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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65. 흑화
작성일 : 22-01-27 13:35     조회 : 29     추천 : 0     분량 : 8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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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전하! 후궁을 들이소서!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

 

 아침부터 조회가 열린 공간을 가득 채운 대소신료들의 외침. 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그는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 없소! 지금 중전은 회임 중이오. 중전의 뱃속에 종묘사직이 있으니 그만들 하라.”

 

 좌의정이 된 우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성희를 통해 구준도 알고 있었다. 영목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대소신료들은 중전의 회임소식에 웅성거렸다.

 

 “그러니, 후궁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당분간 마시오. 태교에 좋지 않으니.”

 

 ***

 

 “뭐?!!!”

 

 성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편상궁은 성희의 고함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전하께오서 직접...”

 “일을 어찌 하는 게야?!”

 “그래도 확실해졌으니-”

 “뭐? 이제와 어쩌자고?!”

 “안 될까요?”

 

 성희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안될 건, 없지?”

 

 ***

 

 성은 구준의 상소문을 읽고 있었다. 그때, 수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네가 앞으로 바빠질 것 같은데?”

 “무엇입니까?”

 “내 호위군대를 만들 계획이다. 최정예로 네가 뽑아서 꾸려.”

 “동궁전 익위사를 뽑아도 됩니까?”

 “물론.”

 “명 받듭니다.”

 “웬일로 고분고분하구나?”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간만에 통하는구나. 다 꾸리면 보고해. 훈련도 네가 시키고.”

 “네. 주군.”

 

 성은 왕이 된 후에 아주 바빠 보였다. 여전히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가 그나마 잠드는 순간은 유아의 품에 있을 때였다. 자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났고, 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앞으로 태어나 자랄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준비를 해야 했다. 그의 원대한 준비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차내관. 그자는?”

 “도착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성은 궁의 폐가에서 은밀히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실루엣이 여성이었다.

 

 “주상전하께서 오셨네.”

 

 야심한 시각, 성과 은밀하게 만난 여성은 다름 아닌, 김만영이었다.

 

 “전하.”

 “오랜만이네.”

 “예, 전하.”

 “알아보았느냐?”

 “직접 가서 보심이 어떠십니까?”

 “왜? 확신이 없느냐?”

 “장사꾼의 선금이라 하지요.”

 “오호라, 그대가 장사꾼이었지?”

 “두소라는 곳입니다. 아주 작은 마을이긴 해도, 땅의 기운이 좋고, 방어하기에도 좋은 조건입니다. 더불어 정훈세자의 능을 보실만한 곳과도 가깝나이다.”

 “그래? 내일 당장 보러가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들키실 지도 모릅니다.”

 “저질러야 하는 일이다. 그 큰 공사를 어찌 숨기겠느냐?”

 

 성이 피식 웃자, 만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이었군요.”

 “무엇을 말이냐?”

 “중전마마께서 항시 염려하시는 것 말입니다.”

 “중전이 염려하는 것?”

 “지금, 정말 웃기십니까?”

 “뭐?”

 “전하께선 웃음이 없으신 분으로 유명하잖습니까? 헌데, 왕위에 오르신 후로 웃음이 많아지셨다 들었습니다.”

 “그걸 중전이 염려한다? 왜? 다른 여인에게라도 흘릴까봐?”

 “아니요. 그만큼 힘드시다는 거니까요. 노력, 그걸 하시니까.”

 

 성은 몸이 굳는 듯 멈칫했다. 유아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모르는 것 없이 잘난 척 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부끄러워질 만큼. 그 염려를 티내지 않고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너에게 그런 말을 털어놓느냐?”

 “전, 중전의 이모니까요.”

 “아, 네가 중전을 거의 키웠다지?”

 “제가 한 일은 그저, 마마의 글공부를 위한 서책 팔이, 정도죠. 죽은 말순 아비만하겠습니까?”

 

 잠시 잊고 있던 존재에 성은 머릿속에 화살이 관통하는 것 같았다. 진짜 두통이 밀려왔다. 서이 미간을 찌푸리자, 봉수가 안절부절못했다.

 

 “곧 밝혀낼 것이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좌상과는 오랜 연이 있다지?”

 “정치며, 권력에 대해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영리하구나.”

 “성심을 넘겨짚어 화내지 않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상대는 대비다. 내가 불효자가 될 순 없잖느냐?”

 “그렇지요. 과거의 선례도 있고. 더 강해지셔야겠습니다. 싸우려면.”

