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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2. 투영(投影)
작성일 : 17-06-21 22:30     조회 : 66     추천 : 1     분량 : 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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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투영(投影)

 

 그녀의 방은 창가에 빛이 잘 모여드는 곳이었다. 가끔 너무 피곤해 지젤이 깨워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 언제나 편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햇볕 향기는 제국의 국화, 수레국화의 향도 같이 가져와 그 꽃말대로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나 왕국은 아니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그런 기분좋음을 느낀 적은 없었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셀리의 부름에 현실을 인식한 그녀가 눈을 떴다. 아, 여기는 제국이 아니지. 라리마의 약혼식 이후, 그녀는 꽤나 편하게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백작은 라리마의 결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야채스프와 연어 샐러드입니다."

 

 "응."

 

 "차는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커피가 좋겠어. 설탕만 조금 넣어줄래?"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녀는 셀리가 입혀주는 가운을 입고 식사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먹는 그녀는 식사 시간도 따로 정했다. 그녀는 페리헬 가에서 겉돌고 있었고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하여 누구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셀리에게 명령했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시내 구경을 하고 싶어."

 

 "외출 준비 하겠습니다, 아가씨."

 

 "데이트하는 거 아니니까 드레스나 코르셋은 준비하지마."

 

 "간편한 치마와 구두를 준비하겠습니다."

 

 페닐 왕국은 베니아 제국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었다. 왕국의 여인들은 화려한 옷보다는 단순하고 활동성 있는 옷을 선호하게 되었다. 제국은 학문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왕국도 그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문화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왕국의 사상은 보수적이지만, 이대로 가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노라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왕실과 제국의 디자인을 혼합한 옷이 많이 나온답니다, 아가씨. 최대한 아가씨가 좋아할만한 걸로 준비해두었습니다. 한 번 보세요."

 

 셀리는 그녀가 오고나서 꽤 부산스러웠다. 셀리는 미의식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헤일린은 며칠 동안 거울과 친해졌다. 그 보람이 있었던지, 인어 라인의 긴 치마는 무척이나 그녀에게 어울렸다. 끝에 약간의 레이스가 달려 여성스러움을 드러냈다. 다리를 길게보이기 위한 짧은 가디건도 마음에 들었다.

 

 "아가씨는 키를 위해 높은 구두를 신지 않으시니까요. 이렇게라도 비율을 좋게 보여야죠."

 

 "역시, 셀리야."

 

 머리도 옆으로 땋아내리니 봐줄만했다. 연한 화장까지 마친 그녀가 시내로 향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중산층 이상이 많이 가는 파닐 거리였다. 연극과 기예, 옷과 놀이감이 가득했다. 곳곳에 있는 파라솔 밑으로 젊은 여성들과 연인들이 보였다.

 

 "이런 옷도 아가씨께 꽤 어울리실 듯하네요."

 

 "이런 건 셀리가 더 예쁠 것 같은데?"

 

 셀리는 칭찬이 싫지 않은지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헤일린이 한 아이와 부딪쳤다. 그 뒤로 아이들이 뒤따라왔는데, 모두 목각 인형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꽤나 정교한 인형도 있어, 그녀가 잠시 물끄러미 보았다.

 

 "다,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물론. 내 침묵이 널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단다."

 

 "괜찮아요. 제국에서 오셨나요? 옷차림이 신선하네요."

 

 "아, 티나니? 그래, 제국에서 왔어. 그 인형, 제국에서 보던 거랑 비슷하구나."

 

 제국에서도 정교한 인형이 많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단순히 장식품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헤일린은 인형을 좋아하는 것도 여기에 옮겨온 것인가 생각했다.

 

 "네, 맞아요. 저희, 퀄리오를 하러 가던 중이었거든요. 이만 가볼게요!"

 

 아이들이 빨리 가자며 뛰어갔다. 퀄리오? 셀리가 옷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헤일린을 찾았다. 헤일린은 꾸미는 걸 좋아하는 그녀를 이해했다. 셀리는 주인을 섬기는데 충실하지 못한 게 부끄러운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셀리, 괜찮아. 나들이라 좋은 거지? 그나저나 '퀄리오'라는 게 뭐야?"

 

 "아, Quarrel of marionette의 줄임말이랍니다. 저런 인형을 마법 전선에 연결해 서로 겨루는 거죠."

 

 "Dolling을 말하는 거니?"

