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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9화. 가만히 있어 다 긁히잖아
작성일 : 19-09-12 00:49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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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민고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들어낸 건 희선과 동화, 그리고 규민이었다. 동화가 제이의 죽음에 답지않게 청승 떨고 있는 희진을 붙잡고 집밖을 나왔기 때문이다. 아기 때부터 자식같이 키운 자신의 판박이이자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동화덕에 희선은 대충 마음을 추스리고 이렇듯 친히 행차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셋은 익숙한 인영을 보곤 걸음을 멈춘다.

 

 " 저거, 예은이 맞지? "

 

 희선이 정신없이 땅 끝만 보며 뛰어오는 인영을 보며 훗, 하고 웃는다. 동화가 예은을 만나 사랑을 할 때 희선도 많이 봐왔으니 단숨에 그녀인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이 달린 희선은, 규민과 함께 학교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 으윽. "

 

 땅만 보고 달려서 그런지, 동화에게 자석에 이끌리듯 이끌린 건지 그렇게 그와 부딪혀버린 예지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힘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그대로 나가 떨어져버리는 예지를 따라 주저앉은 동화가 묻는다. 꿈에만 나타나던 예지를 찾았다는 기쁨에 그녀가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웃음끼를 지울 수 없다.

 

 " 괜찮아? "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까이 가자 우유냄새가 진동하고 축축하게 젖은 온몸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표를 보니 [ 이예지 ]라고 적혀있다. 이번엔 이예지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본다. 자신이 알던, 자신의 심장을 울리던 그녀가 두 눈알에 박혀들어오는 순간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 흐윽… 으흐윽… 흐아앙. "

 " 왜… 왜 울어? 응? 아파? "

 

 그녀를 찾았다는 환희에 기뻐하기도 전에 엉엉울어버리는 예지때문에 답지 않게 당황한 동화가 어쩔 줄 몰라 바둥댄다. 도대체 어디서 우유목욕이라도 했는지 다 젖어 있질않나, 자신을 보자마자 이렇게 눈물을 터트리지 않나.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여주는게 싫은지 손등으로 벅벅 닦아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엉덩방아를 찧을 때 운동장 바닥을 손으로 짚어 손이 온통 모래투성이였기 때문이다.

 

  " 가만히 있어 다 긁히잖아. "

 

 동화가 조금은 무섭게 말하면서 손을 떼어낸다. 그제서야 예쁘기만한 두 눈이 온전히 자신만을 밤아본다. 동화가 제일 좋아했던 다갈색의 아름다운 눈동자. 잠시 벙쪄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동화가 웃어 보인다. 우리 다시 한 번 만난거야, 알아둬 예지아. 우리 다시 시작 하는거야.

 

 동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하는 말을 들은건지, 잔뜩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담은 예지가 그대로 자신을 뿌리치며 달려간다. 뿌리치며 달려가는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참는다. 몇 십년도 기다려왔는데 이것쯤을 못참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 …찾았다. "

 

 멀어지는 예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노라니 자각하지 못한사이에 규민이 옆에 서있었다.

 

 " 팔불출. "

 

 방실방실 거리는 동화를 보고 혀를 끌끌 차준 규민이 동화의 어깨위로 손을 척 올린다. 그리고 그를 빙 돌려 학교 쪽을 바라보게 한 후에, 단숨에 교무실로 들어온다.

 

 

 

 먼저 들어가 있던 희선은 벌써 교감을 보며 최면을 걸고 있었다.

 

 최면은 무슨 소리 인고 하면, 순수혈통인 뱀파이어에게는 그에 걸 맞는 능력이 하나씩 있었다.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 마치 인간들에게 있는 지문 처럼 뱀파이어 마다 모두 다 다르다. 또한 같은 능력이라고 발현 시간이나 강도 등도 제각각 이었다. 어쨌건 간 희선의 능력은 최면술, 아니 조종술 이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상대를 조종할 수 있는 아주 쓸모 있는 능력. 쓸모 있는 만큼 능력 발현이 쉬운 게 아니였고 워낙 희귀하여 로메니족에서는 그녀의 가문 몇 명이 조종술을 할 줄 아는 전부였다.

