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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3화. 죽여버릴거야.
작성일 : 19-09-03 23:11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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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몸을 이끌고 집안으로 들어온 동욱은 코끝을 찌르는 듯한 피비린내에 인상을 찌푸리곤 빠르게 거실로 들어간다. 자신의 집안에서 혈향이 베어나 올 이유는 죽었다 깨나도 없었을 뿐더러 점점 거실 안이 비치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누군가의 발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예 거실에 다 들어섰을 때 그는 차마 올라오는 경악을 눌러 담지 못하였다. 바닥엔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가 죽은 듯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 강은호… ! "

 

 그는 재빨리 은호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아직 맥박은 천천히,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동욱의 손이 닿자마자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곧 그가 힘겹게 눈을 뜬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의 처참한 몰골 때문에 입술을 꾹 깨물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그의 상체에는 옷은 커녕 심장이 반쯤 보일 정도로 상처가 나 있었다. 왼쪽 가슴께부터 배꼽까지 쫙 찢어져 살점이 배어 나오고 있었고 피가 줄줄 흘러 하얀 살을 다 덮었다. 누구의 짓인지 정말 머리 좋다고 찬사라도 보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끔찍한 고통 속에 생명은 천천히 끊어지도록 해놓은 것이다. 철천지원수에게도 미안해서 못할 몹쓸 살인이었다.

 

 " 제… 헙… 우욱 제… "

 " 말하지 마 새끼야!! "

 

 그는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 갈듯한 창백한 은호의 모습에 동욱은 절망에 휩싸인다. 변변치 않은 인간관계에서 정말 하나 믿고 살고 의지할 곳의 전부인 그는 여태 자신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항상 있는 일인 듯 아침만 해도 반갑게 일어나 장난치며 아침을 해먹곤 서로 일하려 헤어졌을 뿐인데.

 

 " 제이… 제이가… "

 " 제이가 왜? 불러줘? 제이 불러줄까? “

 

 그가 말하려던 단어를 그제야 알아들은 동욱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제이. 제이는 그가 몇 달 전 아르바이트하면서 사귄 애인이었다. 죽기 전까지 그녀를 찾는 걸 보면 그녀를 많이 사랑하긴 했나보다.

 

 " 제이… 제이가… "

 

 그 사랑을 두고 죽게 되어서 이렇게 애타게 부르는 걸까. 은호는 계속 그녀의 이름을 담으며 다음 말을 이으려고 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안되는 건지 숨을 힘겹게 몰아쉰다.

 

 " …뱀파이어야… 으윽. "

 

 뭐…? 동욱이 잠시 멍을 때린다. …제이가 …뱀파이어라고?

 적잖이 놀란 사실에 그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자 상황파악이 서서히 그려진다. 씨발. 그러니까 지금 그년이 너 이런 거야? 지금 네가 이러고 있는게 다 개 때문이냐고.

 다른 사람 같으면 그의 말에 미친놈이라 겠지만 동욱은 단번에 이해한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제이 같은 뱀파이어를 잡는 그들의 앙숙. 뱀파이어 헌터 였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에 따라다니는 뱀파이어 헌터라는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뱀파이어를 잡기위해서 태어난 존재로 그들의 눈엔 뱀파이어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깃들려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뱀파이어와는 다르게 인간이었고 이렇게 쉽게 다칠 수도, 그 다침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

 

 " 뱀파이어… 였어, 쿨럭- 뱀파이어였다고! "

 

 은호는 그 말을 마치고 새빨간 핏덩이를 뱉어내었다. 이젠 정말 그의 죽음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침착해야 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그가 죽기 전에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아 내야했다. 혹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 같은 것.

 

 " 그 년이 뱀파이어면 너한테 일부러 접근한거야? "

 " … 윽… 그렇… 데. "

 " 씨발, 그러면 이렇게 만든 것도 그년이야? "

 " … 크윽… 응. "

 " 미치겠네, 강은호 정신 차릴수 있어? 병원가자, 장기손상 이런거 없으니까 괜찮을꺼야. "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킨다. 은호의 눈에서 투명한 물줄기가 흐른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안쓰러워서 동욱은 입술을 꾹 깨문다. 은호의 입술의 동욱의 입술과 다르게 점점 핏기를 잃어간다.

 그를 어서 병원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동욱이 그의 목뒤로 손을 넣는다. 하지만 동욱이 그를 들어올리려고 하자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목에 힘을 준다. 은호의 목에 핏대가 새빨갛게 올라와 동욱은 빠르게 손을 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은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 싫어. "

 " 강은호! 너 이러다 죽어, 지금 니가 무슨 소리를 하는 줄 알기나해? 아프겠지만 일단… "

 " 안가… 동욱아. 윽… 나 안가 "

 " 강은호!! "

 

 그가 왜 이러는 지는 모르겠지만 가지 않겠다고 하는 그를 강제로 움직였다가는 더 일찍 숨을 거둘게 분명했기 때문에 황급히 손을 뗀다. 너 도대체 왜이래! 마음 같아서는 소리치고도 싶었지만 그의 눈이 슬픔에 가득 잠겨있었다. 마치 엄마에게 버림받은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다그치면 울어버릴 듯 애처로웠다.