 

 제국에서도 인형을 이용한 스포츠가 있었다. 마력이 담긴 도구를 이용해 인형끼리 겨루는 것인데, 마법에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아 가능한 거였다. 제국에서 매년 대회를 열 정도로 귀족들의 스포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다.

 

 "가보실래요? 대형 인형 가게 옆에 있어요."

 

 헤일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셀리가 그녀를 이끌었다.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인형부터 밀랍으로 만들어진 인형까지 다양했다. 그 장소도 넓어 그녀는 제국의 문화가 이렇게까지 전파된 건가 놀라워했다.

 

 "셀리, 퀄리오 강사들은 많지 않구나."

 

 "네, 뭐. 그 곳의 퀄리오와 다르게 대중적이라고 알고 있어요. 전문 강사는 많이 없겠지요. 음악을 들으며 노는 아이들도 있고, 가볍게 겨루는 아이들도 있고요."

 

 연습장과 이어진 인형 가게에서는 '퀄리오, 즐겨보시라!'라는 문구와 함께 퀄리오를 광고하고 있었다. 돈독이 올랐군. 귀족이라면 제국에서 온 수입품을 살테니 한 몫 단단히 챙길 것이었다. 돌링(dolling)하는 영상도 비싼 마법 영상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혀를 차던 헤일린이 특이한 인형을 발견했다.

 

 직접 만든 듯한 느낌을 주는, 투박한 목각 인형이었다. 병정 옷이 참 귀여워 시선이 갔다. 다른 인형보다 살짝 크지만 사소한 부분, 부분에 공을 들인 게 보여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건 그 인형의 움직임에 활기가 없었다는 거였다.

 

 "거봐, 크기만 크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네!"

 

 그녀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돌링은 기본 1:1이었다. 그런데 저 경기에는 두 인형이 한 인형을 몰아부치고 있었다. 다른 연습을 봐도 1:1이지 1:2 이상은 없었다.

 

 "너 같은 건 이런 거 못할 거라고! 둔해가지고서는!"

 

 병정 인형을 다루는 아이는 이미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결국 구석까지 몰려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인형을 회수한 아이들이 남자 아이를 놀렸다.

 

 "공부만 잘하지 몸도 굼뜬 네가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이제 여기 다신 오지마!"

 

 "저 바보, 너한테 질 거 알면서 왜 왔대?"

 

 "라리마도 저 애는 안 좋아하잖아? 말도 안 하고 화도 못 내고."

 

 "큭큭."

 

 라리마. 아이들은 '라리마'라는 이름을 빌려 제 권위와 자존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자각 없는 순수함에 헤일린은 심경이 복잡해졌다. 헤일린은 혼자가 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병정 인형을 주워 먼지를 털어주자 아이가 헤일린을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과 순한 인상이 더 안타까웠다. 사람을 미워할 줄도 모르는 걸까? 왜 분노하지 않지? 헤일린은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니?"

 

 "..."

 

 아이는 잠시 그녀를 보더니 연습장을 뛰쳐나갔다. 아, 동정은 싫었던 걸까? 괜한 실수를 한 기분이 들어 죄스러움이 느껴졌다.

 

 "저 아이, 페리헬 가 아이네요."

 

 "뭐?"

 

 "라리마 아가씨보다는 두 살 어리다고 알고 있어요. 라리마 아가씨의 친척분이랍니다. 워낙 성격이 순해서 저렇게 당하고만 있다고......"

 

 페리헬 가 아이였단 말이야? 헤일린은 무시당하던 아이를 떠올렸다. 분명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

 

 "이름이 뭐니?"

 

 "네?"

 

 "저 아이의 이름 말이야."

 

 아이의 이름이 궁금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변덕 같은 충동이었다. 그 충동은 어떤 감정이 되어 헤일린을 활동적으로 만들었다. 조용히 있긴 했지만 집안의 행사에 참여했다. 관심없던 귀족학교까지 방문하겠다는 헤일린을 가장 이상하게 여긴 건 셀리였다.

 

 헤일린은 셀리가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확인하는 걸 보고도 옷을 갈아입을 뿐이었다.그녀는 직접 편지를 보내 학교 견학을 하고 싶다고 했고, 제국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녀를 거절할 교장은 없었다. 그녀는 셀리에게조차 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셀리도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가씨, 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네, 네?"

 

 "그저 교육에 관심이 생겼을 뿐이야."