 

 사실 희선은 로메니족 중에서도 최고라 일컫어지는 ‘레꼬르’ 가문 출신이다. 가문이 오래되고 유서 깊을수록 그들의 능력 또한 뛰어났다. 레꼬르 가문은 뱀파이어의 뿌리부터 시작한 몇 안되는 가문으로 대대로 조종술을 할 수 있었다. 조종능력이 뛰어날수록 그걸 당하는 사람의 기억이 더 뚜렷하게, 깊숙이 박히는데 희선의 경우 그 부분에 있어 천재소리를 들을 만큼 소질이 있었다.

 

 상대에게 최면을 걸어 조종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조종하고 싶은 사람과 눈을 마주한 채 눈 색깔을 빨갛게 물들이고 원하는 대로 말하면 된다. 그렇게 조종을 당한 그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대의 최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이동화 너 몇 반이랬지? "

  " 2학년 2반. “

 

 희선은 빨간 눈을 한 채 선생들에게 최면을 건다. 동화는 씩 웃으며 이리저리 구경한다. 요새 학교 좋아졌다. 가장 마지막으로 다녔던 게 벌써 몇 년 전이였는데 기술이 생각보다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희선이 미리 선생들에게도 조종을 걸어 그들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러자 그들은 미리 준비한 조작한 원서를 틈틈이 끼워 넣는다. 조작 같은거야 워낙 오래 해먹는 지라 다들 베테랑 급이다.

 

 " 자, 다 끝난거지? "

 

 동화는 이백살이였지만 단 10분 만에 고등 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자신 정도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며 전학생으로 말이다. 내일 부터 등교하게 될 학교를 돌아보는 그가 입 찢어질 듯 웃고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학교를 빠져나간다. 자신의 옷깃을 조금이라도 스쳤던 학생들이 뭐야? 하며 당황했지만 곧 자신들이 잘 못 본 걸로 치부해 버린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말도 모르는 가보다.

 

 

 

 

 

 * * *

 

 

 

 

 

 현경이 아무런 설명 없이 나가버리고 멀뚱히 남은 기환과 하은은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그렇게도 나가지 말라고 말했지만 나갈 궁리인 것이다.

 

 " 야. "

 " 응? "

 " 니 오빠 지금 이 사건 맡고 있지 않을라나? "

 " 김종인? "

 

 하은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다가 그래! 하고 박수를 친다. 맞아 우리한텐 김종인이 있었지. 종인은 앞에 나왔듯 서울지검 강력계 형사다. 그런 종인과 하은이 무슨 관계이고- 하니, 그들은 피하나 섞이지 않은 표면상 남매였다. 호적과 모든 인적등본이 하나도 관련 없는 오직 종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동생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그 내막의 이야기는 조금, 아주 조금 길었다.

 

 한경과 기환, 하은이 한국에 정착해서 살다보니 자연스레 여러 사건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가장 먼저 알게 되는게 형사들이었고 주위에 새로운 뱀파이어가 나타나거나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쓸 만한 인간을 찾던 우연히 하은의 눈에 와인 빛 머리를 흩날리며 범인을 잡던 종인이 보였다. 그 때 머리에 필이 딱하니 꽂힌게 정신 차리고 보니 그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더라는 거다. 하은은 브리아족의 유일한 최면술사였다. 그녀는 밥먹기보다 쉬운 최면으로 종인을 자신의 오빠로 바꿔 버린 것이다.

 

 " 가서 조종해가지고 자료 좀 빼와라. "

 

 그동안 크고 작은 일의 정보를 받아왔지만, 그래 지금이야 말로 그의 도움이 절실한거다.

 

 " 아!! 좋은 생각났어!! "

 " 아, 깜짝이야!!! 뭔데! "

 " 니가 거기 들어가는 거야! "

 " 거기라니? "

 " 강력반! 가서 김종인이랑 같이 조사하는거지 "

 

 갑자기 박수를 짝 친 하은이 기환을 바라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근데 굳이 가서 형사노릇 할거 까지 있나? 가서 그냥 잠시 최면만 걸어서 보고만 오면 되지.

 

 " 그러면 내가 매번 조종 안 해도 너한테 알아서 알려 줄거고 너가 아예 헤집고 다닐 수 있잖아? "

 

 뭔 얘기를 하나 했더니. 하은은 생각만해도 즐거운듯이 큭큭거리며 웃는다. 그 웃음에 충분한 똘끼가 느껴지는 기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리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라지만 어쩔 때 보면 참 이상한 애였다. 생긴거는 곱게 생겨가지고 말이다.

