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가 있는 인천으로 이동한 경일과 준혁이 이승호의 집 근처에서 잠복을 시작한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거, 집 밖으로 더럽게 안나오는 새끼네"
초췌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경일을 바라보며 준혁이 쓰게 웃었다.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안팎으로 퇴근한다는 거 알게 된게 어디에요"
"그럼 뭐해. 출, 퇴근 할 때 말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데. 저 새끼는 술도 안마시나? 아니면 싸이코패스라서 친구가 없나?"
"그런 놈이었으면 저렇게 정상적인 직장생활도 하지 못했겠죠"
"하.. 3일이상은 안되는데... 팀장한테 대충 1)기소중지자 잡으러 간다고 둘러대놨는데 너무 길어지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그 성격에 헛짓거리하고 있는거 알면... 으..."
경일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헛짓거리가 아니게 만들면...어?"
준혁이 말하다 말고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켰다.
"왜? 뭐?"
경일이 준혁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츄리닝 차림에 모자를 쓰고 집에서 나오는 이승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퉷
"...!"
"야, 준혁아 저 새끼 방금 화단으로 내뱉은거 껌 맞지? 침 아니지?"
"예, 분명 내뱉기 전에 우물우물 거리던 걸로 봤을 때는..."
"난 역시 럭키가이"
순식간에 밝아진 얼굴로 차에서 내리려는 경일을 준혁이 급히 붙들었다.
"아 행님. 시꺼먼 봉고차에서 더 시꺼먼 남자 둘이 갑자기 내리면 이상하잖아요. 조금만 있다가 내려요"
"올... 우리 준혁군도 생각이라는 걸 할줄 아네잉?"
약 1분 뒤 이승호가 시야에서 상당히 멀어진 것을 본 준혁이 말한다.
"이제 내려요"
차량에서 내린 준혁이 아파트 화단 쪽으로 뛰어가서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분명 이 쯤이었는데..."
"야, 야. 있어? 있지?"
"아 잠시만요... 찾았다!"
잡초 위에 침 거품이 낀 껌을 발견한 준혁이 품 속에서 비닐팩을 꺼내더니 말했다.
"행님, 핀셋있어요?"
"내가 핀셋이 어딨어?"
경일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 그럼 행님 차키라도 줘봐요"
"뭐?"
"손으로 수거할 수는 없잖아요"
준혁이 이승호가 뱉은 껌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그렇다고 내 차키로 저걸 건져 올리겠다고? 니 차키 쓰면 되잖아"
"저 차키 없어요. 요즘 자전거 타고 다닙니다. 알잖아요?"
"에이 샹..."
경일이 할 수 없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준혁에게 건냈다.
열쇠로 조심스럽게 껌을 건져 올려 비닐팩에 주워 담은 준혁이 사용한 자동차 열쇠를 경일에게 돌려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집으로 가죠! 3일 떠나 있었다고 고향냄새가 간절하네"
말을 마친 준혁이 품 속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들었다.
"니 차키 없다매!"
화단에서 나뭇잎을 떼어내 미친듯이 열쇠에 묻은 침을 닦아내던 경일이 그 모습을 보고 빽 소리를 질렀다.
"이거 제 차키가 아니라 관용차량 키인데요?"
"너 이..."
"행님 1명의 희생으로 이 관용차를 쓰는 우리 직원 모두를 살렸습니다!"
말을 마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뿌득뿌득 이를 갈았다.
"절대 생각없다고 놀려서 그런 거 아닙니다"
씨익 웃으며 말하는 준혁을 보며 경일이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꼴통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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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출발하여 늦은 오후에 녹초가 된 채 사무실에 도착한 준혁과 경일을 희연이 반겼다.
"오~ 분위기는 역전의 용사들인데? 기소중지자 조사는 잘 마쳤는가?"
짐짓 표정을 숨긴 경일이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3일이나 잠복하고 오더니 못 잡았어? 어떤 놈이길래? 수배가 뭐 10건은 돼?"
급하게 출발하면서 희연과 병재에게도 자초지종 설명하지 않은 사실을 깨달은 준혁이 쓰게 웃으며 말한다.
"누나, 그게 아니라..."
"못 잡았다고?"
지금 막 사무실로 들어오던 박영우가 준혁의 말을 잘랐다.
혀를 쯧쯧 차던 영우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경일을 바라본다.
"한경일"
"예, 팀장님"
"그 정도 밖에 안돼?"
"..."
무언가 말하려던 경일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정도 능력밖에 안되면 형사 때리치워 새끼야"
"...!"
"팀장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
영우가 중간에 끼어드는 희연을 서늘하게 노려보자 희연이 입을 다물었다.
"형사짬밥 10년은 더 먹은 새끼가 수배자 하나 못 잡나?"
"...죄송합니다"
경일이 입술을 꾹 깨물며 대답하자 영우가 말을 잇는다.
"아니면 뭐 3일동안 둘이서 어디 물 좋고 공기 맑은데 여행이라고 하고 왔나? 여행 좋지! 그것도 국비여행! 기름값도 나라에서 주고, 차도 나라에서 제공해주고, 여행 잘 다녀오시라고 휴가비 명목으로 출장비도 주고 말이야"
"..."
"거, 나도 국비여행 한 번 갔다 오고 싶구먼. 요즘 몸도 영 찌뿌둥한게 사무실에만 앉아 있기 불편하네"
말을 마친 영우가 경일의 어깨를 툭, 툭 치더니 준혁은 쳐다 보지도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
"1팀장!"
자리에 앉은 영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형사1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예?"
"아 우리도 여행 한번 안갈랍니까? 공짜여행. 술은 내가 살게"
분위기를 눈치 챈 형사1팀장이 쓰게 웃으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꽈악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말아 쥔 경일이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준혁이 조용히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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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뒤, 국과수에서 회신받은 DNA 감정결과를 확인한 경일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허허허허....준혁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글자. 내가 잘못 보고 있는거 아니지?"
준혁이 경일의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DNA 감정결과 : 불일치
"씨발!"
콰직
경일이 손에 쥐고 있던 마우스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
준혁이 허탈한 표정으로 침묵하자 경일이 말을 이었다.
"불일치라고? 불일치? 이 씨발!!!!!"
경일이 또 다시 무언가 부수려는 듯이 행동하자 준혁이 급히 제지했다.
"행님..."
경일의 팔을 붙잡은 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 경일이 준혁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왜 불일치야? 왜?"
"..."
"그 새끼 똥싸러 화장실 들어갈 때 빼고는 3일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개고생했는데 불일치?"
"..."
"담배도 안피는 새끼 DNA 채취한다고 개고생, 빌어먹을 팀장한테 닦인다고 개고생. 그 결과가 불일치? 이 씨..."
"잠깐만요"
경일의 말을 준혁이 급히 끊었다.
'담배.. 담배...'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준혁이 잠시 후 경일과 눈을 마주쳤다.
"행님"
"...?"
"처음부터 3명 다 조지는거로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확률 높은 놈부터 조져보는거로 합시다"
"..."
"어쩌면... 일이 조금 더 쉽게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