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다, 쫓기다 Reboot
Bangarang
ㅡ SKRILLEX feat. Sirah
남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이 불안감에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 남자가 우리가 숨어있던 곳을 지나 배 후미 쪽으로 몇 발자국 정도 걸어갔을 때, 벽에 완전히 바짝 붙어있었던 백은섭이 그 남자를 따라서 걸음을 재빠르게 옮기며
“야!”
백은섭의 짧은 목소리에 두 걸음 정도 앞서 걷던 남자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가 돌아보기 전 배 옆쪽의 난간을 한쪽 발로 디디고 공중에 떠오른 백은섭의 무릎이 그 남자의 얼굴을 세게 가격했다.
“으억!”
남자의 단말마 비명과 함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코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남자가 중심을 잃고 얼굴을 한 손으로 거머쥐며 비틀거리는 사이에 바닥에 착지한 백은섭이 남자가 메고 있던 총을 잡고 남자의 턱을 주먹으로 올려 쳤다. 남자가 그대로 뒤로 쓰러졌고 쓰러진 백은섭은 남자의 가슴에 올라타 손에 들고 있는 총으로 그 남자의 목을 세게 눌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경황이 없었던 건지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한 남자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그 뒤로도 몇 초 정도 더 목을 누르고 있던 백은섭이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자 그제서야 거칠게 남자의 몸에서 총을 벗겨내고는 남자가 입고 있던 방탄조끼를 벗겨내 내게 던졌다.
“자.”
“이건 왜?”
“그 인터폴이 방탄 조끼 입은 채로 붙잡혀 있지는 않을 거 아니니.”
“아.”
내가 그 짧은 질문을 하는 동안 백은섭은 기절한 걸로 보이는 남자의 손목과 발목 등을 묶은 다음 갑판 안 쪽으로 끌고 들어와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안 쪽으로 옮겨놓았다. 그 남자에게서 빼앗은 총을 내게 건넨 백은섭이
“쏠 줄 아니?”
“어…대충은?”
내 말에 백은섭이 탄창을 꺼내 총알을 확인하고는 총의 안전 장치로 보이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튕겨 연 다음, 내 어깨에 매어주었다.
“내가 이야기 하기 전까지는 어디 멋대로 쏘지 말라.”
“알았어.”
말을 마친 백은섭이 갑판에 아무도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배 안 쪽으로 들어가는 문을 어깨로 슬며시 밀었다.
요트의 안 쪽은 바깥과 달리 모든 조명이 켜져 있어 환한 상태였다. 아무도 없는 건지 배 안은 고요했다.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움직이는 백은섭을 따라 숨도 쉬지 못하고 천천히 따라갔다.
갑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복도식으로 된 배 옆으로 몇 개의 문들이 나란히 있었다. 복도 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벽에 한 쪽 어깨를 붙인 채로 움직이던 백은섭이 가장 가까운 문을 손잡이를 돌려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배 안에서 사무를 볼 수 있도록 만든 사무실인지 테이블과 서류들이 있는 방이었다.
문이 아닌 벽을 틔어서 만들어 이어지게 만들어진 쪽에는 침대와 개인 샤워실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백은섭이 나를 돌아보고 고개를 흔들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방을 나온 백은섭이 나에게 다음 문을 확인해보라는 듯 손짓했고 복도 양쪽을 살핀 내가 손잡이를 잡아 내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잠긴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잠겨있어.”
속삭이듯 말하는 내 말에 다시 한 번 복도 양 옆을 살핀 백은섭이
“혹시 누가 오는지 잘 살펴보라.”
“응.”
백은섭을 등으로 가리고 복도 끝을 살폈다. 조끼 주머니에서 꺼낸 칼과 얇은 철사 같은 것으로 열쇠 구멍을 몇 번이나 부딪히는 딸깍 소리가 들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건지 백은섭이 얕게 한숨을 쉬더니 어깨에 매고 있던 M7의 뒷부분으로 문 손잡이 부분을 내리 찍었다.
문 손잡이가 떨어져나가 휑해진 부분을 총구로 밀어 넣자 반대쪽 손잡이도 떨어져나갔는지 손잡이가 있던 부분은 그저 휑하게 구멍만 남아있었다. 구멍 안 쪽으로 손을 넣은 백은섭이 잠금 쇠를 안쪽에서 열었는지 굳게 닫혀있던 문은 스르륵 하고 열렸다.
“디온?!!”
문이 열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 한 가운데 있는 의자에 묶인 채로 정신을 잃은 듯 축 늘어져있는 디온이었다.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나를 본 백은섭이
“인터폴 맞는지 잘 확인해보라. 나는 혹시 이 근처에 또 누구 없는지 확인해보고 올 테니.”
