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타고 온 소형 마차 세 대. 이건 한 번에 다섯 명, 무리하면 여섯 명 정도까지 태울 수 있다. 그에 비해 마을에 있는 건 대형 마차. 최대 열다섯 명까지 태울 수 있지만 그래도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무리를 해서 마차 위에 탄다고 해도……많이 남습니다]
우리에게는 마차도, 시간도 없다. 최선의 방법으로 고려한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면, 천천히 걸어서 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걷다가는 마물들에게 잡힐 위험이 있다.
“도보로 이동하면 발 빠른 늑대들에게 잡힐…….”
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늑……대?”
늑대. 지금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놈들이다. 꽤 발이 재빠른 녀석들. 만약 그 녀석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레르헨, 혹시 정신계 마법 쓸 수 있어?”
빠르게 레르헨과 연결 된 수정구를 집어 들고 말했다.
만약……만약 내가 생각한 게 실현이 가능하다면.
[쓸 수는 있는데……뭘 하려고?]
좋아, 쓸 수 있다면 아마 가능할 거다. 이 대 인원을 이송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마차의 해결방법이.
위험성은 조금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르헨이 조금 주의를 기울여주고, 호위를 그쪽으로 조금 더 붙인다면 가능성이 있다.
“세뇌 대상은? 한정적이지는 않지?”
[세뇌? 정신 간섭 말 하는 거야? 무생물만 아니면 쓸 수 있기는 한데……정말 뭐하려고?]
미안하지만 레르헨, 지금 바빠서 말 해줄 수 있을 거 같지는 않거든.
사각 사가각.
지도 위에 빗금을 치며 빠르게 경로를 수정했다. 경로,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면 새로운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이거다.’
이 길이라면, 그리고 그 방법이라면 가능하다. 나는 수정구를 다시 집어 들고는 레르헨에게 말했다.
“지정해 줬던 쪽 말고 일단 펜터씨가 있는 쪽으로 이동해줘, 그곳에 도착하면 연락해. 지시는 그때 내려 줄 테니까.”
[설명 안 해줄 거야?]
목소리가 날카롭다. 젠장, 미안.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일촉즉발, 계획을 수정했기 때문에 그걸 일일이 전달해야 한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펜터씨, 계획 변경입니다. 도망치지 말고 일단은 최대한 버티세요.”
[……]
“펜터씨?”
아무런 답변이 들려오지 않자 그의 이름을 재차 불렀다. 아주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그의 말소리와 함께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캉, 카앙……어, 그……형씨……카앙……알겠어, 알겠다고!]
맞아, 이 인간……지금 전투 중이겠구나.
그와 연결 된 수정구를 내려놓고 아키르나와 연결 된 수정구를 집었다. 이 통신석이라는 거 꽤 편리하기는 하지만 각각 한 개씩 밖에 연결하지 못한다는 게 단점이다.
“아키르나씨, 계획 변경이에요. 아키르나씨와 제가 통솔하는 쪽에다가 대 부분의 말을 몰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레르헨씨가 통솔하는 쪽은요?]
“어떻게든……충당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제 말대로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카가가각.
종이 위에다 거칠게 글을 써내려간다. 계획을 수정해 버렸으니 이제 인원배치와 시간까지 수정해야 한다. 꽤나 골치 아프지만 해결 방법이 이것뿐이니 원.
“……상상은 했겠냐.”
겁쟁이인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걸 하고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냐.
탁.
깃펜을 내려놓는다, 지도를 말아서 한 손에 들고.
“이제 시작이야.”
이렇게 중얼거렸다.
“2열, 3열로 이동합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손을 모아서 어떻게든 크게 외치고는 있지만, 젠장. 사람의 목소리라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조용! 모두 조용히 하고 이동합시다!”
사람들을 아무리 조용히 시킨다고 해도 몇 백 명이다. 몇 백의 숫자가 소곤소곤 중얼거려도 결국은 엄청 시끄럽다.
수백의 사람들, 그리고 몇 대 안 되는 마차들.
마차의 수는 소형 네 대, 대형 다섯 대다. 말들은 총 열 다섯 마리. 대강 계산해 보자면 말 한 마리가 남지만, 그렇다고 말이나 마차의 수가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보완하기 위한 게…….
“저기, 레르헨? 괜찮은 거 맞지?”
크르르르…….
붉은 색의 털, 그리고 위협적인 울음소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펜터와 용병들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던 녀석들이었다.
“모, 몰라! 네가 시킨 거잖아!”
