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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7화. 충돌(1)
작성일 : 19-10-29 21:09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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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인간과 살아야지요.”

 

 윤슬의 입에서 갑작스레 그런 말이 나온 것이 의외였는지 치우는 두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촌장은 그런 치우를 빤히 보며 서 있었다.

 

 “아아, 그렇지......”

 

 치우는 한 박자나 늦어버린 대답을 마치곤 술을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그래, 그러고 보니 다들 해랑이의 혼사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는데.. 자네도 자리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나?”

 

 치우는 비어버린 술잔을 보며 혼잣말하듯 웅얼거렸다.

 

 “원하신다면, 곧.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허나, 그때가 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갈라진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윤슬은 어느새 다시 늙은 사내인 촌장의 모습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때? 내가 무얼 어찌해?”

 

 치우가 예민한 목소리로 고개를 들고 반문하자 촌장은 그의 눈을 주시하며 물었다.

 

 “그 아이를 다른 이에게 보내줄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치우는 촌장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좋은 사내라면.’따위의 대답으론 어물쩍 넘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해랑이에겐 아직 이르지 않은가 싶은데.”

 

 머뭇거리며 대답하는 치우를 보고 촌장은 실소를 터뜨린 뒤 말을 이었다.

 

 “해랑이가 특별한 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 아이는 인간이고 이제 열여섯쯤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짝을 정해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언제 어떤 사내와 만나 사랑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여인이란 말입니다.”

 

 “그래봤자, 이 마을에 젊은 사내라고는 다..”

 

 치우는 해랑이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말하고 싶었지만, 촌장이 끼어들며 말을 끊었다.

 

 “당신이 그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까?”

 

 촌장은 말을 마친 뒤 치우를 살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치우는 발끈하며 반박하려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라버니......오라버니’

 

 “해랑...”

 

 치우의 중얼거림에 촌장은 조용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

 

 “해랑이의 목소리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갑자기 어딜 가시려고...!”

 

 촌장이 난데없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고 치우는 그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

 

 촌장은 본인의 행동에 당황한 듯 잽싸게 손을 거두었지만 무언가 묻고 싶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꾹 다문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치우는 그대로 뒤돌아 방을 나섰다.

 

 

 *

 망설일 이유라곤 없었다.

 내가 보내지 않겠다고 하면 당연히 떠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치우에게, 진짜 오라비도 아니지 않냐는, 해랑이가 꽂은 비수 따위 더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지금 해랑이가 나를 찾는다면 나를 부르고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5년 전 그날처럼 치우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달렸다.

 

 촌장의 집에서 ‘거북머리길’까지 가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해랑이를 보면 반가워하며 웃어도 되는 걸까?

 그때 대답조차 하지 못한 것엔 뭐라 말을 해야 하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어서일까?

 몇 걸음 달리지도 않았는데 쿵쿵 뛰는 심장과 가빠오는 숨을 겨우 억누르며, 어느새 치우는 ‘거북머리길’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

 촌장은 치우가 달려 나간 그 길로 곧장 초아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의 모두가 잠자리에 든 늦은 시간이었지만, 촌장은 초아가 이 시간쯤에 늘 마루나 부엌 뒤편으로 달을 보러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아도 달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대부분의 여인은 연모하는 사내를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곤 했다.

 촌장은 사람의 마음 약한 곳을 잘 알았고, 초아가 치우를 그리며 소원을 빌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 끼익

 

 그날 밤도 어김없이 부모님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오는 초아의 모습이 보였다.

 

 “초아야.”

 

 조용히 방문을 닫는 초아의 뒤통수를 보며 촌장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 우지끈

 

 초아는 비명을 내지 않기 위해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초아는 부모님이 계신 방 쪽에서 아무 기척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아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횃불을 켠 촌장을 향했다.

 

 “허어.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하구나.”

