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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제의 마음을 훔친 소녀
작가 : 맛있는코코아
작품등록일 : 2019.9.12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소국에서 인질로 잡혀온 공주 리안나. 리안나의 지상 최대 목표는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 버리는 잔혹한 황제의 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나아가 궁을 탈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온갖 멸시와 모욕을 건뎌내며 무사히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리안나에게 청천벽력같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크 국의 왕녀를 황비로 맞겠다.”는. “대체 왜...?”
벗어나려 할수록 황제 카이엘은 리안나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한편, 리안나를 유혹하려 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온했던 제국은 마물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진다.
“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황비이길 거부하는 공주 리안나와 폭군 황제의 아찔한 황궁 로맨스가 지금 펼쳐진다.

 
6.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으니까
작성일 : 19-09-14 12:09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7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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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는 동안 짐을 뒤지다니, 비겁한 놈들.”

 내 방으로 돌아가면서 케인이 툴툴거렸다. 케인은 피가 흐르는 목을 손수건으로 누르고 있었다.

 “생긴 것과 달리 음흉한 놈이야. 이 곳에 온 왕자, 왕녀들이 벌써 몇이나 목숨을 잃었어.”

 “용케 네 성격에 잘 버티고 있었네? 나도 아까 성질 나서 확 뒤엎을 뻔 했다니까.”

 루시아가 말했다. 그녀 역시 마법사다. 치유 마법 쪽이 전공이긴 하지만 건물 몇 개 정도는 무너뜨릴 수 있는 공격 마법도 쓸 줄 아는 실력자였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케인이 정색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오는 길에 ‘그 녀석’을 봤어. 어떻게 된 거야?”

 “그 녀석이라니?”

 루시아가 묻자 케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왜 있잖아. 이 녀석의 첫사랑.”

 “아… 이안?”

 “야!”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케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윽.. 미쳤어? 여기서 넌 공주라고..” 케인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숙였다. 우리 뒤를 따르던 시녀들이 깜짝 놀라 수군거렸다.

 “공주고 뭐고… 누가 누구의 첫사랑이라고! 한 번만 더 그 얘기 하면..”

 케인은 이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아직 사리분별을 못하던 꼬마였던 나는, 그 녀석의 외모와 상냥함에 반해 ‘난 커서 이안과 결혼할거야.’ 따위의 말을 지껄였던 적이 있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안 꽤나 잘생겼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 녀석이 마족이라는 걸 몰랐을 때의 얘기고.’

 그 뒤에 나는 그 녀석의 시꺼먼 입에 삼켜질 뻔 했다고! 뻔히 알면서 아직까지도 나를 놀려 먹다니… 이럴 때 보면 생사를 함께 한 전우고 뭐고 땅속 깊은 곳에 파묻어 버리고 싶어진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대체 왜 그 놈이 여기 있냐고.”

 케인이 얼굴에서 장난기를 거두고 말했다. 기분 탓인가? 왠지 케인의 눈이 슬퍼 보인다.

 “나도 몰라.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트리스탄의 아들이라면서 이 곳에 나타났어. 나도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나는 시녀들이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트리스탄…?”

 케인이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내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몇 달 전, 트리스탄 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어. 괴한이 침입해서 트리스탄 일가와 고용인들을 모두 몰살시켜 버렸지. 현 트리스탄 상단의 장인 이고스와 하나뿐인 그 아들만을 빼 놓고.”

 “뭐라고?”

 한달 넘게 이 곳에만 있었더니 바깥 소식은 하나도 듣지 못했었다.

 “그럼 그 녀석이 트리스탄을 협박해 신분을 위장해서 이 곳에 온 거로군.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런 일을 벌인 거지?”

 묻는다고 해도 말해줄 리 없겠지.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쯤은 손쉽게 없애버릴 수 있는 이안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뭔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도움되는 일일 리는 없겠지. 어쩌면 지금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케인과 루시아는 내 방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지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괴사건들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 얘기인즉슨, 대륙의 여러 곳에서 마물들이 시시각각 출몰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북쪽 결계는 틈이 없이 완전하고, 서쪽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데? 만약 마물이 결계를 넘어왔다면 틀림없이 우리가 먼저 알아챘을 거야.”

