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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킹즈세븐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7.6.30

대영웅 레아가 처형당한지도 어언 7년.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의 눈앞에서, 레아를 닮은 수수께끼의 여인이 모험을 시작한다.

 
1막 5장 : 미치광이 5
작성일 : 17-07-27 14:56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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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하지 마십시오, 워치프. 제 임무가 경호인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레아가 몇 일째 잠을 못 자서 일단 휴식을 취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어 이럽니다. 이해해 주시겠죠?”

  워치프의 표정이 구겨진다.

  “자그마치 칠 년만의 재회다. 그런데 그걸 고작 며칠 잠을 못 잤다고 방해할 셈이냐?”

  “저희가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워치프도 일단 잠을 좀 주무시고 침착한 상태로 대화를 다시 나누시죠. 이대로라면 또 아까처럼 소리만 지르다가 끝나지 않겠어요?”

  워치프는 이를 드러내면서도 마땅한 대답을 않는다. 반박할 말이라면 쌓이고 쌓였다. 하지만, 워치프는 레아를 바라본다. 경계와 선망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덴의 손을 쥐고 있는 레아를.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구나. 야속함과 울분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운다. 이런 상태라면 드렉스의 말대로 안 좋은 결과만이 나올 것이다. 그래, 진솔한 대화를 위해서라도 푹 쉬게 해줘야겠지.

  워치프는 신경질적으로 등을 돌린다.

  “브레이커. 숙소를 찾아라.”

  “아, 저희는 타워의 이그니스 대사관으로 가겠습니다.”

  드렉스의 그 말에, 결국 워치프는 검을 뽑는다. 몸을 돌리는 회전력이 실린 검격을 드렉스는 소드스토퍼로 간신히 막아낸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가게 준비를 하던 주민들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그들을 바라본다. 감시하고 있던 수도사들도 긴장한 기색으로 봉을 꽉 쥔다.

  “개소리 하지 마라. 이 때까지 봐준 것만 해도 넌 내게 받을 평생치의 인내와 자비를 다 받았다.”

  “그럼 이제 레아를 위한 인내와 자비를 써주시죠. 레아는 검열관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우린 죽은 목숨입니다.”

  상크투스는 검열관의 본거지다. 드렉스의 얼굴이 구겨진다.

  “검열관? 검열관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어째서...”

  아아, 부활의 탓인가. 검열관은 상크투스 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자들을 죽이는 존재다. 그렇다면 설명이 된다.

  “워치프. 아시겠지만 저 말은 절대 들어줄 수 없습니다. 킹즈세븐의 지원을 부르려는 속셈이 뻔합니다.”

  브레이커가 워치프의 귀에 말을 속삭인다.

  “나도 알아. 굳이 너희 대사관으로 갈 필요 없다. 우리 플라눔이 보호해 주지.”

  역시 신사적으로는 일이 잘 안 풀리는군. 드렉스는 속으로 혀를 찬다. 어쩔 수 없구만. 유치하지만 드렉스는 도발을 감행하기로 한다.

  “왜요? 자신이 없어요? 킹즈세븐이 오면 발릴까봐?”

  천천히, 워치프의 눈에 살기가 담긴다.

  “하긴 지금도 이렇게 세 분이나 우르르 온 걸 보면... 대륙 전쟁 이후 칠 년간 검이 많이 무뎌지신 모양입니다, 블랙스미스씨. 하기야, 아까 검을 맞댔을 때도 생각보다 물렁...”

  쾅. 워치프의 검이 다시 한 번 드렉스의 소드스토퍼를 강타한다. 마치 둔기가 부딪힌 것만 같은 감각에 드렉스는 팔이 저려오는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워치프는 검을 소드스토퍼에 맞댄 채로 고개를 드렉스에게 가까이 한다. 드렉스는 붉게 달아오른 워치프의 흉터와, 그 눈에 담긴 광기를 엿본다.

  “좋다. 마음대로 해라. 킹즈세븐을 부르던 병력을 전부 부르던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둬라.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워치프. 혹시라도 레아와 만나고 싶으시다면 저를 통해 약속 잡는 걸 잊지 마시구요.”

  워치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드렉스를 노려본다. 그 눈 안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미칠 듯한 속도로 피어나고 또한 꺼지는 것을 드렉스는 읽어낸다. 워치프는 거칠게 드렉스를 밀어내며 검을 허리춤으로 되돌린다. 브레이커가 워치프의 곁에 다가와 작게 입을 연다.

  “워치프, 그건 매우 경솔한...”

  “내가 두 번 말하는 사람인가?”

  브레이커는 입을 다문다. 다만 떠나가는 드렉스와 레아를 향해 히트맨에게 지시를 내린다.

