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를 어쩐다...”
마부가 부서져버린 바퀴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며 혀를 찬다. 마차를 타고 있던 다섯 명의 승객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걱정을 나눈다.
“여러분. 지금 보조 마부가 가까운 수비대 초소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팔짱을 끼고 마부의 이야기를 들은 레아는 몸을 일으켜 덴을 본다.
“걸어가자.”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기에 덴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따라 일으킨다.
다시 세 시간 후, 간신히 언덕에 목을 걸치고 있던 해가 더 이상 버티지 못 하고 그 너머로 사라지고 세상은 어둠에 잠긴다. 레아가 은은한 빛을 뿌리는 광구를 두 개 만들어 양 옆에 띄운다.
“이거, 아니마 소모 안 심해요?”
“아니마 소모야 상상만 잘 하면 소모량이 급격히 줄잖아.”
덴은 신기하다는 듯 빛나는 구체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묻는다.
“어떤 상상으로 이걸 만드시는데요?”
“태양. 태양 겁나 환하잖아.”
덴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건 엄청 빈약한 상상 아닌가? 치료로 따지면 아픈 사람 붙잡 고 전혀 엉뚱한 사람이 건강해지는 걸 상상하는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치료를 할 경우 쿼터라고 해도 십 몇초도 안 돼서 아니마가 다 빨려나간다. 아무런 치유 효과도 없는 건 덤이다.
“그보다 우리 이제 해도 져서 보는 눈도 없는데 날아갈까?”
후드를 벗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묻는 레아.
“...사양할게요.”
“이잉, 연약한 처녀인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죽겠는데?”
안 그런 거 다 안다. 아니마로 근력을 강화해서 걷고 있으면서 다리가 아프긴 무슨...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말 할 수가 없는 덴은 완곡히 돌려서 말한다.
“그럼 제가 레아를 업고 갈게요.”
“뭐래, 짜리몽땅한 꼬맹이가.”
“...저 또래에 비해 그렇게 작은 편도 아니거든요?”
“몇 살인데? 여덜쨜?”
“열 넷이에요!”
뒤돌아 걸으며 덴과 농담 따먹기를 하던 레아의 표정이 갑작스레 굳는다. 덴도 자연스럽게 레아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어둠의 장막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래요, 레아?”
레아는 아무 말 없이 어둠을 바라보더니, 덴을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긴다. 덴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그 때 말한 추격자들이에요?”
레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거지? 사실 집히는 곳은 많다. 이래서 목격자 처리는 확실히 해야 하는 건데... 레아는 스스로의 무름에 혀를 찬다. 그리고 덴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검은 로브의 다섯 인영이.
레아가 팔을 휘두르자 그 궤적을 따른 하얀 참격이 인영을 향해 날아간다. 아무런 경고도 대화도 없는 갑작스런 공격에 덴이 오히려 깜짝 놀란다. 다섯 인영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그 참격을 피한다. 아무 것도 베지 못 한 참격은 그 뒤를 조금 더 날아가 소멸한다.
사방으로 흩어진 인영이 레아를 향해 무언가 검은 것을 쏜다. 어두움에 녹아 잘 보이지 않는 그 아니마 탄환들을 레아는 몸으로 맞는다. 하지만 레아의 방어막을 뚫지 못 한다.
“여기 가만히 있어. 안 다칠 테니까.”
그 말과 함께 바닥이 폭발하듯 흙먼지가 솟구쳐 오른다. 습격자들은 손짓 한 번으로 거대한 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잠재운다. 하지만,
“잡았다.”
그 사이 레아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습격자의 머리에 손을 뻗는다. 채 반항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습격자의 머리가 있던 곳을 쓸고 지나간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시체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다른 습격자들이 레아를 향해 돌진한다. 레아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덴은 처음의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레아가 가만히 있으라 얘기한 것 때문도 아니었고 그 자리에 레아가 펼친 방어막이 있음을 알아서도 아니었다. 레아가 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아가 죽는다면 괴로울 새도 없이 추격자들의 손에 따라죽기 위해서였다. 세 번이나 보호자를 잃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덴은 멍하니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레아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5대1의 싸움을 1이 압살하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니마를 이용한 전투의 기본은 화염구를 날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검에 아니마를 두르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마를 이용한 전투의 기본이며 성인식이 끝나고 받는 훈련의 전부이다.
하지만 레아는 무기 없이 손을 뻗는다. 물론 맨손은 아니다. 그 손에는 아니마가 둘러져 있다, 손에서 빛나는 하얀 빛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손이 추격자들이 쏘아낸 탄환을 지우고, 그들의 무기를 지우고, 그들의 머리를 지웠다.
그래, 지웠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고 덴은 멍하니 생각한다. 레아의 손에 닿은 것들은 문자 그대로 소멸되어 버린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얼굴에도 몸에도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적들을 해치우는 그녀가, 너무나, 너무나...
다섯 추격자들을 모두 해치우고 레아는 걱정되는 얼굴로 덴에게 돌아온다.
“얘, 덴. 괜찮아? 왜 이리 넋이 나간 표정이야?”
“...너무 아름다워요.”
너무나 강하다. 앞으로 홀로 남겨지리라는 생각은 티끌만큼도 들지 않을 정도로. 그렇기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홀로남음을 가져올 적들을 무찌르는 그 강함이. 동경하게 되어 버릴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런 소년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레아의 대답은 짧았다.
“또라이 아냐?”
반쯤 넋이 나가 있는 덴을 버려두고 레아는 시체를 수습한다. 그들의 시체를 띄워 한 곳에 모으던 레아는 그 중 유일하게 머리가 멀쩡한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아까의 마부다. 레아는 머릿속으로 숫자를 셈한다. 추격자는 다섯 명이었다. 마부와 보조 마부, 그리고 세 명의 승객들...
“하, 마차 자체가 함정이었구만.”
레아는 아니마로 파놓은 구덩이에 시신을 던지며 중얼거린다.
이 정도 규모의 함정까지 파 놓는다는 건 이미 동선이고 뭐고 다 들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곧 레티샤에 도착할 것이고 놈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극도로 피해 활동한다는 것 정도다. 통행량이 많다고 해도 건물 한 채 없는 길에서까지 굳이 밤이 되어야 움직였을 정도로.
“생각보다 레티샤에 오래 머물러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하아, 영웅절 때 레티샤에 있긴 정말 싫었는데...”
레아는 맘에 안 든 다는 듯 혀를 찬다.
그리고 그 날 자정. 레아와 덴은 레티샤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