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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5화. 재회(1)
작성일 : 19-10-22 23:53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8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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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아침밥을 먹고 아낙들은 멀지 않은 논밭으로 가거나 집안일 등 소일거리를 시작했고 사내들은 폐가 앞에 하나둘 모였다.

 

 “다들 왔는가? 어디보자...샘찬이, 산다라, 해솔이,한울,한별 형제까지...”

 

 사냥꾼 장산은 자신을 제외한 다섯 명의 사내를 보고 골똘히 생각했다.

 

 “허허, 그럼 무엇...부터 해야 하나?”

 

 장산이 은근히 산다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산다라는 마을의 유일한 대장장이였지만, 집을 수리 하거나 둑을 만드는 등 여러 방면에 재능이 깊은 청년이었다.

 

 “장산 아재, 제가 보기엔 기둥도 다 썩어 못 쓸 것 같은데요?”

 

 장산의 시선을 눈치채고 폐가를 살펴본 산다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에잇, 그러면 새로 짓는다고 했으니 일단은 전부 드러냅시다! 터만 남겨, 터만. 아들놈하고 산다라가 기운이 좋으니 도끼를 잡고....”

 

 “저랑 산다라 형님만요? 한 명 더 필요해요, 아부지.”

 

 “맞아요. 해솔이도 힘 좋은데?”

 

 산다라가 웃으며 장난치듯 말하자, 허 노인의 아들이자 가람이의 아빠인 한울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허! 어디 새신랑한테 이런 일에 힘을 쓰라고 해? 눈치가 없구나~. 한별아, 네가 도끼 잡아!”

 

 해솔은 얼굴이 빨개졌고 사내들 사이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 형! 유부남들만 편하게 일하려는 거 아냐?”

 

 허 노인의 다른 아들, 한별이 도끼를 집어 들며 투덜댔다.

 

 “어허! 어디 감히 형님한테!”

 

 “자자! 도끼질하더라도 너네 나이로 돌아가고픈 내 마음 모르지?! 얼른 시작하자!”

 

 “예~!”

 

 사냥꾼 장산의 진두지휘 아래 사내들은 일을 시작했다.

 

 한참을 땀을 흘리던 사내들은 멀리서 여인들이 새참을 들고 오는 것을 보고 환호했다.

 초아가 막걸리 동이를 머리에 이고, 해솔의 아내인 새신부 새나는 전을 부쳐서 들고 왔는데, 그 모습을 본 샘찬과해솔이 달려가 각각 짐을 받아주었다.

 

 “보기 좋구만~.”

 

 “산다라 오라버니! 조용히 술이나 마셔요. 어?”

 

  산다라의 놀림에 초아는 샘찬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앉으려다가 ‘거북 머리길’에서 들어온 치우를 발견했다.

 

 “어? 신이 오라버니!!”

 

 샘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산이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싼 거북마을의 동쪽에 ‘거북 머리길’이 있는데, 그 길목의 바로 왼쪽엔 해랑과 치우 남매의 집이 있다면, 길목 바로 오른쪽엔 폐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치우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했다.

 

 

 “꽝철이~! 와서 술 한잔 들어~!”

 

 한울이 큰소리로 치우를 부르고 산다라가 팔을 잡아끌자 치우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하...어찌 저를 그리 부르십니까?”

 

 “해랑이가 이렇게 부른다며? 가람이도 꽝철이 형이라고 하던데? 성만 부르기도 불편했는데, 좋네~!”

 

 “과거시험 낙방이라도 했던 거야? 용이 못되었다고 해랑이가 제 오라비 놀리는구먼~.”

 

 장산이 큰 소리로 웃었다.

 

 “어? 해랑이는 뭐하고 혼자 있어? 산에 갔나?”

 

 “그게. 잠시 집에 볼일이 있어서...”

 

 치우는 얼버무리다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다들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치우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아아, 몇 년 만에 마을에 사람이 온다더구나. 양반이라던데 못 들었어?”

 

 “예?”

 

 사람들은 치우를 신경 쓰지 않고 양반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촌장님은 어찌 양반이 온다고 했을까요~?”

