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정지 정지 움직이면 쏜다···. 가 아니라 던진다.”
도끼를 곧 던질 자세를 취한 윅은 낮게 깐 목소리로 위협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윅의 등장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사냥꾼?”
놈들이 윅에게 한 말이다. 윅은 아까 맞고 널브러진 아이를 쳐다보았다. 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얼굴을 때렸으니 어느 한 곳 안 터져 있는 게 이상했다.
윅의 심장이 한없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전생에 아프리카에서 작전을 뛰던 중 잘못된 정보로 인해 엄한 곳을 덮친 적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이 아이를 납치해 파는 악질적인 조직이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팔려 가는 이유를 듣고 꽤나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녀를 가지면 병이 났는가.
아이의 신체 일부를 주술사에게 제물로 바치면 행운과 부가 들어온다 등등. 여러 기괴한 미신으로 아이들이 납치되어 팔려 온 것이다. 전부 미신이란 것 때문에.
그날 처음으로 학살 아닌 학살을 했다. 한쪽 눈이 없는 아이, 양팔이 없는 아이, 귀가 베여 없는 아이.
미신이라는 광기 속에서 희생당한 아이들을 보고 그만 눈이 돌아버린 것이다.
미친 새끼들!
더욱 예민해진 윅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때의 일로 인해 아동학대의 현장을 보면 게거품 물고 달려들었었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면서 차차 사그라들긴 했지만, 거의 광적이다시피 혐오하는 일이 눈앞에 닥치니 몸이 알아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까드득.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잇몸 때문에 고생 좀 할 거 같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저항하는 거로 판단하고 즉시 사살하겠다.”
두 사람은 윅의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으나, 이내 한 놈이 용기를 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냥꾼이오?”
윅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녀석은 무언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나 본지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쪽도 사냥꾼인 거 같은데. 같이 한탕 하는 게 어떻겠소?”
그러자 옆에 있는 놈이 팔꿈치로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저놈까지 끼면 우리 몫이...”
“돈도 살아남아야 쓰는 법이야.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중요해. 그리고 저 사냥꾼 분위기를 보니 제법 한가닥 하는거 같은데.”
“사냥꾼 아닌 거 아니야? 왜 옷을 벗고 돌아다녀?”
“귀를 보니까 인간이 맞아. 그리고 후각이 뛰어난 놈들에게 벗어나기 위해서 맨몸에 흙을 바르고 움직이는 사냥꾼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어.”
서로 숙덕거리는걸 윅은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두 놈이 이야기를 다 끝마쳤는지 윅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형씨. 우리 거래 하나 합시다.”
먼저 말을 건넨 녀석이 손을 비비며 다가왔다. 하지만 윅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겠다. 저 아이는 어디서 데리고 온 거지?”
딱딱해서일까. 놈들이 움찔거리며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윅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미안하군.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쪽들도 알지 않나? 이쪽 일은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한다는 거.”
작은 도박이었다. 솔직히 놈들이 말하는 사냥꾼이란 업계는 윅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좀 더 잘 사냐, 못사냐일 뿐이지 이쪽이나 지구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저들의 상황. 그리고 맞은 아이. 안 봐도 안 좋은 일이며, 저놈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거로 봐서 아주 위험한 일이 분명하다. 작전을 뛰어다니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사람은 불법적이며 위험한 일일수록 배신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조직들 간의 배신은 정말 많이 봐왔다.
그래서 이쪽 업계는 배신을 증오하라고 세뇌를 시키면서도 항상 뒤통수를 긴장했다.
지금 앞의 두 놈이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 말을 꺼낸 것이다.
“흐흐. 그렇지. 우리 같은 사냥꾼들은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야지. 하지만 뒤통수를 지키는 법은 이것만큼이나 좋은 게 없지.”
녀석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윅이 짐작한 게 맞는 거 같았다.
“저 아이는 뭐지? 나와 거래를 하고 싶으면 빨리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아서.”
“거 성질은... 이 녀석은 여기서 하루 걸리는 곳에서 잡아 왔소. 다행히 호족 놈들은 따로 부족을 형성하지 않는 곳이 많아 이렇게 잡아 올 수 있었소.”
“그래도 가족들이 있을 텐데?”
“물론 이 녀석을 지키던 아비를 죽이고 이 녀석을 데리고 왔지. 놈의 아비를 죽이는데 5명이나 죽었소.”