 

 " 제이가 이제 없어… "

 

 뭐…? 동욱이 할말을 잃은 듯 쳐다보자 희미하게 웃는다. 그의 눈은 웃고 있지만 그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지금 그는 온몸에서 나오는 아픔보다 믿고 있던 사랑에 대한 배신으로 죽어버린 마음의 아픔이 더 짙고 큰 것이다.

 

 " 진짜 날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

 

 평생 뱀파이어 뒤꽁무니만 쫓다가 일정시기가 되면 자신의 자식에게 그 능력을 이어 줘야 하는 저주받은 삶. 모든 요소가 인간과 다를 게 없음에도 평생 평범한 인간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이 뱀파이어 못지 않게, 아니 사실은 그들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일 수 있다. 자신의 숙명에 하루하루 목숨을 걸며 살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도망치는 헌터들도 있었다. 본인의 이런 위험한 운명 때문에 상대가 다치는 것도 싫었고 저주받은 굴레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도 없어서. 하지만 은호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다.

 

 " 나 같은 놈도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그 말을 마친 그는 숨이 막히는 듯 잠시 몸을 움찔 하더니 고개를 들고서 크게 기침을 내뱉는다. 그 기침으로 인해 그의 입에서는 새빨간 핏덩이가 또 한번 빠져나왔고 그건 그의 생명과도 같았다. 기침을 한 후에 그 반동으로 바닥에 세게 머리를 떨군 은호는 그렇게 눈을 감아버렸다.

 

 " 강은호!! 강은호!! "

 

 금방이라도 다시 눈을 떠 웃어줄 것 같은 그는 미동이 없다. 진짜 눈을 감았다. 그냥 단순히 눈꺼풀이 아래에 닿은 것이 아니라 죽어버린 것이다. 너무도 편안히, 정말 편안하게 잠을 자는 듯 그렇게.

 

 " 미친놈아, 야!! 야, 강은호!!! "

 

 그게 신호탄이 된 듯 동욱의 눈에서도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자신의 삶을 좀 더 낫게 해준 유일한 친구가 죽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운명을 함께 하는 친구란 정말 중요한 것인데 지금 그런 친구가 죽은 것이다. 정말 죽었다. 정말 죽었다. 목숨 받쳐도 아깝지 않을 친구가… 죽어버렸다.

 

 " 미련… 한 놈… 섭섭하게… "

 

 그의 한탄 섞인 말이 차갑게 식어버린 거실 안을 메운다. 끝까지 제이만 부르다 간 친구가 애석하다. 애틋하다면 애틋한 관계였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였다. 평범하지 않았던 서로의 처지를 보듬어주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자던 그들의 우정이 한순간 끝나 버린 것이다. 그것도 죽음으로. 그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의 세계로 떠나버린다.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그의 손을 잡은 동욱이 고개를 숙인다.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그 맞잡은 두 손 위로 떨어진다.

 

 " 흑…으윽… "

 

 그렇게 그를 붙잡고 고개를 숙인 채 오열을 내뱉는다. 차마 속으로 삭히지 못하는 울분을 토해낸다. 그동안 그와 함께 지내었던 추억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고 그 틈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온기를 잃어가는 그의 몸을 꼭 붙잡은 채 울자 손에서 이상한 느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에 잡혀있던 그의 몸의 촉감이 사라지고 있던 것이다.

 

 " ……!! "

 

 번쩍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본 동욱의 눈이 커지기 시작한다. 그의 몸이 점점 소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손이건 발이건 점차 성냥개비가 타 들어가듯 그렇게 타들어 가면서 가루가 된다. 그 가루들은 무엇이 이끌리듯 천장으로 솟구쳐 오른다. 그 모습을 담은 동욱의 눈은 절망으로 깊어진다.

 

 뱀파이어헌터는 자신의 역할을 이을 핏줄을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죽으면 그 시체는 소멸되어버린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세상에는 시체로라도 존재하지 말라는 건지. 그 의미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러했다. 소멸 된다는 것은 영영 두고 기릴 수 없는 뼛가루조차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강은호란 인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어디에도 흔적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생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주받은 생을 살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죽는 게 뱀파이어 헌터, 그들의 삶이였다. 동욱의 눈물과 함께 그의 몸은 가루가 되어 천장위로 올라가다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머리, 팔, 다리까지… 결국엔 모두 다… 사라져 버리고 만다.

 

 " 으아아아아악!!! "

 

 동욱의 절규 섞인 외침이 밤하늘을 울린다. 슬픔의 깊이가 너무 깊고 또한 크다. 가슴에 수 백개, 수 만개의 바늘이 꽂힌 것처럼 너무나 아프다. 고개를 숙인 동욱이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은호가'있었던'자리를 쳐다본다. 이제 그는 세상에 존재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그가 '있었던' 자리를 쳐다보던 동욱은 불현듯 주먹을 꼭 쥔다.

 

 " 죽여버릴거야. "

 

 쇳 뿔도 단김에 떼라고 했다. 제이. 그 두글자를 뇌리에 새기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 년, 제이를 찾아서 똑같이,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하고 잔인하게 처리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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