원래라면 처치해 버려야 할 녀석들이지만 레르헨에게 부탁해서 세뇌 마법을 건 녀석들이었다. 일정 반경 이내에서만 벗어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나.
말과 마차의 수는 부족하다. 하지만 정말 짜증나게 몰려오는 녀석들의 수는 아직도 차고 넘쳤다. 그리고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 말을 제대로 탈 수 있는 인간들도 없다.
“물려 죽지는 않겠죠?”
“아키르나씨……불안하니까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솔직히 나도 불안하단 말이다. 실제로 마물 같은 걸 세뇌해서 말 대용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아니, 그냥 역사서 어디를 뒤져 봐도 이런 상황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
“형씨, 이거……괜찮은 거 맞아?”
“이, 이 녀석들은 방금 전에 저희들 공격했던 놈들 아닙니까!”
“죽여, 죽여야 합니다. 안 그럼 저희가 죽어요, 죽는다구요!”
역시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격을 당했었던 용병들의 반발이 심하다. 그들은 무서운 거다, 확실히 위험한지 아닌지 모르기에.
“어차피 놈들 산더미로 몰려와도 저희들 다 뒤져요 뒤져. 이 녀석들 이용해 먹기 싫으시다면 혼자 가서 죽으시던가.”
이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방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마물들에게 따라 잡혀서 모두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하지만……!.’ 한 용병의 말에 펜터는 손을 뻗었다. ‘그만’. 그의 한 마디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용병.
“……우린 뭘 하면 되지 형씨?”
이런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또 죄책감을 느끼게 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맡기지 않는다면, 결과는 최악으로 흘러간다.
“마을을 지나려는 마물들을 막아 주십시오. 처리할 필요는 없고 방어 만요. 최대한 시간만 끌어주시면 됩니다.”
말이 막아달라는 거지 실제로는 죽기 딱 좋은 일이었다.
“……후우.”
그는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더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용병들에게 말했다.
“들었냐? 할 놈들은 가고 남을 놈들은 남아라. 물론, 제대로 된 경로로 못 가서 죽던 말던 나랑 아무 상관없는 거고.”
“대, 대장? 하지만!”
용병들은 도망을 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기네들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도와야하지?
싸울 이유가 없다. 그래서 돕지 않는 것, 써먹을 수 없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길을 모르면 아무데도 못갑니다.”
그나마 별일 다 겪어봤을 법한,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용병이 입을 열었다. 저 사람도 알고 있는 거다.
길을 대충 알고 있겠지만 그 길이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섣불리 행동하지 못해.
싸우지 않을 거라고? 그럼 싸우게 만들어 주마.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서, 뭐든 이용해서라도.
“……레르헨, 통솔을 부탁해. 아키르나씨도요. 일단 처음에는 다 같이 가다가, 중간에서 세 무리로 찢어질 겁니다.”
지금 피난은 마을이 이미 한 차례 뒤집어진 후에나 가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공격이 진행 되려는 도중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빠져나가야 하는 게 관건.
느긋하게 걸어갈 시간은 없다. 마차를 끌어서 미친 듯이 달려야만 했다.
“꼬, 꼭 도망쳐야 하는 겁니까?”
마을의 촌장, 그가 갑작스레 내게 물었다.
꼭 도망쳐야만 하냐고? 장난해?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건지.
“이, 이 마을은 저희가 수십 년 동안 사, 살아온 곳인데……꼭 버려야 하는 겁니까?”
그 마을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린다. 당연하다, 쭉 이곳에서 살아 왔는데 이 마을을 버리라고?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어떻게 좋게 포장을 해 봐도 이들은 화전민들이다. 그 어느 곳에 가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이 마을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거다.
“……괜찮을 겁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목적지로 향하는 곳은 라이너스 영지에 정식으로 소속 된 곳이다. 갑자기 우르르 몰려간다고 받아줄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마을에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그, 그것보다 대체 이 마을이 습격당하는 이유가 뭡니까?”
“저라고 알겠습니까? 지금은 안 죽게 최대한 피신하는 것뿐이죠.”
마을이 습격당하는 이유 같은 거, 나라고 알겠나. 아니, 애초에 이 마을이 습격당할 이유부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수도권 지역도 아니고, 그저 화전민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
이런 곳을 공격해도 아무 이득도 없고 오히려 손해만 볼 뿐이다. 그런데도 공격을 할 이유를 찾는다면.
‘로엘.’
용사인 로엘을 없애기 위한 공격.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그런지는 모른다. 아니, 애초에 이 지역에서 용사인 로엘을 대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일단 촌장님. 마차에 타세요. 이제 출발을…….”
쿠웅.
진동이,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