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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킹즈세븐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7.6.30

대영웅 레아가 처형당한지도 어언 7년.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의 눈앞에서, 레아를 닮은 수수께끼의 여인이 모험을 시작한다.

 
1막 5장 : 미치광이 6
작성일 : 17-07-29 22:22     조회 : 373     추천 : 0     분량 : 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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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돌아온 드렉스가 복도에 널부러져 있는 병사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레아의 방으로 달려온다.

  “레아!”

  레아의 침대 머리맡, 누군가 의자에 앉아 있다. 눈을 가늘게 뜨지만 분별이 가지 않는다. 드렉스는 검을 뽑아든다.

  “조용히 해라. 레아가 자고 있지 않느냐.”

  “...워치프?”

  드렉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는다. 워치프는 레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묻는다.

  “어딜 다녀오는 거냐. 네 놈의 임무는 경호라더니?”

  “...검열관들의 소굴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놈들은 밤에 밖에 활동을 하지 않으니 자리를 잠시 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해결했나?”

  드렉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음을 눈치 채고 입을 연다.

  “뭐, 적어도 상크투스에 있는 동안은 습격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워치프는 대답 없이 한참을 레아를 바라본다. 드렉스도 문가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다. 워치프는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드렉스를 지나쳐 복도를 떠난다. 드렉스는 그의 등을 보다가 방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문을 닫는다.

  드렉스는 기절한 병사들을 한 명 한 명 깨운다.

  “아마 오늘은 더 이상 별 일이 없을 거에요. 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저를 깨우세요. 죄송하지만 피로가 너무 오래 쌓여서 저도 오늘은 좀 자야 할 것 같거든요.”

  드렉스는 레아의 옆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덴이 이미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

  “...훌쩍.”

  드렉스는 바닥의 한 구석에 몸을 옹크리고 잠을 청한다.

 

 

  새벽이 더욱 깊어진 시각. 달빛에 비친 타워는 햇빛 아래에서만큼이나 밝게 빛난다. 그리고 그 빛나는 표면을 몇 쌍의 그림자들이 타고 오른다. 소리 없이 일정한 속도로 타워를 기어오른 그림자들은 4층의 창문으로 하나둘 들어간다.

  이그니스 대사관 동을 지키던 병사 이변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동료의 반이 희생당한 뒤다.

  “누...!”

  그리고 나머지도 검에 아니마를 불어넣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 열 명의 검열관들은 레아의 방문 앞에 도달한다. 그리고...

  “내 이럴 줄 알았지.”

  검열관들은 고개를 돌린다. 검열관의 가슴을 뚫고 누군가의 손이 튀어나와 있다. 검은 색 아니마를 두른 그 손에는 한 방울의 피도 맺혀 있지 않다. 성대도 찢겨져 비명조차 지르지 못 한 검열관이 옆으로 쓰러지자,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워치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뒤에는 이미 세 명의 검열관들이 쓰러져 있다.

  “멍청한 자식. 믿을 주둥이가 따로 있지.”

  검열관들은 워치프를 향해 달려든다. 워치프도 그들을 향해 달려든다. 오른쪽 눈을 지나는 세 줄기의 흉터가 피 아래에서도 붉게 도드라진다.

  그들의 싸움은 아주 조용했다. 검열관들은 본디 그렇게 교육을 받은 탓이고, 반대쪽은 의도적으로 소리를 죽였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를 깨우고 싶지 않은 것처럼.

  그 싸움에서, 워치프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드레날린이 그의 몸에 휘몰아친다.

 

  아아, 너는 명예롭게 죽었다.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영웅이 되어 세상을 떠나갔다. 그에 반해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사랑하던 여인이 마녀라며 창녀라며 매도되는 것조차 지키지 못 하고, 내 마음 하나 간수하지 못 해 무너져 내렸지. 전쟁의 주역? 나라의 기둥? 지금의 나를 봐라. 내가 영웅인가? 대장군인가?

  아아, 사실 나도 죽기를 바랐다.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랐다. 니가 없는 곳에서 이런 죄책감을 짊어지고 사는 것은 너무나 괴롭다. 그 전쟁에서 나도 너처럼 죽었더라면, 죽어서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더라면! 죽은 자들은 편한 법이지. 모든 고통과 죄는 산 자의 것이니까. 죽은 자들은 이기적일 뿐,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혼자 영웅이 되어 죽으니 좋았느냐. 남겨진 자들은,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거냐?

  하지만 니가 이렇게 돌아왔다. 기쁘지만, 미쳐 날뛰고 싶지만, 동시에 너무나 혼란스럽다. 이게 뭐지? 데우스께서 나애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건가?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내가, 너를 다시 마음에 품어도 되는 거냐, 레아?

