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만의 방, 몇 명의 수하들과 구수회의를 한다.
"기회는 오늘뿐이야. 오늘 중에 오가현을 붙잡아 내 앞에 데려오란 말이야."
"집으로 쳐 들어가지 않는 한 방법은 오직 하나, 오가현을 태운 차를 덮치는 겁니다."
"그러자면 최소한 차 두 대와 상당수의 정예인원이 필요합니더."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데려가면 될 것 아냐? 달문이 니가 필요한 만큼 애들을 뽑아서 출동해. 칼 잘 쓰는 놈도 몇 끼우고."
"허종구 한 놈 상대하는 데 너무 많은 인원을 출동시키는 것도 남세스럽다 아인교?"
"무슨소리! 만에 하나 실패하면 이 백두만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고 이 클럽도 오픈하자 마자 문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차 두 대에 가득채워 가지 예. 제가 책임지고 오가현을 데려 오것습니더."
종구가 숙직실에 누워있는 영추에게 보고한다.
"좀 전에 희상이 형의 전화가 있었심더. 어제 오후에 클럽 오픈식이 있었답니다."
"주총 연기해 달라던 진짜 이유는 바로 클럽 개업식이었군, 그래."
학교에서 가현을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가득 태운 두 대의 승용차가 바싹 뒤따르고 있다가 그중 한 대가 추월하여 끼어들기를 시도하자 종구가 충돌의 위험을 무릎쓰고 저지하면서 추격전으로 바뀌고, 차체가 요동치자 가현이 놀라 소리친다.
"저 차가 왜 저래요? 어머나! 사고 나겠어."
"지금 사고가 문젭니까? 안전벨트 조이고 뭐든지 꽉 붙잡아요."
"아 - 알았어요. 날 납치하려는 사람들이예요? 신고할까요?"
"경찰에 알리면 안 돼요."
"왜요?"
"설명할 여유 없어요. 신고하면 사장님이 곤란해져요."
"무슨 소리래?"
"저놈들이 계속 쫓아 오는 데요. 끝장을 보자는 건가?"
"끝장을 보다니, 무슨 뜻이죠?"
"백상아리가 가현 씨를 반드시 잡아오라고 명령한 것 같다고요."
"그런 나쁜 새끼가!"
"좋아! 창고로 가서 결판을 내주지."
차가 부두로 가는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추격자들도 망설임 없이 뒤따른다. 창고에 이른 종구가 경적을 연속적으로 눌러 민보, 상조에 경고를 보낸다.
종구가 급하게 열린 철책사이로 창고 마당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고 철책이 다시 닫힌다. 파랗게 질려있는 가현에게 종구가 소리친다.
"경비실로 들어가 문 잠그고 있어요. 밖은 신경쓰지 말고요. 어서요."
"어머나! 개때처럼 몰려 왔잖아."
"걱정말아요. 혼자서 다섯도 상대한 난데 막강한 우군이 있잖습니까."
종구가 우왕좌왕하는 박 소장을 불러 주의를 준다.
"소장님도 숙직실에 들어가 문 잠그고 밖이 시끄러워도 절대 나오지 마이소."
"아 - 알았네."
차에서 꾸역꾸역 나온 열 명의 사내들이 철책을 가볍게 뛰어넘어 마당으로 들어온다. 그중 둘은 야구방망이를 가졌다. 종구, 민보, 상조가 나란히 그들 앞을 막아 선다. 민보가 목을 한 번 비틀어 돌리고는,
"곡식창고에 웬 떼강도들이지? 어지간히 배를 곯았나 보네."
부두목 이달문이 한 발작 앞으로 나선다.
"우리는 가현양을 모셔오라는 윗분의 명을 받고 왔소. 정중히 모실긴깨 순순히 넘겨 주시오."
"웃기는 사람들이군. 당신들한테는 납치가 정중히 모시는 긴갑네. 당신들 윗분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그 따우 짐승보다 못한 짓거리를 시켰을까?"
