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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4화. 각자의 사정(4)
작성일 : 19-10-18 22:22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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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 윤 정랑의 커다란 기와집에선 하인들이 아침에 할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도련님, 은오 도련님! 기침하셨습니까요?”

 

 하인 하나가 은오의 방 앞을 서성였다.

 

 “아직 주무시는 건가... 도련님!”

 

 그때 멀리서 장사치와 함께 윤 정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사치는 은오의 몫까지 큰 봇짐을 둘러메고 있었다.

 장사치와 이야기를 나누는 윤 정랑의 표정은 굉장히 밝았고 들떠있어 보였다.

 

 “은오는 안에 있느냐?”

 

 하인은 다가오는 윤 정랑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도련님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으신듯하여...”

 

 “어허. 이놈이 지금 어느 때인데 아직 잠을 깨지 않았단 말이냐?”

 

 “혹 어딘가 또 불편한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언짢아하는 윤 정랑의 기분을 맞춰주려 장사치는 은오의 몸 상태를 염려하는 체했다.

 

 “내가 들어가 봐야겠다. 일단 의원을 불러와라.”

 

 “예, 어르신.”

 

 먼저 올라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 윤 정랑은 한동안 텅 빈방 안을 살폈다.

 

 “은오야!”

 

 은오의 방은 언제나 그렇듯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윤 정랑이 보기에 그날은 유난히도 휑해 보였다.

 

 다시 마당으로 나온 윤 정랑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은오에게 오늘 떠난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은 게야?”

 

 그가 다그치자 장사치는 두 손을 모아 잡고 몸을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필요한 것들도 말씀을 드렸사온데....”

 

 “예에, 소인이 어제 잠자리에 드시기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인이 거들자 윤 정랑의 표정이 굳었다.

 

 “하던 일 멈추고 다들 흩어져서 은오를 찾아오라고 해!!”

 

 “예, 예이!”

 

 윤 정랑은 주먹을 꽉 쥐고 치를 떨었다.

 

 

 *

 거북마을에도 동이 터 오르고 아녀자들이 부엌에서 밥을 짓는 동안 촌장이 마을 사내들에게 서둘러 모일 것을 알렸다.

 

 촌장이 온 마을의 사내를 소집하는 경우는 마을의 위기상황에만 종종 있던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다들 마음속에서부터 들썩이는 불안감을 꾹 누르고 있었다.

 

 “어쩐 일일까, 형?”

 

 사내들은 촌장 집에 모여 마루에 걸터앉아, 집 뒷마당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있어.”

 

 그들은 다 모인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누구도 함부로 추측하려 들거나, 어떠한 분위기도 조장하지 않으려는 듯 숨을 죽인 채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짧지만 긴 기다림 끝에 촌장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인자한 얼굴로 뒷짐을 진 채 그들 앞에 섰다.

 

 “촌장 어르신, 아직 신 군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리 중 누군가가 말했으나 촌장은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나는 신 군과 해랑 남매가 내게 당부하며 부탁한 말들을 전하려 하는 것뿐이오. 전달할 것들은 신 군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 일터이니 이야기를 시작하겠소.”

 

 촌장은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

 

 “흐흠! 당분간 마을 사내들이 함께해오던 사냥을 멈추도록 해야겠소.”

 

 촌장의 짤막한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무리가 술렁였다.

 

 무리 중엔 이유를 묻고 싶은 듯 몸을 들썩이는 자들도 있었고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자들도 몇몇이 있었지만, 다들 입 밖으론 어떤 말도 내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며 그저 촌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촌장은 눈을 들어 무리를 한번 둘러보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해가 지기 전에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으면 좋겠네. 해가 다 떨어진 후엔 코앞의 텃밭도 다니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오.

 아이들과 여인네들은 물론이고 사내들도 ‘거북머리길’로는 절대 출입하지 않도록 하시오. 사흘 정도를 지켜본 후에도 여전히 사냥과 출입을 금지하게 된다면... 그때는 여인들은 신 군과 함께 세욕터 길목까지, 해랑이와는 세욕터 안까지 모두 함께 가도록 하라고 전하시오. 크흠. 사내들도 반드시 신 군의 대동하에 길목 출입을 하도록 하시게나.”

