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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도망치는 영웅
작가 : time stop
작품등록일 : 2017.6.2

겁쟁이, 비겁자, 도망자라고 불렸던 용사의 동료인 카인. 그는 마지막, 마왕과의 싸움에서 용사 로엘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죽음을 직감하고 지면에 머리를 처박은 후, 눈을 떠보니……살아 있었다.
마왕 퇴치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세계에서. 카인은, 로엘을 찾는다.

 
미쳐버린 녀석을 피해서
작성일 : 17-07-29 00:09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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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쏴?”

  “쏴.”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그녀이지만 이미 마법은 완성 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냥 쏘기만 하면 되는 상태.

  쿠웅!

  “뭐, 뭐야?”

  빽빽한 나무들 사이를 뚫고 나오는 붉은 화염 기둥에 레르헨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더 늦으면 끝이다, 진짜 죽어.

  “쓰레기!”

  덮쳐오는 화염기둥을 뒤에서 튀어나오는 그, 라우엔. 그 모습에 놀란 레르헨은, 그대로 마법을 날렸다.

  콰아앙!

  라우엔의 화염보다 더 큰 소리로 직격하는 마법.

  “쟤, 쟤는 대체 뭐야?”

  이미 맞춰놓고 느긋하게 그런 걸 물어볼 시간이 있기는 한 걸까.

  “그딴 거 신경 쓸 시간이 있냐!”

  뒤를 돌아본 나는 입술을 씹으며 말의 고삐를 붙잡았다. 이곳에 레르헨하고 나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우리의 뒤에 있는 피난민들이 문제다. 아니, 정확히는 그 피난민들이 타고 있는 ‘늑대’들이 문제였다.

  히이잉!

  “레르헨, 어떻게든 세뇌 마법 유지 시켜. 공격 마법 같은 거 안 써도 되니까, 세뇌가 안 풀리게만!”

  저 늑대는 일반적인 늑대가 아닌 마수다. 라우엔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마수와 마물들을 보냈다고 했으니, 분명 제어권은 그에게 있을 터. 레르헨의 세뇌 마법은 그 제어권을 일시적으로 가로챈 것뿐이었다. 분명, 그가 다시 제어권을 가져갈 수 있을 터.

  “잠깐, 여긴 다른 길이라고!”

  “알아, 지금은 경로를 따라가는 것보다 최대한 저 녀석한테서 떨어지는 게 먼저야.”

  늑대들의 세뇌가 풀려서, 제어권이 모두 그의 손으로 넘어간다면? 수십 마리의 늑대들이 모두 적으로 돌변해 버린다. 그것도 피난민들을 태우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끔찍한 결과는 피해야만 했다,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멀리 가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놓치지 않습니다, 도망자아아아!”

  쿠웅, 쿠웅, 쿠우우웅.

  대지가 진동하는 것이 마차를 통해 전해져 왔다. 진동의 횟수를 봐서는 마구 폭격해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근처에 가기만 해도 죽어버릴 거다.

  “잘 들어 레르헨, 세뇌 마법 풀려버리면 이제 끝장이야. 절대로 녀석한테 제어권을 뺏기지 마. 뺏기는 순간 진짜 다 죽어.”

  “아니 그러니까 대체 누구냐고!”

  미안 레르헨. 설명을 못 해줄 것 같거든. 나중에 맞을 게. 목 졸리는 건 빼고.

  “로엘, 아키르나씨, 펜터씨!”

  아무 통신석에다가 대고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쳐봤다. 지금 상태에서는 나나 레르헨만으로는 무리인 상황. 레르헨은 강한 마법사고, 공격 범위가 넓다는 이점도 있지만, 그게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피난민이 있는 경우에는, 광범위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세뇌 마법의 유지 때문에 강한 마법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위에 또 다른 최악의 상황이 덮쳐 버렸다. 로엘이나 펜터씨 같은 사람들에게 기대야만 하는 상황. 허나 지금은, 연락부터가 힘들었다.

  “로엘? 펜터씨?”

  통신석의 너머에서는 잡음만 들릴 뿐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젠장, 망할!”

  이미 경로도 엄청나게 이탈해 버렸다. 이제 내 머릿속에서 대충 위치를 유추 할 수도 없는 곳. 길도 모르고, 뒤에서 적은 따라오고.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까지 품고 있다. 미치겠네.

  그저 같이 도망치겠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되는 거냐. 더럽게 재수 없는 상황이 연속 되는 것도, 그것 때문이냐.

  난,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로엘을 구한답시고 몸을 내던져서 죽어버리고. 그래서 사람 한 명 괜히 걱정스럽게 만들고.

  그걸 알아버린 후에, 다시 반복 되는 게 싫어서. 나를 짓누르는 죄책감이, 감정이 싫어서. 로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그러니까 같이 가자면서 괜히 일을 벌리고.

  ‘개같네 진짜.’