"누군가 했더니 왕년의 동양챔피언 심민보로군. 그대가 우짜다가 이런 데서 경비원 노릇을 하고 있오?"
"심 아무개를 알아 봤다니 내 체면을 봐서라도 곱시리 물러가는 기이 좋치 않컷오?'
"안 될 말씀! 나 이달문이 한물간 그대가 겁나서 꽁무니 뺄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야들아! 뽄대를 보여 조라."
종구가 심민보와 나란히 서며,
"잠깐! 오가현을 납치하라고 시킨 이가 누구요? 백두만이오, 박기태요?"
"허종구! 네 운도 오늘로 끝이야. 그동안 서푼어치 허명을 떨치며 좋은 시절 보냈는데 안 됐군. 아가씨를 정중히 모셔가기는 틀렸고 그 댓가는 전적으로 그대들이 치뤄야 한다고."
달문이 뒤로 물러서고 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덮쳐들면서 격투가 벌어진다. 초전은 맨주먹 싸움이다. 치고 받는 주먹싸움에서는 민보와 종구가 단연 우세를 점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두셋을 상대하는 싸움이라 호각지세를 이룬다. 싸움이 격해질 때 달문의 손 신호에 뒷쪽에 서있던 야구방망이 가진 두 사람이 경비실로 달려간다.
그들의 동태를 지켜보며 소극적으로 싸우고 있던 종구가 앞으로 치고 나가려하자 이달문이 가세하여 진로를 막아선다.
종구의 성난 공격에 이달문의 수하 하나가 치명타를 당하고 쓰러지자 이달문도, 그의 수하도 바짓가랑이에 숨기고 있던 회칼을 뽑는다.
"백상아리파에 회칼 쓰는 놈이 있다더니 바로 네놈들이구나."
종구가 목봉을 뽑아들면서 회칼 대 목봉의 대결로 양상이 바뀐다. 이달문과 그의 수하의 회칼은 길이에서도 목봉과 비슷한 데다 예리하기가 휘두를 때마다 우유빛 궤적이 허공에 잔상으로 남을 정도다.
종구로서도 쉽사리 승기를 잡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경비실 쪽에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살난 유리 구멍으로 두 사내가 마침내 경비실로 진입하고, 가현과 격투가 벌어지는데 가현이 얼마 못버티고 두 사내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두 사내들에게 포박당한 채 차속으로 끌려들고, 차가 지체없이 떠나버리자 곁눈질로 지켜보던 종구가 한숨을 토하고 그때부터 싸움에만 집중한다.
주의가 분산되었던 종구의 공격이 판이하게 날카로워진다. 마침내 달문의 부하 입에서 악! 비명이 터지며 손목을 움켜쥐고 펄쩍펄쩍 뛴다. 목봉에 손목이 절단나버린 것, 그걸 본 이달문의 안색이 흙빛이 된다. 여유있는 부하가 있나 하고 살펴보지만 민보와 상조를 상대하는 데도 급급하다.
달문 대 종구의 싸움이 계속되지만 기세가 꺽여버린 달문도 얼마 못가 으악! 비명을 토하고 손목을 성한 손으로 웅켜쥔다.
그러나 종구의 목봉이 인정사장 없이 달문의 정수리를 가격하고 만다.
졸도 했다가 물 세례를 받고 깨어난 달문에게 종구가 목봉을 꼬나들고 묻는다.
"가현이 데려간 데가 어디야?"
"그건 나도..."
종구의 목봉이 허공을 가르고 달문의 팔을 강타한다. 딱! 소리와 함께 으악! 비명이 터지자 창고안이 한 순간 침묵에 빠진다.
"성한 뼈마디가 남아있을 때 불어!"
"크 - 클럽일 기요 문..."
"심형, 천형, 이 새끼들 휴대폰 압수하고 창고에 가두어 주시죠."
숙직실로 간 종구가 방문 앞에서 헛기침하고 노크한다.
