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라는 게,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영웅이라는 한 단어 때문에. 마음속에 작게 품어둔 동경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른다.
“……끝내라 로엘.”
무너지면서, 죽어 가면서 그에게 말했다. 부탁한다고, 다른 누군가에게. ‘영웅’에게.
초라하다, 비참하다.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 장소에서 천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뭐가 영웅이냐.
바라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토록 원했건만, 나는 결국 용사의 동료로, 아니. 동료라기보다는 무작정 따라다니는 그런 인간이 되어있었다.
결국에는 초라하게, 역사서에는 영웅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한 용감한 자라고, 아니. 기록되지 못할 수도 있다.
“금방 끝낼게……!”
푸른 머리의 청년이 내 옆을 지나쳐 달려 나갔다.
정의롭고, 용감하고. 강한 사람. 푸른색의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그리고 로엘이 달려 나간다.
로엘의 행동에서는 왜인지 모를 다급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넌 나를 살리고 싶어서, 그래서 급한 거야.
용사, 영웅의 검이 마왕의 몸을 가른다. 검은 연기 같은 것이 공중으로 흩어져 나간다. 허나, 그게 끝.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암흑 속에 잠식당한 내 시야는, 굳어가는 내 몸은 나에게.
죽음을 고했다.
악을 없애고 정의를 좆는 사람. 그게 영웅이라 불리는 자였다. 나는, 그런 영웅이 되고 싶었기라도 했던 걸까.
영웅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실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 재능도, 능력도 없는 내게 세계는 딱히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걸 허락하지 못했다.
실제로 로엘, 그를 처음 만난 것도 내가 처음에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늑대에게 습격을 받아 목을 물어 뜯겨지기 전에, 그에게 구해진 상황이었었다.
구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왜 구해지는 것일까.
한 두 번이면 모른다. 하지만 수십 번을, 그는 나를 몇 번이고 구해줬다.
그게 권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당연한 것이라고, 당연한 결과라고.
그래서 그의 이름을 사용했다. 용사의 동료라면서, 우쭐대고 다녔었다. 실질적으로 한 것도 없이, 그저 도움만 받던 주제에.
아, 한심하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었다. 그래서 속죄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미안해 로엘, 이런 녀석이라서.
미안해, 아무래도, 죽어버린 것 같아.
어둠이 시야를 잠식한다, 몸의 감각이 서서히 사라져만 간다.
눈꺼풀이 왜인지 모르게 간지러웠다. 난 죽은 게 아닌가?
“이렇게 한심하게 죽는 거냐.”라고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잠시, 몸 전체를 건드리는 기묘한 함각.
“…….”
희미하지만 소리가 들린다. 희미하지만 무언가가 느껴진다.
희미하게나마, 내 몸에 있는 감각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움직인다.’라는 사실 하나만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에서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
잠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의식은 멀쩡해서, 그래서 억지로 눈을 뜨려는 듯한 느낌.
억지로 뜬 눈 사이로 밝은 햇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눈이 시리다, 하지만 눈을 뜨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여……기는.”
억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앞에, 내 시야 속에 들어온 것은.
“나무……?”
먼저 거대한 나무 하나. 그 거대한 나무의 뿌리 밑에서, 나는 눈을 뜬 것이었다.
그 짙은 녹색의 잎들과 거대한 줄기는 그 어떤 나무보다도 거대해 보이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왜 나는 살아있는가.
분명 몸을 베였다. 붉은 피가 흩뿌려 지는 것도 이 눈으로 보았다. 그런데 살아있다, 숨 쉬고 있었다.
어째서? 무슨 이유로?
모른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그렇기에 답을 도출하지 못한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막 잠에서 깬 듯한 몸 상태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로엘, 로엘? 있어?”
낯선 장소와 풍경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 로엘 그 녀석이 나를 여기까지 업고 온 거겠지. 그때 죽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살아 있었구나.
“……로엘?”
용사의, 영웅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휑한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로엘……로엘!”
계속해서 로엘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고, 또 부르고. 계속 부른다.
로엘이 없으면, 네가 없으면.
나라는, ‘카인’이라는 인간은.
ㅡ아무것도 못하니까.
로엘은 없다.
그 사실은 인지하는 것은 빨랐다. 하지만 인정하는 것은 느렸다.
뭐지, 여기는?