 마물들은 절대 아르카디아 바다를 건널 수 없다.

 그게 우리 발크 국이 존재하는 이유니까.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어쩌면 상당히 강한 마족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이안….”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신마전쟁 이후 남아있는 마족은 몇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가 없는 찌꺼기들만이 마물의 형태로 서쪽 땅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 만약 이안같이 강력한 힘을 가진 마족이 수십 명만 되었어도 이 세계는 진작 암흑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존재가 알려진 마족은 나나 케인과 같이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길러진 ‘무기’들이 반드시 없애버린다. 무슨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안이 이 곳에 온 이후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쳤어. 아무리 그 녀석이라고 해도 이 곳을 빠져나가 마물을 소환할 수는 없었을 텐데.”

 게다가 시공간을 열어 마물을 소환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대륙 저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 웬만한 마법사라면 그 파동을 느낄 수 있는데,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다.

 “아직 원인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수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야. 이 쪽에 오면서도 두 번이나 마물의 습격을 받았어. 대단치는 않은 놈들이었지만.”

 “…..”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이 곳에서만 틀어박혀 있어서는 안 되겠는데. 어차피 나는 자유롭게 이 황궁을 빠져 나갈 수는 없으니 최대한 이안을 여기 붙잡아 둘게. 너네는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밖에 나갈 일을 만들어 마물들에 대해 조사해 줘.”

 “좋아.”

 

 우리의 대화는 곧 내 짐을 제1별궁으로 옮기기 위해 들이닥친 베라 부인 때문에 끊겼다. 하녀들이 돌아다니며 커다란 상자에 내 짐을 쓸어 담는 광경을 보자 어린 시절, 마물의 습격을 받아 아수라장이 되었던 발크 궁이 떠올랐다.

 ‘설마 또 다시… 마물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건가?’

 

 이 생각에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지만 곧 고개를 저어 불안감을 멀리 떨쳐버렸다.

 

 ‘원인을 모르는 일 때문에 미리부터 불안해 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 당장 급한 것은 바로 이 곳, 황제의 손아귀에서 살아남는 것이니까.

 

 *

 

 카이엘은 제라드가 가지고 온 검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옅은 광택이 도는 검은 비단 띠로 검신부터 손잡이까지 둘둘 말려 있어 랄프 경이 그것을 푸는데 만도 한참 걸렸다.

 

 “이상한 검이군.”

 

 그 천을 다 풀어내자 늘씬한 검신이 검은 검집에 싸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귀족들이 가보로 두는 일반적인 보검과 달리, 검집에는 아무런 장식도, 보석도, 문양도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검집에서 검을 뽑으려고 해도, 꼼짝도 안 하는 것이었다. 이렇다 할 잠금 장치도 없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다. 무게도 검 치고는 가벼웠고...

 

 “정말 그냥 장식용 검인 듯 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가늘고 길기만 한 검을 가지고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한참을 낑낑거리던 제라드가 결국 검을 탁자에 내던지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황제는 아까부터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뿜어내는 살기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있던 그녀...

 다른 이들은 그녀가 형편없이 못 생겼고,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은 불운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의 외모는 꽤 아름다운 편이었다. 전통적인 제피리움의 미녀들처럼 육감적인 매력은 없지만 초롱초롱 빛나는 푸른 눈과 민첩하게 움직이는 날씬한 몸매가 어딘가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 꼬마의 말이 사실일까?”

 “예...?”

 “그 나라 사람들이 마물과 싸워왔다는 것 말이다.”

 “예? 아, 예... 황당하게 들리기는 하나..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추어보면...”

 

 제라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카이엘은 이번에는 랄프에게 물었다.

 

 “잠시 뿐이었지만 그 자와 대치해보니 느낌이 어떻던가?”

 “...기량이 훌륭했습니다. 저는 물론 폐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하하하.”

 

 카이엘이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껏 살면서 어려운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제피리움에서 제일 가는 검사라는 랄프도, 카이엘과 검을 겨뤄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저주받은 놈.

