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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제의 마음을 훔친 소녀
작가 : 맛있는코코아
작품등록일 : 2019.9.12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소국에서 인질로 잡혀온 공주 리안나. 리안나의 지상 최대 목표는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 버리는 잔혹한 황제의 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나아가 궁을 탈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온갖 멸시와 모욕을 건뎌내며 무사히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리안나에게 청천벽력같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크 국의 왕녀를 황비로 맞겠다.”는. “대체 왜...?”
벗어나려 할수록 황제 카이엘은 리안나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한편, 리안나를 유혹하려 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온했던 제국은 마물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진다.
“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황비이길 거부하는 공주 리안나와 폭군 황제의 아찔한 황궁 로맨스가 지금 펼쳐진다.

 
1. 슬기로운 인질생활
작성일 : 19-09-12 11:58     조회 : 573     추천 : 0     분량 : 5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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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슬기로운 인질생활>

 

 

 커튼이 사각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뜨지 않아도 환한 햇빛이 방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중간에 깨지 않고 단잠을 잤다. 아직 무거운 눈꺼풀을 들자 하녀인 마리가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주님, 이제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나도 그녀에게 막 아침인사를 건내려는데, 방문 쪽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님이라뇨? 여기서는 왕녀님입니다.”

 “.....”

 

 마리가 사색이 되어 내 표정을 살폈다.

 

 “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내 나라에서도 공주로 불린 적 없으니.”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내친김에 팔을 쭉 뻗고 기지개도 켰다.

 아- 기분좋아. 이게 얼마만의 단잠이람?

 

 나는 고개를 돌려 방문 앞에 뻣뻣하게 서 있는 별궁의 시녀장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베라.”

 “...좋은 아침입니다, 리안나 왕녀님.”

 

 베라는 그대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마리가 세숫물을 화장대에 올려놓고는, 내 슈미즈 소매를 팔뚝까지 접어 올려 주었다.

 

 ‘...지루해.’

 

 여기서는 모든 것이 너무 느리게 흘러간다. 왜 이런 것 하나하나를 직접 하게 두지 않는 거지? 공주, 아니 왕녀들의 팔뚝이 굵어지면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나?

 

 내가 세수를 끝내기를 기다려, 베라 부인은 가져온 가운을 보여주었다.

 

 “이걸 입으시지요. 오늘은 왕녀님이 아나키아 공국 왕자님을 마중 나가셔야 하는 날이라 제가 준비했습니다.”

 “아.”

 

 그래서 저 꼬장꼬장한 부인네가 아침부터 찾아왔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아나키아도 불려 들어왔군. 이것으로 마지막인가요?”

 “...왕녀님.”

 

 베라 부인의 목소리가 엄격해졌다. 여차하면 시녀들을 시켜 매질이라도 할 기세다.

 그러면 어쩌지? 일단 맞아야 하나.

 

 “호호. 반가워서 하는 소리에요. 아나키아는 우리 발크 국과 연접해 있는 나라라, 어렸을 때부터 교류가 잦았거든요.”

 “.....”

 “가만. 그런데 아나키아는 공국이라 왕자가 없을 텐데? 그럼 거상 중 가장 유력한 가문의 아들을 보낸 건가?”

 “왕녀님!”

 

 내 방에 베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차가운 돌벽마저 그녀의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보였다.

 베라는 내 앞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서는, 위협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의 수다는 참아드릴 수 없습니다. 계속 그렇게 가볍게 말씀하시면, 저는 우리 제피리움과 왕녀님의 나라의 강화를 가볍게 여기시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안해요.”

 

 나는 눈 끝을 아래로 늘이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베라 부인은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은 듯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마리가 내 옷을 다 갈아 입혀주고 나서야 얼굴에 힘을 좀 풀었다.

 

 “말씀하신 대로 아나키아와 왕녀님의 나라가 가까운 것을 알고 황제 폐하께서 트리스탄 왕자님의 마중상대로 왕녀님을 보내라 명하셨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쭉 함께 지내시게 될 테니 왕녀님께서 이것저것 알려주시면 좋을 테지요.”

 

 ‘먼저 인질로 잡혀온 선배로서 신입을 잘 교육시키란 말이군. 앞으로 우리는 여기서 평생 갇혀 살 신세인거 잊지 말고 말이야?’

 

 그녀의 유치한 화법에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리는 내게 조심하라고 눈짓을 주면서 가운의 주름을 다듬는 척 내 몸을 슬쩍 돌려주었다.