 “지킬 것도 점점 더 많아지는 구나.”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 더 부탁하고자 한다. 너만이 알고 있으니.”

 “하명하소서.”

 “내 아버지. 정훈세자가 먹었다는 독약을, 구해다오.”

 

 ***

 

 한편, 중궁전. 유아는 화가 아주 많이 나 있었다. 그 앞에는 무릎을 꿇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실과 성상궁이 있었다.

 

 “김상궁. 김연실!”

 “예, 마마.”

 “네가 내 손에 죽으려는 것이냐?”

 “마마. 전하께서도 언젠간 알게 되실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판단한다 하지 않았느냐?! 지금이 어떤 때인데 그것을 전하께 전해!”

 “송구합니다.”

 “성상궁. 자네는 김상궁이 그렇게 부탁을 해도 내게 보고 했어야지. 이렇게 멋대로 할 것 같으면 이만 출궁하시게!”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마마.”

 

 김상궁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성상궁의 앞에 앉았다. 마치, 성상궁을 보호하려는 듯.

 

 “성상궁은 아무것도 모르고 전했습니다. 그저, 마마께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유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이를 어째...”

 “전하께서 도와주신다면, 더 빨리-”

 “위험하단 말이다. 내 선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천하가 다 알게 된다. 내 아버지의 명예도, 전하의 입지도 위험해질 것이다. 종묘사직이... 흔들린단 말이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옵니까?”

 “김상궁은 당분간 입궐하지 마라. 성상궁은 벌로 내훈을 모두 베껴오라!”

 “마마!”

 “중전마마!”

 

 유아는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연실은 자신의 처소로 가서 짐을 챙겼다. 유아의 화가 언제 풀릴지 모를 일이었다. 연실은 짐을 챙겨 유아에게 인사를 하러 다시 왔다.

 

 “중전마마.”

 

 유아는 화가 난 듯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김상궁만 두고, 모두 물러가라.”

 

 궁녀들은 연실이 홀로 단단히 혼날 것이라 여겼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물러갔고, 연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알고 있으니 됐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어? 너는 당분간 궐 밖에서 만영이모와 함께 있어.”

 “예?”

 

 아주 크게 혼이 날 각오를 하고 있던 연실은 뜻밖의 이야기에 놀랐다.

 

 “전하께서 수도를 천도하실 계획이야. 만영이모가 그 터를 찾았고. 연통이 왔어. 친위부대도 운검을 중심으로 꾸리고 계시다. 곧, 육조상인들이 반발할 일도 터질 거야. 난전을 허락할거거든.”

 “예?! 아니, 그런 엄청난 것을...”

 “그러니, 힘을 모아야지. 인재도 모으고.”

 “해서, 페데르를 통해 박지원선생과 교류하신 겁니까?”

 “그들은 조선의 개혁을 불러올 인재들이야. 조선에만 얽매여 있지 않아. 페데르를 봐. 점점 그런 외국의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연실은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돌아오셨네요. 우리 아가씨.”

 

 유아도 피식 웃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곱게 살았지?”

 

 연실은 옷소매로 눈물을 시익 닦았다.

 

 “명하신대로 열심히 붙어 있겠습니다.”

 

 연실이 당분간 곁에 있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아의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그럼에도 유아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모든 일을 감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아에게 봉수가 찾아왔다.

 

 “중전마마.”

 “상선이 어쩐 일입니까?”

 “잠시 후원으로 가보시지요.”

 “후원은 왜?”

 “가보시면 압니다.”

 

 유아는 후원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오로지 성 홀로 유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곤룡포를 입은 뒷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오늘따라 달빛도 오로지 그를 향해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전하.”

 “부인.”

 “어쩐 일이십니까?”

 “오는 길에 보지 못하셨소?”

 “무엇을요?”

 

 유아는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성은 유아를 잘 찾아오지 않았고, 유아가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성희는 계속해서 잡일을 시키며 시집살이를 시켰다. 윤희는 아이를 보호해준답시고 온갖 비방을 하루에 하나씩 하게 만들어 건강을 더 악화시켰다. 그 상황에 주위의 아름다운 것들이 보일 리 만무했다.

 

 “이게...”

 

 유아는 주위를 둘러보고 놀랐다.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화원. 유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우~ 팔이야.”

 “이걸 다, 설마 직접 하신 겁니까?”

 “마음에 드시오?”