 

 유누스 2세는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카이엘을 증오했다. 그를 똑 닮은 아름다운 외모도, 그의 뛰어난 지력과 검술도. 다른 이들은 커다란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하늘이 내린 황자라 칭송했지만 미친 황제에게는 그조차 저주의 증거일 뿐이었다.

 

 ‘저주받았다고 손가락질 받는 건.. 어렸을 때의 나와 똑 같군.’

 

 카이엘의 상념은 랄프의 말에 끊어졌다.

 

 “어쨌거나 리안나 왕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 제국이 당면한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 삼아 마물들이 출몰한다는 곳에 데려가 볼까요?”

 “이미 ‘마물’이라고 결론 내린 건가?”

 

 카이엘이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라고 해도 달리 부를 만한 명칭이 없지 않습니까?”

 

 제라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카이엘은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서 리어 제피로스에 가자. 발크 국에서 온 그 기사도 데려간다.”

 “폐하께서도 가십니까?”

 “그 마물이라는 게 뭔지 직접 봐야겠어.”

 

 제라드는 한숨을 쉬었다.

 

 “후계자도 안 정한 마당에 자꾸 위험한 곳에 행차하시고... 이러실 거면 빨리 여인이라도 들이시던가...”

 “후계자라면 이미 장성한 알레인이 있지 않나. 그리고 조만간 여자도 고를 수 있을 것 같군.”

 “네? 누구요?”

 

 그렇게 아리따운 이본느 공녀도 하룻밤새 치워 버렸을뿐더러, 가벼운 유희로라도 침실에 여자를 들인 적 없는 카이엘이었다. 그런데 아내감을 골랐다니. 어느새 마음에 둔 여자가 생긴 걸까…?

 

 만약 있다면… 카이엘은 지금 첫사랑에 빠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저 남자가…?’

 

 제라드는 설마, 하면서 카이엘의 옆얼굴을 슬쩍 쳐다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웃고 있었다.

 

 “...있어. 좀 더 두고 보고.”

 

 

 

 

 *

 

 “정말 저는 아니라니까요!”

 

 이안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케인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멱살을 잡아 턱 끝까지 올렸다. 그의 고운 얼굴이 엉망이 됐다.

 

 “네가 아니라면 누가 이 대륙 안쪽까지 마물들을 끌어들인단 말야?”

 “저도 몰라요... 안 그래도 그 일을 조사 중이었다구요. 그리고 저 마물들 안 좋아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못생기고 지능도 떨어지는 것들은 질색이에요! 잘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이안이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흥, 그런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고 순순히 믿어줄 거 같냐?

 

 “네 취향 따위에 관심 없어. 어차피 넌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놈이잖아. 그나저나, 조사를 했다고? 뭘 알아냈지...?”

 “에헤이, 아실 만한 분들이 맨입으로...”

 “지금 이 상태에서 갈비뼈를 분질러 줄까? 너, ‘인간화’한 상태지? 갈비뼈를 부수면 그 고통도 오롯이 느낄 수 있을텐데.”

 “.....”

 

 케인이 무시무시한 소리로 말했다. 케인의 말이 맞다. 원래 형체가 없는 마족은 편의상 인간이나 짐승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보통 그건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만든 일종의 ‘착시술’에 가까워서 그런 놈들 몸을 베어보면 속은 텅 비어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정교하게 위장을 할 때에는 진짜 ‘인간화’를 한다. 다치면 피도 흘리고, 음식도 먹고, 고통도 느끼는... 물론 이건 이안과 같이 오래 묵은 마족만이 가질 수 있는 고급 능력이다.

 

 “어쩔 수 없군요... 말할 테니 일단 이것부터 놓으세요.”

 

 이안은 케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고서도 ‘정말 야만적이야’ 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며 훌쩍거리다가 결국 나에게 머리통을 쥐어 박히고 나서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누군가가 <홀>을 만들어놓은 것 같아요.”

 “홀...?”

 “예. 그러니까 이쪽과 저쪽을 잇는.. 이를테면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이계의 지름길인 거죠.”

 “너희 마족들은 공간을 오갈 수 있다고 했지. 그걸 응용한 건가?”

 

 내 말에 이안은 손가락을 딱 튀겼다.

