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다닥.
불꽃이 타오른다. 익숙한 소리, 하지만 익숙한 사람은 없을 거다.
“…….”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옆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따뜻한 수프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푹 자시더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흑발의 그, 아키르나.
아키르나가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있다, 따뜻한 수프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얼마나 남았죠?”
“하루입니다.”
아침에는 사흘이라고 말했다. 허나 지금은 하루가 남았다고.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삼일 내내 잠을 잤을 리는 없다. 그렇다는 건…….
‘떠보지 않겠다는 건가.’
마음을 바꾼 건가? 갑자기?
“아키르나씨.”
“네.”
“……예전 일이 떠오르네요.”
그는 기억하고 있을까. 나를 싫어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의 전 모습을.
“……그때는 몰랐죠. 당신이 이런 쓰레기 인줄은.”
기억하고 있구나. 그것도 확실하게. 아마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충격적이었을 테니까.
“그러게요……지금은, 지금은……쓰레기네요.”
과연 그럴까, 내가 쓰레기라는 게.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잘못을 한 것인지 아닌지. 살고 싶다는 욕구를 잘 따랐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는지, 동료를 구했어야 했다고 말해야 하는지.
당연한 ‘행동이었다.’와 ‘아니다.’라는 두 의견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젠장, 대체 어쩌면 좋지? 뭐가 맞는 거지?
‘후자……겠지.’
알고 있잖아, 내가 잘못한 걸. 그래서 사죄했었잖아. 로엘에게, 그들에게. 나에게.
결론만 추출한다. 내가 잘못했다는 결론, 하지만.
‘……언제 바뀔지 몰라.’
언제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다른 핑계를 대며 도망칠 게 분명하다. 도망이라는 것은 카인이라는 인간의 근본, 본질.
도망치지 않는다?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이미 겁쟁이 인데다가, 수도 없이 도망을 쳐왔으니 몸이 익숙해져 있을 거다.
바뀌지 못하는 건가. 평생 겁쟁이라는, 비겁자라는 말들을 앞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가.
“……왜 도망치시는 겁니까?”
저번에 내게 던졌었던 질문, 그 질문을 재차한 다는 것은. 더 정확한 대답을 바라는 거겠지.
도망, 왜 도망치냐. 동료를 버릴 정도로 도망을 쳐야 하는가.
질문에 답할 수 있나? 아니, ‘지금은’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은……지금의 저는 대답을 해드리지 못할 겁니다.”
겁 많고 비겁하지만, 지금의 나는 극히 정상이다. 아직 어떠한 위협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기에 누구와 다른 것 없는 정상인이었다.
“도망칠 때면, 무서워 질 때면 제 머릿속은 스스로 자기합리화의 결과물을 던집니다……그리고, 그걸 위안 삼아서 도망칩니다. 왜 도망치는 지는……도망 칠 때의 저에게 물으세요.”
“……이해할 수 없군요.”
“저도 이해 못 합니다.”
나에 대해서, 그러니까 카인이 아닌 자기 자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완벽하고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 하나?
없다, 나조차도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카인이라는 인간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여! 툭 치면 부러질 것만 같은 형씨!”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들어본 목소리이다. 그것도 최근에.
“펜터씨, 시끄럽습니다.”
연갈색 머리에 조금 험악해 보이게 생긴 남자. 외모와는 다르게 꽤나 호탕한 사람인지 그는 아키르나의 말에 웃었다.
“하하하하하, 내가 원래 좀 이래서 말이야. 그래서, 고용주가 싫어하시는 그쪽 형씨는 좀 어때?”
본적이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그의 상단의 마차를 얻어 탔을 때 보였던 사람. 그러니까, 꿈속에서 아키르나가 중지를 들어 올려 보였던 사람.
“별 문제는……없습니다만.”
“아하하하, 그럼 됐어. 피곤하면 도망도 못 치니까!”
그 말에 소름이 돋아났다. 입안이 바짝 말라버렸다.
그때 아키르나의 마차에 있던 사람이라면. 내가 그때 그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걸아는 사람이다. 아마 버리고 간 사람들의 사이에 있었을 거다.
분명 내가 도망친 걸 아는데, 쓰레기라는 걸 아는데도 이 사람은 내게 이렇게 다가와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말을 건넨다고?
그 얌전하던 아키르나도 내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감정이라는 것이 숨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떼어내지는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내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고?
“도망…….”
“엉?”
“도망 친 걸……알고 계실 텐데…….”
그 말에 잠시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역시, 맞다. 그는 그때, 그 상단에.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도망쳤을 때, 그걸 보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에이.”
허나 굳었던 것도 잠시, 그는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굳은 얼굴을 풀었다.