"접니다."
"영찬이 안에서 문을 연다. "
"어찌 됐어?"
방 안으로 들어간 종구, 꼿꼿이 앉아있는 영추 앞에 무릎 굻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한다.
"면목이 없심더. 열 놈 중 여덟 놈을 제압하여 창고 안에 가두었습더만 격투 중에 두 놈이 가현 씨를 붙잡아 가는 걸 막지 못했습니더."
영추가 천장을 올려다 본 채 한참동안 침묵한다.
"가현이를 헤치지는 않을 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어. 어디로 데려 간 것 같나?"
"그 클럽이랍니더. 백상아리파 부두목인 이달문의 말이니 믿어도 될 것 같심더."
"그런 인물을 잡아 두었다고?"
"회칼 쓰는 놈이라 두 번 다시 칼부림 못하게 두 손목대기를 아작내버렸심더."
"큰 일을 냈군.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어? 보복이 두렵지도 않나?"
"가현 씨를 잡아가는 걸 보고 잠시 이성을 잃었심더. 죄송하지만 지금은 얘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더. 그 클럽을 칠까합니더."
"뭐? 놈들의 소굴을 치겠다고?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더. 벌을 받든 용서를 받든 이 일이 끝난 뒤로 미뤄 주이소."
일어서는 종구에게,
"앉아. 서둘지 말란 말이야. 만용은 안 돼. 차라리 기태에게 회사를 통째로 넘겨주고 가현이를 돌려받도록 하자고. 그쪽 애들을 잡아놨으니 백두만이도 응할 거야."
"안 됩니더. 그들이 노리는 것이 회사뿐이라 생각하십니꺼? 책임은 나중에 지고 그만 가보것심더."
깊어가는 밤에 건장한 남자 다섯이 술 취한 걸을걸이로 '문' 클럽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또 한 무리의 중년인들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들어오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기도들이 그들의 입장을 저지하면서 시비가 붙는데 먼저 클럽으로 들어갔던 청년들이 살금살금 다가와 둔기로 기도들의 뒷머리를 쳐서 기절시켜버린다.
그중 하나가 밖으로 나가 손신호를 보내자 길 양쪽에서 사람들이 달려온다. 클럽으로 스며든 칩입자들이 종업원들을 하나씩 기절시켜 어둑한 가상자리에 숨겨놓는다.
적침이 발각되어 홀이 일대 혼란에 빠졌을 때 종구 일행은 이미 안으로 깊숙히 침투해 있다.
내실 입구에 이르렀을 때 한 덩치가 문을 열고 나서다가 종구의 단봉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고 풀썩 주저앉는다.
"이 놈이 백상아린가? 나이가 좀 있어 뵈는데?"
민보의 말에 종구가 고개를 저어 보인다.
"백상아리는 왼뺨에 칼자국 흉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 양반은 얼굴이 깨끗하그만."
그를 복도에 눕혀놓고 안으로 들어서자 주방과 식품창고인 듯한 문들이 나타난다.
"두 분은 여기서 복도를 봉쇄해 주시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보겠오."
"혼자서 괜찮겠능교?"
"위급해지면 소리칠테니까 그때 도와주시오."
직선 복도가 끝나고 기억자로 꺾인 곳에 이른 종구, 나란히 있는 방문 하나에 귀를 갖다대고 있다가 문을 연다. 바둑을 두고 있던 두 사람이 놀라지도 않고 돌아본다.
"넌 누구야? 못 보던 얼굴인데."
"당신이 백두만?"
"이거 완전 미친 놈이잖아? 통로 지키는 놈들은 뭐하고 자빠졌길래 이런 놈이 여기까지 들어 와?"
"백두만. 사태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당신이나 정신차려."
"이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른한테 뭐시라? 가만, 홀이 와 이리 조용하지? 밴드소리가 안 나잖아."
"제가 가보고 오지요. 너 이새끼! 일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