 

 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배의 통증에 숨이 턱 막혀왔다. 밝은 달빛에 비친 아름다운 꽃들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꽃밭이 검게 물들어가며 멀어져갔다.

 

 “부인.”

 

 성은 유아의 얼굴을 보고 당황한 것 같았다.

 

 “부인?”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유아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 말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애써 미소를 지어보인 유아는 꽃을 향해 걸어갔다.

 

 “이 많은 꽃들을 직접 심으셨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혀서요.”

 “놀랐잖소.”

 

 유아는 꽃 앞에 쭈그리고 앉아 향기를 맡았다.

 

 “이것을 다 공수하려면, 꽤 품이 많이 들었을 것인데...”

 “스읍! 혼내는 것은 아니되오. 다, 그대를 위해서고 궁인들도 손수 나서겠다 하여 도운 것이오. 내가 강요한 것은 없소.”

 

 그리고는 봉수의 눈치를 스윽 보았다. 봉수는 눈을 하늘로 흘기며 이번엔 그냥 넘어가주겠다는 듯, 눈을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이 으쓱하자, 유아는 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통증은 계속되었지만, 미소를 잃을 순 없었다.

 

 “이것은 처음 보는 꽃입니다.”

 “제주에서만 피는 꽃인데, 특별히 김만영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오. 그대를 위한 것이라 하니, 선뜻 내민 것이겠지만.”

 “그렇군요. 이모님은 본디 제주 출신이신지라, 잘 아실 겁니다.”

 “아, 그랬소?”

 “어찌 나왔는지는 묻지 마십시오.”

 “알겠소.”

 

 제주의 여인은 섬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법을 어긴 셈이었다. 하지만 김만영은 지금 누구보다도 성에게, 유아에게 꼭 필요하고 앞으로도 필요할 존재이기에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만영은 사람들 이목 저 뒤편으로 몰래 제주로 돈과 음식, 물건을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물론, 제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굶어죽지 않는 이유를 섬 밖의 조정에는 절대 알리지 않았다.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다행이오. 뱃속의 아이도 좋아했음 좋겠는데.”

 “그럴 겁니다.”

 

 뱃속의 아이가 진짜 좋아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유아의 정신력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곁에 연실이 있었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유아의 상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내가 또 특별히 보여주고픈 것이 있었는데, 어디에 심어뒀더라...”

 

 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유아는 고개를 숙여 고통을 참고 있었다. 죽어가는 뱃속의 아이에게 부탁을 한들, 떠나가는 아이는 들어줄리 만무했다. 자신의 죽음을, 아픔을 참으려는 모정한 어머니를 용서할 리가 없었다.

 

 “아...”

 

 인내의 한계가 온 것이었다.

 

 “마마.”

 

 곁의 상궁이 유아의 고통을 알아차렸다.

 

 “괜찮으시옵니까? 어디가 편찮으시옵니까?”

 

 상궁의 말에 봉수도, 성도 놀라 유아에게 다가갔다. 성은 유아의 상태를 살폈다.

 

 “부인!”

 “전하...”

 

 유아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얼굴 양 옆으로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배가... 너무 아픕니다...”

 “뭐?”

 “아이가...”

 

 유아는 고통스러웠다. 통증도, 아이를 잃는 이 순간도, 성이 자신을 보며 절망하는 표정도 모두 아팠다.

 

 “미안해요... 지켰어야했는데...”

 

 그렇게 유아는 쓰러지고 말았다.

 

 “부인! 유아야!”

 

 결국, 뱃속의 아이는 그대로 그 꽃밭에 묻혔다. 그 이후 유아는 후원에 가지 않았다. 채 자라지 못한 아이 대신 무럭무럭 자라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려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아이의 피를 먹고 자란 것 같아서. 오로지 만영이 선물한 제주의 꽃만이, 마음을 대변하듯 죽어가고 있었다.

 

 ***

 

 “전하. 출궁하시는 날이 잦아지셨다 들었나이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유아의 유산 소식이 전해진 이후, 외척들의 기세는 더 등등해졌다. 유산을 한 번 경험하면, 다시 아이를 가지는 것은 확률적으로 점점 힘들어졌다. 더군다나, 시집살이로 마음고생, 몸 고생 하는 유아의 상태로는 당분간 힘들어보였다. 이들은 성의 행동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훈세자의 능 근처에 물이 흐르고 있소. 좋지 않은 터에 모셔져 혹여 화를 당할까하여 가는 것이니, 그리들 알라.”