“그럼 저 녀석을 어떻게 할 건가?”
“당연한 걸 묻소. 팔아야지. 돈 많은 놈이 줄을 설계요. 호족 노예는 충분히 돈값을 하는 녀석이거든.”
“무엇으로 돈값을 한다는 거지? 호족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사냥꾼이면서 호족을 모른단 말이오?”
윅은 순간 아차 했으나 자신이 죽인 오크가 떠올라 서둘러 대답했다.
“이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일단 오크를 주로 잡거든.”
“허... 오크라. 쉽지 않을듯한데. 역시 실력이 있는 분이시군요.”
녀석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만큼 오크가 위험한 건가?
“일단 호족은 잘 키우면 막강한 부하를 얻는 거요.”
“호위나 경비로 말인가?”
“그렇소. 그리고 또 하나 더 있지.”
“뭐지?”
“뭐긴 뭐겠소. 밤일이지.”
녀석이 손바닥으로 주먹 위를 툭툭 친다.
“워낙 미가 뛰어난 녀석들이라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하더이다. 하지만 다 큰 녀석들은 길들여지지가 않는다고 하오. 그래서 어릴 때 아예 세뇌를 시켜놓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들었소.”
“그래? 5명을 희생시킬 정도면... 제법 비싸겠군.”
윅이 씩 웃으며 대답하자 녀석은 좀 더 수월하게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나 떠들었다.
“그러니까 형씨. 형씨도 우리랑 같이 나갑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실력도 제법인 거 같은데 우릴 이 숲에서 나갈 때까지 보호해주시오. 그럼 저놈을 판 몫에서 내 기필코 공평하게 드리리다.”
“좋아. 보내주기로 약속하지.”
윅의 말에 눈앞의 녀석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고, 아까부터 불안한 얼굴을 하던 뒷놈은 안도가 되었는지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잠깐. 그런데 아까 아비를 죽였다고 했는데, 그럼 아직 이 녀석의 어미가 남아있지 않나?”
“있소. 마침 사냥을 나갔는지 없더군. 만약 어미마저 있었다면 지금 우린 여기에 없었소.”
“그럼 어미가 추격해 오지 않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도망가는 게 아니오. 아마 지금쯤이면 자식이 납치된 걸 알았을 터이니, 지금 속도로 도망간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소.”
“그래? 그럼 어서 가도록 하지.”
“크큭. 잘 부탁드리오.”
“저승으로.”
“응?”
푹. 푸푸푸푸푹!
순식간이었다. 차디찬 칼날이 목을 베고 가슴을 여러 번 찌르는 건.
뒤에 있는 놈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에 멍하니 있었다.
어떻게? 왜? 묻는듯했다.
“쓰레기들. 아이들은 건들지 마라.”
윅이 무감정한 얼굴로 남은 놈들 노려보았다.
“사, 사냥꾼이 아니오? 당신 이러면 어떻게 될 줄 알...”
부웅 퍽!
말이 끝나기도 채, 도끼가 날아가 녀석의 머리를 박살 냈다.
“돈이 뒤를 지켜준다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놈들이군.”
윅은 차가운 눈으로 두 놈을 내려다보았다. 전생에 경험했던 바로는 돈 때문에 배신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이놈들을 따라 숲을 나가는 순간 두 놈이 배신할 확률이 높았다.
“쯧.”
윅은 죽은 놈들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입을 수 있겠는데.”
윅은 나이프에 베인 놈의 바지를 벗겼다. 남자의 바지를 벗긴다는 미묘하면서도 더러운 기분이 들긴 했지만.
바지를 내리자 씻은 지 좀 됐는지 누런 천이 놈의 소중이를 가려주고 있었다. 이건 손대지 말도록 하자.
‘이거 입어도 괜찮겠지? 병 안 생기겠지?’
윅은 해진 바지를 보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는 얼른 입었다. 딱 맞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입을 만했고, 신발을 벗겨 신으려다가 놈의 발을 보고 그만두었다.
‘두 놈 다 무좀이라니.’
바지를 얻은 거로 만족하자.
윅은 바지를 입고서 제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확실히 덜렁거리는 느낌이 줄었다.
“자. 그럼.”
