보이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셀리는 그녀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셀리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아가씨,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떻게 할지는 방금 막 정했단다."

 

 "네?"

 

 "제뉴어리, 그 아이를 돕겠어. 제뉴어리는 라리마 그룹에 있던 아이였을 거야. 하지만 제뉴어리는 소신이 있는 아이였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탓에 버려졌겠지. 그리고 첼이 제뉴어리를 미끼로 라리마 그룹에 들어갔다면 이야기는 뻔한 거잖아."

 

 "그야, 그렇지만. 아가씨, 라리마 아가씨가 배후라면 위험합니다."

 

 "뭐가?"

 

 무엇이 위험하느냐는 말에 셀리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라리마를 건들게 된다면 페리헬 가의 총수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걸 똑똑한 헤일린이 모를 리가 없었다.

 

 "위험하지 않아, 셀리. 그 아이는 날 동경하니까."

 

 "아가씨."

 

 제 간은 당신보다 크지 않다고요! 셀리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제까지 헤일린은 직접적인 갈등을 피해왔다. 그래서 베실린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저택을 떠날 수 있었다. 헤일린은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릴 만한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셀리는 지금까지처럼 그녀가 평온하게 살기를 원했다.

 

 "재밌지 않니?"

 

 "네?"

 

 지금의 헤일린은 이상했다. 제가 아는 헤일린은 지혜롭고 조용했으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뭔가 헤일린의 악마를 자극한 것 같았다. 헤일린은 셀리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그 손은 셀리의 눈가를 다정하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 역시 아가씨가 맞구나. 셀리는 안심했다. 헤일린은 셀리를 살짝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미워했던 그 아이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잖니. 아, 정말 재밌네. 그 아이가 더 불행했으면 좋겠어. 그럼 기분이 정말 좋아질 것 같아. 그 아이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잖아."

 

 "아가씨."

 

 "잘 보이고 싶다니. '동경'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셀리? 어쩌면 그 아인 날 인형으로 만들고 싶은지도 모르지. 날 곁에 두고 뭘 할지 넌 알겠니? 난 더 이상 13살의 소녀가 아닌데 말이야."

 

 셀리는 헤일린의 말을 이해했다. 헤일린은 미묘한 외모로 라리마의 눈에 들었고 라리마는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백작은 언젠가 팔려나갈 헤일린과 사랑스러운 딸이 가까워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일린은 작은 고사리 손으로 원서를 썼다. 그 옆에 있었던 건 셀리, 본인이었다. 그 때의 헤일린의 표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이 표정이지 않았을까, 셀리는 생각했다.

 

 "셀리, 난 그 때 울고 싶었어. 화내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 라리마 때문에."

 

 백작이나 저를 괴롭히는 영애들 때문이 아니라, 라리마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헤일린의 눈은 차가웠다. 부드럽게 웃고 있었으나 그건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 미소를 보고 누가 따라 웃겠는가. 강철로 만들어진 미소가 너무나 아프게 느껴져서, 셀리는 저도 모르게 아가씨를 안아버렸다. 헤일린의 몸은 차가웠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 13살의 아이는 이제 많이 자라, 셀리의 키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래도 그 냉기와 분노만큼은 변하지 않아서 셀리는 진짜로 울고 싶어졌다.

 

 "아가씨, 전 아가씨의 사람이니까 뭐든지 도울게요."

 

 "셀리."

 

 헤일린은 셀리를 떼어내고 그 눈을 마주보았다. 헤일린은 셀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런 말 하지마. 난 네게 위험한 일이나 네 인간성을 부정하는 일 같은 건 절대로 시키지 않아. 그건 곧 너를 버리는 일이니까."

 

 "아가씨……"

 

 아, 이번엔 정말 아가씨였다! 셀리가 헤일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헤일린은 타인을 함부로 지배하거나 이용하지 않았다. 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결코 셀리를 망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 자신을 망치면 셀리도 망가질 수 있었다. '악의'란 그런 것이었다.

 

 "자, 그럼 제뉴어리의 하녀를 불러와주겠니? 은밀히 몰래. 자세한 사정을 알아야 도울 수 있을 테니까."

 

 "네! 아가씨!"

 

 "부탁할게, 셀리."

 

 사람은 완벽하지 않았다. 헤일린 역시 그러했다. 어느 누가 완벽한 그릇을 지닐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 일그러짐이 항상 용인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라리마 역시 또래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헤일린은 저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마음 속 깊이 라리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화살이 그녀에게 향하는 건 상황이 만든 것일 뿐이었으니까.

 

 "아가씨, 들어가도 될까요?"

 

 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미안하구나, 라리마. 내 화살이 향하는 건 역시 너인 걸. 마음 속으로 사과한 헤일린이 잠시 심호흡했다. 이제부터는 살얼음판을 걸을 수도 있었다.

 

 "들어오렴."

 

 제뉴어리의 전속 하녀, 나오미가 헤일린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일그러진 영웅 앞에 선각자가 되겠노라 다짐한 그녀에게 바치는 경외 같았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9. Wine day 2017 / 6 / 24 47 1 4805   
8 8. Can be a doll? 2017 / 6 / 21 35 1 7747   
7 7. 규칙 아래에서 2017 / 6 / 21 34 1 9752   
6 6. 검은 갑주(2) 2017 / 6 / 21 25 1 5065   
5 5. 검은 갑주 2017 / 6 / 21 24 1 6216   
4 4. 갑주(甲胄)를 두르고 2017 / 6 / 21 26 1 7826   
3 3. Twisted Hero 2017 / 6 / 21 34 1 7693   
2 2. 투영(投影) 2017 / 6 / 21 67 1 8079   
1 1장- 1. 귀국 (3) 2017 / 6 / 21 319 2 7489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