 

 촌장은 빗장 밖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초아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촌장으로부터 인간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검은 기운이 뻗어 나갔고,

 초아는 촌장이 풍겨내는 불안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착각했다.

 신도 신지 않은 채 황급히 빗장문으로 다가선 초아는 다급히 촌장에게 물었다.

 

 “이 시간에 촌장님께서 어찌 오셨어요?”

 

 “너에게 알릴 것이 있어서. 한밤중에 미안하게 되었구나.”

 

 촌장의 난처한 표정을 보자 초아는 자신의 안에 억눌러 두었던 불안이 커져감을 느꼈다.

 

 

 마을 사내들을 소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면 마을을 떠나 거북머리길로 간 해랑이의 소식일까?

 초아는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그 끝에 치우의 이야기는 포함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만은 아니길 바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 잡고 입을 열었다.

 

 “말씀..해보셔요.”

 

 초아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꽉 물었다.

 

 “신군이 해랑이가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는지, 지금까지 나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는데... 갑자기 해랑이를 찾으러 간다며 거북머리길로 뛰쳐나가 버렸지 뭐냐.”

 

 초아의 눈이 커졌다.

 

 “지, 지금...”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붙잡았다.

 

 거북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북머리는 위험의 상징이었고, 더구나 한밤중에, 심지어는 최근에 촌장에 의해 출입이 통제된 곳에 간다는 것은 스스로 죽으러 가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촌장은 그녀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곤 말을 이었다.

 

 “내가 붙잡으려 했는데, 몸이 느려 말리지도 못하고... 너무 놀라서, ”

 

 촌장이 왜 건장하고 발이 빠른 다른 사내가 아닌 자신에게 찾아온 것인지를 의아해할 정신머리 따윈 초아에게 없었다.

 그녀는 촌장이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횃불을 빼앗아 들고 거북머리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마음을 주면 천지 분간 못하는 건 다 똑같구나. 인간이나 영물이나……. 그래, 한낱 미물 따위도 그렇지.”

 

 그녀가 떠난 자리에 서서 촌장은 옅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고 곧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집 부엌 뒤편의 아무도 모르는 장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째 촌장의 집 근처를 맴돌던 발소리도 초아를 쫓았다.

 

 

 *

 치우의 눈앞엔 해랑이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고 그녀의 그림자는 그가 달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해랑아...!”

 

 해랑에게 가까워져 갈수록 치우는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유독 커다랗게 보이는 해랑의 그림자를 본 치우의 입가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가 번졌다.

 

 ‘또 산에서 무얼 저리 바리바리 지고 돌아온 건지.’

 

 하지만 그의 미소는 그녀의 형상이 뚜렷해져 감과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해랑의 뒤에 웬 사내 한 명이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서 있었다.

 치우는 천천히 걸음을 늦추며 터벅터벅 해랑의 앞에 섰다.

 

 “여기 마침 지나가는 이가 있으니 함께 가시지요.”

 

 ‘..지나가? 이곳으로 달려온 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서 있는 은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해랑은 치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해랑이가 모르는 자에게 자신의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치우는 속이 뒤틀렸다.

 외부인은, 특히 사내는 그렇게 조심하라고 가르쳤는데.

 

 “해랑이 너는 같이 가지 않고? 다시 혼자 나가려는 거야?”

 

 마을은 어두웠고 눈이 밝지 않은 은오는 해랑의 옆에 서며 그녀를 걱정스레 내려다보았다.

 

 “...그래. 잠시 눈을 떼면 금세 그렇게 다른 이와 마음을 터놓았지.”

 

 치우가 그런 둘을 보며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이 해랑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 치우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아랫마을과 시장에 가고 싶어 하던 너를, 서럽게 울며 떼쓰던 너를 외면하면서까지...내가 어째서 너를 그토록 이 마을 안에 숨겨둔 것인지. 네가 알 턱이 없겠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신이 온 마음을 그녀에게 쏟고 있는 걸 해랑이가 조금이라도 안다면,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켜주길 바랐던 치우였다.