 

 촌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중얼거렸다.

 

 “뭐어..아직 날이 덥지 않아서 물을 덥혀서 씻어야 할 테니, 물이 차가운 계곡까지는 갈 필요가 없겠다만.”

 

 촌장이 나머지 말들을 덧붙이자 연로한 사내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 중 혈기가 왕성한 연소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촌장은 잠시 그들의 표정을 살폈지만 개의치 않는 듯 다음 말을 이어 나가려 했다.

 

 

 

 *

 한편 해랑은 해가 밝자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먼저 방에서 커다란 보자기를 들고나와서 마당의 평상에 활짝 펼쳤다.

 이어 부엌으로 들어간 그녀는 구석에 있는 커다란 나무 상자를 꺼내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겉보기엔 쓰임새를 쉽게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빼곡 들어차 있었다.

 그녀는 상자를 뒤적거리다가 그것 중 동그랗게 잘 말아져 있는 밧줄 뭉치를 꺼내서 나왔다.

 

 밧줄을 보자기 위에 올려놓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콩과 밥을 뭉친 것과 육포를 면포에 잘 싸서 들고나왔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잘 개어진 새 옷 한 벌을 꺼내왔다.

 해랑은 올려놓은 것들을 확인하며 잠시 바라보다가 모두 보자기에 올려서 척척 싸맸다.

 

 그녀는 이어서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팔과 다리에 각반을 차고 평소에 갖고 다니던 단검보다 조금 더 긴 칼을 허리에 잘 묶었다.

 촌장이 준 비단 주머니는 품속에 잘 넣은 후에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멨다.

 

 모든 준비를 마쳤는지 그녀는 문밖으로 나와서 치우의 방을 잠시 바라보다가 ‘거북머리길’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자 해랑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오라버…아…….”

 

 해랑은 다급하게 돌아섰다가, 어깨에 손을 얹은 이를 확인하고 자신도 모르게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해랑아, 오라버니인 줄 알았구나? 같이 있지 않았던 모양이네?”

 

 그녀의 뒤에는 초아가 서 있었다.

 눈치가 빠른 초아는 해랑의 표정을 보고 민망한 듯 그녀의 어깨에 얹은 희고 가는 손을 주춤주춤 내렸다.

 무안해하는 초아를 보자, 그녀 또한 미안한 마음에 우물쭈물거렸다.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 나는, 밥 준비가 다 되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다 촌장님 댁에 계셔서… 모시러 가는 길에 너희 집에 연기가 나지 않길래. 음…해랑이 너랑 오라버니랑 밥 먹으러 오라고 하려구. 그랬지...”

 

 초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더듬더듬 말했지만, 해랑은 어쩐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해랑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초아는 해랑의 눈치를 보며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그…오늘은 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니구! 왜..그..저번에! 해랑이가 잡아 왔다면서 오라버니께서 고기를 갖다주셔서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무척이나 고마워하셨고…너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그런 선물을 받으니 그것도 마음이...그래서 밥이라도…”

 

 초아가 고개를 떨군 곳에는 치우가 선물한 꽃신이 보였다.

 

 ‘그래…저것도 언니 같은 사람이나 어울리지…오라비가 누이에게 선물하기엔…’

 

 - “초아야! 얼른 다녀오지 않구 뭘 하고 섰어!”

 

 초아는 횡설수설 말을 잇는 도중에 멀리서 자신을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히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그럼 이따 보자, 해랑아!”

 

 초아가 돌아서려 하자 해랑은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초아는 평소와 무언가 다른 해랑의 모습에, 불현듯 마을의 사내들이 모두 촌장 집에 모여있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기억해냈다.

 

 그녀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해랑아, 혹시…신이…오라버니께 무슨 일이…있는 거니?”

 

 초아는 자신의 손을 잡은 해랑이의 손을 마주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그래. 이렇게나 예쁘고 착한 여인이 오라버니를 좋아하는데...’

