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저택에 그는 홀로 앉아 있었다. 검을 한쪽 다리에 기대어 놓은 채로, 한 때 삼촌의 것이었던 거대한 의자에 앉아 빈손을 내려다보면서.
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별칭을 알고 있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쟁영웅, 온갖 명예와 영화를 차지하고 있는 걸어 다니는 권력 그 자체인 사내, ‘워치프’ 게일 블랙스미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야 그렇겠지. 모두 다 죽여 버렸으니.
그는 자조하며 손을 움켜쥔다.
가문의 이름에 기대어 살던 기생충들도, 감히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하룻강아지들도, 내가 범한 여인들의 지아비들도, 모조리 내가 손수 저승으로 보내주었으니. 공포스러워 다가올 수가 없겠지, 같잖은 것들은.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겠지, 잡것들은.
외로우냐고? 천만에. 길을 거니는 모든 여인이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여인이 곧 나의 여인이고 그 누구도 나에게 저항할 수 없다. 쓸쓸하냐고? 어림도 없는 소리. 나야말로 모든 남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이다. 오히려 내가 사라진다면 세상이 쓸쓸해하겠지.
하지만, 이 끝없는 욕망은 충족되지를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을 품어도, 그 아무리 좋은 술을 마셔도, 달궈진 강철과 같은 이 욕망은 도저히 식지를 않는다. 가치 있는 적수와 검을 맞대는 순간만이 잠시나마 담금질처럼 욕망의 열기를 잊게 해주지만, 그것은 잠시 사그라들지언정 결코 꺼지지 않는다. 달콤한 유예의 끝에 그것은 언제나 더욱 강하게 불타오른다.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아름다운 여인을 취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욕망을 충족시키기는커녕 갈증을 더 짙게 만들 뿐이다, 그녀를 향한 갈애를. 그래, 알고 있다. 이 욕망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누구를 원하는 것인지.
큰 소리와 함께, 그가 내려친 팔걸이가 박살난다. 나무가 부서지는 큰 소리가 응접실을 가득 채우고, 저택의 곳곳으로 퍼지며 한 때는 식솔들과 하인들로 북적였던 곳곳을 처량히 울린다. 가문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대장간은 불씨 한 톨 찾아볼 수 없고, 권력의 상징이었던 드넓은 만찬장엔 곡물 한 톨 찾아볼 수 없다. 불이 꺼지지 않는 저택이라고까지 칭송되며 누구나 눈도장 한 번 찍기 위해 줄을 서던 저택은 이제 불이 켜질 일이 없다.
가문이 망하였느냐고? 천만에. 황제의 눈 밖에 났느냐고? 어림도 없는 소리. 그의 가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로 인해 가문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막대한 부귀와 광막한 영화를 끌어안고 있다. 가문이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형상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의 이마에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무도 곁에 없느냐고? 그것은 그 가문의 주인이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악명을 알고 있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미치광이, 온갖 명예와 영화를 독차지하고 있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걸어 다니는 재앙 그 자체인 사내, ‘또라이’ 게일 블랙스미스. 그렇기에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한 때, 그에게도 정의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따라 가문조차 져버리고 홀로 섰으며, 사랑하는 여인이 죽는 것조차 막지 않고 홀로 섰었다. 그는 정의롭게, 충성스럽게, 올곧게 제국과 황제를 위해 살아 왔다. 그릇된 걸음은 단 한 걸음도 없었다. 그가 이룩한 승리, 일궈온 영광, 바쳐온 명예는 아직도 하늘의 별처럼 휘황찬란하게 제국을 비춘다. 허나 그렇기에 평생을 바쳐오고 일궈왔던 자신의 제국이, 자신의 정의가 사랑하는 이에게 죽음을 언도했을 때, 그는 뒤틀려 버렸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도 텅 빈 저택에 앉아 노성을 지른다.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모를 분노를 쏟아낸다. 그리고 다시 저택을 나선다. 폭력이든 성관계든 이 길 잃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혹자는 말한다. 시련과 고난이 사람을 완성시킨다고. 그렇다면 시련을 통해 완성된 모습이 부서지고 망가진 모습이라면, 망가지고 부서진 것을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누군가 그를 치료하려 한다면 그것은 완성된 것을 부수는 행위인가? 망가지고 부서진 것을 다시 부순다면, 그렇다면 남는 것은 망가진 것인가 아니면 온전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