 

 “그러게나 말이야~원래는 신분 같은 것두 얘기 안 하시잖어?”

 

 “귀양을 오는 것이 아닐까요?”

 

 “하기야... 살면서 터를 옮긴다는 것이 흔치 않은 것인데...더구나 양반들은 모여 사는 마을도 있지 않소?”

 

 양반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초아는 굳어진 치우의 표정을 신경 쓰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모르셨구나. 그래도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아...응.”

 

 치우는 급히 표정을 바꿨고 그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심기가 불편해진 샘찬은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너야말로 어찌 된 거냐? ‘거북머리길’로 드나들지 말라고 해서 사냥 대신 이런 짓이나 하고 있는데, 넌 어째서 그곳에서 오는 거야?”

 

 “너라니? 장샘찬, 너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야?”

 

 산다라가 샘찬의 어깨를 팍 쳤다.

 

 “저놈이 어제부터 자꾸...! 너 자꾸 그렇게 치기 부릴거면 집으로 가거라!”

 

 장산이 엄하게 말하자 샘찬은 모두가 치우의 편을 드는 것에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럼 뭐라 부릅니까? 자기 이름도 모른다는 놈이 나이는 어찌 안답니까? 무얼 믿고 형님, 형님 거리냐 말입니다!“

 

 샘찬은 치우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말을 이었다.

 

 “어째서 거북머리 길에서 오는 거냐고 묻잖아!”

 

 치우는 처음으로 샘찬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네가 알 것 없다. 내게 버럭버럭 대들 힘이 남아돌면 그 일이나 하지?”

 

 샘찬은 치우의 행동에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고 치우는 일어서며 어른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촌장님께 좀 가봐야겠습니다.”

 

 “어? 촌장님은 일찍 외출하셨는데?”

 

 산다라가 말했다.

 

 “...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치우가 돌아서자 샘찬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거기서!”

 

 “뭐?”

 

 치우가 몸을 돌리자 샘찬은 치우의 발치를 향해 도끼를 던졌다.

 

 “꺅...!”

 

 초아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고, 치우는 자신의 발 옆에 박힌 도끼를 집어 들었다.

 

 “장샘찬. 넌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괜한 시비 말고 내게 할 말이 있거든 똑바로 말해.”

 

 “할 말? 너도 일해. 짐승을 죽이기 싫다고 사냥도 안 하겠다 하더니, 이런 힘쓰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너 같이 약해 빠진 놈이 어찌 여인네들을 지켜줄 수 있다고 ‘거북머리길’을 멋대로 드나드는 건데?”

 

 장산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다들 입을 다문 채로 둘을 지켜보았다.

 치우가 입을 뗐다.

 

 “그러니까, 네 불만은 두 가지네. 내 이름? 촌장이 마을에 받아들이기로 허락한 사람에 대해서 과거를 캐묻는 건 마을의 규칙에 어긋난다는 거...알면서도 묻는 건 예의 없는 거 이전에 머리가 나쁜 거다.”

 

 “뭐야?!”

 

 “그리고.”

 

 치우는 반발하는 샘찬의 옆으로 도끼를 던졌다.

 

 -우지끈

 

 바람이 찢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도끼는 여러 사람이 쪼개려고 했던 큰 기둥에 날아가 박히며 큰 균열을 만들었다.

 

 모두가 그 광경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치우는 샘찬을 보며 말했다.

 

 “저건 네가 할 일이잖아? 사냥 안 하는 대신 하는. 난 사냥꾼이 아니라서 말이야.”

 

 치우는 차분하고 도도하게 쏘아붙이고는 돌아섰다.

 

 

 *

 한편 촌장은 나무가 그리 빽빽하지 않은 산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다녀간 흔적이 없군. 내가 잘못 짚은 것인가...?아니면 단지 늦는 것인가...”

 

 촌장은 뒷짐을 지고 멈춰선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설마 내가 생각지 못한 윤은오가 세워질 만한 다른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래서는 안 돼. ‘그’만큼 적합한 인간을 어디서든 찾긴 힘들어. 절대 놓칠 수 없다.”

