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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제의 마음을 훔친 소녀
작가 : 맛있는코코아
작품등록일 : 2019.9.12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소국에서 인질로 잡혀온 공주 리안나. 리안나의 지상 최대 목표는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 버리는 잔혹한 황제의 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나아가 궁을 탈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온갖 멸시와 모욕을 건뎌내며 무사히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리안나에게 청천벽력같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크 국의 왕녀를 황비로 맞겠다.”는. “대체 왜...?”
벗어나려 할수록 황제 카이엘은 리안나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한편, 리안나를 유혹하려 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온했던 제국은 마물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진다.
“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황비이길 거부하는 공주 리안나와 폭군 황제의 아찔한 황궁 로맨스가 지금 펼쳐진다.

 
13. 사교계의 별이 되다.
작성일 : 19-10-06 16:06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8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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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난 요즘 굉장히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대체 왜 이러지...? 뭐가 문제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 문제는 내 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그건 바로....

 

 시도때도 없이 황제가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가?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날 지그시 내려다보던 황제의 얼굴이 뿅, 하고 떠오르는 것이다.

 

 “리안나, 듣고 있어?”

 “어? 어어.”

 

 거 봐, 지금도.

 

 루시아랑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희여멀건한 찻잔에 황제의 눈부신 얼굴이 또...

 

 “으아악!”

 “왜 그래? 마리네 집 얘기가 그렇게 충격적이야?”

 “응?”

 “하긴... 오빠가 북쪽 국경으로 끌려가고 어머니는 몸져 누웠으니 딱하긴 하지.”

 

 루시아는 이 말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마리는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며 며칠 휴가를 냈는데, 루시아도 주인인 내 이름으로 위로인사를 전해주기 위해 함께 갔다가 먼저 돌아왔다.

 

 “오빠가 북쪽으로 끌려가?”

 “...그렇다니까? 점령당한 아틸리안 영지 사람들이 극렬하게 항거하고 있나 봐. 지방군만으로 감당이 안 되니까 수도에 있던 중앙군을 보냈다고.”

 

 여태 뭐 들은거냐, 며 루시아가 툴툴거렸다.

 

 마리의 오빠는 고작 1년 전, 수도방위군에 입대했다고 들었다. 수도방위군이면 실제 전투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군대인데, 치열한 전투현장에 그들을 보내다니?

 

 “그러니까. 어머니가 쓰러질 만 하지... 그랑벨 부인만 해도 두 아들 모두 전장에 나가 있으니... 요즘 제피리움에서 아들이 있는 집안은 모두 유학을 보내느니, 이민을 보내느니 하고 난리라니까.”

 

 “......”

 

 그래. 내가 혼자 제피리움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도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했지. 이대로 계속 전선을 확대하다가는 아무리 강한 제국이라도 안에서부터 곪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모! 리안나 이모!”

 “리오넬이다.”

 

 복도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 나는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두 뺨이 발갛게 상기된 리오넬이 종이 하나를 흔들며 들어왔다.

 

 “이모! 우리 군사들이 온대! 내가 맞으러 갈 거야!”

 

 나와 루시아는 잠시 마주보고는 리오넬에게서 종이를 받아 들었다. 카렌의 인장이 찍힌 친서였다.

 

 “이오니아 원군이 에셀 항구에 도착했대.”

 “사령관은 누구야?”

 “...1 사령관이 에리히 벤하트, 2 사령관이 아델 레이몬드.”

 “제대로 보냈네.”

 

 루시아가 훗, 하고 웃었다.

 

 대륙 안쪽에 마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전한 보람이 있었다. 카렌은 최고의 사령관과 최고의 마법사를 함께 보냈다.

 

 “그런데 왕자님이 직접 맞이하러 가신다구요?”

 “당연하지! 우리나라 군사들이 오는데. 위르겐이라는 곳에서 내가 격려사를 하고 온대.”

 

 리오넬은 생각만 해도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쫙 폈다.

 

 “어디서 마물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케인을 같이 보내자. 아델과 합류만 하면 안전할 테니, 그 전까지 확실히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나는 이오니아의 파병문과 황제의 출궁명령서를 한번 번갈아 보고는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한껏 들뜬 리오넬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

 

 

 에셀 항구.