 

 "정말 이러실 거예요, 저한테?"

 

 뒤만 졸졸 따라오면 좋으련만, 셀리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헤일린이 그만하라고 말할 무렵, 환한 금발의 소녀가 그녀를 막았다.

 

 "언니! 같이 홍차라도 마시지 않을래요?"

 

 "아, 라리마."

 

 놀아달라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어떤 의미로는 셀리보다 더 무서운 상대로군. 헤일린은 라리마에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라리마, 약혼 이후 약혼자를 만나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그 분은 아주아주 바쁘신 걸요.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할 뿐이예요."

 

 아드리안 테닌. 그의 이름이었다. 뛰어난 일처리 능력 덕에 그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약혼녀와의 식사를 위해 일주일에 3일은 밤샘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잠과 이별하고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까지 농담으로 나돌 정도였으니, 그의 일이 아주 많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미안해서 어쩌니,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언니."

 

 "셀리, 넌 내 옷정리를 좀 해놓거라. 이제 계절이 바뀌고 있으니 말이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끝내놓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셀리가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라리마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리마 주변의 영애, 영식들이 헤일린을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냈다.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들이군. 헤일린은 속으로 딱하다고 생각했다. 백작의 사랑을 받는 차기 백작부인, 라리마. 이 소녀의 옆에 붙어 무엇을 얻어먹으려고 하는 걸까. 헤일린은 페리헬 가의 연장자였다. 헤일린 위의 자녀들은 모두 출가한 상태였고, 헤일린은 어른으로 대우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다행이었지, 만약 또래의 소녀였다면 어떻게 대했을지 안 봐도 뻔했다.

 

 "헤일린 언니, 언니 말씀대로 계절이 바뀌고 있으니 쇼핑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다음에 같이 갈까요?"

 

 라리마의 손이 작게 떨렸다. 거부당할까봐 두려운 걸까? 헤일린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래, 나쁘지 않구나. 추천하고 싶은 가게가 있니?"

 

 "네, 물론이요! 린셀이라는 가게가 좋답니다."

 

 디자이너 리어셀 카질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래, 유명하고 옷이 좋긴 했다. 단, 아동복이 많았다. 헤일린은 해맑게 웃는 그 미소를 짓눌러버리고 싶었다. 아, 무지한 순수함을 어찌 이해해야 좋은 거지? 백작의 그늘 아래 이 소녀는 많은 걸 누려왔다. 지난 날 헤일린이 누리지 못한 것에 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었지. 헤일린은 진하게 미소지었다.

 

 "언니?"

 

 "그래, 그 가게에서 너와 내가 아동복을 나란히 입겠구나."

 

 "……"

 

 아, 실수했다. 헤일린의 미소가 진해질수록 라리마의 입가는 일그러졌다. 라리마는 저 미소를 알고 있었다. 아니, 기억해냈다. 어린 라리마가 헤일린을 배웅해줬을 때 보여주었던 미소였다. 짧은 다리를 이끌다 넘어졌을 때 부끄러워서 울어버렸었다. 좋아하는 언니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가 싶어 눈물이 나왔었지. 그 때는 다정하게 웃어주었는데. 왜 그 때가 떠오르는 걸까? 라리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라리마, 넌 이제 누군가의 아내가 될 거란다. 좀더 시야를 넓히는 게 좋겠다."

 

 헤일린은 라리마의 머리를 살짝 눌렀다.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부드러운 온기에 라리마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헤일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럼, 넌 네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겠구나. 나중에 보자."

 

 라리마에게 헤일린은 묘한 사람이었다.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멀어지는, 기묘한 거리. 본인이 받는 사랑을 이용해 그녀를 가까이 두고 싶었다. 헤일린은 라리마에게 가장 진솔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왜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거예요, 언니."

 

 작은 웅얼거림에 친구들이 되물었다. 라리마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런 라리마를 신경쓰지 않았다. 별 말 아니겠거니 생각한 것 같았다. 라리마는 헤일린이 어른스러움을 요구한다면 그러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냐, 우리 새로 들어온 차를 마셔보자. 마침 차 마실 시간이니까!"

 

 관대해야 해. 그게 어른스러움이니까. 라리마는 앞다투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

 

 

 헤일린은 그 시각, 왕국의 귀족 학교 세피첼리에 도착했다. 그녀에게 배정된 선생은 긴장한 눈빛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게, 렉시뮬(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액체. 달콤씁쓸한 맛이 일품.) 한 병이라도 줘야할 것 같았다.