 

 그의 몸에서 검은 가루 같은 것들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지난 5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네 녀석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내 덕이니...이제 값을 톡톡히 치러줄 때가 되었다. 윤 정랑 유성원... 누구의 말을 따르든, 도착점은 같으니 더이상 고민하며 망설이지 말고 어서 오너라.”

 

 촌장은 눈을 뜨고 시커먼 눈동자를 빛내며 씩 웃었다.

 

 

 *

 “으아아-!”

 

 촌장의 예상과는 다르게 은오는 이미 첩첩산중에서 걷고 있었다.

 

 “대체. 여기가 대체 어디란 말이냐?! 길을 잃은 것인가…. 어디보자”

 

 그는 품속에 넣어둔 약도를 꺼내어 다시 확인했다.

 

 “이미 출발지점을 잃어버려서 보아도 모르겠으니...이런 쓸모없는 종이 같으니라고.”

 

 은오가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약도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 날아가 버렸다.

 

 “어..어....어? 쓸모없다고 한 말은 농이었다! 돌아와악!!”

 

 은오는 펄쩍 뛰며 종이를 붙잡기 위해 그것이 날아간 방향으로 달렸다.

 

 

 *

 한편 해랑은 봄기운을 느끼며 계곡을 향해 갔다.

 해랑은 자신의 기분과는 달리 맑은 하늘과 포근한 햇살,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내음과 풀냄새가 코를 간질이는 것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봄의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고, 갓 나온 어린싹들은 햇빛을 받아 연두색을 띠고 있었다.

 기다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산속에 들어서자 우거진 잎사귀 덕분에 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둑어둑하고, 바깥보다 조금 더 시원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늘진 산길에서도 빽빽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틈으로 드문드문 햇빛이 기둥처럼 땅의 이곳저곳에 창처럼 꽂혀 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비탈지고 가파른 길이 계속되는 험한 산길을 지나, 그녀는 죽은 멧돼지를 처음 발견했던 곳 가까이에 도착했다.

 해랑은 제법 평평한 곳에 다다르자 흙먼지가 묻은 옷과 손을 탁탁 털고는 허리를 쭉 뒤로 젖혔다.

 

 “얼추 이 부근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다시 몸을 숙여 땅을 샅샅이 살폈다.

 

 그날 이후로 아직 비가 오지 않아서 피가 섞여 검게 뭉친 흙모래와 새끼 멧돼지를 죽일 때 나무에 튄 검게 굳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해랑은 당시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피가 섞인 흙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의 소리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쥐 한 마리 꼼지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고요함에 그녀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조용할 리가…이 근방 500보(약 400m) 이내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랑은 어미 멧돼지의 피로 웅덩이를 이루었던 곳으로부터 서쪽으로 띄엄띄엄 피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그곳을 따라 걸어갔다.

 

 “목덜미에서 떨어진 피라면 그곳을 따라가면 흔적을 좀 더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않아 핏자국은 끊겼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피가 그친 방향을 향해서 계속 걸어갔다.

 

 그 방향을 좇아 걷는 내내,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새들 말고는 다른 동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해...’

 

 정찰하러 다니며 자주 지나던 곳이었기 때문에, 평소 이곳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먹이를 먹거나 쉬어가는지 해랑은 잘 알고 있었다.

 

 해랑은 길을 걸으며 땅을 툭툭 차 보았지만 어떠한 동물의 배설물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찔레나무의 어린순을 뜯어 먹던 동물들의 흔적 또한 보이지 않았다.

 

 늘 어린줄기가 남아나는 법이 없던 찔레나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러 갈래로 순이 자라나 뻣뻣한 줄기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이 근처에 어떠한 동물들도 접근하지 않았음을 여러 흔적을 통해 짐작했다.

 

 “이곳에서 나는 맡지 못하는 어떤 냄새라도 나는 걸까...? 공포에 질린 것이 분명해. 허나 그 무언가가…….”