 

 

  비릿한 혈향에 드렉스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병사들은 복도를 조사하고 있었다. 완전무장한 채로 방에서 나온 드렉스는 짧은 시간에 상황을 파악한다. 시체는 이그니스의 병사들과 검열관의 것들이 섞여 있다. 급소만 깔끔하게 노려진 이그니스의 병사들은 검열관들의 소행일 터. 하지만 검열관의 피가 레아의 방문 위로 퍼져 있는 것을 보아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 죽었다.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일격을 지닌 자에 의해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채로. 지금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 이들은 아마도 희생된 병사들의 후번 근무자들이었을 테지.

  참상을 조사하고 있던 이그니스 소속의 병사 중 하나가 드렉스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경례를 붙이며 상황을 보고한다.

  “간밤에 검열관이 습격해온 것 같습니다.”

  드렉스는 이를 간다. 나를 속인 건가. 그리고 정보의 확실한 검증을 위해 짐작되는 바를 묻는다.

  “검열관들을 죽인 건 워치프냐.”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증거가 있나?”

  “여성 검열관의 사체에서... 성폭행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드렉스는 레아의 곁에 반 알몸으로 서 있던 워치프를 떠올린다. 등에 소름이 돋는다.

  “미친 놈...”

  “예. 맞습니다. 그리고 상크투스에 그런 짓을 할 정도의 미친 자는 워치프 밖에 없습니다.”

  후우, 드렉스는 한숨을 내쉰다.

  “수습 끝내면 상크투스에 죽은 병사들 장례를 부탁하고 대사관 직원에게 얘기해서 본국에 부고를 날려라. 그리고...”

  드렉스는 시신을 수습하는 병사들의 얼굴을 돌아본다. 분노와 혐오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지만 가장 큰 감정은 역시 공포다. 저들은 죽은 병사들의 후번 근무자들, 그 누가 동료들이 살해당한 곳에서 근무를 서고 싶어 하겠는가?

  “...이 뒤의 근무는 모두 취소시켜라. 오늘 남은 근무는 모두 내가 서겠다. 이제 하던 일을 마저 해라.”

  병사는 즉각 경례를 붙이고 수습을 돕기 시작한다. 드렉스는 복도의 한 구석에 웅크려 앉는다. 시신을 수습하고 혈흔을 닦아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모두가 사라지고 비릿한 혈향이 남은 복도에서 드렉스는 레아의 방문에 기대 생각을 정리 한다.

  어찌 해야 하나. 검열본부에 가서 항의를 하고 다시는 레아를 노리지 않겠다는 확약이라도 받아내야 하나? 하지만 그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한 번 약속을 어긴 자들을 다시 믿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습격을 구실삼아 이그니스로 갈 수도 없다. 레아의 안전을 이유로 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워치프의 손에 검을 들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 누가 부재로 인해 레아를 위험에 빠뜨렸으며 누가 레아를 구했는가? 그러니 드렉스는 이제부터 좋으나 싫으나 이 곳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다.

  만일 그 상황이 정리된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경계근무를 서려는 병사가 있을까?

  “...오늘부터 또 못 자겠구만.”

  결국 드렉스가 밤을 새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낮에 잘 수도 없다. 낮에는 듀오데카스들의 접근을 막아야 하니까. 낮에 짬짬이 조금씩 잔다면 두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까. 드렉스는 우울한 표정으로 로브를 가다듬는다. 빨리 지원군이 와야 일을 좀 덜 수 있을 텐데.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연 레아는 드렉스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드렉스가 왜 여기 있어요? 병사들이 근무설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일이 좀 있었어서요.”

  레아는 코 끝을 스치는 희미한 피냄새에서 대답을 듣는다.

  “...검열관들이 또 왔던 거에요?”

  드렉스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드렉스가 다 처치한 거에요?”

  “그게...”

  문득 뒤에서 들리는 묵직한 발걸음에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던 드렉스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다. 새로 산 듯 빳빳한 셔츠에 재킷을 걸친 워치프가 그들을 향해 걸어온다. 드렉스는 그에게로 몸을 돌린다. 워치프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레아를 보며 입을 연다.

  “레아. 밥 먹으러 가자. 근사한 곳을 하나 알아뒀어.”

  레아는 깜짝 놀라 드렉스의 뒷통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 워치프도 눈을 옮긴다.

  “...워치프.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보다시피, 데이트 신청이다. 설마 이걸 막을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겠지?”

  드렉스는 대답 없이 입술만을 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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