  신이라는 녀석이 만약 이 세상에 진짜로 존재한다면. 만날 수 있는 존재라면 어서 가서 때려 패주고 싶다. 대체 뭣 때문에 내게 이러는 거냐. 어째서 마음을 바꿨을 뿐인데, 다른 이를 생각한 것뿐인데.

  어째서.

  “카인, 뒤에!”

  레르헨의 목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라우엔이냐……!”

  생각보다 마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앞에 있는 마부석 부분이 더욱. 녀석은 지금 나를 떨어트릴 작정인 거다.

  “레르헨, 미약해도 좋으니까 치료 마법 쓸 수 있어?”

  아마 쓸 수 있을 거다. 그녀는 거의 모든 종류의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뇌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치료가 가능한지가 문제.

  “세뇌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라면……간신히 피를 멎게 할 정도야.”

  역시나, 옆 동네에 대 치유술사도 아닌, 그냥 마법사. 세뇌 마법을 유지시키는 것 때문에 완벽한 치료는 바랄 수 없었다.

  “그럼 여기부터 치료해줘.”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오른쪽 손을 들어보였다. 그러고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내 손을 보고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미친, 뭐야 이거.”

  감각을 느낄 새도 없이 미친 듯이 달리고, 굴렀다 보니 내 손의 상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너 뭐하고 다닌 거야?”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레르헨은 내 손을 붙잡고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고통도 한계를 넘은 것인지 손에 감각이 죽어 있었다.

  보랏빛으로 변질되어 버린, 괴사되어 가는 내 손. 어깨까지 부러졌으니, 이렇게 최악으로 다치는 것도 참 재주다.

  “어떻게 할 수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는 단호한 말이었다.

  “못 해 이런 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괴사 상태를 조금 낫게 만드는 게 고작이야. 이런 건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한쪽 팔이 날아가 버립니다. 라는 거겠지. 상관없어.”

  어차피 올 때까지 와 버렸다. 시작을 했으면 확실히 끝매듭을 지어야 하니까.

  레르헨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순백의 빛을 확인함과 동시에,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악당이 주인공에게 시간을 주는 건,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레르헨의 한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잘 들어 레르헨, 사람들 혼란스럽지 않게 통솔 잘 하고. 아쉽게도 내 팔은 아예 한 짝이 날아갈 것 같다. 그러니까 마력 아끼고, 세뇌마법에 집중해.”

  “뭐?”

  답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우엔의 목표는 나, 그러니까.

  턱.

  마차의 난간 위에 발을 얹었다.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에 잠잠했던 이유, 그건 라우엔이.

  “이대로 쭉 가기만 해, 최대한 멀리…….”

  타앗.

  “떨어져!”

  마차의 바깥으로 뛰어 내리면서 외쳤다. 그와 동시에 마차의 바로 옆으로, 검은색의 덩어리가 스쳐지나갔다.

  쿠웅, 그리고 키아아악.

  검은 덩어리가 지면에 처박히는 소리, 그리고 거기서 검은 마물이 튀어나오는 소리.

  라우엔은 나와 레르헨이 이야기를 하는 틈을 타서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아주 강력하고, 성가신 것으로.

  “끄으으읍……망할 자식…….”

  달리는 마차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것도 라우엔의 공격을 피한다고 전속력으로 달리던 마차 위에서. 무언가 마법적인 힘이나, 푹신한 무언가의 위에 몸을 던진 것도 아니었으니. 내게 전해져 오는 충격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그나마 조금 계산을 하고 수풀로 몸을 던져서 인지, 오른쪽 팔이 완전히 나가 버리고 나뭇가지에 긁힌 정도로 그쳤다. 아니, 좋은 건 아니지.

  “여기서 죽을 것 같냐……!”

  왼손으로 땅에 손을 얹고 온 힘을 다해 당겼다. 지금 수풀 속에 있으니까, 일단은 발각 되는 걸 최대한 피해야 했다.

  그어어어어.

  동굴에서 들었었던 그 마물들의 소리에 나는 땅에 머리를 박았다. 지금은 폭발석도, 화염석도. 뭣도 없는 상황. 저 마물들을 나 혼자서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그때, 내 위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찾았습니다 쓰레기. 죽어 나자빠지세요, 나라는 악당한테……아니 정의입니다. 난 정의로워요, 아니 복수자인가요……당신을 죽이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미친.

  진짜로 미쳐버린 상태의 라우엔, 이성을 잃어 초점이 사라진 그 두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을 지리게 할 정도였다.

  “잘 가요 쓰레기. 영원히 사라져버리길.”

  라우엔의 손에서 붉은 마법진이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새겨지는 문양들. 그 모습에, 나는 죽음을 직감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다.

  끝인가?

  이제 죽는 건가?

  로엘과 같이 도망치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끝은 이렇게 개죽음이야?

  꾸욱.

  다섯 손가락을 모두 접었다. 손가락 끝에 끌려온 흙들이 손바닥의 중심 부분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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