 

 오랜 항해 끝에 땅을 밟은 이오니아 군사들은 임시 막사에 겨우 짐을 풀고 쉬고 있었다.

 

 섬나라에서 군생활을 해 바다에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이렇게 장시간 항해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1년 전까지 전쟁 한가운데 있었던 지역치고는 분위기가 활발하군요.”

 

 “항구 도시가 다 그렇지.”

 

 에리히와 아델은 첨탑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피리움의 수도를 흐르는 아름다운 아네르 강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이타 국과 로젠 왕국의 경계에 있는 아르펜 강과 합류해 바다로 이어진다.

 

 내륙에 위치한 제피리움은 대바다로 직접 나갈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맨 먼저 이 지역을 공략했고, 이타 국과 로젠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아르펜 강 유역과 이 에셀 항구를 손에 넣었다.

 

 세 나라의 접전이 펼쳐진 곳이었지만 아델 말대로 세계의 온갖 사람과 문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보니 전쟁의 상흔도 빠르게 지워진 듯 했다.

 

 “우리 군대가 어디에 주둔하게 된다고?”

 “수도의 남쪽, 위르겐 지역입니다. 그 곳에 도착하면 황제 친위대의 지휘를 받게 되고요.”

 

 에리히의 대답에 아델은 침묵을 지켰다.

 

 첨탑 아래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오니아가 자랑하는 군사인 그들도 중앙대륙 땅을 밟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마물의 습격을 받는다니...”

 

 아델의 탄식에 에리히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오니아와 발크, 로키아 섬을 집어삼켰던 <피의 전쟁>은 불과 3년 전에야 끝났다.

 

 아직 그 때 죽은 사람들의 피가 마르지 않았는데.. 중앙 대륙의 전쟁이 서쪽까지 번져왔고, 급기야는

 강화조건으로 파병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카렌 여왕이 파병준비를 막 마친 시점에, 발크 왕국을 통해 리안나 공주의 급보를 받고는 급하게 2사령관으로 마법사 아델을 임명했다.

 

 그 급보에는 대륙 안에서 마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놈들은 아니라고 했으니, 우리 군사들이 잘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놈들이냐보다는.. 어떻게 마물이 중앙대륙까지 올 수 있었느냐가 문제지.”

 “혹시 서쪽 경계의 마물들이 갑자기 강해진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아마도.”

 

 아델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상현상의 발생이나, 마물들의 힘이 세지고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모든 일들은.... ....의 전조였다.

 

 ‘아냐,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추측으로 미리부터 불안감을 심어줄 필요는 없어... 지금 제국에는 리안나 공주도 머물고 있으니... 공주를 만나서 상의하자.’

 

 생각을 정리한 아델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한 예감을 애써 떨치며, 천천히 첨탑을 내려왔다.

 

 

 

 

 

 ***

 

 

 “발크 왕국의 리안나 왕녀님 오셨습니다.”

 

 귀부인이 기품있는 말투로 나를 소개했지만, 방 안에 있던 누구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풉.”

 

 언제나처럼 조롱만 들릴 뿐.

 

 “요즘 그랑벨 부인에게 열심히 수업받으시더니, 아예 옷차림도 예법 교사처럼 하고 왔네요?”

 

 “프리아나 님이 주최한 사교모임에 저러고 오다니.. 제정신인가?”

 

 가운데 테이블에 있던 여자들이 입을 가리고 말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다른 곳에서도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턱을 아주 살짝 올리고, 등은 꼿꼿이 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 태도에 놀라서일까? 방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뜬금없이 내게 초대장을 보낸 프리아나 공녀는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랑벨 부인이 난리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곳에 절대 안 왔을 텐데...’

 

 나는 주위를 한번 스윽 둘러보고는, 창가 쪽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소파에 앉아 나른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던 귀족 남녀 서너 명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앉아도 되죠?”

 

 내가 싱긋 웃자 건너편에 앉은 남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기에 앉은 이유는 두 개였다. 딱 보아하니 이 무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다른 이를 깎아내리는 저 중앙 테이블 무리와 친하지 않은 듯 했고, 앞으로도 친해질 마음이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루시아 말대로 언젠가 이 황궁을 탈출하려면 이런저런 정보도 알아둬야 하니까...’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황궁 비밀통로라도 찾아내라며 날 떠민 루시아를 생각하며, 나는 예법 수업에서 배운 대로 방긋방긋 웃었다.