“응!”
백은섭과 엇갈려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향하며 대답을 한 내가 방안에 있는 디온에게 달려갔다.
팔다리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두꺼운 밴드로 묶어져 있는 디온을 보자 번개라도 맞은 듯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전기에 오른 것 같이 아팠다.
“디온?! 디온!! 정신차려!!”
급하게 달려간 내가 디온의 얼굴을 들었다.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눈을 감은 디온의 모습에 두려워진 내가 디온의 인중에 손가락을 대봤다. 아주 희미하게 디온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눈에서 뜨듯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복받쳐 올라오는 울음을 참고 디온의 얼굴을 가슴에 꽉 안고 정수리에 내 얼굴을 묻었다.
눈물을 닦아낸 나는 아까 백은섭이 준 나이프를 꺼내 디온을 묶은 끈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나이프임에도 불구하고 디온을 묶은 끈은 단번에 잘려지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나이프를 아래 위로 움직이며 끈을 잘라냈다.
마지막으로 디온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밴드 형식의 끈을 잘라내고 나자 무릎을 꿇고 앉은 내 몸으로 디온의 무게가 전부 실렸다. 쓰러지는 디온을 받아서 바닥에 천천히 눕힌 내가 디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어 보이는 걸로 봐서 고문당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디온이 입고 있는 옷은 카를로비 바리에서 만났던 턱시도 차림이었다. 며칠 동안 이 옷을 입은 채로 묶여있었던 건지 엉망이었지만.
뜯긴 건지 단추가 몇 개 사라진 와이셔츠 틈의 쇄골 아래쪽으로 새로 생긴 듯한 화상 흉터가 보였지만, 그것 말고는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디온을 바닥에 눕히자마자 백은섭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다시 한 번 문 쪽을 확인한 백은섭이
“인터폴은?”
“괜찮아. 그냥 정신을 잃은 거 같아.”
내 말에 백은섭이 정신을 잃은 디온의 얼굴을 한 번 살피더니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디온의 한 쪽 손을 잡더니 손 끝을 아주 살짝 칼로 상처를 낸 다음 조끼 주머니에서 꺼낸 플라스틱으로 만든 키트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뭐 하는 거야?”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몇 초 정도 기다려서 키트에 뜬 결과를 확인한 백은섭이 조끼 주머니에서 일반 주사기가 아닌 메탈로 만들어진 꽤 묵직한 크기의 실린더가 달린 주사기를 내게 건네더니
“그 놈들이 약 써서 기절한 거다. 중화 시킬 만한 건 없고, 무리가 가더라도 일단 깨워야 되니까 그거 허벅지에 놓아라.”
“…이게 뭔데?”
“아드레날린이다.”
얘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물어보고 앉아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디온의 허벅지 안 쪽을 더듬어 뼈가 두드러지지 않은 부분에 주사기를 세게 찌르고 실린더의 끝을 눌렀다.
“흐아!”
“디온!!”
몇 초 지나지 않아 눈을 뜬 디온의 상반신이 불에 덴 듯 일으켜졌고 나는 그런 디온의 양 어깨를 잡고 디온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디온!!”
“….하나?....”
약 때문인지 어두운 곳에서 빛이 모자란 고양이의 눈처럼 커다래진 동공으로 나를 바라보던 디온이 나를 확인하고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나를 꽉 끌어안은 디온 때문에 숨이 막혔지만 나를 구겨질 듯 안은 디온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고는
“괜찮아, 괜찮아.”
“…보고 싶었어.”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지금 둘이 만나서 좋은 건 알겠는데 좀 나중에 하면 안되겠니?”
백은섭의 차분한 목소리에 나를 안고 있던 디온의 팔이 풀렸다. 아드레날린으로 억지로 정신을 차려서인지 디온은 아직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이 몽롱해 보였다.
“…어….너?....음….”
“백은섭이다. 오랜만이네.”
“백은섭….어…백은섭…”
“일단 방탄조끼부터 입혀라.”
“응.”
백은섭의 말대로 아까 전 쓰러뜨린 남자에게서 벗겨낸 방탄조끼를 입히자 백은섭이 디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백은섭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 디온이 백은섭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아 힘을 주어 당기자 디온이 몸이 시소가 올라가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어당겨지듯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정신이 좀 드니?”
백은섭과 마주 선 디온이 목을 한 번 오른 쪽으로 꺾었다. 우두둑하는 소리가 나에게도 들릴 만큼 선명하게 울렸다.
“….그럭저럭. 오랜만이네. 백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