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본인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 아버지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또한 지금은 늘 힘이 되고 친구같이 고민도 늘어 놓을 수 있는 아버지가 어릴 때는 왜 그리 어렵게 느껴졌는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아들들에겐 반대로 어려운 존재이다.
아버지와 함께 밥을 같이 먹을 때 등산을 할 때 또 단 둘이 외출을 하자면 그만큼 어색할 수 없다.
더불어 아버지도 날 어려워하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사춘기가 왔을 무렵 난 어머니께 여쭤보았다.
“엄마 난 아빠랑 있는 게 너무 어색해 불편하기도 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면, 아빠는 아는지 모르는지. 귀찮아 하시네 아빠는 날 좋아하긴 하는 거야?”
라고 말을 하자 어머니께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웃으며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아빠가 우리 원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빠는 그저 표현이 서툰 것뿐이야, 아빠니까”
그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왜 아빠는 표현이 서툰 건지 아들인 나한테는 어찌 그리도 엄하게 대하시는 것 인지
하지만 이 궁금증들은 내가 성인이 되는 성장 과정에서 주위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나 자라온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깨달았던 부분의 결론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세대 차이의 영향이 많이 미치는 듯 하였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커오던 성장과정 그리고 내가 커왔던 성장 과정
아버지 세대는 1960년대 당시에는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는 본인과 그 당시엔 지금과 같은 핵가족이 아닌
자녀들과 많은 가족이 함께 사는 대가족 사회였기에 애정 표현 사랑을 표하기 보단 그저 먹고 살기 바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혼자 일찍 독립해 생활하는 일이
파다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금과 달리 대부분의 우리 아버지 세대는 힘든 시대에 혼자 사랑을 잔뜩 받을 수도 있는 지금과 달리 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자라서 많은 애정표현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만큼 우리에게 주는 애정 표현도 서툴렀던 것이다.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표현을 하자면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 나는 그리 표현하고 싶다.
덧붙여 아버지는 본인처럼 자식인 나 또한 독립적으로 강하게 일찍 성장시키고자 엄격하고 더 속마음을 표출 하지 않으셨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란 그게 전부가 아니다. 표현이 서툴어도 나에겐 엄하고 무서운 존재일지라도 본성은 누구보다 자식을 아끼고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아픈 것도 꿋꿋이 참고 마치 자식인 우리의 눈에는 강하고 단단한 철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영원 하실 것이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자신의 아버지라도 그저 무섭고 무뚝뚝한 아버지일 지라도 언젠가 나 자신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자식을 낳고 키우며
살아가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많이 이해해야 할 사람도 우리 아들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의 마음은 딸들이 제일 잘 안다면 이젠 혼자 묵묵히 속앓이를 해야 했던 아버지들의 마음은 우리 아들이 잘 알아 가야 하지 않을까
(행여나 아버지들이 딸에게 자상해서 그것이 질투가 나 불만이 많다면 아들인 우리들에겐 어머니가 있으니 그거나 이거나 별반 차이는 없을 듯 하다)
(내가 아버지께 효도하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한다.
내가 어버이께 효도하지 않는데,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
[강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