 

 그녀는 머릿속에서 잠시 당시로부터의 상황을 되짚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자신의 직감이 자꾸만 엉뚱한 곳을 가리키는 것처럼 고개를 마구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이미 마음속에 움튼 의심과 조금씩 커지는 확신을 따라서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면 거북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싼 산의 영역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

 

 해랑은 자신이 이 마을에 처음 와서 촌장에게 산의 경계에 대해 배웠던 것과 거북 마을을 둘러싼 산을 정찰하는 일을 맡기로 했을 때 촌장이 했던 당부를 떠올렸다.

 

 ‘산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나의 결계 밖으로 나서는 일. 혹여 그 경계를 넘으면 내가 그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을 것이니, 모쪼록…염두에 두길.‘

 

 촌장의 말을 떠올리자 그녀는 산의 경계를 마음대로 넘어도 되는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는 주변 짐승들이 겁먹고 이곳을 피하고 있는 지금이 단서를 찾을 기회라고 여기면서도, 만약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져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마을로 돌아갈까...?”

 

 해랑은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촌장과 상의하고 돌아올까도 싶었지만, 만일 이번에 돌아갔다가 치우를 마주치면 곤란에 처한 자신을 돕겠다고 나설 그의 모습이 불 보듯 뻔했기에 망설여졌다.

 

 “아니지…내가 그런 말을 내뱉었는데…오라버니가 아직도 나를 그렇게...여길까?”

 

 해랑은 자신을 돕겠다고 나설 치우를 마주하게 될 일보다, 자신을 외면할 치우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주하기가 더 겁이 났다.

 

 그녀는 결심한 듯 허리춤에 묶은 칼자루를 꽉 쥐고, 멈췄던 발을 떼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해랑은 길을 기억하기 위해 검을 빼 들고 간간이 표식을 만들어두었다.

 

 

 *

 옆으로 지나쳐가는 모든 풍경이 점점 낯설어지고 눈앞에 처음 보는 커다란 바위산과 곳곳에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나타나자 그녀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주의를 둘러보았다.

 

 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발아래엔 바다처럼 광활한 초록색의 나무숲이 보였다.

 해랑은 자신의 기척을 없앤 채로 눈을 감고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산짐승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해랑은 자신이 찾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잠시 숨까지 멈추고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일순 바람이 불며 모든 소리가 조용해지더니 그녀의 바로 근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깍!!”

 

 “으악!”

 

 해랑은 바람을 타서 기척을 숨기고 날아온 까마귀의 느닷없는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았다.

 

 그녀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앉아있다가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괘씸한 듯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영리하다니까!”

 

 그녀의 앞에서 약 올리는 것 같이 허공을 맴돌던 까마귀는 그녀가 주저앉아있는 바위산 아래로 날아들었다.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엉금엉금 기어가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절벽으로 보였던 아래는 단면이 매끄럽지 않게 깎여있는 모양새로 부분부분 돌출된 돌이 있었다.

 

 “잘...뛰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해랑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두 손으로 땅을 꼭 짚은 채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조금 먼 아래에 튀어나와 있는 자리에 까마귀가 내려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다.

 해랑은 까마귀가 괘씸했는지 유심히 그곳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절벽 돌 틈에 까마귀가 먹을 게 무엇이 있다고…?”

 

 해랑은 다른 곳을 둘러보기 위해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 툭, 투둑 툭.

 

 그녀가 일어서자 절벽 아래쪽에 붙어있던 흙무더기에서 작은 돌이 떨어져 내리며 약간의 흙먼지가 일었다.

 

 “깍!”

 

 -푸드덕

 

 까마귀는 그 소리에 놀라 날아올랐다.

 

 “날 놀래키더니 쌤통이다~!”

 

 해랑은 날아오른 까마귀를 쳐다보며 웃다가 자신도 모르게 까마귀가 앉아있던 곳을 쓱 한번 쳐다보았다.

 

 “저게…뭐야?”

 

 그녀는 눈을 비비고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시금 바닥에 엎드려 아래를 보았다.

 

 “사람……?”

 

 그녀가 내려다본 절벽 아래에는 날개를 펼친 까마귀의 덩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사람의 머리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헉!”

 

 해랑은 그것이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뒤로 주저앉았다가 뒷걸음질로 바위벽에 등을 기댔다.

 

 그녀는 온몸에 털이 주뼛주뼛 서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주변을 경계했다.