뭐지, 이 상황은?
일단 상황을 정리 해 보자.
마왕군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로엘. 죽음의 문턱이 그의 바로 앞까지 마중 나온 순간.
나는 달려들었다. 로엘의 앞으로, 그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몸이 베여지고, 피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며,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누가 봐도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황.
“나란 놈은…….”
막상 전투가 시작 되면 제일 먼저 도망쳐 구석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나였다.
전투 능력이 없으니까. 방해만 되니까. 스스로에게 그리 말 하며 도망치던 인간인 내가. 어째서.
“변덕이었나.”
그에게 미안했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속죄하고자, 용서를 빌고자 달려들었는지도 몰랐다.
결국은 개죽음으로 이어졌지만.
“일단 여기가 어디냐는 건데…….”
이런 거대한 나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나무뿐만이 아니라, 이 장소자체도 들어 본적도 없는 곳이었다.
“에……그러니까.”
높은 언덕의 위, 그곳에 이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다는 것은 꽤나 넓게 볼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마을?”
저 멀리에,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곳에 한 마을이 위치해 있었다. 약간은 흐릿하게 보여서 정확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갈 곳은 저기밖에 없을 게 분명하다.
마을, 이라고 생각했던 장소였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도, 도시라고 해야 하나.”
작은 마을이라고 칭하기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한 개 이상의 나무 상자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도시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단 말이지…….”
용사인 로엘과 함께 다니면서 큰 도시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모두 다녀봤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시 이후. 한 달 후에 마왕성에 입성했으니 이곳이 만들어 진지 최대 한 달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 달 만에 이런 거대한 도시 하나가 생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그것보다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근처에 항구는……없는 것 같고. 상단도시인가?”
수십 개의 상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시가 바로 상단도시였다. 대 부분의, 나라에서의 거래는 이런 곳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 있는 상단도시는 총 세 곳. 그 장소들을 모두 돌아본 나로서 말하자면 이런 상단도시는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그 세 곳의 공통점은, 모두 바다와 인접해 있어서 항로를 통한 무역을 한다는 점. 이곳은 오히려 육로를 통한 무역이 적합해 보였다.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로 모으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끼워 맞춘다.
“푸른 매 상단, 하얀 개 상단, 붉은 낙엽 상단…….”
상단들의 특징은 하나 같이 다 이름들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동물들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게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검은’, ‘푸른’ 같은 색깔들을 붙여서 이름을 짓는다는 점이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구려보이는 이름들 이지만 막상 이름을 지은 상단주들은 마음에 들어 한다고.
‘구별 때문이겠지.’
상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상단. 상단은 한 곳에 오래 정체해 있지 않았다. 물론 규모가 꽤 되는 상단은 아예 한 곳에 지부를 차리고 일원들을 꾸려서 무역을 시도하지만, 어지간한 상단들은 모두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
무역이라는 것은 영지에서 영지를 넘어서, 때론 대륙과 대륙 사이를 넘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내가 어느 지역에서 왔다. 라는 의미를 담아 상단의 이름 앞에 색깔의 이름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일종의 암묵적인 상인들의 규칙이라고나 할까.
“으흠……진짜 어디야 여긴?”
꽤나 넓고 깨끗한 거리의 위를 걸어 다녔다.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며, 이곳에 대한 기억을 한 번 찾아본다. 혹시 내가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길게 뻗은 길로 상단과, 상단과, 상단이 다다닥 붙어있었다. 각각의, 자신들 상단만의 문양을 크게 내건 채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대한 새의 그림이나, 개의 그림. 때로는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는 상단의 문양도 존재했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온 한 상단의 문양. 검은색의 작은 고양이 하나가 그려져 있는, 매우 평범하다고는 할 수 있는 문양이었다.
“검은 고양이……상단?”
기억의 한 부분, 매우 구석진 곳에 있는 걸 건드리는 이름이었다. 분명 어디서인가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검은 고양이 상단.
끊임없이 이 상단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어디서인지는, 언제 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흠, 그런데 정말 익숙한 이름인데.
“검은 고양이……검은 고양이…….”
계속해서 중얼거려서 그런지 기억의 저편 구석에 처박혀 있던 단편적인 정보가 하나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상기시키기 위해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키……르나?”
아키르나? 그가 누구였지.