 

 해랑은 따끔거리는 마음을 눌러버리고 피식 웃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저…제가 오라버니와 다투는 바람에 같이 있지 않았던 거니까. 그러니 걱정 말아요, 언니.”

 

 해랑은 마음먹은 것과는 다르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초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

 그리고 이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그저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요…헤헤. 오라버니가 오시거든, 오늘처럼 끼니는 잘 챙겼는지 심심해하진 않는지 종종 들러 봐 주세요.”

 

 해랑의 말을 듣고 안심한 초아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평소처럼 해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당연하지. 오라버니께선 어찌 이리 어여쁜 여동생이랑 다투셨다니?! 어휴. 언니가 오라버니 혼쭐 내줘야겠다! 참, 이따가 저녁에는 아버지께서 매실주를 담그신다니까 오라버니와 함께 꼭 놀러 와~저번에 술 담그는 것 보고 싶다고 했었지?“

 

 “매실…”

 

 해랑은 초아의 말 덕분에 하마터면 잊을 뻔했던 촌장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저는 오늘부터 마을 밖에 다녀와야 해서 못가요~ 오라버니께는 언니가 직접 말씀드려요!”

 

 해랑은 초아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고, 초아는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어머머…얘는~!”

 

 “그리고 언니, 매화나무에서 매실 몇 알만 가져가도 될까요?”

 

 “그러엄~! 많이 가져가.”

 

 “초아 이노무 기집애야!!!!!”

 

 초아는 어머니의 성화에 말을 마치고 허둥지둥 촌장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

 촌장의 집에는 여전히 마을의 사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촌장이 무언가를 이르고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먼발치에서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려는 초아의 모습이 보였다.

 해랑이와 대화를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총총거리며 걷는 그녀의 걸음걸이에, 곱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과 댕기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곱디고운 초아에게 몇몇 마을 사내들의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느낀 촌장이 서둘러 말을 맺으려 하는 찰나, 낮고 굵지만 아직은 앳된 티가 남아있는 한 사내의 목소리가 촌장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언제까지 그리해야 합니까?”

 

 “응?”

 

 촌장은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인 샘찬을 찾아 눈을 맞췄다.

 

 그는 마을의 제일가는 사냥꾼으로 불리는 장산의 둘째 아들이었다.

 

 “언제까지 그리해야 하냐는 말입니다. 해랑이는 계집아이니까 여인네들과 함께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동행하는 사내가 왜 신이 여야 하는 겁니까?”

 

 “이놈아, 신 군한테 제대로 형님이라고 말 못 하겠느냐?”

 

 버릇없는 샘찬을 그의 아버지 장산이 나무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여인네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은 강한 사내가 동행을 하는 것이 마땅한 처사가 아닙니까?”

 

 순간 초아를 포함한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고, 그의 아버지는 적잖이 당황한 듯 아들을 팔을 잡아끌었다.

 

 “이..이놈이, 촌장님의 결정에 네가 뭐라고 마땅한 처사를 운운해? 입 다물지 못하겠느냐!”

 

 평소 아버지를 존경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샘찬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절대 지지 않으려 마음먹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아버지? 이유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식량도 비축해야 하고 우리는 짐승 가죽을 팔아서 마을에 필요한 다른 물자들을 사지 않습니까?! 신이 형님 말만 듣고 촌장님이 저리 결정하고 말씀을 하신다니요!”

 

 샘찬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초아를 의식하자, 더욱 큰 목소리로 객기를 부렸다.

 

 “그래도, 이놈이!”

 

 정적 속에서 장산의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샘찬은 여전히 촌장을 똑바로 보며 숨을 씩씩거리고 있었다.

 

 “강한 사내라….”

 

 촌장이 뒷짐을 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촌장 어르신!”