 한참을 긴장한 채로 앉아있던 해랑은 한순간 재빠르게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려가 사람의 머리를 들고 위로 올라왔다.

 

 “호환(호랑이에게 화를 입은 것)이다. 틀림없어.”

 

 그녀는 자신의 길고 넉넉한 겉옷을 벗어서 사람의 머리를 꽁꽁 싸매어 어깨에 둘러메고 표식을 해둔 길을 따라 거북 마을이 있는 산의 경계로 재빠르게 돌아왔다.

 

 해랑은 언젠가 치우와 나눴던 대화를 상기해냈다.

 

 [‘해랑아, 범하고는 다투면 안 돼. 어떤 호랑이는 나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거든. 물론 제정신인 놈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호랑이가 사람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어찌 압니까?’]

 [‘일단 그놈은 제정신이 아니니 말이 통하질 않는다. 그리고 머리만 남은 사람의 시신이 있다면, 그건 필시 호랑이에게 당한 것이라고 보면 돼.’]

 

 *

 어느새 해가 다 져버린 산속은 매우 캄캄했다.

 익숙한 길이라서 평소라면 어두워도 별 탈 없이 발을 내디뎠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자신이 먼 곳의 소리를 잘 듣고 발이 빠르며 기척을 숨길 수 있다고 한들 냄새까지는 숨기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 활동하는 범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에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어서 촌장님과 오라버니께 알려야 해.”

 

 해랑은 익숙한 길에서 빠르게 달리다가도 이따금 멈춰서서 눈을 감고 자신을 쫓는 기척이 없는지를 집중해서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척을 숨길 수 있듯, 호랑이는 자신의 기척을 숨기는 데 아주 능숙한 짐승인지라 그녀는 호랑이가 자신을 쫓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아, 거의 다 왔어…조금만 더.”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다독이듯 중얼거렸다.

 

 달리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한 지 한참, 어느덧 그녀는 까마득한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과 처음 겪는 호환이라는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에 냉정함을 잃은 채로 마을의 세욕터 인근까지 달려왔다.

 

 “알리면…?”

 

 그녀는 세욕터가 보이자 우뚝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촌장님은 오라버니에게 내가 하는 일을 감당할 만큼의 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하셨어. 허나 오라버니는 촌장님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그녀가 멈칫한 짧은 시간 사이에 그녀의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자신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기척을 감출 수 있는 호랑이가 따라온 것이라면, 마을에 가서 알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치우의 여의주는 여전히 자신에게 있고, 만일 촌장의 말이 맞는다면 그에게는 자신보다도 못한 최소한의 힘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호랑이가 자신을 쫓아온 것이 맞을까? 왔다면 왜 앞에 나타나지 않는가?

 혹시 한 마리가 아니라면?

 한 무리가 자신 하나로는 부족하여 마을을 알아내기 위해 온 것이라면…?

 우리 마을 사람들이 여럿의 호랑이를 상대할 수 있는가?

 

 해랑은 주먹을 꽉 쥐고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방향을 틀어 세욕터가 있는 계곡의 위쪽으로 뛰어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호숫가가 보였고 그녀는 호수 앞 바위 앞에 섰다.

 해랑은 숨겨왔던 기척을 드러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를 따라왔다면 모습을 드러내시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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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각자의 사정(1) 2019 / 10 / 8 217 0 6447   
10 10화. 그들의 일 2019 / 10 / 4 220 0 7004   
9 9화. 질투가 품는 소망 2019 / 10 / 1 232 0 8856   
8 8화. 움트다 2019 / 9 / 27 216 0 6616   
7 7화. 만남 뒤에 따라오는 2019 / 9 / 24 233 0 4815   
6 6화. 마음이 기울어지는 곳 2019 / 9 / 20 230 0 5086   
5 5화. 호의와 적의 2019 / 9 / 17 219 0 6886   
4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2019 / 9 / 13 238 1 7584   
3 3화. 두 쌍의 오누이 2019 / 9 / 10 227 1 5870   
2 2화. 악몽의 끝, 두번째 이름 2019 / 9 / 6 245 1 6150   
1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2019 / 9 / 3 360 1 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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