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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킹즈세븐
작가 : 소별왕
작품등록일 : 2017.6.30

대영웅 레아가 처형당한지도 어언 7년.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의 눈앞에서, 레아를 닮은 수수께끼의 여인이 모험을 시작한다.

 
1막 5장 : 미치광이 1
작성일 : 17-07-19 08:47     조회 : 369     추천 : 0     분량 : 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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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게일. 이번이 다섯 번째야. 더 이상은 힘들어.”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 레스토랑. 게일은 스테이크를 질겅질겅 씹으며 세니안을 바라본다.

  “이번엔 가능하면... 좀... 원만하게 부부생활을 하려고 노력해봐.”

  게일은 씹던 스테이크를 레스토랑의 바닥에 뱉는다. 세니안이 움찔하며 몸을 움츠린다.

  “웨이터!”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웨이터가 서둘러 달려온다. 게일은 칼로 플레이트의 고깃덩이를 찍어 신경질적으로 들어올린다.

  “고기가 너무 많이 익었잖아. 내가 미디엄 레어로 달라고 그러지 않았나?”

  철퍽, 소리를 내며 고기가 다시 플레이트에 떨어진다.

  “다시 가져와.”

  게일은 와인을 들어 입술을 축인다. 웨이터는 당황한 표정으로 답한다.

  “이, 이게 미디엄 레어입니다. 주문하신대로 정확히 가져 왔...”

  게일의 손 안에서 잔이 깨진다. 웨이터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게일의 모습에, 자신에게서 아무런 가치도 찾지 못 한 그 무기질적인 시선에, 웨이터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내가 니 대답이 듣고 싶다 했던가?”

  “죄, 죄송합니다!”

  웨이터는 황급히 게일 앞의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달아난다.

  “아, 그래서. 뭐라고 형님? 잘 좀 해보라고? 그건 내가 아니라 그 내 다음 아내 될 사람한테 얘기해보는 게 어때?”

  세니안은 안쓰러운 눈으로 웨이터의 등을 보다가 눈을 게일에게로 돌린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너에게 어떻게 맞추겠니.”

  “그럼 특별한 여자를 데려와.”

  “니 첫 번째 아내와 두 번째 아내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어.”

  “전혀 안 그렇던데?”

  게일은 씩 웃는다. 세니안은 속으로 이미 데우스의 곁으로 떠난 두 여인의 영혼에 명복을 빈다.

  “너만큼이나 특별한 여자는 이 나라에 없어. 이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없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 수는 없잖아? 그럼 니가 아내 될 사람한테 맞춰야지. 특별함을...”

  세니안은 말을 잇기 전에 침을 꿀꺽 삼킨다.

  “특별함을 때로는 뽐내지 않고 겸손해할 줄도 알아야 진정한 영웅인 거야.”

  게일은 말없이 세니안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식사하고 있는 다른 가족과 연인들을 손가락질하며 묻는다.

  “저런 떨거지들 때문에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라는 거야?”

  “깎아내리라는 게 아니야. 조금만 자신을 낮추라는 거지.”

  “그게 그거지. 내가 왜 내 가치를 깎아내리고 낮춰야 하는 거야? 내가 기껏 쌓아올린 내 특별함을 왜 더 뽐내지는 않을망정 다른 비천한 놈들에게 맞춰줘야 하는 건데?”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이잖아.”

  그 말에 게일이 웃음을 터뜨린다.

  “같은 사람? 같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내가 저것들하고 같은 사람이라고?”

  “우린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어, 인간은...”

  게일이 손을 들어 세니안의 말을 막는다.

  “그만, 그만. 무슨 개소리를 하나 했더니, 평등? 요즘에 평등회 놈들이라도 만나? 데우스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비난하는 그 똥대가리들을?”

  “그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그래서 독실한 상크투스 신자인 나에게 나와 다른 놈들의 가치가 같다고 말하는 건가. 데우스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말을 가소롭게도 내 면전에 대고 던져대는 건가.”

  세니안은 덜덜 떠는 자신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는다.

  “...그래. 너는 너무 날뛰어. 조금 자중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 발광의 원인이 데우스의 가르침이라면, 글쎄. 그 가르침을 떠나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지.”

  게일은 아무 말 없이 세니안을 응시한다. 세니안은 턱을 덜덜 떨면서도 워치프의 눈을 끝까지 마주 바라본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워치프다.

  “내가 형님을 왜 좋아하는지 말했던가. 난 형님의 분수를 지키는 모습이 좋아. 자신의 특별함 이상의 것을 탐하지 마라, 참으로 데우스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모습이잖아? 나한테 계속 후사를 만들라고 결혼을 중매하는 것도 혹시라도 내가 전장에서 죽으면 형님이나 형님의 새끼가 가문을 이끌 그릇이 안 된다는 걸 알고 분수를 지키려는 거니까. 그러면서도 가끔씩 이렇게 벌벌 떨면서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말은 끝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꽤 멋지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소신 있는 소인배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나는 블랙스미스 가문에 남은 유일한 너의 연장자니까. 이렇게...”

