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형씨. 좋은 아침!”
펜터, 라고 했었나. 그의 굵직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진다. 그런데 잠깐……왜이리 무겁지?
후드득.
몸을 천천히 일으키려고 할 때마다 강한 무언가가 내 몸을 짓눌렀다. 그리고 흙먼지들이 떨어져나갔다.
“이, 이게 대체…….”
내 몸 위에 누워 있는 무언가를 한 손으로 밀어서 치웠다. 막혀 있던 팔에 다시 피가 통하니 저릿하다.
쿠웅.
꽤나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히는 나무판자. 잠깐, 나무판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성하고, 조각이 나있다.
나무판자는 아니고, 손잡이 같은 게……가 아니라 그냥 손잡이다. 철로 된 단단한 손잡이. 그게 한 쪽에 달려있었다.
새애애액, 한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 방의 출입구라 할 수 있는 문짝이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뭡니까 이거?”
자고 일어나 보니 나무문이 부서져있다. 무슨 전개냐 이건?
“아아, 지금 마을에 꽤 큰일이 났다고. 고용주씨가 그러시던데. 형씨를 불러오라는 부탁을 받고 여기에 왔는데……아쉽게도! 문이 잠겨있었지.”
그래서 부순 거라는 건가? 문이 잠겨있다는 이유로?
당신이 강도야, 주택 침입범이야 뭐야. 대체 어떻게 되면 문을 부숴버리는 선택지가 나오는 거냐고.
“아니 왜……일단. 그 문제라는 게 뭐죠?”
“응, 그게…….”
그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 로엘을 만나기 전 생각하는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제발 어떻게든 좀……!”
“촌장님, 저한테 부탁 하셔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을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는 촌장의 집. 다른 사람들의 집과는 크기나 외형부터가 차이가 있었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아키르나의 옷깃을 붙잡고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어떻게든’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촌장이었다.
“오오, 요, 용사님! 제발 어떻게든 해 주십시오. 어서 이 상황을, 빨리 어떻게든!”
그는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목표를 변경해, 내게 달려들어 내 옷깃을 붙잡았다.
이건 뭐, ‘어떻게든’이라는 말을 안 하면 병이라도 걸리는 건가.
“진정하세요 촌장님. 일단 지금 상황은?”
만약 내가 펜터에게서 들었던 말이 거짓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상황은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다.
“그, 그게.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게 분명합니다.”
정정한다,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최악의 수준이다.
“……최악이네요.”
지금 이 마을의 상태. 내가 펜터에게 들은 말은.
‘마물……?’
‘그래, 그것도 대규모의 군단이 이쪽을 향해서 진군하고 있어. 마을 주변을 순찰하던 두 명이 발견해서 허겁지겁 달려오던데?’
갑자기 마물이라니, 그것도 대규모의.
‘아마 곧 있으면 이 마을에 도착할 거야.’
갑작스러운 마물의 공격. 이유는 모른다, 무엇이 목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로엘이.”
로엘이, 용사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 마을은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버릴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촌장이 내 옷깃을 붙잡고 말하는 거다. 어떻게든 용사를 설득해서, 저 놈들을 좀 막아달라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키르나, 그가 나에게 묻는다.
도망칠 거냐고, 아니면 도움 거냐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들을 도울 이유는 없다. 이건 아키르나도, 펜터도, 호위로 고용된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로엘에게도 적용 되는 거다. 아무 상관도 없는 마을을, 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로엘 본인은 이 마을을 구하려 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로엘을 이용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곳. 부서져도, 사라져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로엘은……바보 같은 녀석이니까, 너무 정직하고 착한 녀석이니까. 저와는 다른 녀석이니까, 그러니까…….”
로엘은 이 마을을 버리려고 하지 않을 거다. 지키려고,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울 거다. 마을에 사는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모른 채.
“그러니까……로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도망치지 않아. 두렵지만, 무섭지만 로엘이 있으니까. 그가 해결 해줄 테니까. 괜찮겠지.
‘미안해 로엘……!’