 

 “...캐런 가문의 다니엘입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옷깃을 만지며 인사했다. 상대가 누구라든 일단 예의를 차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기사였다.

 

 “반가워요. 리안나에요.”

 

 “... 오닐 마르틴입니다. 여기 있는 다니엘은 기사지만, 저는 아직 아무 작위가 없으니 편~하게 대하셔도 됩니다.”

 

 “반가워요.”

 

 다니엘과 달리, 오닐은 얼굴에 날 얕보는 기색이 아주 뚜렷했다. 아래 위로 훑어보는 거 하며, 입을 삐죽거리고 웃는 거 하며...

 

 “리벤시아 가문의 에밀리에요.”

 

 창을 등지고 앉아 있던 아가씨도 웃으며 인사했다. 아직 어리지만 말투며 행동거지가 우아하고 단정했다.

 

 ‘제피리움의 귀족들인가 보군.’

 

 출신국을 소개하지도 않고, 나를 경계하지도 않은 여유로운 태도, 굳이 이 곳에 모인 이들과 가까이 하려 애쓰지 않는 것을 보니...

 

 이들은 모두 제피리움에서 내로라 하는 대가문의 자제들이 분명했다.

 

 ‘얻어 걸렸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떤 화제를 꺼낼까 바쁘게 셈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마르틴이란 성...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이전 번에 장미궁 연회에서 황제 폐하와 춤추신 분 맞죠? 분명히 머리색이 검은 분이라고 들었어요.”

 

 “음? 아, 네...”

 

 마르틴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만 먼저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에밀리 양이 생각지도 못하게 연회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정말? 폐하께서 당신이랑...?”

 

 오닐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또 아래위로 훑어봤다. 그의 시선이 내 몸 어딘가에- 얼굴보단 아래고 배보다는 위쪽에 있는-딱 멈췄을 때, 내가 ‘마르틴’이라는 성을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났다.

 

 “지금 어딜...”

 

 “춤을 정말 잘 추시더군요.”

 

 “엥?”

 

 “진짜?”

 

 다니엘 경의 칭찬에 오닐에게 화를 내는 대신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나보다 더 놀라는 거니?

 

 “응. 정말 잘 추셨어. 그 날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놀랐지.”

 

 “헤에...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오닐! 그러면 실례잖아!”

 

 다니엘 경... 기사라더니 아마 그날 연회에 참석한 모양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왔기에 나는 그를 본 기억이 없지만.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하는데 다니엘을 바라보는 에밀리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얼굴이 좀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에밀리.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무슨. 아니야!”

 

 “?”

 

 “혹시 몰라 미리 알려주는 건데 여기 에밀리 양과 다니엘 경은 어렸을 때부터 정혼한 사이야. 내 친구 다니엘이 멋있기는 하지만, 눈독 들이지 말아요.”

 

 오닐은 그러면서 내게 눈을 찡긋했다. 느끼해서 마시던 방금 마셨던 차를 뿜을 뻔... 했는데 에밀리의 외침에 다시 쏙 들어갔다.

 

 “바보야! 누가 그걸 말하래?”

 

 쿠션을 집어던졌... 이거 실화인가?

 

 이크, 소리를 내며 오닐이 잽싸게 소파에서 일어나고, 갈 곳 잃은 쿠션은 소파에서 한 번 튕기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지. 사교모임은 원래 이런건가...’

 

 이럴 거면 그랑벨 부인에게 굳이 예법수업을 받을 필요도 없지 않나...?

 

 “흠, 흠... 좀 정신이 없지만 왕녀님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는 워낙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라...”

 

 다니엘이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얼굴이 빨개진 채 양해를 구했다. 쑥스러워 하는 귀족 기사라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나는 웃으며 신경쓰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저도 제 호위기사인 케인과 어릴때부터 워낙 격의없이 지내거든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케인 경은 왜 안 왔어요? 늘 같이 다니시는 줄 알았는데.”

 

 “왁.”

