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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도망치는 영웅
작가 : time stop
작품등록일 : 2017.6.2

겁쟁이, 비겁자, 도망자라고 불렸던 용사의 동료인 카인. 그는 마지막, 마왕과의 싸움에서 용사 로엘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다. 죽음을 직감하고 지면에 머리를 처박은 후, 눈을 떠보니……살아 있었다.
마왕 퇴치후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세계에서. 카인은, 로엘을 찾는다.

 
도망쳐 버렸어
작성일 : 17-06-07 22:21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4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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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뭘로 보는 거냐고, 적어도 나는 사고 치지는 않거든?”

  “펜터씨는 존재 자체가 사곤데요?”

  “어, 어이 고용주씨 너무하잖아!”

  갈색 머리카락의 남성, 펜터는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었다.

  “아니 진짜 사고 안 친다니까?” 뒤를 돌아 몸을 걸치고 말하는 그에게, “네에, 그러시겠죠”라며 비꼬는 아키르나. “그런데 저번에 물건 몇 개 부숴 드셨더라?” 그 말에 펜터는 머리를 싸맸다.

  “으, 음. 한 개……아니 두 개인가?”

  “여섯 개. 그것도 비싼 것들로만.”

  “그, 그런가?”

  가볍게 한숨을 내 쉬는 아키르나, 그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로엘에게 말했다.

  “어찌되었든, 곧 도착이네요.”

 

 

 

 

 

  “하아, 로엘. 쉴 시간은 없겠네.”

  아키르나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묵게 된 여관에 짐을 내려놓으며 나는 로엘에게 말했다.

  거의 쓰지 못한다고 할 상태인 로엘의 검을 새로 장만하기 위해 이 마을에 들렸다. 조금만 있으면 밤, 어지간한 대장간들은 문을 닫게 될 시간대였다.

  “그러네, 그냥 내일 갈까…….”

  “아니 그냥 지금 가자. 귀찮아.”

  한동안 개고생을 했는데 내일 가자고? 아니, 내일은 쉴 거다.

  가방 깊숙한 곳에 쑤셔 넣어놨던 돈을 끄집어 냈다. 많다고 할 만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뭐 하나 살만 하겠지.

  “빨리 가자, 안 그러면 문 다 닫겠다.”

  이제 닫을 시간대가 된 거지 아직 닫은 건 아니었으니까. 찾아보면 있을 거다.

  “……로엘?”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로엘에게 물었다. 로엘, 뭐해 대체?

  “아, 아……응. 빨리 가자 카인.”

  “뭐야……정신 좀 차리고 다녀.”

  “……그래 카인.”

 

 

 

 

  “역시 다 닫은 거 아닐까…….”

  “아니, 있을 거야.”

  실로 불길한 소리를 내 뱉은 로엘과 함께 밤의 거리를 걸었다. 차가운 공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아직도 영업을 하는 가게가 없다는 건 꽤나 나빴다.

  “……젠장.”

  밤의 거리는 언제 봐도 좋다. 밤만의 그런 운치가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밤의 거리 따위가 눈에 들어오기는 하냐.

  “로오오엘!”

  그때, 로엘의 목덜미를 누가 뒤에서 와락 껴안는다. 주홍색 머리카락의 소녀 레르헨이었다.

  “이 시간에는 무슨 일로 나오셨나요?”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남성, 아키르나.

  “아, 그게……로엘의 검을 사야하는데 이 근방에 있는 상점들은 이미 다 문을 닫은 것 같더라구요.”

  “저쪽은 아직 열려있는 것 같은데요?”

  “예?”

  아키르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말대로 그쪽에서는 희미하지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로엘, 가자! 뛰어!”

  급하게 로엘의 손을 붙잡았다.

  “잠……로엘!”

  “미, 미안 레르헨. 나중에 이야기하자!”

  희미한 불빛을 목표로 잡고 미친 듯이 달렸다. 왜냐하면…….

  “아저, 아저씨! 스톱! 스토옵!”

  지금 저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 중이란 말이다!

  가게의 바로 앞까지 다다라서.

  콰앙!

  문틈 사이에 어떻게든 발을 끼워 넣었다. 젠장, 찍어서 아프다.

  “지, 지금 하죠?”

  “아, 네, 네. 지, 지금 영업하겠, 아니 합니다.”

 

 

 

 

  “어때 로엘. 마음에 드는 게 있긴 해?”

  “그게…….”

  이리저리 검을 돌려보는 로엘. 아직 마음에 든 걸 찾은 건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어떠십니까.”

  딱 봐도 대충 골라온 티가 보이는 검 한 자루를 내미는 가게 주인.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고 있는 장검이었다. 하지만 딱히 화려하지도, 무언가 특별한 재료를 쓴 것 같지도 않은. 한 마디로 창고에서 처박혀 있던 것들 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온 듯한 물건이었다.

  “추천을 할 거면 제대로…….”

  “아니야 카인, 이거 꽤 괜찮아 보여.”

  “……진심이야?”

  괜찮아 보인다고? 이게?

  검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살짝 쓸어보았다.

  “어이 주인장, 이거 뭡니까 이거. 이딴 거 추천해도 되는 거에요?”

  손가락 끝에 옅은 먼지가 듬뿍 묻어 나왔다. 며칠 정도가 아니라 몇 개월을 처박아놔도 이렇게는 안 될 거다.

  “안 살거면 내려 놓으슈.”

  “무슨 사람이……!”

  티잉.

  동색의 동전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일정 속도까지 올라간 후, 지상으로 천천히 낙하를 시도하는 동전.