 내 표정을 보지 못한 베라는 기분이 좋아진 듯 한참을 더 떠들다가 드디어 방을 나섰다.

 

 “이 곳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왕녀님이 무슨 역할을 해주셔야 하는지 아시지요? 아무쪼록 황제 폐하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아, 참. 이런 말은 좀 외람되지만... 디온 전하께 연락을 넣어 새 가운을 좀 지어달라고 하시지요? 어제 왕녀님이 입으실 가운을 고르러 들어왔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제가 급히 준비했답니다. 그래도 일국의 왕녀님인데 차림이 그래서야... 어머나, 방금은 제가 말이 너무 과했습니다, 왕녀님. 그럼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세요. 랄프 경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녀의 갈색 옷자락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내 방문이 탁, 하고 닫혔다.

 

 “......뭐지?”

 “...완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네요.”

 

 그녀가 사라지자 마리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아니, 왕녀님. 베라 님의 말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찌나 못됐는지 지난주에는 셀저 왕국에서 오신 어린 공주님 따귀를 때렸다고...”

 “쉿, 마리. 밖에서 다른 하녀가 듣고 있을지 몰라.”

 “합.”

 

 두 손으로 입을 가린 마리에게 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여운 마리. 나는 저딴 뚱보 아주머니 말에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구.

 마리는 어느 날 혈혈단신으로 이 황궁에 인질로 오게 된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하녀이다. 그녀는 고국에서 공주로 곱게 자랐을 내가 이 곳에 와서 차가운 돌방에 갇혀 지내며 매일같이 베라 부인에게 이런저런 수모를 당하는 것이 안쓰러워 항상 나를 위로해 주고는 한다. 하지만 내게는 이 모든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난 공주라기 보다는 마법사니까.’

 내가 스스로를 공주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가짜 공주라는 것은 아니고.

 나는 여기서 멀리 떨어진 대륙의 서쪽, 아르카디아 해에 있는 섬나라 발크 왕국의 여왕과 국왕에 사이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왕(공동통치)이었으니까 공주는 맞지. 풀네임은 리안나 폰 라인바르크. 하지만 이 성은 거추장스러워서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자그마한 변두리 왕국의 공주인 내가, 왜 세상에서 가장 넓고 강대한 대제국 제피리움 황궁에 머무르고 있느냐, 하면… 여기에는 짐작하기 쉬운, 비참한 사연이 있다.

 

 제피리움의 현 황제, 카이엘은 친형제들도 직접 죽일 정도의 잔학한 성미와 지독한 야망을 가진 냉혈한이다. 하늘이 무심하게도 신은 그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지력, 그것도 모자라 놀라운 검술실력까지 내려 주었다.

 그는 불과 16세의 나이에 병석에 누운 선황을 대신하여 섭정을 시작해, 귀족들의 이권 다툼으로 약해져가던 제피리움을 지금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먼저 그는 제국의 부를 쌓는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영토를 확장시켰고, 이 과정에서 불온한 세력들은 어린 황제와 그를 비호하는 파벌에 의해 차례차례 숙청되었다.

 그리하여 15년이 흐른 지금,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전제황권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의 탐욕은 멈추지 않아, 최근 그는 저 멀리 대륙의 서쪽 끝 아르카디아 해 연안의 소국까지 눈독을 들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중앙 대륙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내 고향인 발크와 옆나라 이오니아는 비록 영토는 작아도 오랜 세월 인간계와 마계의 경계인 아르카디아 해를 사수해 올 만큼 강한 힘을 지녔다. 사실 우리 덕분에 중앙 대륙 사람들이 마족이나 마물로부터 몇 천년 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서쪽 사람들은 10년 전, 마족과의 <피의 전쟁>을 치르면서 그 힘이 크게 약해진 상태져서 대제국 제피리움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니, 만약 싸운다 해도 이길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힘으로 다른 인간 사회를 공격하는 것은 자체규율상 금기였다.

 

 결국 내 오빠를 비롯, 서쪽나라의 왕들은 평화를 위해 각국의 왕족 1명을 인질로 보내라는 제피리움의 요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내가 이 무식하게 큰 황궁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나 외에 여러 나라에서 온 수십명의 왕자, 왕녀들과 함께.