 “전하. 허면, 나랏일은 언제 보시옵니까?”

 “틈틈이 잘 보고 있잖소? 뭐가 문제요?”

 “전하께오서 자리를 비우시는 날이 많아질수록, 도성의 범죄가 늘고,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옵니다.”

 “괴이한 논리로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런 사고로 관직에 올랐는가? 혹, 음서로 왔는가?”

 “전하. 어찌 그런 말씀을 올리시옵니까?”

 “괴변만 늘여놓으니 하는 말이다. 앞으로 논리를 가지고 발언하지 않는 관리는 조정회의에 들 생각 말라. 경연에도 들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성은 계속해서 대신들과 싸웠고, 준비했다. 그 사이 유아는 웃음을 많이 잃었다. 아이를 잃고, 몸을 추스른 지 한 달. 성희는 여느 날처럼 유아의 아침 문후를 받은 이후, 그녀를 처소로 돌려보내려하지 않았다.

 

 “오늘은 속옷이-”

 “무수리들을 들라하라.”

 “중전!”

 “예. 대비마마.”

 “뭐하는 것인가?”

 “빨래가 필요하신 것 같아, 무수리들을 대령했습니다. 일 잘한다는 아이들로 특별히 엄선하였으니, 당부하실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소서.”

 “나는 아랫것들이 내 속옷에 손을 데면, 딱 싫다니까?”

 “그 속옷을 침방나인들이 만듭니다. 침방나인들은 무수리들에게 도움을 받고요. 혹, 속옷을 입지 않으시는지요?”

 

 성희는 갑자기 변한 유아의 태도에 당황한 듯 보였다. 유아는 표정이라고는 1도 없는 얼굴로 성희를 바라보았다. 순진하고 여리던 눈빛은 어느새 화강암처럼 단단해졌다.

 

 “중전의 효심이 많이 줄었구나!”

 “그럴 리가요. 효경에 이르기를 ‘신체반부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 하였습니다. 신체는 머리털에서 살갗에 이르기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기본이라 하였사옵니다. 헌데, 신첩이 효를 한답시고 제 몸을 괴롭혀 감히 왕손을 잃는 불효를 범하였으니, 훗날 선왕들과 선왕후들을 어찌 뵙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그 효를 다하여 종묘사직을 위해 힘쓰고자 하옵니다.”

 

 갑작스런 지식공격에 더불어 듣고 보니 또 맡는 말이었다. 성희가 갸웃하는 사이 무수리들은 이미 우르르 들어와 빨랫감을 모두 들고 나가버렸고, 유아도 이들에게 당부를 하여 깨끗이 빨도록 하겠다며 나갔다. 성희는 눈만 끔뻑거렸다.

 

 “편상궁.”

 “예, 마마.”

 “아이를 잃는 것이 사람을 저리 변하게 하느냐?”

 “아마도...?”

 

 당황하기는 윤희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아예 석고대죄를 하기 시작했다.

 

 “어마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윤희는 마당으로 나와 멍석 위에 엎드린 유아를 보고는 당혹스러워했다.

 

 “중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엇을 잘못했다고요?”

 “어마마마께오서 왕손의 탄생을 위해 저에게 온갖 비방을 알려주시며 돌보아 주셨습니다. 헌데, 부족한 신첩이 그만 그 가르침에 불효를 저질렀으니, 이것이 큰 죄가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그것이 어찌 중전의 죄요? 이만 일어나시오. 보는 이목도 있거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유아는 바닥에 엎드려 곡을 하기 시작했다. 윤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중전의 석고대죄는 조정까지 발칵 뒤집어놓았다. 삼정승이 모인 회의실. 구준은 영목을 불렀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승지. 혜빈께선 대체 무슨 생각이신가?”

 “송구하옵니다, 영상대감.”

 “그러는 대비께서도 한 방 먹었지요?”

 

 우겸이 부채를 팔랑거리며 부쳤다.

 

 “한 방 먹다니? 좌상은 어찌 언동이 매사, 그러니 권위가 없단 얘길 듣지.”

 “내가 그런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염려 마시오. 이게 젊은 유생들에겐 아주 잘 통한다오.”

 “쯧쯧... 무튼, 혜빈께서 무슨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으나, 중전마마께선 아직도 옥체가 미령하시오. 당장 물리라 하시오.”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도승지는 어째, 혜빈 하나에 이리 쩔쩔매시는가?”

 

 영목은 자존심이 상했다. 선뜻 답할 수 없는 자신에 화가 났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그날 저녁, 구준은 영목을 찾았다.