 

 “신해랑. 그자는 뭐야? 너 내가 아무나..!”

 

 “선비님. 이제 저자를 따라가십시오. 이 선비를 촌장님께 데려다주세요.”

 

 치우의 말을 끊은 해랑은 돌아서서 다시 산길로 발을 내디뎠다.

 

 은오는 치우의 목소리가 나는 쪽과 해랑을 번갈아 보다가 치우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저는..”

 

 은오는 뭐라도 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끼어들 상황과 분위기가 아님을 곧 알아챘다.

 

 “신해랑.”

 

 치우의 목소리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고 해랑은 발을 멈췄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은오는 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만든 사내가 자신에게 ‘저와 함께 촌장님 댁으로 가시지요.’라는 말을 꺼냄으로써 이 상황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너. 뭐 하는 거야?”

 

 은오가 바란 대로 치우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지만, 어쩐지 그가 말을 꺼냄으로써 더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은오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치우는 은오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해랑에게 말했다.

 

 “대답해. 내 앞에 와서 제대로.”

 

 치우의 고압적인 태도에 해랑은 대꾸 없이 몸을 돌렸고 은오는 지끈거려오는 두통을 참으려 이마를 눌렀다.

 

 “멋대로 뛰쳐나가서, 누군지도 모를 놈을 한밤중에 데려와 마을에 들이더니, 날 더러 촌장에게 데려가라고? 넌...이제 내게 아무 설명도 없이 돌아서고?”

 

 “저기, 저는 누군지도 모를 놈이 아니고 이곳 촌장의 초대를 받고 온...”

 

 “누구를 마을에 들일지는 제게 맡겨진 일이에요.”

 

 해랑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고 은오는 붉은 봉투를 찾기 위해 품속을 뒤적이다가 또 자신에게 해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한숨을 내쉰 은오는 몰려오는 두통과 어지럼증에 그만 주저앉았다.

 

 해랑이 반사적으로 은오의 팔을 잡아 부축하려다가 마을의 결계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두통이...아니, 괜찮다. 그보다 나 때문에 해랑이 네가 오해를 받는 것 같은데...”

 

 치우는 이곳으로 달려오던 내내 느꼈던 이상하고 찜찜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위화감...”

 

 치우의 중얼거림에 해랑은 멈칫하며 자신이 마을의 결계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신해랑, 그 사내한테서 떨어져라!”

 

 “이제 그만하시오! 난 수상한 자가 아니라 하지 않았소!”

 

 은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치우에게 소리쳤고 해랑은 입술을 깨물며 은오에게서 떨어졌다.

 해랑은 치우가 자신의 등에 있는 호환을 당한 사람의 머리에서 풍기는 기운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른 태워버려야 하는데. 감정에 휩쓸려 등에 무엇을 지고 있었는지 잊고 있었어..!’

 

 “내가 해결하고 올게요.”

 

 “그게 아냐, 해랑..”

 

 해랑을 따라가 붙잡으려 했던 치우는, 더 가까이 있던 은오가 해랑의 손목을 잡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위험하다며. 같이 가자, 내가 뭐든 도울 테니.”

 

 해랑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손목을 잡은 은오와 몇 발짝 떨어져 있는 치우를 번갈아 보았다.

 

 ‘낯이 익다. 이 기분...그리고 저 사내.’

 

 치우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해랑이와 은오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횃불이 바닥을 구르며 주변이 밝아짐과 동시에 누군가 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가면 안 돼!”

 

 초아의 외침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직 은오만 횃불을 등진 둘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초아야...?”

 

 “흐윽...끅. 가면 안 돼요, 오라버니. 술을 드시고 어찌 이 밤중에 거북머리길로 간단 말이에요?! 목소리라니...! 잘못 들은 게 분명하잖아요! 해랑이, 해랑이는 금방 올 테니까..끅. 지금은 너무 위험하니까... 동이 트면 가요, 아니. 지금 저도 함께 가요..!”

