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는 수다스러우면서도 조용한 사람이었다. 산행하랴 대답하랴 숨이 차오를 때까지 말을 걸기도 하는 한편, 어떨 때는 몇 시간씩 한 마디도 하지 않기도 했다. 처음에는 뭔가 기분 상한 일이 있나 눈치를 살피던 덴도 사흘쯤 지나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흘째에 레아와 덴은 루드비히 숲을 벗어났다. 사실 루드비히 숲이 횡단에 사흘이나 걸릴 정도로 큰 숲은 아니다. 문제가 된 건 레아가 처한 상황이었다.
“나는 사실 쫓기는 몸이야.”
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덴은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이 위험할 거라고 했던 거군요.”
“걱정 마. 넌 내가 최대한 지켜줄 테니까. 이래 뵈도 나 엄청 세. 하프 임페로들 중에선 제일로 셀 걸?”
덴은 아무 말 없이 부러졌던 레아의 왼팔을 봤다.
“...이건 그 때 방심했어서 그래.”
레아는 겸언쩍은 듯 몸 뒤로 왼팔을 숨겼다.
누구한테 쫓기가 있다거나 무슨 이유로 쫓기고 있는지는 설명이 없었다. 그렇기에 덴도 묻지 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엔 덴은 너무 큰일을 겪은 직후였다.
추격자를 의식한 탓에 그들의 여로는 숲에 난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숲을 타넘는 것이었다. 자연히 교통수단을 활용할 수 없었기에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숲이 해가 빨리 진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루드비히 숲을 사흘만에 횡단한 것도 사실은 꽤나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숲을 넘은 것은 아니었다.
“...저기, 레아.”
“응?”
레아는 덴을 내려다봤다. 후드 아래, 레아의 동그란 눈을 정통으로 마주 본 덴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렸다.
“...이거, 그... 조금...”
“왜? 어디 불편해?”
덴은 발을 꼼질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아뇨... 불편하다기보다... 부끄러운데요.”
레아는 덴을 양 팔에 안아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덴이 아직 사춘기도 안 온 어린 아이라고 해도 여성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것도 몇 시간이나 계속.
“차라리 뒤에 짐들처럼 띄워서 끌고 가시면 안 될까요.”
덴이 레아의 어깨 너머로 둥둥 떠오는 짐들을 힐끗 본다. 레아는 그런 덴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악동같은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시잃어.”
“그럼 저 차라리 걸을게요.”
“그 얘긴 아까 끝냈잖아. 너 혼자 걷게 하고 나 혼자 날면 내가 너무 나쁜 사람 같잖아?”
즐기고 있는 그 표정이 이미 충분히 나쁜 사람 같은데요. 하지만 덴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행히 나무가 점점 적어지는 숲의 외곽에서는 레아도 혹시 모를 시선에 그를 내려놓고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덴은 앞으로 여행을 할 때 절대로 숲이 있는 길은 택하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숲이 끝나고 대로를 따라 여행을 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주로 산짐승을 잡아 해결하던 끼니도, 적당한 크기의 바위나 나무를 파서 그 안에서 해결하던 숙박도 모두 여관에서 해결하게 된 것이다.
덴에게는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돈만 내면 음식을 차려주고 이부자리까지 깔아준다니. 부끄러움도 잊고 순수하게 그 편의를 즐거워하는 덴을 보며 레아는 이마를 짚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 시장 경제란.”
레아는 여관방에 있을 때는 언제나 로브를 벗었다. 덴은 실례인 줄 알면서도 멍하니 그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할 때가 잦았다.
“저 레아처럼 예쁜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요. 집 안에 예술품을 걸어놓고 매일매일 감상한다는 부자들의 심정을 조금알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기쁜 듯 화난 듯 굉장히 묘한 표정을 짓는 레아의 얼굴이 또 장관이었다. 칭찬이라고 생각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레아는 돈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리 궁핍하지도 않은 듯 했다. 음식점에서 추천 메뉴라고 적혀 있는 메뉴들은 아무리 양이 많아도 일단 시키고 봤다. 음식이 맛있었다면 팁을 주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관방은 꼭 하나만 잡았으며 말을 타지도 않았다.
“여관방은 왜 하나만 써요?”
“비상시에 따로 있으면 위험하니까.”
“책에서 읽기로는 남자랑 여자가 한 방을 쓰는 게 더 위험하다고 하던데요.”
그 말에 레아는 피식 웃으며 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위험하기엔 너무 조그마한 걸?”
덴은 레아가 망가뜨린 머리를 정리하며 다시 묻는다.
“그럼 말은 왜 안 타요?”
“사타구니 아파서.”
...쫓기는 사람치고는 참 여유롭다고 덴은 생각했다.
현재 그들이 있는 마을, 바락스에서 레티샤까지는 어차피 길이 닦여 있고 숨어 갈 방법도 없으니 정기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 부분에서는 덴은 흡족하기까지 했었다. 물론 막상 마차를 타자 워낙에 지루하고 시간이 남아돌아 아우덴의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아 힘들어 했지만.
마을을 두 개 지나 목적지로한 마을에 도착한다. 레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아직 해가 높은 곳에 걸려 있다. 마을은 규모가 작아 시계가 없지만 3시쯤 되지 않았을까 하는 높이다. 레아는 입맛을 다신다. 그냥 다음 마을까지 운행하면 안 되나. 하지만 해가 지는 시간에는 운행을 안 하는 것이 이그니스 연합 정기마차의 규칙.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혹시 급하시면 다음 마을까지 가드릴까요?”
그렇기에 정기마차의 마부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레아도 조금 당황했다.
“해 지고 도착할 것 같으면 출발 안 하는 게 그 쪽 규칙 아니었어요?”
“그건 손님을 태웠을 때 얘기지요. 관계자들만 있을 때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게다가...”
힐끗, 마부가 주변을 둘러보고 마저 입을 연다.
“손님과 관계자의 차이는... 마부 말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요?”
그러면서 손으로 은근한 손짓을 한다. 레아는 피식, 웃으며 그 손에 원하는 만큼의 액수를 쥐어준다.
“옙. 그러면 삼십 분 뒤에 마을 어귀에서 뵙겠습니다, 사모님.”
마부는 넉살 좋게 말하고는 서둘러 다른 손님을 찾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그 뒤를 보며 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아, 시장 경제란.”
“시장 경제가 뭐에요?”
옆에서 둘의 하는 양을 빤히 지켜보던 덴이 묻는다.
“돈이면 뭐든 되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잖아요?”
“하지만 도시일수록 사람이 많을수록 돈으로 안 되는 건 거의 없지.”
그리고 두 시간 후 그들은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 부딪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