 

 장산은 이제 아들은 뒤로한 채 걱정스레 촌장의 눈치를 살피기로 한 듯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촌장은 그런 그에게 괘념치 말라는 듯 웃어 보이곤, 샘찬을 바라보며 그가 한 말들에 차근차근 달래는 어조로 대답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지는 금방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해랑이가 그제 밤에 산을 돌아보고 오늘 내게 제안한 것이니... 적어도 해랑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는 그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면 샘찬이 네가 해랑이를 대신해서 마을 주변을 정찰할 능력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샘찬은 빛 한 점 없는 컴컴한 산을 걸어갈 시력 이전에 담력도 없었던지라 입을 꾹 다물고 다른 반박할 거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강한 사내…강한 사내라….... 해랑이를 여인들과 동행시키겠다는 것은 해랑이가 여인네들과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만은 아닌 것을 정녕 몰라서 그리 물은 것이냐?”

 

 샘찬을 달래기 위해 입을 열었던 촌장은, 말을 하다 보니 부아가 치밀어올라 자신도 모르게 빈정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신 군이 집마다 멧돼지 고기를 전하겠다며 내게 가장 먼저 찾아왔었는데, 혹시 장산네는 받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으로는 사냥을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될 정도로 우리 마을이 빈곤한 곳인가?”

 

 촌장의 말에 샘찬이 무언가 대꾸하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마을 최고의 연장자인 허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기에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식구 수 대로 넉넉한 양을 들고 왔더이다. 그리고 장터에 내려갔다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식량은 마을에 충분하리라 생각하오. 우린 가죽을 팔기 위함이지, 식량이 급해서 사냥을 나가는 것이 아니니. 으흠.”

 

 허 노인이 촌장의 말을 거들자, 다른 이들도 그에 동의하는 의견을 더했다.

 

 “그리고 해랑이가 그리 여긴다면 다 우리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마을에서 농기구와 사냥도구를 손봐주며 제작하는, 마을 유일의 대장장이인 산다라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판단한 촌장은 종전에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에, 마지막으로. 사냥을 나가지 않아서 손이 비는 사내들이 폐가를 조금 손봐주고 치워줘야겠어.”

 

 “폐가를요? 누가 살 수 있게끔 손을 보란 말씀입니까?”

 

 산다라가 똑 부러지게 물었다.

 

 “오, 그래. 한 양반께서 우리 마을로 오시게 되었는데, 터를 정리해 두어야 새로 집을 지을 터이니. 정리되는 대로 집을 짓도록 해야지. 아무리 ‘거북꼬리길’ 이라 해도 외지인에게는 험난할 것이고, 목재나 여러 가지 것들을 싣고 오기는 힘들잖은가. 젊은이들이 좀 나서서 도와주어야겠어.”

 

 “오랜만에 집 좀 지어보겠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산다라는 신이 나서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양반이라는 말에 어쩐지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맡아서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래! 장산네가 맡아주면 되겠구먼.”

 

 “예, 촌장님!”

 

 촌장은 해랑이와 치우에게는 알리지 않았던 양반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덧붙이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장산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그럼 다들 식사하러 가시지요.”

 

 초아는 담장 바깥에 서서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서자 그녀도 다시 자신의 집으로 걸음 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샘찬은 면이 서지 않는 듯 불그레해진 얼굴을 바닥으로 떨구고 있었다.

 

 “신. 이 자식…기어이 초아랑 여인네들에게 잘 보이려고 멧돼지 고기며, 여인네들의 호위며, 손을 썼다 이거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샘찬은 주먹을 꽉 쥔 채,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

 한편 치우는 먼발치에서 초아네 집 앞의 매화나무 근처에 서 있는 해랑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멧돼지 일은 제가 해결할 테니, 나서지 마십시오.’]

 

 ‘거북머리길’로 걸어가며 자꾸만 집 쪽을 돌아보는 해랑을 보며 치우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왜 모든 걸 오라버니 마음대로 하십니까?‘]

 

 해랑이가 걸어가는 걸음의 속도를 맞춰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따라가던 치우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실리며 그들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진짜 오라버니도 아니면서!’]

 

 해랑이의 외침이 치우의 발걸음마다 못질하듯 그를 찌르더니, 결국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치우는 멀어져 가는 해랑의 뒷모습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멈춘 자리에 서 있었다.

 

 “...틀린말을 들은 것도 아니잖아. 무얼 억울해 하는 건데, 나는.”

 

 그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고개를 떨궜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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