‘그’라고 떠오르는 것을 봐서는 남자인 것이 확실하고, 내 기억의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이었으니 평범한 사람도 아닐 거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또 이곳인가? 하여튼, 아키르나님은 돈 많이 버셔서 좋겠네.”
아키르나.
그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소리의 근원지에 서 있는 사람은 방금 거대한 나무 상자를 어깨에 올려 메고는 이곳저곳을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그의 앞에는 작은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말에 반쯤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뭘요, 이제 정착하기 시작했는데요.”
검은 고양이 상단.
아키르나.
두 단어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뇌 속에서 그 단어를 조합하며, 잊혀가던 기억을 끌어올렸다.
검은 고양이 상단의 상단주인 아키르나.
그래, 기억이 났다.
아마 작은 상단은 이끌던 상단주의 이름이었지? 꽤나 특이한 이름과 말투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거였다.
그런데 잠깐, ‘정착’이라고?
내가 아는 아키르나씨의 상단은 매우 작은 규모의 상단이었다. 마왕을 퇴치한 후, 며칠이 되지 않았을 텐데 벌써 정착이라니.
소규모 상단은 상단도시에 정착이 불가능하다. 거대 상단들에게 휩싸여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아키르나씨의 상단이 정착?
물론 상단주인 아키르나 본인이 정말로 지적이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똑똑하고 강한 이라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 그가 아무리 현명해도 불과 며칠 만에 소규모 상단을 대규모 상단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이곳도, 아키르나씨의 상단도.
“뭐, 어쨌든 수고하라고.”
“열심히 하세요~.”
또 다시 무거운 나무 상자 하나를 번쩍 들고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그에게 그녀는 익숙한 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나무상자를 들어올렸다.
“흐으으읍……!”
꿈쩍도 안 했다.
“흡! 으흡! 으아앗!”
신음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 뱉는 그녀에게 나는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어차피 정보도 얻을 겸 도와주는 편이 낫겠지.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찌…….”
양손을 맞대며 가볍게 손뼉을 치는 그녀.
이래 보여도 근력은 꽤나 강한 편이었기에 나무상자 하나를 옮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은혜라니 그렇게까지 오버하실 필요는…….”
겨우 나무상자 하나 들어준 것 가지고 은혜라니. 정보를 얻는 참에 접근 한 것이지만 쓸데없이 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혹시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만, 이곳에 대해서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약간 흥미가 있어서.”
길을 잃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다. 아니, 애초에 날 구하러 와줄 사람도 없고.
“어머, 혹시 아키르나님과 계약을 맺으시러 오신 건가요?”
계약이라니, 소규모 상단에서 다른 상단과의 계약을 말하는 건가?
“아뇨……아키르나씨를 만나고 싶기는 한데…….”
만약 이 거대한 상단이 내가 알고 있는 아키르나라는 사람의 것이 맞다면, 그는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인물일 게 분명하다.
“으음……아키르나씨를 만나시고 싶다면 며칠은 기다리셔야 할 거에요. 순서가 많이 밀려서…….”
역시나.
“일단은 미리 말을 전해둘게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카인입니다.”
내 이름을 말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리고 내게 추가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혹시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자신의 특징 같은 걸 나타낸 그런 별명? 수식어……? 같은 것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럼…….”
막상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없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대충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나’라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는 ‘카인’이라는 인간이라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여만 했다.
‘나’라는 존재를, 주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 ‘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겁쟁이…….”
“네?”
겁쟁이, 도망자, 비겁자.
버리고 싶은 단어들, 내 이름 앞에 붙던 말들.
지우고 싶어도, 떨쳐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런 단어들이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것들 이외의 ‘나’를 표현하고 나타낼 수 있는 단어들이 존재 하는가?
언제나 먼저 도망치고.
언제나 먼저 겁에 질리며.
언제나 먼저 숨어버리는 사람.
그게 ‘나’라는. ‘카인’이라는 인간의, 존재의 특징이었다.
“겁쟁이……겁쟁이 카인이라고 전해주세요.”
로엘의 앞에서도, 아키르나씨의 앞에서도. 나는 언제나 도망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도망자.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끝날 때쯤에 다시 나오는 비겁자.
겁쟁이 카인.
인정하기 싫지만, 내뱉기 싫지만.
내게 정말로 어울리는 호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