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지는 모르겠지만 책과 인터넷으로 보던 천체사진이 여기 있었다. 학교에서 찍은 사진은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보다 볼품없었지만 나름의 멋이 담겨있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는 거예요?"
문득 궁금해졌다. 카메라를 망원경에 달아서 찍으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다는 거지, 천체전용 카메라가 필요한 건가. 선배는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오늘 저녁에 옥상에 가서 찍을 생각인데 볼래?"
"네! 좋아요."
선배는 내게만 제안하지 않았다. 나를 시작으로 단톡방에 일정을 올리고 동방에 있는 동아리원들에게도 알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방에 있는 현철 선배와 장수환만 가능하다고 반응이 왔다. 민주는 알바 가야 해서 안 되고 유진이는 내일 쪽지 시험이 있어서 공부해야 한다고 불참했다.
"근데 선배. 밤에는 촬영 안 해요?"
"저녁에만 촬영할 생각이야. 일몰 후 한 시간 이내가 잘 찍히는 시간이거든. 여기는 도시니까."
수성구나 중구처럼 빌딩들이 모여있고 차들이 막히는 지역이 아니지만 그래도 도시였다. 그래서 빛 공해 때문에 노트북에서 본 성운 사진이나 여러 빛깔을 띄고 있는 천체 사진을 찍기에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나는 사진 정리를 하는 선배와 사진들이 담겨 있는 노트북을 뚫어지게 봤다.
"윤서야, 심심해?"
"예? 아뇨. 왜요?"
"노트북을 계속 보길래."
"아, 사진이 예뻐서 계속 보게 돼요. 저는 저런 사진을 천문대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만 찍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신기해서요."
정말로 신기했다. 특히 내가 아는 사람이 저런 사진을 찍는다는 자체가.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선배가 찍은 사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라서 마치 주변에 선배와 나만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블로그 주소 알려줄까? 내가 찍은 사진들 모두 블로그에 업로드 하거든."
"네. 알려주세요."
블로그를 하시는구나. 나는 언제 블로그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들어가지 않았었나. 정보를 찾으러 블로그에 들어간 적은 있어도 운영한 적은 초등학교 이후로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블로그를 하는 선배가 신기했고 나중에 아이디로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온 사실을 선배가 알 테니까. 선배가 알려준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아까 노트북에서 본 사진들도 있었고 새로운 사진들도 있었다.
"와, 예쁘네요. 자주 들어가 볼게요. 업로드 자주 해야 해요?"
"그래. 시간 내면 때때로 올릴게."
저녁이 되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제육볶음을 시켜 먹었다. 상호이름은 찜닭이지만 제육볶음이 훨씬 맛있다고 소문난 이 집은 왜 찜닭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이게 마케팅 전략이라면 상당히 잘 먹혔다고 생각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나는 원래 음식 하나로 나눠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방에서 치킨과 피자뿐만 아니라 떡볶이 같은 같이 나눠 먹는 음식을 시키니 슬슬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남이 먹던 젓가락과 내 젓가락이 음식 하나에 들어가는 것은 적응하기 힘들어서 결국 내 의지로 동방 사람들은 나와 함께 먹을 때면 공용 젓가락으로 음식을 담거나 아니면 내가 먹을 음식을 한꺼번에 덜어갔다. 어떤 사람은 상당히 번거롭다고 하는데 같이 침을 묻힐 바에 이 방법이 훨씬 깨끗한 방법이지 않을까.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저녁을 배불리 먹고 줄곧 현철 선배와 함께 있던 민주는 알바 때문에 갔고 유진이도 내일 볼 퀴즈 때문에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아리원 사람과 도서관으로 갔다. 결국 마지막까지 동방에 남아있는 사람은 현철 선배, 장수환, 연수 선배, 그리고 나였다.
"우리도 슬슬 준비해볼까?"
시간을 확인한 선배는 값비싼 장비들을 안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현철 선배도 연수 선배를 도와 천체 망원경을 옥상으로 가져갔지만 나는 뭘 해야 하는지 몰라 멀뚱히 있었다. 장비들 모두 현철 선배와 연수 선배, 장수환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윤서야! 올라와."
몸만 가면 되는가 보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 몸이 가벼운 나는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가서 막 해가 진 하늘을 봤다.
"와..."
학교에 많이 왔지만 일몰 시간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학교는 또 처음이었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동아리방이 있는 학생회관 건물보다 작은 건물들은 조그맣게 보였고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은 길은 옅은 분홍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늘 또한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붉은색과 주황색이 퍼져있어서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사람의 손을 탄 풍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 나는 갓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 새처럼 목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고 몇 번이나 왔을 연수 선배와 현철 선배는 망원경을 설치했다. 장수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내 옆으로 와서 같이 학교 풍경을 봤다.
"윤서야. 너도 처음이야?"
"네."
나는 장수환에게서 떨어질 겸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내 마음을 알지 못한 장수환은 몇 초 있다가 내 옆으로 왔다.
"?"
혼자서 보고 싶은데. 장수환을 멀리 떨어뜨릴 요량으로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마침 연수 선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중앙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설치하는 거야."
카메라는 정말로 망원경에 달려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망원경에 달린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건드려봤다.
"하하! 안 떨어져. 떨어진다면 사진을 찍을 수 없겠지."
"이건 뭐예요?"
나는 카메라에 달린 긴 줄을 손으로 가리켰다. 선배는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는데 문과인 내가 실물로 망원경을 보고 설명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재미없지 않았다. 선배의 두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선배는 알까, 천체 망원경과 찍는 방법을 설명할 동안 두 눈이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노트북에 저장되어있는 성단 사진처럼 반짝거렸다는 것을.
"근데 여기서는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삼각대 설치해서 찍을 거야."
