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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8화. 움트다
작성일 : 19-09-27 23:05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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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높은 산 속에 겨우 일곱 집이 사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험준한 산세로 인해 외부와 왕래가 거의 없는, 5년 전 윤슬에 의해 해랑과 치우가 첫 주민으로 터를 잡게 된 곳이었다.

 뾰족뾰족하고 가파른 산이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싼 모양이 꼭 거북과 닮아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이 마을을 ‘거북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큰 우물의 오른편에 있는 초가집의 문이 벌컥 열렸다.

 

 “으으으으-!”

 

 긴 머리를 대충 높게 올려 묶은 해랑이 기지개를 켜며 마루로 나왔다.

 이제는 키가 다섯 자(150cm) 좀 넘어 보이는 그녀가 걸친 의복은 치마저고리가 아닌 사내의 의복이었다.

 

 키는 훌쩍 컸지만 얼굴엔 아직 조금은 앳된 티가 남아있어서인지, 그녀의 체구에 비해 품이 넉넉한 옷을 입어서인지 영락없는 사내아이 같아 보였다.

 

 “해랑아~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밖에 나와 있어?”

 

 아침에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가는 마을 사람들은 웬일로 아침부터 마루에 나와 앉아있는 해랑을 보고 인사를 한마디씩 건넸다.

 

 “그러게, 지난밤에 늦게까지 일하느라 욕봤을 텐데 들어가서 더 자지 않구?”

 

 “흐아암. 괜찮아요. 어르신.”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포근한 아침 햇살에 그녀의 눈은 다시 반쯤 감겼다.

 

 - 퍽. 쨍-!

 

 마루에서 꾸벅꾸벅 졸던 해랑은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

 “아잇...”

 

 우물가에서 구시렁거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아 언니?”

 

 댕기 머리를 땋은 여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딱 보아도 여린 몸과 가는 팔에 새하얀 얼굴을 한 초아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물로 흥건해진 바닥과 깨진 물동이가 보였다.

 

 “하하…. 해랑아, 미안~. 나 때문에 깼구나.”

 

 해랑은 황급히 초아에게 다가갔다.

 

 “언니! 아…. 다 깨졌네.”

 

 “어머니 아시면 또 경을 칠 텐데...휴우.”

 

 해랑은 깨진 물동이 조각을 가장 큰 조각 안에 하나하나 주워 집어넣었다.

 

 “어어? 언니가 할게. 손 다칠라!”

 

 “물러나 있어요. 지난번에도 우리 꽝철이 오라버니가 치워준다 하였는데 억지 부리다가 피봤다면서요.”

 

 초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저씨가 오시지... 물동이가 남아도나...”

 

 해랑은 중얼거리며 깨진 물동이를 치우는데 온 신경을 쏟았다.

 

 “아버지 뒤늦게 시장에 가셨어.”

 

 “에? 어쩐 일로요? 요 며칠 안 보이시더라니... 술 빚으시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해랑이 깨진 물동이를 들고 일어서며 초아를 보자, 초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봄이 되었으니 지난가을에 담은 술을 팔아야겠다고... 다른 물건은 다른 사람들이 알맞게 거래해도 술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아버지가 직접 가셔야겠대.”

 

 “그렇구나.. 아, 언니 가요! 우리 집 물동이로 물 긷고 다시 가져와야겠어요.”

 

 “아잇. 고마워, 해랑아~”

 

 

 산에 동그랗게 둘러싸인 마을의 서남쪽으로는 사람의 왕래가 비교적 용이한 샛길이 있었는데, 며칠에 한 번씩 마을의 사내들이 그 길을 통해 큰 마을의 시장엘 다녀오곤 했다.

 커다란 수레 여러 대에 장사할 물건을 가득 싣고 내려가, 그것들을 팔아 필요한 물건들과 마을의 식량을 잔뜩 사서 돌아오는 식이었다.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고 또 외진 곳이라 젊은이들이 적어서, 시장에 가는 날엔 힘쓰는 일은 모두 그들이 앞다투어 도맡으려 했다.

 

 ‘오라버닌 또 혼자 엄청나게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바보처럼.’