 

 여긴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세계여서 대우도 각 나라의 국력에 따라 크게 달랐다. 예를 들면 제피리움도 무시하기 힘든 큰 나라들에서는 왕족이 아닌 귀족의 자녀가 와도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해도 인질의 안위를 걱정해 제피리움에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 나라 출신 인질도 그럭저럭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제피리움과 국교도 트지 않았던 변방 소국에서 온 나같은 공주는... 아까 같은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머무는 곳도 사실 황궁이라고 하기에 무안할 정도로 외진 별궁인데다가 매일 저 뚱보 아줌마의 등쌀에 들볶이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나는 홀로 제피리움을 여행하던 중 오빠로부터 ‘...이러저러 해서 네가 황궁으로 들어가서 인질 역할을 해주겠니?’라는 내용의 부탁을 받고 ‘그러지 뭐.’하는 생각에 딸린 시녀도, 호위기사도 없이 달랑 혼자 황궁으로 찾아온 터라, 여기서 고국에서조차 버려진 왕녀 취급을 받으며 위로는 황족들과 고위 귀족들에게, 아래로는 시종, 시녀들에게 골고루 무시를 당하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내 별명은...

 

 “어머, 저기 못난이 왕녀 지나가신다.”

 “오늘은 차림이 그럭저럭 봐줄 만 한데?”

 “그럼 뭐해? 몸매가 저렇게 형편없는 걸.”

 “역시 그렇지? 어떻게 한 나라의 공주가 저렇게 삐쩍 곯은 꼴일 수 있을까?”

 “공주는 무슨. 제 나라에서 공주 취급도 못 받고 왕궁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는데.”

 “어머, 그럼 쟤는 오히려 여기서 지내게 된 게 출세한 거네?”

 

 내가 황궁을 지나가는 동안 화려한 가운과 장신구로 치장을 한 소녀들은 끊임없이 나를 비웃으며 재잘거렸다.

 

 나는 그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그 옆을 당당히 지나쳤다. 내가 무시할수록 그들은 더 약이 올라 조롱의 수위를 더 높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저 한심한 아이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상처받은 연기를 해 줄 정도로 내가 치밀한 성격은 아니라서.

 

 그나저나 오늘에서야 왕자를 보낸다는 아나키아 공국은 작지만, 중개 무역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상인으로 이루어진, 상인에 의한, 상인을 위한, 철저한 상인의 나라이다.

 

 ‘그 아나키아에서 왕자를 보낸다고? 그것도 해적을 자기네 선단 비호에 이용할 정도로 대담한 트리스탄 가에서? 흥, 어디서 예쁘장한 고아 소년을 데려다 적당히 교육시켜 보냈겠지.’

 

 나는 랄프 경과 함께 황궁의 거대한 문을 지나 웅장한 외성의 돌벽이 시작되는 입구로 나아갔다.

 

 오늘 도착한 또 다른 불쌍한 소년은 나에게 이끌려 제피리움의 황제, 테오 3세를 알현하게 될 것이다. 운이 나쁘면 첫 만남에 황제의 심기를 거슬려 바로 형장으로 끌려갈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황제의 환심을 사 내가 지내는 곳보다 훨씬 좋은 거처를 하사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환영해. 목에 칼을 걸기 위해 바다 건너, 산 건너 온 공자님.’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차에서 내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왕자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크고 어깨가 벌어져 있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장성한 남자를...? 보통은 여기서 인생을 마감해도 고국에 타격이 없도록 왕위계승권이 없는 어린 서자 정도를 보내는데.

 의아해하며 다가가던 나는 별안간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아는 얼굴이다.

 흰색에 가까운 회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날린다.

 피부는 한겨울에 내린 새하얀 눈과 같이 창백한데, 키는 멀대처럼 크고 호리호리하다.

 얼굴을 덮은 그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그가 살짝 웃었다.

 영롱한 구슬을 떠올리게 하는, 연하늘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본능적으로 내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는 척 하면 안 돼, 이름을 부르면 안 돼.’

 

 나는 입을 막기 위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내 목소리는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이안...? 네가 어떻게 여기에...?”

 “아시는 분입니까?”

 

 옆에 묵묵히 서 있던 랄프 경이 물었다. 나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실수했군.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하면 감시가 심해질 게 뻔한데.’

 

 눈 앞의 악마가 쯧,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찡그려 보인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짧은 순간에. 내가 떨리는 손을 랄프 경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는데, 악마는 천역덕스럽게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다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가관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저 위대하신 ‘성검’ 리오넬 전하의 따님이시자 아르카디아의 수호자, 발크 왕국의 공주이신 리안나 폰 라인바르크 전하. 아니키아 공국에서 온 충직한 이안 드 트리스탄이 인사 드립니다.”

 “!!”

 이… 이런 미친놈.

 나와 랄프의 얼굴이 동시에 새하얗게 질렸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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