 

 " 근데 누나가 어디 나가지 말랬잖아- "

 " 언젠 말 들었냐 우리가. "

 

 방금 전까지도 같이 나갈 생각을 했던 기환이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번 이야길 꺼내준다. 하지만 하은의 시원한 대답에 벌떡 일어난다. 어차피 시간을 지체해봤자 소용 없다.

 

 " 강력반이 여기서 십분거리지? "

 " 응. 하지만 뒷산이 있지? "

 " 그렇다면 예상 시간은- "

 " 일분. " / " 일분. "

 

 동시에 말을 마친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이나 빠르게 튀어나간다. 산으로 가면 인간들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므로 그들이 낼 수 있는 속도 그대로 뛰어도 되었다. 단숨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강력반 앞에 도착한 기환과 하은은 그 문 앞에 선다. 서로를 쳐다보며 빙긋 웃은 둘이 힘차게 문을 연다.

 

 힘차게 열고 들어갔지만 쏟아지는 시선은 없다. 모두들 사건 수습에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던 것이다. 종인은 바쁜지 계속 여러 사진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가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정수는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자료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 지금 바빠요- 포스를 풍기며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모니터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 지금? "

 

 하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기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 여기 주목!!! “

 

 분주하고 어수선안 강력계 안에 큰소리가 나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기환을 쳐다본다. 그 시선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은이 눈동자를 어느새 빨갛게 물들인다.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낮엔 거의 검은 동자의 렌즈를 끼고 다녔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그녀가 집중된 시선에 대고 말한다.

 

 " 이 사람은 김기환 형사이다. "

 " ..... "

 " 김기환을 이번 사건 첫발 형사로 임명한다. "

 

 모아진 모든 시선들은 하은의 목소리에 빠져들기 바쁘게 그 빨간 눈에 홀릭 된다. 그녀의 목소리가 귀를 타고 천천히 뇌까지 흘러들어가 기억을 조종한다. 움칫. 조금의 무리만 주어도 많은 기억이 박히고 없어지고 수정되는 뇌는 참 신기한 것이었다.

 

 "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서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나오기 바란다. "

 

 하은에 말에 하던 일을 팽개친 형사들이 뭐에 홀린 듯 강력반을 빠져나간다. 문과 가장 멀리있던 정수까지 나가고 강력반 문이 닫히자 조용한 가운데 하은이 엄지와 중지를 부딪혀 딱! 소리를 낸다.

 

 

 

 조종을 가하면 그 말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질 동안은 최면상태로 돌입한다. 최면상태가 되면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정갈한 기계, 로봇과 비슷해지게 된다. 그렇게 머릿속에 조종명령이 입력되고 최면을 풀면 그 내용이 기억된 머리는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기억된 내용대로 한다.

 

 지금부터 기환은 강력반 일원으로 그리고 이 사건에 첫발 형사로 임명 되었다. 그리고 본인들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지금은 집에 가고 내일 9시까지 이곳으로 온다. 그게 최면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평소 같은 행동을 할 것이며 자신들이 왜 집에 가야하는지에 대한 이유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생활하는 것이다.

 

 그들이 빠져나간 강력반을 훑던 기환이 먼저 정수가 보던 자료로 다가간다. 그날의 주변 CCTV 자료를 조사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모두 그 시각 바로 전에 고장이 나 있었다.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만한 영상은 하나도 없었다는 뜻.

 

 " 여기 어디 부검실 있지? "

 

 백문이불여일견, 이라고. 글로 들어찬 파일을 읽기 귀찮았는지 탁하고 내려친 기환이 아까 들어왔던 문으로 고개를 내민다. 온통 회색으로 칠해진 칙칙한 복도. 뭐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더 깜깜한 계단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지하 3층, 한 발자국 딛을 때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 으읍! " / " 아오! "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힌 기환이 고개를 돌리고 코를 막는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머리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따라 들어오던 하은은 한번 성질을 내고서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기환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온다.

 

 " 많이도 빨았네. "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시체 이곳저곳을 만지는 하은을 보자 기환은 기가 막혔다. 손목 발목 그리고 목에 물린 자국. 시체를 직접 보자 일단 정말로 이사건의 주범이 뱀파이어인 것은 확실해졌다. 뱀파이어는 뱀파이어가 알아본다고. 딱 그랬던거다.

 

 이거 원. 밀려오는 짜증에 마른세수를 하곤 얼굴을 감싼 기환이 한숨을 쉰다. 왠지 이번일이 꽤 복잡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좋지 않은 예감은 들어맞기 마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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