 

 해랑은 초아의 물동이를 대신 들고 가는 자신의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

 초아의 집 앞에 다다르자 초아의 어머니가 뛰어나왔다.

 

 “아이고! 왜 해랑이가 물동이를 이고 와?”

 

 “아, 어...어머니. 그게”

 

 “가만? 이거 우리 집 물동이가 아니잖어? 이-노무 계집애! 또 물동이를 깬 거야?!”

 

 “아잇, 너무 무거운 걸 어떡해요!”

 

 투닥거리는 초아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에서 해랑은 난감하게 웃으며 늘어선 술독을 지나 물을 담는 큰 장독에 길어온 물을 쏟아부었다.

 

 “너보다 어린애들도 드는 걸! 뭘, 잘했다고 말대꾸를 해?! 해랑이 밤마다 얼마나 고생하는지 몰라서 그래? 어이구 철없는 것...! 어이구 속 터져.”

 

 초아의 어머니는 자신의 가슴을 퍽퍽 쳤다.

 

 “에이, 아줌마! 그러지 마세요~ 제가 이거 한번 들어다 주는 게 무슨 큰일이라구.”

 

 “맞아. 해랑이 힘이 얼마나 좋은데.”

 

 초아의 어머니는 웃으며 딸의 등을 퍽 때렸다.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갔어야 했는데...지금 일어난 거야? 들어와, 밥 먹구 가~!”

 

 “실은 밥 얻어 먹으려구 온 거였지요~!”

 

 해랑은 초아의 어머니에게 팔짱을 꼈다.

 

 “어이구? 언니 도와주려고 온 거면서 이쁘게 말하는 것 봐~? 이뻐죽겄어~!”

 

 초아의 어머니는 웃으며 해랑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치 어머니~? 우리 동생 삼을까? 시누이?”

 

 “히히~ 언니이~.”

 

 “넌 입 다물고 밥상이나 차려와!”

 

 “에잇!”

 

 해랑은 웃음을 터뜨리고 초아는 부엌으로 가면서 해랑에게 소리쳤다.

 

 “해랑아~. 밥 먹고 언니가 머리 빗질해 줄게!”

 

 

 *

 한바탕의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몇 안 남은 마을 사람들이 다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갈 무렵, 해랑은 머리가 말끔하게 묶여 올려진 모습으로 서남쪽의 마을 길목 입구를 서성였다.

 

 “어제도 안 오고... 어찌 이리 늦어지는 거야?”

 

 해랑은 볼멘소리하며 작은 돌멩이를 집어 애꿎은 마을 표식에 툭툭 던졌다.

 

 해랑의 집 왼쪽, 마을 동쪽에도 샛길이 하나 있었지만, 외지인이 올 때는 늘 서남쪽의 길로 들어왔기 때문에 마을이 있다는 표식이 마을로 오는 길 내내 곳곳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거북 마을을 통과해서 동쪽 길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알려져서, 입때껏 행인이 마을에 와서 머물렀다가 가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 오는 사람을 환영하거나 경계하는 것이 모두 서남쪽 길목에서만 이루어졌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거북꼬리 길’이라고 부르곤 했다.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구나?”

 

 마을 입구를 서성이던 해랑에게 늙은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아, 촌장님!”

 

 “오라버니가 꽃신이라도 사 온다던?”

 

 해랑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피한 채로 마저 말을 이었다.

 

 “며칠 전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지금껏 통 소식이 없으니…. 걱정이되서.”

 

 “허기사, 여인들이 그렇게 따르는데도 줄곧 관심도 없었으니, 누군가에게 꽃신을 선물할 생각을 할 수 있는 녀석인지도 의문이구나. 허허허”

 

 촌장은 여전히 시선을 피하는 해랑의 행동을 가만히 보다가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네게 하나뿐인 가족이니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 아무도 아이처럼 보채는 거로 보지 않을 테니 그렇게 당황하고 창피해 할 것 없다.”

 

 “예에..”

 ‘가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시는 것 같단 말이지...’

 

 해랑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인자하게 웃고 있는 촌장을 보았다.

 

 “어제는 별일 없었고?”

 

 “예? 아, 예. 평소와 다름없으니 걱정 마세요.”