  “읏차.”

  카앙!

  로엘이 그저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동전은 케이크 자르듯이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저 단단한 금속을 그냥 힘으로 잘라?

  “거, 거봐요. 아, 아직 쓸 만한데.”

  이런 검을 누가 사냐고 따지려던 순간에, 로엘은 결정을 마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이 말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자, 잠깐. 너 진심이야? 이걸 산다고?”

  “응.”

  이 허접한 물건을 산다니, 제정신이 맞는 건가?

  “자, 계산 다 됐으니까 안녕히가슈! 빨리!”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덥석 문 주인장은, 로엘에게 검을 주고는 우리 둘을 가게의 바깥으로 밀어냈다.

 

 

 

 

  “내가 다시는 가나 봐라.”

  그렇게 투덜거리며 나는 거리의 위를 걸었다. 그냥 순식간에 확 하고 망해버려라 저딴 가게.

  “카인, 그래도 난 정말 이게…….”

  로엘의 말이 갑자기 멈춘다.

  “그게 좋다는 소리 좀 제발 그만…….”

  나 역시, 자동적으로 입이 굳어 버렸다.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그리고 가까워져만 오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까지.

  로엘이 말했다.

  “카인, 저건……!”

  “가자 로엘!”

  급하게 로엘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달리는 방향은 불길이 피어오르는 쪽의 반대.

  “카, 카인?”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저쪽으로 가서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괜한 영웅심 부리지 마. 제발……어서 도망가자. 여기 있으면 죽어!”

  여긴 작은 마을도 아니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다. 저 정도의 공격을 당하고도 아직 진압이 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 위험한 것들이 공격을 해왔다는 것.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은 함부로 나서면 죽는다. 로엘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위험하다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로엘은 내 손을 뿌리쳤다.

  “난 사람들을 구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갈 거야.”

  “어차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야. 생판 남이라고! 그런 녀석들한테, 넌 목숨까지 걸어야 해?”

  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거지만, 로엘의 영웅심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바라지도 않고 구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뛰어든다. 왜인지, 로엘 자신이 구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로엘이 말했다.

  “카인, 내가 약해서. 아무것도 못해서 구하지 못하는 건 괜찮을 지도 몰라. 말 그대로 못 하는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스르릉.

  로엘은 가게에서 샀던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의 난 그렇지 않잖아. 가지 않으면, 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게 되어 버리잖아.”

  “……이해 할 수 없어.”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싶은 건데? 구하지 않은 거랑, 못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죽을 수 있다고, 위험하다고.

  “미안 카인, 난 갈게.”

  그리 말하며 로엘은 저 멀리 달려 나갔다.

  “…….”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달려 나간 로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 할 행동은.

  “젠장!”

  입술을 세게 깨물며 미친 듯이 달렸다. 로엘을 따라서? 아니, 로엘이 달려간 쪽의 반대로.

 

 

 

 

  “젠장, 젠장……제기랄!”

  가방 안에 물건들을 우악스럽게 쑤셔 넣었다. 어차피 난 로엘을 돕지도 못하고, 도움도 안 되니까.

  ‘한심해, 한심하다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해봐도 살고 싶다는 욕구는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쿠웅!

  가방을 들쳐 메고는 거칠게 방의 문을 열었다. 1분 1초가 급하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죽는다!

  ‘미안해, 미안해 로엘……하지만……!’

  타오르는 불길들의 바로 옆을 스쳐지나 간다. 꽤 공격이 진행 된 것인지, 곳곳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사, 살려…….”

  나를 향해서 손을 뻗는 한 사람. 다리가 건물의 잔해에 깔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제발…….”

  양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시선은 앞, 그리고 땅바닥으로.

  ‘도망쳐, 살아. 그것만 생각해.’

  미친 듯이 달렸다. 틀어막은 두 귀의 틈새로 살려달라고, 도와 달라고. 그런 외침이 파고 들어왔지만 모두 무시하고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달리고 있던 도중,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낚아챘다.

  “우, 우와아악!”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는 내 몸, 그와 동시에 흩날리는 주황색의 머리카락.

  레르헨, 그녀가 말했다.

  “카인! 로엘은 어디 있어?”

  “레, 레르헨?”

  그녀가 스태프를 가볍게 휘두르자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내 몸. 이게 마법이라는 건가.

  “지금 아키르나씨랑 다른 상단 단원들은 모두 저 안쪽에 있어. 넌 지금 여기에 있고……로엘은?”

  나는 대답 대신에 레르헨이 말했던 안쪽을 가리켰다.

  “역시 안쪽에……그런데 너는?”

  “난.”

  뭐라고 말 하려다가 말이 막혀 버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도망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애한테?

  “살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꺼낸 답이 이것. 살고 싶다는 그 욕구를 솔직히 말하는 것.

  “……도망치는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러자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그녀의 얼굴.

  “로엘은 어쩌려고 그러는 건데?”

  “로엘은 강하잖아. 죽지 않아, 살 수 있어. 그리고 애초에 로엘 본인이 선택한…….”

  “로엘은.”

  그녀는 갑자기 내 말을 끊었다.

  “널 구해줬다면서. 그런데, 너는 안 구해주는 거야?”

  “못 구하는 거야 레르헨. 난 약하잖아.”

  “못 구하는 게 아니라!”

  그녀는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한데 모여 있었다.

  “구해야지! 로엘은……네 동료잖아……!”

  “아니야……나는, 로엘은……!”

  약하고, 강하잖아.

  “미안.”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미안,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렇지만…….”

  미안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어. 그렇게 덧붙이며, 나는 다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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