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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아"
두 사람 밖에 없는 적막한 형사팀 사무실에서 경일이 조용히 준혁을 불렀다.
경일의 부름에 준혁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넌 오철식이 조사에 참관하지 마라"
"행님"
경일이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내가 안말렸으면 너 또 오철식이 반 쯤 죽여 놓으려고 했잖아?"
10분 전, 진술녹화실 안으로 거칠게 뛰어 들어간 자신을 필사적으로 말리던 경일의 모습을 떠올린 준혁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아, 너 진짜..."
"오철식이 뭔가 숨기고 있는게 있어요"
"뭐?"
준혁의 말에 경일이 놀라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급히 묻는 경일을 보며 준혁이 대답한다.
"행님이 조사할 때 오철식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구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사람 죽인 놈이 당연히 지가 죽였다고 순순히 인정하지는 않겠지. 당연하잖아?"
경일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짐작과 확신은 다르죠. 저는 오철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경일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걸 니가 어떻게 확신해? 1)거탐 태운 것도 아닌데"
자신의 감각에 대해 말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준혁이 쓰게 웃으며 경일을 바라봤다.
"행님은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뭘?"
"지금 이 연쇄살인사건요"
"그러니까 이게 뭐가 어떻게 이상하다는 건데?"
경일이 답답하다는 듯이 묻자 준혁이 대답한다.
"대부분의 살인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죠. 돈이라던가 성욕, 혹은 살아온 가정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당장 멀리서 찾지 않아도 얼마 전 오재희 사건만 봐도 치정(癡情) 문제였죠"
준혁의 말에 경일이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라는 말은 틀렸어. 싸이코패스들은 사람을 죽이는 동기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 유명한 연쇄살인마 강호선은 여자만 보면 살인충동을 느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고, 유영칠은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지만... 미친 개소리지. 그놈들은 그냥 살인을 즐기는 미치광이들이였어"
"하지만 행님이 말한 두 사람도 공통점은 있죠"
"...?"
"유영칠은 주로 부유한 노인이나 여성만을 살해대상으로 삼았고, 강호선은 더 나아가 여성들만 골라서 범행을 저질렀죠"
"그건..."
"제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오철식의 살인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데 있는게 아니에요"
"...?"
"행님 말대로 저도 오철식이 미치광이 싸이코패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니까요"
"그럼 대체..."
경일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준혁을 바라본다.
"7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이 연쇄살인사건... 과연 오철식 자신이 7명 모두를 죽인 것이 맞는가?"
"...!"
경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살인사건에서는 현장에서 확인되는 증거들만으로도 살인동기를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죠. 시신에 남아 있는 정액, 사라진 카드와 인출된 현금... 성욕과 돈이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박수홍 건으로 이미 살인 전과가 있는 오철식이 사람을 죽이는데 큰 거리낌도 없었을 거구요. 물론 오철식이 싸이코패스라는 전제하에..."
경일이 침묵하고 있자 준혁이 말을 잇는다.
"두 번째 김선미씨 시신에서도 정액이 발견 되었었죠. 그리고 복수. 이것도 충분히 예상범위 안인데..."
"..."
"세 번째 살인사건에서 뜬금없이 24살짜리 평범한 대학생 유용운이 등장했어요.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 돈? 금품을 뒤진 흔적은 전혀 없었죠. 복수? 수사결과 오철식과 전혀 연관될 일이 없는 학생이었고. 성욕은 말할 거리도안돼죠. 오철식이 게이라는 극히 희박한 확률은 배제하고..."
입을 다물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경일을 보며 준혁이 계속 말한다.
"사실 이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한 초기부터 궁금하던 사실이었어요. 이전에 발생한 연쇄살인사건들과 달리 왜 이 사건은 피해자가 이렇게 중구난방이고 살인동기도 뚜렷하지 않은가?"
"동기는..."
경일의 말을 준혁이 중간에서 끊었다.
"아무리 살인에 미친 싸이코패스라도 살인동기가 전혀 없을 수는 없어요.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도 수사결과 조현병 환자였잖아요?"
"..."
"물론 살인 자체를 즐기는 미친놈이라고 가정하면 이 사건, 이해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앞선 2건의 살인사건에서 그 동기가 너무 뚜렷하게 보였거든요"
"..."
"그래서 제가 형사팀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기로 했죠"
"...?"
경일이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은 것을 중심으로 수사할 것"
준혁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실제로 7건의 살인사건 중 4건을 제외하고는 오철식을 범인으로 볼 만한 특별한 증거도 없었잖아요?"
경일이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준혁이 말한다.
"첫 번째 살인사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와 정액. 그리고 거기서 검출한 오철식이 DNA"
"..."
"총 4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 피해자가 발생한 이 연쇄살인사건에서 실제 오철식의 DNA가 검출된 건은 4건. 모두 여성 피해자였죠"
"...!"
경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액이야 남자를 상대로 당연히 안남을 수 있지만 담배꽁초는? 오철식이 성관계 후에만 담배를 피는 특이한 놈이라서? 체포된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담배 달라고 떼쓰는 꼴초가 그럴 것 같지는 않고..."
"그러니까 니 말은 공범, 혹은 제 3자가 개입되어 있다?"
경일의 물음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나머지 3사건에 대해서는 시신에 남아 있는 'L' 이라는 글자 외에 범인이 오철식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증거도 전혀 없잖아요?"
"니 말은..."
"오철식이 단독범행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준혁의 말에 경일이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경찰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당시 오철식이 단독범행으로 몰아가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을 가능성은?"
준혁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반문한다.
"굳이 왜요?"
"전국 여기, 저기에서 살인사건이 터지고 있는데 경찰이 단 한사건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오히려 오철식이 1명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데도 그 뒤꽁무니 조차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 더 질타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결국 사람 생각하기 나름인데 위에서 그런 위험부담까지 감수해가면서 굳이 그런 지시를 내릴 것 같지는 않아요"
"니 말은 이 사건에 분명히 오철식 외에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확신합니다"
"...누나 사건은?"
경일이 조심스럽게 묻자 준혁이 표정을 굳혔다.
"제 자신을 위해서 그 사건만 다른 사건보다 우선할 생각은 없습니다"
"..."
"하지만"
"...?"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개새끼들... 전부 제 손으로 잡을 겁니다. 그러니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혁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쓰게 웃던 경일이 말한다.
"좋아"
"정말입니까?"
"단"
"..."
"조건을 걸거다. 어기면 넌 이 사건에서 곧바로 2)시마이하고 짐싸는 걸로. 절대 개입 안하겠다고 약속해라. 니가 약속한다고 지킬 놈도 아닌 거 알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만 더 믿어보마. 뭐 이번에도 약속어기면 수갑이라도 채워 놓으면 되고"
준혁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