 

 “그래, 아! 만약 오늘도 시장에 간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오늘 밤에는 마을 안을 지켜봐 주었으면 싶구나.”

 

 “그렇게 할게요.”

 

 해랑이 웃으며 대답하자 촌장은 그녀를 지나쳐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거북꼬리 길’의 가장 가까이에는 혼자 사는 촌장의 집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촌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과 느릿느릿한 행동으로 거북을 빼다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5년 전 치우와 해랑이 도착한 마을에는 길을 알려주고 먼저 사라진 윤슬 대신, 자신을 ‘이든’이라고 소개한 촌장만이 살고 있었다.

 

 “저렇게 말씀 하신다는 건 오늘도 안 돌아올 것 같다는 뜻이겠지?”

 

 해랑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마당엔 평상이 놓여있고 마루도 있는 초가집에서 해랑과 치우는 각자 하나의 방에서 지냈다.

 바깥문도 있었지만, 방과 방 사이를 드나들 수 있는 문도 한 개가 트여 있었다.

 해랑은 모든 문을 열고 집 안 청소를 했다.

 

 “흐암. 일찍 일어났더니 뭘 해도 시간이 안 가네...”

 

 평상에 대자로 누워있는 해랑의 귀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해랑이 안에 있어~? 어이쿠!”

 

 해랑이 평상 위에서 벌떡 일어서자 사립문 앞에 서 있던 허 노인이 화들짝 놀라 주춤했다.

 

 “헉 죄송해요. 어르신! 놀라셨구나..하하 어쩐 일로...?”

 

 “촌장님이 안 보이셔서…. 잠깐 가람이를 좀.”

 

 마을의 유일한 의원인 허 노인의 뒤에 숨어있던 손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혀엉~!”

 

 “아. 가람아, 이리와!”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해랑을 향해 우다다 뛰어가 안겼다.

 해랑은 아이를 번쩍 치켜들며 놀렸다.

 

 “형 아니고! 누이라고 했지?!”

 

 “거짓말! 나랑 같은 옷 입었잖아, 형 맞는데!”

 

 “어휴…그래. 어르신 가서 일 보셔요! 제가 잘 놀아줄게요!”

 

 허 노인은 허허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해랑과 평상에 앉아 한참을 놀던 아이는 느닷없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혀엉- 혀엉- 저어기 가자!”

 

 아이는 해랑의 집에서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거북꼬리 길’ 바로 근처에 촌장의 집이 있다면, ‘거북 머리 길’이라고 불리는 마을 입구 바로 근처에는 해랑과 치우의 집이 있었다.

 

 “가람아, 저긴 안 돼. 저기에 가면 할아버지가 떼찌! 해.”

 

 “왜에? 할아버지한테 말 안 할게!”

 

 “가람이 떡 먹을래?”

 

 “시러어! 저어기 갈 거야!”

 

 아이는 징징대기 시작했고 난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해랑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가람아. 저기 가고 싶어?”

 

 아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저기에 가려면 들어야 하는 옛날이야기가 있어.”

 

 비장하게 분위기를 잡는 해랑 때문에 아이는 흥미를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응!”

 

 해랑은 입을 뗐다.

 

 “옛날옛날에~ 거북 마을에 한 양반이 살았어요. 가람이 양반 알지? 우리 마을에 부서진 집 하나 있잖아.”

 

 “응! 거기 무서워.”

 

 “그래. 거기에 살았던 양반이 있었어. 그런데 그 양반이 가람이처럼 마을의 규칙을 어기고 혼자서 ‘거북 머리 길’로 나가버렸어~. 그러다가 나무가 너~무 많아서 길을 잃어버렸는데, 그 양반이 해가 질 때까지 길을 못 찾은 거야. 그래서 해가 지니까 숲 사방에서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너무 무서워서 아무 곳으로나 정신없이 달렸대. 그런데, 마구 달리니까 목이 마르잖아?”

 

 아이는 긴장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침 넓은 호수가 나타나서 그 양반은 ‘살았다!’ 하고 그 호수의 물을 마시려고 가까이 갔는데...”