 

 “역시 리안나 님은 이해가 빠르시군요. 네에, 그런 것 같아요. 아마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땅... 마계에서 이쪽으로 넘어 온 다음, 그 틈을 살짝 열어놓는 거죠.”

 “너도 그런 게 가능해...?”

 

 이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가능은 할 걸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에요. 공간을 인위적으로 열거나 그 사이를 이동하는 것만도 엄청난 마력을 써야 하고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상당한데 그걸 계속 열어두다니요...? 마왕님으로부터 직접, 그리고 지속적으로 힘을 제공받을 수 있으면 또 몰라...”

 “마왕?!”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족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마왕이라니.

 

 오래 전 이 세계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파괴의 마왕 베아녹스와 허무의 마왕 벨라는 각각 서쪽과 북쪽 대륙에 그 육신을 잘게 나누어 파묻혔다. 그런 마왕이 다시 나타나 마족들에게 힘을 준다니... 상상도 못할 끔찍한 일이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죠... 아무튼 공간의 틈새가 열리더라도 스스로 닫히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런 <홀>은 기껏해야 3일정도면 알아서 닫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홀이 요즘 더 자주, 여러 곳에서 생긴다는 거죠.”

 

 “지금 이 세상에 너 말고 그런 짓을 할 만한 마족이 또 있어?”

 

 내 말에 이안이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투였다.

 

 물론 나도 마족들이 몇 안 남은 동족들이라고 해서 얼굴이나 보며 티파티를 할 만한 종족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글쎄요, 저도 지금 남아있는 마족 중에서는 젊은 편이니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이야 있죠. 뭐, 키아나 님이라던가 카를로스 님이라던가...”

 

 “누가 온다.”

 

 망을 보던 루시아가 우리 쪽으로 눈짓을 했다.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앞에 있던 찻잔을 집어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는 화창한 날 아름다운 정원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선남선녀들일 것이다.

 

 우리 쪽으로 다가온 것은 알레인이었다. 알레인은 우리를 보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발크 국은 알면 알수록 신기하군요. 호위기사도 함께 앉아 차를 마시다니...”

 

 우리는 ‘아차’ 싶었지만 태연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계신데 불필요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요.”

 “...그렇지요.”

 

 알레인 황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안이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황자님도 앉으시지요? 이렇게 앉아 차를 마시니 황궁의 아름다움이 배가 됩니다.”

 “그러면...”

 

 알레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가 앉은 돗자리 한 구석에 앉았다.

 

 “그나저나 두 분은 참으로 사이가 좋으시군요...? 듣자 하니 리안나 왕녀의 첫사랑 상대가 이안 왕자라고...”

 “푸훗-“

 

 나는 예의고 교양이고 다 잊고 마시던 차를 뿜어냈다. 케인이 사색이 되어 내 눈치를 살폈다. 으으, 사방에 눈과 귀가 열린 황궁이다. 누군가 며칠 전 케인이 나에게 한 말을 듣고 널리 퍼뜨린 게 분명했다.

 

 “켁, 콜록콜록...”

 “리, 리안나 왕녀. 괜찮습니까..?”

 

 알레인이 놀라 손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한참 동안이나 기침을 한 다음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누...누가 그런 천인공노할 말을 퍼뜨리고 다니던가요?”

 “...천인공노할 일입니까?”

 

 이안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알레인 황자에게 단호히 말했다.

 

 “황자님, 잘 들으세요. 저는 여기 있는 이안 왕자에게 일말의, 손톱만큼도, 아니 먼지 한톨만큼의 애정도 없답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요. 절~~~~대!”

 “네, 네....”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이런 말을...? 이라는 표정으로 알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차만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리안나 왕녀.”

 

 알레인이 목소리를 골랐다. 아, 이제야 본론을 말하려나 보다.

 

 “요즘 수도 근처에 작은 소란이 있어서, 시민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민생 안정을 위해 형님께서 친히 평정에 나서실 예정인데, 그 때 케인 경을 대동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나와 케인의 눈이 마주쳤다. 예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황궁을 나가 제국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

 

 어차피 이런 물음도 예의상 하는 것이지,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다. 우리가 어디 거절할 입장이던가?

 

 나는 최대한 상냥해 보이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아무쪼록 케인 경이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내 대답에 알레인 황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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