 

 갑자기 누가 내 옆으로 머리를 확 들이미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머리를 요란하게 틀어올린 귀부인이었다.

 

 ‘앗. 그때 케인이랑 세 번이나 춤 췄던 여자...’

 

 케인이 기겁을 하고 도망다니던 게 눈에 선한데.

 

 “아쉬워라. 오늘 오시면 꼭 음악회 초청장을 드리려고 했는데.”

 

 “아... 케인 경은 잠시 궁을 비웠어요. 이오니아의 왕자를 호위하기 위해 위르겐에 다녀오기로 했거든요.”

 

 “어머, 정말요? 요즘 거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던데... 무슨 괴물이 나온다면서요?”

 

 풍만한 몸매의 귀부인이 과장된 몸짓으로 걱정된다는 표현을 해 보이자, 옆의 여자들도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정말... 요즘 황궁에 시체가 돌아다닌다는 얘기도 있고.. 사방에 온통 끔찍한 얘기 뿐이에요.”

 

 “맞아요.. 진짜 세상이 어찌 될런지..”

 

 “네? 밤에 시체가 돌아다녀요?”

 

 내가 되물었지만 제멋대로 우리 대화에 끼여든 귀부인 한무리는 저들끼리 말하느라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기요, 방금 하셨던 말 좀 자세히...”

 

 “그럼 리안나 왕녀님, 이안 왕자님과는 무슨 사이인가요?”

 

 “네...?”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지.

 

 “듣자 하니 두 분 사이가 그렇게 좋다면서요? 막 밤마다 만나고 그런다던데...”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이안 왕자님이 리안나 왕녀님의 첫사랑이랬어. 어때요, 그럼 옛날에 두 분이 사귀셨던 거에요? 고향에서?”

 

 “아니, 무슨...”

 

 빠직. 하고 내 인내심이 바닥나는 소리가 들린다. 사교 모임은 무슨 개뿔. 그냥 모여서 가십거리 떠드는 자리구만!

 

 그리고 왜 다들 내 얘기를 하는 거지? 아니, 정확히는 ‘내 주변 남자들’ 얘기...

 

 다른 건 몰라도 이안과 엮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나- 미안해요, 리안나 왕녀님. 오신지도 모르고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웠네요.”

 

 이 타이밍에 절묘하게 나타나 내 손을 잡는 프리아나 공녀...이 모임의 주최자이자 나를 초대한 장본인. 덕분에 나는 더욱 확실하게 주목받았다.

 

 “편하게 리안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런데 다들 모여서 무슨 얘기 중이었어요?”

 

 프리아나는 갈색 눈을 반짝이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리안나 왕녀님이 이안 왕자님과 교제 중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

 

 “어머, 정말? 안 그래도 나도 그런 말을 좀 들었는데... 그런데 호위기사 분과도 꽤 다정하게 지내시지 않았나요?”

 

 “잠깐, 얼마 전에 폐하께 춤 신청 받았잖아요?”

 

 “춤 신청이야 뭐... 그것보다 정궁으로 직접 리안나 왕녀를 부르셨다잖아.”

 

 “......”

 

 완패. 도저히 방어 불가다.

 얼굴도, 이름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날 에워싸고 끊임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황궁과 사교계에는 온갖 소문이 돌아다닌다지만...

 

 ‘이렇게까지 내 일거수일투족이 다 퍼졌을 줄이야!’

 

 심지어 어떤 이들은 최근에 황제와 독대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끈질기게 물어봐 날 곤란하게 했다.

 

 곤란해 하는 날 보며 슬며시 미소 짓고 있는 프리아나...

 

 “어머나, 리안나 왕녀님. 아직 어린 소녀로만 봤는데... 스캔들을 꽤나 몰고 다니는 분이군요?”

 

 ‘이러려고 불렀구만...’

 

 어쩐지, 아쉬울 거 없는 저 여자가 왜 날 불렀나 했다.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의 주인공을 불러서, 구경거리로 삼을 셈이었나?

 

 “그만들 하시지요. 왕녀님께서 곤란해 하지 않으십니까?”