 

 초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치우를 붙잡고 흐느꼈다.

 다리가 풀려 반쯤은 주저앉고 반쯤은 그에게 매달려 서 있는 듯 보이는 그녀의 얼굴엔 흩날려 나온 잔 머리카락이 땀과 눈물에 얼룩져 붙어있었다.

 

 

 잠옷 차림에 여기저기 까져 피가 배어 나온 그녀의 맨발은, 그녀가 얼마나 황급히 이곳까지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은오는 이게 당최 어찌 돌아가는 형국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돌아서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그 둘을 보고 있는, 치우와 서로 눈을 맞추고 있는듯한 해랑을 보고 대강의 상황을 멋대로 짐작했다.

 

 ‘나를 데려와서가 아니라, 저 여인을 사이에 둔 연적이라 사이가 안 좋았던 거구나. 미안하지만...내가 여인이라면 승산은 확실히 저쪽이...’

 

 은오는 잠시 후 저 둘이 손을 잡고 사라지거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할 해랑의 등을 토닥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치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해랑이와 마주치고 있는 눈을 떼 초아를 돌아보았다.

 

 “초아야.”

 

 치우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로 덜덜 떨고 있는 두 손은 자신의 옷을 꼭 쥐고 있는 초아를 보자, 주위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등만 보였을 초아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초아..언니.”

 둘의 대화를 듣고 나서 그 모습을 본 해랑은 지금까지 둘이 함께 있던 것이냐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초아는 해랑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치우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내와 해랑이까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상황에서 놀란 건 초아뿐만은 아니었다.

 “언니라니? 하하,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농...담을..”

 웃으며 말을 꺼낸 은오는 다시 해랑의 얼굴을 보자 점차 표정이 굳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해랑의 시선은 여전히 치우에게 머물러 있었다.

 

 치우는 묵묵히 자신이 두르고 있던 겉옷을 벗어 화수에게 쓰개치마를 씌우듯이 덮어 주었다.

 치우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겉옷이 키가 작은 초아의 치마자락까지 넉넉히 덮은 것을 확인하자, 부끄러워 사양하는 그녀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양쪽 소매를 뜯어내어 그녀의 발을 감쌌다.

 

 “초아야, 걸을 수 있겠니?”

 

 정적 속에서 낮고 포근한 치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초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해랑이와 함께 저자를 데리고 촌장님께 가주렴.”

 

 치우의 말에 초아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나서 은오와 해랑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해랑은 치우의 옷을 몸에 두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초아를 보며,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평소처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오라버니가, 초아언니와 선비님을 데리고 가요.”

 

 해랑이 황급히 돌아서며 말하자 치우가 해랑의 등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등에 멘 것 때문이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 그곳에 내려놓고 이리 와.”

 

 ‘오라버니...? 신해랑..?’

 

 그 사이 은오도 어쩐지 해랑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초아가 곁에 온 줄도 모르고 자신의 곁에서 한발씩 멀어지는 해랑이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해랑이가 망설이자 치우가 그녀를 향해 걸어가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해랑아, 그만. 이제 그만 돌아와서 오라비의 말 좀 듣거라.”

 

 눈가가 붉어진. 그리고 어쩐지 평소보다 여리고 작아보이는 ‘오라버니’라는 존재에, 해랑은 복잡하게 뒤엉켰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사라지는걸 느꼈다.

 

 어깨에 둘러멨던 머리를 싸맨 보자기를 조심스레 땅에 내려놓으려는 순간, 해랑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해랑..!”

 

 해랑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치우의 외침을 듣는 순간, 땅을 향해 숙이고 있던 몸을 재빠르게 다시 들었다.

 

 “꺅!”

 

 초아의 외마디 비명이 어둠 속에 메아리쳤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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