"왜요?"
"그야 여기는 도시니까. 잘 안 찍혀."
선배의 말에 나는 분주한 현철 선배를 봤는데 그는 천체 망원경이 없어도 질 좋은 카메라는 가지고 있었나 보다. 내가 설명을 듣는 동안 그는 삼각대를 세팅해서 카메라로 풍경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풍경과 함께 별 사진을 찍고 있었겠지만.
"그러면 망원경은 왜 설치했어요?"
"수환이랑 네게 보여주려고.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장수환은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히 궁금했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해하며 연수 선배가 망원경 해체하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선배. 근데 왜 천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천체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사진 찍는 것도 시간에 맞춰서 찍어야 하고 무거운 장비들도 옮겨야 하니까 힘들 것 같은데."
궁금했다. 상당히 매력적인 취미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연수 선배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게다가 현철 선배는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장수환은 나와 같이 연수 선배를 도와주다가 현철 선배의 부름에 저 멀리 갔으니 선배의 속마음을 혼자 알 기회였다.
"글쎄. 아마 사랑에 빠졌던 것 같아. 본격적인 시작은 대학생 때부터 했지만 예전부터 남들처럼 멋진 천체 사진을 찍고 싶었거든."
선배는 무슨 말을 빼고 무슨 말을 넣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선배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말해도 되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 마음에 간직할 테니까. 선배는 망원경을 정리하고 삼각대를 세우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기분이라서. 누구는 웅장하다고 하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처음 본 생각은 그거였어. 그때 좀 힘들었거든."
뭐가 힘들었을까. 선배가 이야기를 더 꺼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왜 힘들었는지, 무슨 사정인지 이야기를 풀지 않고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괜찮아. 대학교도 다니고 원하는 취미 생활도 하고 있으니까. 물론 돈이 많이 깨지지만."
인정하는 바다. 천체 망원경만 해도 값이 꽤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선배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열심히 사진을 찍을 동안 옆에서 구경했다.
"윤서야. 내가 찍은 사진 구경할래?"
연수 선배는 내 옆으로 와서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해가 남긴 희미한 붉은 자국과 다이아몬드 표면에 반짝거림을 닮은 별은 선배가 처음 느꼈을 감성 그대로 담아냈다. 맨눈으로 보는 저녁 하늘과 사진으로 담은 저녁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나 보다. 저녁 하늘과 달리 사진은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해 주었다.
"예쁘네요. 하늘을 직접 보는 것과 느낌이 달라요."
"그게 사진의 묘미지. 이참에 너도 사진 찍는 법 배워볼래?"
선배는 동아리방에 천체 망원경도 있고 자차도 있으니까 태워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거절했다. 천체 사진 촬영은 매력적이었지만 내 취미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보아하니 별이 잘 보이는 시골이나 산에 올라가서 촬영해야 하고 밤잠을 설치는 작업 같은데 집순이인 내게는 상당히 힘들 취미생활 같았기 때문이다. 선배는 아쉽다는 얼굴로 나중에 관심 있으면 말하라고 하며 마지막 촬영에 몰두했다.
"선배."
"?"
"제가 듣기로 공대는 많이 바쁘다고 알고 있는데 동아리 회장에 이런 취미생활까지, 다 할 수 있나요?"
공대나 우리나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같았지만, 동창생 말로는 매일 나오는 과제와 퀴즈, 실험 보고서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했다. 게다가 선배는 3학년으로 알고 있는데 3학년은 전 학년 중에 통틀어 전공과목이 많고 가장 바쁜 학년이었다. 선배는 내 물음에 웃으면서 답했다.
"물론 바빠. 하지만 과제는 공강 시간에 틈틈이 하고 미루지 않고 바로 하면 할 수 있어. 틈새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지."
"에이~ 그게 뭐예요?"
모범생 같은 답안에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정말이라고 말하면서 삼각대를 가방에 넣었다. 그런데 우리 이야기가 크게 들렸나 보다. 이미 촬영을 마치고 짐을 다 싼 현철 선배가 우리에게 와서 연수 선배가 말한 비법 뒤에 한 가지 사실을 붙였다.
"동아리 회장이면서 학생 부회장이란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겠네."
나는 잘 못 들었나 싶어서 재차 물었다. 전기공학과 3학년이면서 동아리 회장을 하고 취미생활까지 즐기면서 학생 부회장을 하는 게 가능한가? 연수 선배는 내가 심은 의심을 통째로 덜어냈다.
"맞아. 그래서 올해는 살기가 힘들어. 너무 많은 걸 하고 있어."
"... 사람이세요?"
내 반응이 웃겼나 보다. 연수 선배와 현철 선배는 푸하하 웃었고 뒤늦게 합류한 장수환은 어리둥절했다.
"사람이지. 괜찮아. 할만해."
연수 선배도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갈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을 뒤로하고 동아리 방으로 내려갔다. 사진을 찍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연수 선배의 이야기를 마저 못 들어서 그런 걸까, 나는 아쉬움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
"선배는 천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성실했어. 대외활동은 모르겠지만 교내 활동도 열심히 참여하고 전화기라 불리는 과였으니까 취업도 나보다 잘되겠지."
선배와 겪었던 시간에서 엑기스만 뽑아냈다. 선배가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불필요한 정보였으니까.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보폭에 맞춰서 걸었다. 벚나무는 여전히 길 따라 쭉 뻗어있었고 그만큼 우리에게 남은 시간도 많았다.
"사학과라도 열심히 하면 취업할 수 있을 거야. 근데 너는 대학원생이 되고 싶다 하지 않았어?"
"사람은 늘 예비책이 필요하니까."
나는 씩 웃고 끝이 보이지 않는 벚꽃길을 걸었다. 또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