괜찮겠지.
‘나는……나는……!’
괜찮아.
‘로엘은……네 동료잖아!’
동료다, 그래서 나도 녀석을 정신 차리게 하러 가잖아. 그리고 녀석이 정신을 차리면 싸워줄 거야, ‘언제나’와 같이.
“아키르나씨, 일단 신전으로…….”
탁.
거기서 턱, 하고. 말문이 막힌다. 아니, 정확히는 숨이 순간적으로 탁하고 막힌다.
“……시끄러워.”
그녀의 주홍빛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내 목에 스태프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그렇게라도 하려는 거야? 이미 늦었어. 너는 그날 로엘을, 우리들을 버렸어.”
“레르헨…….”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난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서, 짜증나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로엘을 버리고 도망칠 했을 때 그녀는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왜 도망 치냐고, 로엘을 구하러 가지 않는 거냐고 물어 봤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답했다. 아니, ‘변명’했다. 나는 약하니까, 강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냥 죽어버려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그런 나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강자다. 그와 달리 나는 약자. 서로의 입장이, 위치가 다르기에 이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절대 못 보내. 네가 다시 로엘을 버려버린다면, 다시 도망쳐버린다면. 로엘은 무너져 내릴 거야, 산산조각이 나서 형체조차도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릴 거야.”
“나는 도망을…….”
“도망치지 않겠다는 소리 집어 치워. 다른 사람이 아닌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
맞다.
다른 이도 아닌 나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도망을 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걸.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도망을 친다는 건, 버리는 게 아닌 도망을 친다는 건.
“어디 한 번 도망쳐 봐, 이번에는 끝까지 쫒아가서 너를 죽일 테니까……!”
내 등을 기어오르는 그녀의 살기에 다시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던 그녀는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마 그날 이후로 바뀌어가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난 도망칠 거야.”
숨기지 않는다, 거짓이 아니다.
거짓이 아니기에, 사실이기에 그녀의 얼굴이 더욱 증오로 물들어 간다. 그녀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거다. 아직 어린 소녀가, 내게 살의를 품고 있는 거다.
“너는……어떻게 바뀐 게 없어? 미안하지도 않은 거야?”
미안해, 그리고 나는 바뀔 수 없을 거야.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아니야, 내가 도망친다는 건. 달라. 지금은 나 혼자서가 아니야.”
지금은 다르다. 아니, 다를 거다. 나 혼자서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믿어줘.
“나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어. 맞서 싸울 수 없어. 약하니까, 도움도 안 되는 존재니까.”
언제나 버릇처럼 내뱉던 변명이었다. 언제나 자기 합리화를 위한 이유였다.
“넌 아직도……!”
“그렇지만.”
그녀의 말을 끊어버린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내 생각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도망칠 수는 있어. 도망치는 거 하나는 잘 해. 그러니까 나는 도망칠 거야. 그런데 예전과는 다르게.”
로엘과 함께.
나 혼자서가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으면. 도망치는 것만 잘 한다면 차라리 로엘과 함께 도망치겠다. 그것뿐이다.
“로엘과 같이, 너와. 모든 사람들과 함께 도망칠 게. 버리지 않을 게, 그러니까.”
믿어줘.
“…….”
그녀는 입술을 깨문다. 내게 더 많은 답변을 요구하려는 듯이 입을 열다가, 멈춘다.
아직 제대로 믿지 못하는 거다. 그렇기에 고민하고 있는 거다. 자신의 앞에 있는 나를, 한 번 누군가를 버렸던 나를 믿어야 하는지.
“믿지 못하겠는 건 알아. 혼란스러울 거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부탁이야 믿어줘.”
“……넌.”
“난 겁쟁이고, 매일 도망만 쳐. 그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야. 내가 로엘을, 다른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친 게 문제잖아.”
같이 도망치면 되는 거잖아. 누군가를 버리지 않으니까. 같이 도망치니까.
“…….”
“로엘에게는 미안해하고 있어, 그래서. 로엘을 버릴 생각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