“그때 그 도망 말 하는 건가? 형씨도 참, 오래전 일을 뭘 그리 신경을 써.”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 하는 그. 대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걸까.
“……그 일은 신경 쓸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동료를 버리고……!”
그 말에 아키르나, 그가 말했다. 그래, 이게 원래의, 당연한 반응이다.
펜터, 그는 아키르나의 등을 강하게 두드렸다. 아니, 두드리기 보다는 강타했다고 봐야겠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아키르나가 마른기침을 내 뱉었으니까.
“우리 용병들은 돈 밝히고, 여자 밝히고 위험한 일일 거 같으면 튀는 족속들이걸랑. 몸이 곧 재산이니까. 몸뚱아리 없으면 일을 못해요.”
“그게 쿨럭, 대체 무슨……쿨럭.”
“근데, 그런 족속들이어도 동료는 버리지 않아.”
“그렇다면 결국에는……!”
“하지만.”
하지만.
그 한 단어가 아키르나의 말을 저지했다. 그의 표정에 골고루 분포 되어 있던 웃음기는 싹 가신지 오래였다.
“신입 녀석들은 동료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쳐. 그게 왜인지 아나?”
모른다. 난 용병이 아니니까, 그쪽이랑 관련된 일을 해 본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죽기 싫은 거지, 자기 목숨이 우선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게 나쁜 건가?”
나랑 같다. 나도 내 목숨이 먼저고, 동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로엘을 ‘동료’로 인식하고 있던 게 맞았나?
“살고 싶으니까 도망쳤어. 도망치지 않고 동료부터 챙기는 놈들은 나 같이 용병일 꽤나 해본 놈들이야. 베테랑이란 소리지.”
엄청 굴렀단 이야기지 뭐.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같은 놈들한테는 배짱이 있거든. 죽지 않고 동료를 챙길 수 있는 배짱이. 그놈들한테는 없는 거고.”
배짱이라면. 용기를 말 하는 건가?
누군가를 지킬 용기, 구할 용기, 같이 도망칠 수 있을 그런 용기.
“뭐,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대놓고 도망치지는 않지만. 아하하하하!”
……대체 뭐가 결론인 거지? 내가 나쁜 거라고 말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 하고 싶어 하는지.
“형씨한테는 그 배짱이 없는 거지 없는 거야. 아, 배짱 같은 거 없어도 세상 사는데 문제는 없으니까 걱정마슈!”
그 말과 함께 호탕하게 웃는다.
“……그냥 저기로 꺼지세요 펜터씨.”
꿈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그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예에 예에, 용병은 이만 갑니다요!”
느릿하게 다른 마차 쪽으로 걸어가는 펜터. 그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내일이면 도착입니다.”
도착이라. 내일이면 라이너스 영지에. 용사가, 영웅이. 로엘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걸까.
“도착했습니다.”
아키르나, 그의 말에 마차에 달려 있는 창문 바깥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아는 라이너스 영지와는 조금 달라보이는 곳이었다.
“여긴……?”
작은 마을, 소수의 사람들. 그저 하루 일하고 하루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
“화전민들의 마을입니다. 정식으로 소속 된 건 아니지만, 이 마을부터가 라이너스 영지입니다.”
로엘씨는, 이 마을의 중앙에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겉에서 봤을 때에는 그리 커 보이는 곳이 아니었지만, 안으로 마을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의외로 넓어 보인 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곳은…….”
이런 곳이 언제부터 존재 했던 거지?
아마 2년 이라는 사이에 만들어 진 건 아닐 거다. 아무리 화전촌이지만 이 정도의 규모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건데……왜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거지?
탁.
마을의 안으로 발을 들였다. 먼저 앞서 나가는 아키르나의 뒤를 쫒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부인을 수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아이들. 그리고 빽빽하게 들어선 작은 집들.
아키르나의 뒤를 따르는 나, 그리고 그 뒤를 또 따라오고 있는 펜터와 다른 호위들.
“……조심하십시오.”
한 집의 앞에 멈춰서, 그가 내게 말한다. 조심하라고, 무엇을?
“그게 대체 무슨……”말을 제대로 잇기도 전에.
‘어, 어……라?’
몸이 굳는다. 순간적으로 탁, 하고 멈춘다.
내가 자의로 멈춘 게 아니다, 어떠한 물리 법칙도, 마법도 지금의 나를 붙잡아 두고 있지 않았다.
‘뭔가, 뭔가가……!’
손이, 발이. 몸이, 내 입이 떨린다. 공포에 잠식당하며 ‘겁쟁이’의 본능이 깨어난다.
‘도망쳐, 도망쳐, 어서 도망쳐.’
그래야 산다, 도망쳐. 어서, 빨리. 지금이라도 몸을 당장 움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