윅은 쓰러진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제 5살 정도 됐나? 제법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주황빛 머리카락은 사이사이 검은 줄무늬가 있어 호랑이라는 느낌을 주긴 했으나 그것뿐.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에 둥글게 솟아난 건 분명 귀였다.
“이래서 수인이라고 하는 건가.”
살짝 만져보니 부드러우면서 말랑말랑했다.
움찔.
녀석의 얼굴이 찡그려졌다가 펴졌다. 아까 맞아 터진 입가가 신경 쓰였다.
“쯧. 쌍놈 새끼들 때릴 게 없어서 어딜 아이를 때려.”
“우움.”
“어라. 일어났네?”
천천히 눈을 뜨는 녀석을 내려다본 윅. 녀석은 멍한 눈으로 윅을 올려다보다가 두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얼마나 놀랐는지 두 귀가 파르르 떨리더니 온몸을 쫙 피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가만히 있어 이 녀석아.”
윅은 발버둥 치는 녀석을 안 놓치기 위해 한쪽 팔로 꽉 잡고 녀석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캬아악!”
“어허!”
콰직!
녀석이 손을 물었다. 애치고 치악력이 제법 있어 아팠다. 하지만 윅은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가자. 너희 엄마가 있는 곳으로.”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녀석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다시 한번 말하자 녀석이 반항적인 눈빛을 비췄다. 경계심 어린 두 눈에 눈물이 그렁 맺힌 게 부모가 많이 보고 싶은가보다.
“못 믿겠냐? 나 애들가지고 장난치는 놈 아니야. 너희 엄마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가만히 좀 있어.”
윅 또한 녀석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눈빛으로 알려 주었다.
이게 통했는지 녀석의 이빨이 천천히 손에서 벗어났다.
“그래. 가자. 엄마가 있는 곳으로. 나 애 키울 생각 없어.”
아무래도 이 숲을 나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듯했다.
* * *
윅은 쉬던 곳으로 돌아와 가죽을 챙겼다. 녀석 또한 여기오면서 말썽은 부리지 않았다. 윅이 해칠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아무리 날뛰어도 윅에게 벗어날 수 없다는걸 아는 건지는 녀석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가자. 좀 있으면 해 떨어질 거야. 오늘은 엄마 찾기는 힘들고 내일부터 찾아보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말귀를 알아듣는 녀석인가 보다.
“아오. 불편해.”
윅은 아이를 안고 가다가 결국 짐을 모두 바닥에 놓았다. 한 손엔 아이, 다른 한 손엔 도끼와 나이프를 들고 다니니 불편할 법도 했다. 그나마 가죽은 넝쿨로 메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윅은 곧장 가죽 하나를 펼쳤다. 그리고 아이를 등에 업은 후 질긴 넝쿨로 아이가 안 떨어지게 몸에 바짝 묶었다. 한국 엄마라면 한 번쯤은 해본 포대기를 떠올리고 대강 만들었다.
이제 뭔가가 나타나도 아까보다는 쉽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자.”
윅은 한마디하고 다시 움직였다. 구깃이 정말 좋은 걸 주고 떠난 거 같다. 넝쿨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그리고 등에서 아기 호랑이의 고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의 일로 꽤나 지쳤는지 녀석이 잠이 든 것이다.
윅은 이때를 틈타 속도를 높였다.
* * *
밤이 찾아오기 전에 다행히 녀석과 머물만한 곳을 발견했다. 문제는...
꼬르륵.
부끄러우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소리지만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소리.
“미안...”
윅은 진심으로 미안했다. 쉴만한 곳을 찾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오늘따라 고블린 한 마리를 보질 못했으니.
녀석은 윅을 빤히 쳐다보았다.
꼬르륵.
“하아...”
또다시 녀석의 배에서 들려오는 소리.
“먹을 게 없어. 미안해. 내가 능력이 없어.”
“힝.”
녀석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러더니 이내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윅은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있던 와중에 녀석이 무언가를 집어 들더니 용을 쓰기 시작했다.
“책은 왜?”
윅의 책이었는데 녀석의 호기심이 동했나 보다.
윅은 배고픔을 잠시라도 잊힐 수 있을까 싶어서 책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새로 생긴 문구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보상 (실패) : 인연 (세르게이), (실바), 확실히 나갈 수 있는 방법.
[정말 미쳤습니까 휴먼? 왜 줘도 못 먹습니까?
진심으로 이 책을 불 속에 집어넣어 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