 

 정신없는 소란을 잠재운 것은 다니엘이었다. 그가 내 옆으로 와 나를 보호하듯이 감싸자 나를 에워쌌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어머, 저희가 너무 무례했나요..? 곤란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요즘 제일 핫한 소문의 주인공을 봐서 저희가 너무 들떴나 봐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나는 다니엘의 옆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제대로 한 가닥 하는 가문의 자제인가 보다. 사람들이 이리 눈치를 보는 걸 보면...

 

 그건 그렇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말하고 가지 않으면 소문이 사실이 된다!’

 

 나는 프리아나를 노려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아니에요.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것 같으니 차례차례 답변해 드릴게요.”

 

 나는 모두를 향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케인과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며, 이안은 어릴 때 궁에 자주 놀러온 인연이 있어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내 차분한 설명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기사를 ‘친구’라고 표현하다니.. 왕녀님, 대단하시네요.”

 

 “?”

 

 친구를 친구라고 하는게 뭐가 대단한가 싶어서 다시 봤지만 에밀리는 정말로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이안 님과도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는 거죠..?”

 

 “친..구.... 뭐, 그런 셈이죠..”

 

 정확한 표현은 원수지만.

 

 “아, 난 또... 이안 님이랑 정말 사귀시는 줄 알고... 리안나 님을 미워할 뻔 했잖아요.”

 

 “네?”

 

 가슴에 손까지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또 한 명의 여자. 이 사람은... 이안을 정말 좋아하나 보다.

 

 당신, 얼굴만 믿고 남자 쉽게 좋아하는 거 아냐! 인생 그러나 쫑난다고!

 

 속에 있는 말을 참느라 입이 간질간질한 와중에 날 뾰루퉁히 노려보던 프리아나가 한 마디 내뱉었다.

 

 “그래요. 소문은 뭐든지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아마 황제 폐하께서 리안나 왕녀에게 푹 빠지셨단 소문도 과장된 거겠죠?”

 

 “당연히 폐하와는...”

 

 ‘폐하와는 로맨스라니, 말도 안 되죠.’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아, 안돼! 지금 생각나지 마! 안돼...!”

 

 또 떠올라 버렸다!

 

 집무실에서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지그시 내려다 보던 그의 모습이!

 

 조각상과 같이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던 그가 아름다운 황금안에 걱정을 가득 담아 날 내려다보고, 내 뺨에 손을 올리던 그 때 그 순간이..

 

 “폐하와는...?”

 

 프리아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재차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재빨리 대답하지 못했다. 또 여기저기서 설레발치는 소리에 정신을 뺏겼기 때문이다.

 

 “어머! 리안나 님 얼굴이 빨개지셨어!”

 

 “세상에, 두 분 정말 뭐가 있나 봐.”

 

 “아니, 그게 아니라...”

 

 “리안나 님, 대답해 주세요. 정말 황제 폐하와 집무실에 단 둘이 계셨었나요?”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 대답해 주세요!”

 

 “아니, 저기, 잠깐...”

 

 

 눈을 반짝이며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그럴수록 얼굴이 빨개진 채 더욱 버벅거리는 나.

 

 호기심에 눈이 먼 사람들과,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는 프리아나를 보며...

 

 나는 나의 첫 사교 모임이 제대로 망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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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유혹의 기술 2019 / 10 / 3 275 0 8488   
11 11. 사랑보다는 질투가 먼저 온다 2019 / 9 / 29 271 0 7005   
10 10. 그날 밤, 무슨 일이...? 2019 / 9 / 29 277 0 5107   
9 9. 춤 추실래요? 2019 / 9 / 26 270 0 7699   
8 8. 탐색전 2019 / 9 / 22 288 0 6239   
7 7.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 2019 / 9 / 15 287 0 7760   
6 6.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으니까 2019 / 9 / 14 257 0 7573   
5 5. 황제의 시험 2019 / 9 / 14 275 0 9019   
4 4. 까마귀 무리에서는 백로가 숨을 곳이 없으… 2019 / 9 / 13 254 0 6254   
3 3. 황제의 경고 2019 / 9 / 12 272 0 7766   
2 2. 황궁에 찾아온 악마 2019 / 9 / 12 300 0 6252   
1 1. 슬기로운 인질생활 2019 / 9 / 12 481 0 5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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