 

 "역사 수업을 좀 보고 싶어요, 선생님."

 

 "네, 이, 이 시간이라면 1학년 아이들이 수, 수업을 받고 있겠네요."

 

 왕국에서는 9살 때부터 기초 수업을 받게 한다. 13살이 졸업이고 고학년이 될수록 숫자가 낮아진다. 1학년이라 함은 졸업 예정인 아이들이라는 뜻이었다. 선생은 그녀를 안내했다. 손에 땀에 차는 모양이 안쓰러워 헤일린이 결국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일을 보셔도 됩니다."

 

 "아, 아니. 죄송합니다. 전 제국 아카데미에서 오신 분도 처음이고 흑안도 처음이고 그, 하여튼 제가 긴장을 잘 해서가 문제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긴장을 잘 하시면 수업은 어떻게 하시고 계신 거죠? 말을 삼킨 그녀가 그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니 진정하세요."

 

 "하, 하지만."

 

 "제가 보기엔 선생님이 더 대단하니까요. 전 누굴 가르치는 재능은 없거든요."

 

 "정말입니까?"

 

 예, 정말로요. 그녀의 대답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흑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미천하다는 인식과 희귀하다는 악질적인 인식이 공존하고 있었다. 귀족가의 영애여도 이런 인식에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이렇게 좋은 사람이어도 시선은 언제나 따라붙겠구나.

 

 "그럼, 이제 안내해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표정이 많이 나아지셨어요."

 

 "그럼요!"

 

 하지만 내가 뭘 어쩌겠어. 문화는 개인의 힘으로 바뀌기가 힘들다. 그는 그녀가 제국에서 공부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안내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그녀는 그의 뜻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학생은 어려보이는군요, 선생님."

 

 "저 아이는 월반했어요. 또래 애들보다 똑똑한 편이거든요."

 

 "그런가요?"

 

 "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공부를 더 좋아해서요. 교장선생님도 주목하고 있는 인재죠."

 

 그녀는 그 수업을 좀 더 들었다. 아이는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집중하고 있었다. 몇몇이 그들을 힐끔거렸으나 그녀는 조용히 관망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12살 아이들과도 대화하는 것을 보고 교육에 정말로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미소가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호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오늘은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페리헬 영애."

 

 "네, 무척 즐거웠습니다. 학문에 정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군요."

 

 "영, 영광입니다."

 

 "아이들이 요즘 원하고 있는 학교는 어디어디인가요?"

 

 "페닐 왕국에서 관리하는 페닐 학원, 동쪽에 있는 파하나 수도원, 제국의 베실린 아카데미와 테레지아 아카데미 등등 다양합니다."

 

 "아무래도 큰 곳을 원하는군요."

 

 "네, 그렇지요."

 

 그녀는 교장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베실린 아카데미는 그녀의 모교였다. 제국의 명문 학교라 함은 바로 그 곳이었고, 그녀가 입학할 때에는 외국인이라도 봐주지 않았었다. 그 때를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곧 그 표정은 무너졌다. 그 소년이 생각났다. 독하게 공부하던 그 아이의 어깨는 참으로 무거워보였다. 펜을 꼭 쥔 손과 작은 어깨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복잡해진 머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가씨, 잠이 오지 않으세요?"

 

 "셀리."

 

 뒤척이는 걸 어찌 안 건지 셀리가 작은 등을 들고 다가왔다. 셀리가 등을 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릴 때, 셀리가 제 작은 손을 잡고 재워주곤 했었다. 그 손의 온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게 그녀를 안심시켰다.

 

 "네 손은 여전히 따뜻하구나."

 

 "잠들 때까지 있을게요. 아침은 조금 늦게 준비하라고 할테니 푹 주무세요. 잠이 부족하면 피부가 상한답니다."

 

 응. 그녀는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셀리의 손이 따스해서, 눈이 감기고 있었다. 그 날밤 꿈에선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 앞에 한 소년이 있었다. 순한 인상을 가진, 증오를 모르는 소년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눈을 본 순간, 그녀도 13살의 소녀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마주 보았고, 소년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했다.

 

 "살려줘!"

 

 소년이 세번째로 입을 열었을 때, 소녀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소녀는 소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힘도 없는, 애물단지인 소녀에게 소년의 말은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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