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이 집 근처 까페 내 테이블에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자연이를 빤히 쳐다봤다.
"뭐! 왜! 뭐!"
"진짜? 진짜 안울었다고?"
"하! 야 울기는, 너 튼튼한 몸 빼면 시체잖아. 겨우 교통사고 조금 난 것 가지고 내가 널 보며 눈물이나 흘릴 거라고 생각해?"
말 없이 자연을 빤히 바라보는 준혁과 눈이 마주친 자연이 우측으로 시선을 한 번 피하고 침을 한 번 삼킨 직후 심장소리가 급격히 빨라진 것, 다시 천장을 한 번 바라보고 귓볼까지 붉어지는 일련의 행동으로 봤을 때 자연은..
'거짓말 하네'
"아니.. 너 목걸이가 잘 어울리네"
자신이 퇴원했다는 소식에 학교 강의까지 제끼고 달려온 자연을 보며 준혁이 화제를 돌렸다.
"야, 니가 그래도 보는 안목이 있네. 이게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이탈리아 명품 메이커 마세르노의 장인이 만든건데 특히 그 빛깔이..."
160cm도 안되는 작은키에 흰 피부와 작은 이목구비가 조화를 이뤄 매우 잘 어울리는 자연은 준혁의 동갑내기 소꿉친구였다.
그 작은 입으로 쉴 새 없이 떠드는 통에 정신이 없던 준혁이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제법 귀엽단 말이야, 문제는...'
쉬지 않고 떠드는 자연을 바라보던 준혁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막 퇴원을 했다고 얘기했지만 준혁이 퇴원한지 벌써 2주일이 지났다.
그 기간동안 준혁은 자신의 신체에 생긴 변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오감이 극도로 발달했다고 생각했지만..'
물론 그 생각은 병원에서 퇴원한지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사라졌다.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오감은 극도로 활성화되고, 최대로 집중했을 때 앞에 있는 사람의 피부 모공까지 보였다.
귀를 가슴에 대지 않아도 상대방의 심장소리가 들리고, 100m 밖에 있는 음식점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이런 신체의 변화 때문에 몇 번이나 자신의 눈으로 위 내용물을 봐야했다.
쓰레기장을 지나는데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오는 냄새에 토하고, 아침마다 즐겨 먹던 간장계란밥에서 강렬하게 느껴지는 짠맛에 다시 게워내고...
집중력을 통해 스스로 오감을 조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어느정도 오감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3일 전이었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절대 사양이다'
"야! 너 내 말 듣고 있어?"
혼자 상념에 잠겨있던 준혁의 얼굴 앞으로 자연이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뭐라고?"
"내 말 듣고 있냐고요 아저씨, 너 딴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면 혹시 갑자기 어디 아파?"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자연을 보며 준혁이 피식 웃었다.
"아까 누가 뭐라고 했더라?"
"뭐?"
"아니, 내가 누구한테 튼튼한 몸 빼면 시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왜 자꾸 걱정하실까"
"하! 나참 어이가 없어서 걱정은 무슨, 너 솔직히 딴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말 돌리는거지?"
"으니그등유~~(아니거든요)"
익살스럽게 대답하던 준혁이 시계를 바라본다.
"아, 근데 너 지금..."
우우웅, 우우웅.
진동으로 설정해둔 자연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하자 자연이 곧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야 잠시만. 응 나희야, 어 ? 뭐라고 ? 헐 미친 알았어. 바로 갈게. 응응 일단 끊어"
전화를 끊은 자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 큰일났다. 수업 중간에 땡땡이치고 온 거 교수님한테 걸린 듯... 나 먼저 간다!"
까페 밖으로 뛰쳐나가는 자연을 준혁이 멍하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수업 제낀거 상관 없냐고 물어볼랬는데, 이거 오감에 직감까지 발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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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쓰러진 준혁이 퇴원하던 날 걸려온 통화를 떠올렸다.
"자네 혹시 형사팀에서 근무할 생각없나?"
준혁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준혁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김용진 형사팀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 대답 시원해서 좋네. 본서 인사발령은 다음달에 전 부서 일괄적으로 하는 거 알지? 기간 맞춰서 준비하고 있어, 몸조리 잘하고"
경찰서 인사발령의 경우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누어 각각 1월과 7월에 한 번씩 있다.
신임 경찰관의 경우 의무적으로 1년 동안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를 해야하는데 이 기간을 무사히 마쳐야 정식경찰관으로 임용이 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각 부서에 있는 팀장이나 계장의 눈에 들게 되면 이런 식으로 '콜'이 들어오는 것이다.
"예! 제가 몸 튼튼한 거 하나는 누구나 알아줍니다. 그 때 뵙겠습니다"
"하하하, 거 대답은 100점. 좋아 그 때 보자"
뚝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준혁이 생각했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이야'
사실 누나를 죽인 개새끼를 꼭 잡아야만 하는 준혁의 입장에서 형사 외에 다른 부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구대, 파출소와 달리 경찰서에는 정보, 보안, 수사, 경무, 통신, 교통, 생활안전 등 워낙 다양한 부서가 있고, 그 부서에서 결원이 생긴다던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준혁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꼭 잡고 만다'
지금은 준혁의 가족이 부모님과 준혁 3명 밖에 없지만, 그 사건이 있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준혁은 8살 위로 누나가 1명 더 있었다.
12년 전, 대한민국 전 국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연쇄살인사건.
총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첫 번째 피해자가 20대 남자, 그 다음 노인, 40대 가장, 식당 아주머니 등 피해자들에게서 살인의 특별한 목적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시신의 사인도 모두 달랐고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일정기간 동안 발생했던 살인 사건이라 수사 초기에는 같은 놈의 범행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7건의 살인사건 모두 특정 인물의 범행이라고 알게 된 것은 범인이 마치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처럼 시신에 'L'이라는 글자를 조각칼로 새겨 놓은 행동과 4곳의 살인현장에서 발견 된 담배꽁초의 DNA가 모두 한 사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부터였다.
조작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서울과 대구에서 발생한 살인 현장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에서 범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하였고, 그 흐릿한 흑백사진을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한 사람의 범행으로 보고 수사가 가속화되었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준혁의 누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 놈의 연쇄살인 피해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경찰의 명예는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준혁은 그날 누나가 살해당한 장소에서 오열하던 부모님의 모습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개새끼.. 꼭 잡고 만다"
혼자 중얼거리던 준혁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