 

 “영상대감. 예까진 어쩐 일로?”

 “할 말이 있어 왔네. 들어가도 되겠는가?”

 

 늦은 밤. 영목과 마주앉은 구준. 구준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넨 알고 있었지?”

 “무엇을 말이옵니까?”

 “금난전권. 이쪽도 육조전이 자금줄 아니던가?”

 “그렇지요.”

 “자네 뒷배가 주상전하신가?”

 “공공연한 것 아닙니까?”

 “허면, 혜빈은 어쩌고?”

 “저와는 한 배를 탔지요.”

 “말에 어패가 있군. 혜빈이 이를 가만히 두진 않을 건데?”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반대를 할 수도 없지요.”

 “아, 미안하네. 집안일을 내가 괜히 관여했군.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리라 믿네.”

 “대감께선,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도 주상께 손을 들어줄 생각이네. 물론, 반대들이 많겠지만.”

 “왜 주상의 편에 서십니까?”

 “애초에 그랬으니까. 더 이상은 알려하지 말게. 그럼, 자네의 뜻도 알았으니 마음 편히 술이나 마셔야겠군. 함께 하러 가겠나?”

 “송구합니다. 저는 내일 새벽부터 입궐을 해야 하는 지라.”

 “아, 그렇겠군. 그럼, 난 이만.”

 

 다음 날. 유아는 결국 윤희의 항복을 받아냈다. 유아의 석고대죄로 곤란한 상황에 놓인 윤희는 아침문후를 제외하고는 유아를 부르지 않았다. 성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유아는 내명부에서의 입지를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더 이상 착한 중전행세는 그만 이별이었다. 그리고 새벽, 성은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육조의 상인들이 난전을 금하는 권한을 가진 것은 이 나라에 득이 될 것이 없다. 그들이 쌓아온 부는 온갖 비리와 폭정에 쓰일 뿐이며, 그 사례가 과인에게 수도 없이 보고되고 있다. 하여, 그 폐해를 없애고자 과인은 이 시간 이후로, 육조 상인만이 아닌 모든 상인들에게 상업 활동을 자유롭게 허하는 바이다. 관청에 허가를 받는 자들은 그 누구든 상업을 꾸릴 수 있으며, 그것을 무력으로 혹은 연합하여 의도적으로 막는 자들은 법을 어긴 것으로 여겨 엄벌에 처할 것이다.”

 

 대신들은 동요했다. 왕이 폭정을 시작했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삼정승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성의 뜻에 따랐다. 이들을 따르던 관원들이 죄다 이들에게 몰려가 항의했지만, 뜻이 통할리 없었다. 이미 성의 거래는 늦은 밤 달빛 아래에서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너, 혹시 들었어? 그 폐가에서 요즘 다시 귀신이 울기 시작한대.”

 “수라간 애들이 그거 듣고 지금 난리라잖아.”

 

 폐가에서 들리는 여자의 울음소리. 여인의 한이 다시 궐에 찾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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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 과인은 정훈세자의 아들이다 2022 / 1 / 27 29 0 5373   
57 57. 새 왕 2022 / 1 / 27 31 0 6842   
56 56. 범인은 누구인가 2022 / 1 / 27 31 0 7060   
55 55. 걱정 2022 / 1 / 27 33 0 5912   
54 54. 태양을 삼켜라 2022 / 1 / 27 30 0 5370   
53 53.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2022 / 1 / 27 29 0 6099   
52 52. 금등의 존재 2022 / 1 / 27 27 0 5319   
51 51. 떡밥 2022 / 1 / 27 27 0 6124   
50 50. 왕의 유언(2) 2022 / 1 / 27 32 0 6343   
49 49. 왕의 유언(1) 2022 / 1 / 27 29 0 6031   
48 48. WANT 2022 / 1 / 27 31 0 6919   
47 47. 피의 명부 2022 / 1 / 27 29 0 7949   
46 46. 가면을 벗다 2022 / 1 / 27 27 0 5448   
45 45. 제발 내버려 둬 2022 / 1 / 27 27 0 7325   
44 44. 일장춘몽 2022 / 1 / 27 31 0 7467   
43 43. 온 몸이 부서지는 2022 / 1 / 27 35 0 4986   
42 41. 미치도록 2022 / 1 / 27 31 0 7834   
41 41. 내 아내의 남친 2022 / 1 / 27 36 0 6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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