  “히트맨. 저들을 감시하세요.”

  히트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사이로 사라진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에요? 듀오데카스라니?”

  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레아는 손끝으로 눈을 꾹꾹 누른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나중에 드렉스한테 물어봐.”

  그 태연한 거짓말에 드렉스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드렉스는 4층으로 가는 승강기를 탄다.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덴이 깜짝 놀란다.

  “우, 우와! 이게 뭐에요? 마법인가요?”

  눈을 반짝이는 덴의 시선을 레아가 자연스럽게 드렉스에게 토스한다.

  “지하에서 수도사들이 밧줄을 이용한 도르래의 원리로 우리를 올려주고 있는 거란다.”

  “도를랭... 뭐라구요?”

  “그러니까, 밧줄로 우리를 위로 올려주고 있는 거야.”

  덴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의 유리 창 너머로 보이는 상크투스의 전경에 넋을 잃는다. 평소라면 레아도 즐겁게 광경을 즐겼겠지만 지금은 머리가 너무 아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드렉스. 이제 어쩔 셈이에요?”

  “지원군이 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죠.”

  “어떻게 버틸 건데요? 대사관에서 정말 검열관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그보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워치프가 다시 찾아올 것 같던데 그건 어떻게 막을 생각이에요?”

  드렉스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콧등을 매만진다.

  “그게... 사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상크투스로 오자고 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말고는 딱히 수가 없었잖아요? 당장 플라눔에 끌려갈 판이었으니.”

  레아는 한숨을 푹 내쉰다.

  “이렇게 고생시킨 대가, 똑똑히 받아낼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드렉스는 숲에서 벌였던 언쟁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 마세요. 이그니스에 도착만 한다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드릴 테니까요.”

  승강기의 문이 열린다. 드렉스는 품에서 킹즈세븐의 문장을 꺼내들며 발을 옮긴다.

  “일단 오늘은 푹 쉬는 거에만 집중하세요.”

 

 

  “...널 위해, 단 한 마디의 추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울먹이는 목소리는 군중들의 함성에 묻혀 그 누구도 듣지 못 한다.

  “널 위해, 아무런 탄원도 변호도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개 숙인 그의 뺨은 비 맞은 가죽처럼 흥건하다.

  “널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게일은 마침내 고개를 똑바로 들어 처형대를 올려다본다. 레아는 눈을 감고 있다. 그 눈가에 언뜻 보이는 저것은 눈물일까. 그 입가에 언뜻 보이는 저것은 미소일까.

  그녀를 따라 가죽을 당기듯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억지로 우는 듯 억지로 웃는 듯 기괴한 상이 만들어진다.

  죽어라, 네 년의 죽음으로 나는 완성된다.

  처형인의 도끼가 내려쳐지고,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워치프는 거친 숨을 들이키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곁에 놓아둔 검을 들고 사방을 경계한다. 아무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대사관의 게스트룸일 뿐이다.

  “후우...”

  네모난 달빛이 그가 발로 차낸 이불을 비춘다. 워치프는 식은땀을 닦아낸다. 레아의, 처형식의 꿈을 꾸었다.

  “...레아.”

  워치프는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이불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 하고 워치프는 문을 열고 복도로 달려 나온다. 천장에 박힌 아니마스톤의 환한 빛이 대사관동의 복도를 환하게 비춘다. 워치프는 플라눔 대사관동을 지나 같은 층에 있는 이그니스 대사관동으로 달려간다. 그를 알아본 이그니스의 병사가 기겁을 하며 그를 막아선다.

  “워치프, 안...!”

  채 말을 다 하지도 못 하고 병사는 벽에 처박혀 기절한다. 복도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검에 아니마를 주입하며 워치프에게 달려든다. 워치프는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지 않고 더 강한 힘으로 정면에서 부딪힌다.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병사들은 모두 나가떨어진다.

  워치프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던 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잠겨 있다. 억지로 부숴서 연다. 침대에 누군가 곤히 누워 자고 있다. 창문이 없는 방에 빛이라고는 문틀에 잘려 마름모꼴로 들어오는 복도의 빛뿐이다. 그 빛은 침대의 중간까지 밖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게일은 레아를 알아본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워치프는 레아의 곁으로 다가온다. 많이 피곤한 걸까, 큰 소란에도 일어나지 않고 정신없이 자는 레아의 볼을 쓰다듬는다. 예쁘다. 잊으려고 발악을 해도 잊히지 않아서 잊는 걸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많이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꿈에서 본 마지막 모습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화사하고 예쁘다.

  게일의 손이 레아의 입술에 닿는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에, 게일은 충동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댄다. 하지만 마지막 한 치를 나아가지 못 한다. 게일은 용기를 내지 못 한다.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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