  이렇게 쓴 소리를 할 책임도 있는 거지, 라는 뒷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었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사납고 날선 기운에 세니안은 말을 삼켜 버린다. 수도 없이 대면해봤건만, 도저히 이 공포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면 블랙스미스 가의 가주가 될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물드는 꼴을 볼 수는 없지. 내가 가련한 형님을 위해 데우스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전파해주지. 평등은 정의가 아니고, 차별이야말로 정의라는 걸 말이야.”

  웨이터가 고기가 담긴 플레이트를 들고 다가온다. 워치프는 갑작스레 손을 뻗어 웨이터의 멱살을 덥썩 잡고는 테이블로 끌어내린다. 갑작스런 기습에 웨이터는 테이블 위로 쓰러지다시피 끌려온다. 들고 있던 요리는 바닥에 부딪혀 깨진 그릇조각과 뒤섞인다.

  “이봐, 웨이터. 네 놈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나?”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던 웨이터는 테이블에 처박힌 고통보다 그 말이 더 놀랍다는 듯이 눈을 번쩍 뜬다.

  “예, 예? 아이고, 아닙니다, 워치프 나으리! 절대 아닙니다!”

  “어째서 아니냐? 어째서 너랑 나는 다른 거지?”

  “그, 그야...!” “말대답은 잘만 하더니, 뭘 망설이는 거냐? 아니면 너도 속으로는 너와 내가 같다고 생각해서 대답을 못 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저는, 저는...”

  웨이터의 눈이 대답을 찾아 빠르게 좌우를 왕복한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으리께서 전쟁터에 나가 수많은 공을 세우고 영지를 넓힐 동안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 여기서, 전 여기서 이 보잘 것 없는 웨이터 일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워치프는 그제서야 웨이터를 억누르고 있던 손에 힘을 푼다. 웨이터는 뒤로 엉덩방아를 찢고는 기다시피 도망간다.

  세니안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워치프를 바라본다. 워치프는 그 눈을 오만하게 마주 보면서 큰 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쏟아진 요리들을 짓밟으면서 옆의 테이블에 선다. 아까의 사태를 목격한 커플은 불안한 눈으로 워치프를 올려다본다.

  “이 년 놈들도.”

  워치프는 커플의 사이에 놓인 스테이크를 한 손으로 집어 우악스럽게 한 입을 뜯고는 바닥에 버린다. 천천히 그 옆의 테이블로 발을 옮겨 이번엔 가족들의 사이에 놓은 파스타를 거침없이 손으로 집어 입 안에 욱여넣는다. 그리고는 한껏 이쁘게 옷을 차려 입은 소녀의 머리에 거칠게 손을 닦는다.

  “이 부부랑 애새끼들 전부 다 합쳐도.”

  그 옆의 테이블엔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워치프는 그들이 마시던 에이드를 단숨에 반쯤 들이키고는 뒤로 던진다. 잔은 노신사의 어깨에 부딪히고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혀 깨진다. 노신사의 하얀 와이셔츠 위로 에이드가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며 흐른다.

  “이 노친네들 인생 통틀어 전부 합쳐도.”

  워치프는 세니안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해서 테이블을 돈다. 워치프는 손을 뻗어 닿는 것을 입에 대지조차 않고 전부 다 바닥에 집어 던지며 한 단어씩 끊어 뱉는다.

  “이 놈도. 이 년도. 이것들 전부 다 합쳐도!”

  세니안의 동그랗게 떠진 눈가가 경련을 일으킨다.

  “나한텐 안 된다고, 내 손가락 하나만큼도 안 된다고! 이것들이 편안하게 플라눔의 벽 안에 숨어 돼지마냥 피둥피둥 살쪄갈 동안, 난 저 밖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어! 왕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이런 비천한 버러지들을 위해! 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수많은 상처를 입었어. 수많은 목숨을 앗았고 수많은 전우를 잃었어! 그런데 내가 이것들과 같다고?! 내가 이것들과 평등하다고?! 그런 평등이야말로 불평등임을 정녕 모르겠다는 거야?!”

  세니안은 입술 끝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모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외식이 엉망이 된 커플, 와이셔츠가 더럽혀진 노인, 머리에서 소스가 질척거리는 아이의 부모까지... 워치프의 안하무인적 행동에 피해를 입은 자들이 모두, 워치프가 아닌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왜 굳이 저 특별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 자신들의 외식을 망쳐놓느냐는 그 눈빛에, 세니안은 그만 말을 잇지 못 한다.

  “그래, 이걸 봐. 이것들은 그래놓고도 차마 나를 탓하지는 못 하지. 알고 있으니까. 데우스의 진리를, 차별적 평등이야말로 공정한 것이며 정의라는 진리를 말이야.”

  입술을 부들부들 떨던 세니안은 아무 말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레스토랑을 나선다. 게일은, 워치프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른다.

  “고기랑 와인. 다시 내와.”

  너덜너덜해진 피해자들의 울분만을 남긴 채 폭풍은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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