 

 “갔는데...?”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사방에서 들리던 맹수의 울음소리가 싹 조용해지면서 호수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는 거야! 양반은 너무 무서워서 기절하고,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을 어귀에 누워있었대.”

 

 “그...그래서?”

 

 “그래서 마을에 무사히 돌아온 양반이 이 얘기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 저 길로 혼자 나가지 말라고 하고, 계속 두려워 하더니 결국 마을을 떠났어.”

 

 “진짜로 있던 일이야?”

 

 “그래. 그래서 양반이 살던 집이 다 부서졌잖아. 그럼 얘기 다 들었으니까 이제 가볼까?”

 

 해랑은 웃음을 참으며 평상에서 내려가 짚신을 신었다.

 

 “나...나 집에 갈래!”

 

 아이는 해랑의 옷을 꼭 쥐고 울먹였다.

 

 “그래~ 가람이 착하네. 촌장님이 하지 말라는 건 하면 안 돼. 그럼 그 양반처럼 마을에서 나가야 할 수도 있어.”

 

 “응! 가람이 이제 떼 안 쓸 거야!”

 

 해랑은 가람을 귀엽다는 듯 쳐다보며 손으로 입을 막아 웃음을 참았다.

 

 “에이~해랑이 형은 거기 맨날 나가면서~?”

 

 해랑의 뒤에서 장난기 가득한 치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나는 촌장님이 시켜서...! 어?”

 

 “와~꽝철이형!”

 

 가람이가 해랑이를 잡은 손을 놓고 그녀의 뒤쪽으로 우다다 달려갔다.

 

 

 “오, 신 군! 다들 도착했나 보구먼. 가람아, 집에 가자~ 해랑이 고마웠어~.”

 

 때마침 돌아온 허 노인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해랑은 굳은 듯 멈춰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보따리를 든 치우가 환하게 웃으며 빗장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제는 추위가 거의 가신 완연한 봄 날씨였지만, 치우는 머리끝부터 무릎 언저리를 덮는 폭이 넓은 겉옷을 두르고 있었다.

 

 조금 나이가 든 모습이었지만 아직 수염이 자라지 않은 얼굴처럼, 목소리에도 아직은 약간의 앳된 구석이 남아있었다.

 

 해랑이 입을 뗐다.

 

 “아, 오라버니.”

 

 치우는 바닥에 짐을 내려놓더니 두 팔을 쫙 벌렸다.

 해랑은 그가 무얼 바라고 하는 행동인지 모르지 않았다.

 

 “뭐..뭐...뭐 어찌하라고?!”

 

 치우는 그대로 저벅저벅 다가와 해랑을 끌어안았다.

 

 “내 새끼. 잘 있었어? 이번엔 너무 늦었지?”

 

 해랑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가 저 밑에서 콩닥콩닥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랑이 울렁거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그의 품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알긴 아네.”

 

 해랑은 달아오른 얼굴이 조금 진정된 것을 느끼고 치우를 밀어내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뭐 때문에 이렇게 늦은 거야?”

 

 머리와 얼굴 윗부분을 덮은 천에 바람이 일 때마다 휘날리며 정돈되지 않은 검은빛과 진한 푸른빛이 뒤섞인 머리칼이 드러났다.

 

 치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말도 마, 샘찬이 녀석이 이번엔 또... 어휴. 그런 건 되었으니 이것 좀 봐라. 이 오라버니가 우리 해랑 이한테 주려고~”

 

 치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숙여 보따리를 집어 들자, 해랑이 말을 끊으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산으로 가자.”

 “응? 선물은...”

 

 인간들 틈에서 또 얼마나 혼자 고생을 했길래 저 지경이 되어서 돌아왔냐고, 해랑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하지만 제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줄 선물을 챙기며 좋아하는 치우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울컥 감정이 터져 나왔다.

 

 “좀...! 그런 것보단, 지금 눈까지 쪽빛이 되었단 말야!”

 

 커진 해랑의 목소리에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것인지 치우는 당황한 얼굴로 보따리를 풀던 손을 멈추고 해랑을 바라보았다.

 

 “너...”

 

 눈물을 글썽이던 해랑에게 향하던 치우의 목소리는 이내 다른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쪽빛...이라니?”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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