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마산북부경찰서에서 가장 신고가 많은 동오지구대에 발령 받은 준혁은 '회식 자리에서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라는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여 '직장상사'로 추정되는 남자와 한참 실랑이했다. 

　"아니, 짜바리새끼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지랄이냐고. 어?"

　"뭐요? 짜바리새끼? 지랄? 말 다했어요?"

　"말 다했다. 이새끼야. 와 이새끼 눈빛봐라. 한대 치겠다? 너 이 새끼야 월급 누구한테 받아?"

　'시팔, 별 거지 같은게 새끼가. 너보다 내가 더 세금 많이 낸다 이새끼야'

　욱하고 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참은 준혁이 남자를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

　"아니 선생님 흥분하지 마시구요. 제가 112신고를 받아서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려고 좀 물어보는건데 왜 그렇게 흥분을 하세요"

　"근데 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냐고. 내가 죄 지었냐? 어? 죄 지었냐고 새끼야"

　"아니 선생님을 제가 언제 범죄자 취급 했습니까?"

　"그러니까, 이년이 나한테 꼬리를 쳤다니까? 신입사원이라고 조금 챙겨주고 이뻐해줬더니 성추행? 나참 어이가 없어서"

　"흑..흑....흑..."

　신고자로 보이는 20대 여자가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짜바... 아니 경찰관님? 들어봐. 이 여자가 이런 짧은 치마를 입고 부장님~ 부장님~ 하면서 옆에서 술을 따라주길래, 내가 안이래도 된다고 술잔을 뿌리치다가 손이 가슴에 살짝 닿였다고 저 지랄을 하고 있잖아. 야 맞아? 아니야? 울지만 말고 니가 한번 대답해봐"

　"흑흑흑흑..."

　직장상사로 추정되는 남자의 말을 들은 여자가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여자와 남자의 일행은 총 5명이었는데, 나머지 일행들은 계속 침묵하였고 남자는 신이 나서 더 떠들어 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에 비해 아무리 어? 좀 잘 생겼다고 해도 엄연히 처자식이 있는 사람인데 옆에서 술따르겠답시고 찰싹 달라붙어서 말이야, 이거 오히려 내가 피해자 아니야? 한 가정이 파탄날뻔 했는데!"

　'씨팔, 대머리에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만 봐도 토가 나올 것 같은데 잘도 개소리를 지껄이네'

　마음 속으로 떠오르는 말을 삼킨 준혁이 한숨을 쉬었다.

　상황을 봤을 때, 일행 중 가장 상관인 남자의 말을 다른 일행들이 침묵하는 눈치였고 여자도 힘들게 들어온 직장에 더 이상 밉보이기 싫어서 울고만 있는 분위기였다.

　"아니 씨팔 생각할수록 열받네? 어? 팔을 이렇게 휘두르다보면 좀 가슴에 닿이고 할수도 있고 그렇지, 그걸 가지고 경찰에 신고를 해?"

　남자가 팔을 휙휙 휘두르며 여자의 가슴을 때릴듯이 위협했다.

　"그만해 이 새끼야"

　"뭐? 너 이새끼 뭐라고 했어? 국민한테 새끼? 새끼라고 했냐? 너 옷 벗고 싶어?"

　"네, 국민 새끼님. 제가 너무 더워서 그런데 옷 좀 벗겨 주실래요? 여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네"

　"이 새끼가!"

　남자가 준혁의 멱살을 잡았다.

　"선생님? 지금 신성한 공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의 멱살을 잡은 것입니까?"

　"신성한 공무? 어디 이파리 2개 순경 나부랭이 새끼가 건방지게..."

　남자의 말을 듣고만 있던 준혁이 자신의 멱살을 잡은 남자의 손을 뒤로 꺾어버렸다.

　"앜! 앜! 놔 이새끼야 놔!"

　"국민 어르신, 어르신은 공무 중인 경찰관의 멱살을 잡았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이고..."

　철컥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운 준혁이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또한 저기 계신 여성분의 가슴...흠.. 몸을 마치 때릴 듯이 위협하였기 때문에 폭행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하실 수 있고요, 필요하시면 법원에 체포적부심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뭐 변명하실 말씀은 있으세요?"

　"너 이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네~ 할말 없으시면 파출소에 가서 마저 얘기들을게요. 저 죄송하지만 아가씨도 같이 좀 가주실수 있을까요?"

　직장상사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것을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던 여자가 준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네"

　"뭐가 '네'야? 너도 회사 잘리고 싶어? 씨팔. 짜바리새끼야 수갑 풀어. 어! 안풀어?"

　"네, 선생님은 일단 가만히 계시구요. 여기 타세요 여기"

　준혁이 순찰차 뒷문을 열어 남자를 억지로 밀어 넣는다.

　"놔 이새끼야! 놔 안놔!?"

　쾅

　준혁이 순찰차 뒷문을 거세게 닫았다.

　"아가씨는 잠깐 파출소에 가서 조사좀 받을 수 있을까요? 금방 끝날겁니다"

　"아 저기.. 저는..."

　머뭇거리는 여자를 바라보던 준혁을 같이 출동한 석준이 부른다.

　"조순경, 잠깐만 나 좀 보자"

　"예? 예 알겠습니다. 선배님."

　소란을 보고 몰려든 구경꾼들을 피해 석준이 준혁을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골목길로 이동했다.

　 "조순경, 왜 그렇게 막나가? 잘못하면 니가 피해볼 수도 있어"

　"예? 아니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 공집유발이라고 알아? 구타유발하고 똑같아. 저 직장상사가 아무리 쓰레기, 개새끼라도 니가 공무집행방해 상황을 유도해서는 안돼. 나중에 니가 귀찮아 질 수 있어"

　"아니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그럼 그 상황에서 참고만 있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하아.. 처자식도 없는 열혈신임한테 이런 얘기 해봐야 못 알아듣겠지만.. 아니다.. 일단 가자"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딱 봐도 저 여자, 112에 신고는 했지만 이 상태로 파출소에 데려가봐야 조사도 제대로 안될 것 같고. 결국 공무집행방해 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일단 가자"

　"하여튼 노땅들은 겁이 많아.. 이해할 수가 없네"

　얘기를 끝내고 순찰차 방향으로 이동하는 석준의 뒷모습을 보며 준혁이 중얼거리며 뒤따랐다.

　1개월 뒤 징계위원회 회의실

　".... 따라서 순경 조준혁을 1개월 '정직' 처분한다"

　'내 이럴줄 알았지..'

　참고인 자격으로 징계위원회에 출석한 석준이 고개를 숙인채 부르르 떠는 준혁을 보며 속으로 한숨쉰다.

　체포 당일, 순찰차로 돌아갔을 때 여자와 일행들은 사라진 상태였고, 심지어 전화기도 꺼둔 상태였다. 법적으로 피해자의 출석을 강제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결국 폭행을 제외하고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조사하였으나, 그 마저도 준혁이 '새끼야' 등의 부적절한 언사로 공무집행방해를 유발했다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같이 있던 남자의 일행이 경찰서에 출석하여 준혁이 공무집행방해를 유발할 상황을 만들었다고 진술하였고 1개월 뒤 오늘 준혁의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석준도 부하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1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더 씁쓸했다.

　'사람이 조직을 만드는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조직이 그 틀안에 사람을 입맛대로 바꾸는 조직이다 여기는...'

　고개만 숙이고 있는 준혁을 보며 마음속 말을 삼킨 석준이 다시 한숨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