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이 멍하니 있는 신아를 뒤로 하고 하람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다가온 영민의 그림자에 길거리에 발랑 까져 있던 고양이가 놀라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고하람: 어? 뭐야. 너 혼자 왔어??
혼자 서 있는 영민의 모습을 보고 신아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 번 거리며 하람이 일어났다.
류신아: 같이 왔어.
하람의 물음에 영민의 등 뒤에 있어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신아가 영민의 옆으로 한 발자국 나와 대답했다. 하람은 남장을 한 신아의 모습을 보고는 고양이에게 보여줬던 웃음보다 더 밝은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고하람: 뭐야~ 너 안 온 줄 알고 놀랐잖아.
아까 영민을 봤을 때의 똥 씹은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신아를 보자마자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반가워하는 하람의 모습에 되려 영민이 똥 씹은 표정을 했다. 여전히 아이 같은 웃음과 장난 끼 가득한 말투가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밝았다.
조영민: 나는 안 반갑냐.
영민이 신아와 하람의 사이에 머리를 불쑥 내밀고는 투정스럽게 물었다.
고하람: 너는 굳이 반가워 할 이유가 없는데.
조영민: 뭐야 그럼 얘는 왜 반가운데?!
징그럽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말하는 하람의 모습에 영민이 발끈하며 반박했다.
고하람: 얘랑은 중요한 걸 나눠 가진 사이니까^^ 넌 굳이 따지면 우리 방해하러 온 거잖아. 내 말이 틀렸냐?
인상을 찌푸리며 말할 때는 언제고 영민의 물음에 신아를 쳐다보며 싱긋 웃음을 보여주는 하람의 모습에 영민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을 감시하러 온 건 맞으니까.....
류신아: 중요한 걸 나눠 갔다니....뭐?
고하람: 내가 그날 너한테 준 손수건. 그거 우리 어머니 유품이거든.
하람의 말에 신아는 제법 놀란 눈치였다. 하람 에게 소중한 물건이기를 바란 적도 있었지만 그런 의미가 담긴 손수건일 줄을 몰랐다.
류신아: 그렇게 중요한 걸 날 주면 어떡해. 피도 흘리고 있었는데....
신아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하람 에게 있어 굉장히 소중한 물건을, 심지어 그날 처음 보는 자신에게 빌려줬다는 사실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고하람: 그러게.....정신 차리고 보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그냥 그때는 네 다친 손만 보였어. 그래서 그냥 무턱대고 빌려줬나 봐.
또 다. 또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방긋 웃어 보이는 하람에 신아는 조금 당황했다. 신아는 당황했지만 영민은 당혹스러웠다. 손수건을 돌려 받을 요량으로 만난 거면 빨리빨리 돌려 받고 헤어지면 될 것 이지. 거기다 대고 쓸데없는 미소나 계속 날려 대는 하람의 모습에 영민은 이게 뭐 하는 상황인가 얼이 나가 있었다.
류신아: 근데 나눠 가졌다니....나는 너한테 준 게 없는데.
고하람: 비밀.
류신아: 어?
고하람: 그날 해월관에서 네가 여자ㅇㅣㄴ 으읍!!
신아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무 생각 없이 큰 소리로 말하려는, 하람의 행동에 영민과 신아가 동시에 하람의 입을 막았다.
고하람: 으으읍!!......하...
어찌나 쎄게 틀어 막은 건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하람의 모습에 신아가 당황하며 먼저 손을 뗏다. 이렇게 까지 힘이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신아도 영민도 자신들도 모르게 손이 본능적으로 튀어 나가 순간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찌 보면 영민은 일부러 그랬던 거일 수도 있다. 영민은 하람의 입을 틀어 막아서라도 그 느끼한 웃음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고하람 .....왜...! 아.....아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
영민과 신아가 손을 떼자마자 꽤 나 억울했던 모양인지 작지만 힘 있게 하소연을 하다 이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감이 잡힌 하람이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뻘쭘해 했다.
고하람: 미안....
조영민: 너 이리 좀 와봐.
어쩔 줄 몰라하는 하람의 행동에 영민이 갑자기 한 쪽 팔을 하람의 목에 두르고 신아가 듣지 못하게 본인들이 있었던 골목 보다 다섯 걸음 떨어진 곳으로 하람을 끌고 갔다.
고하람: 왜.....!
조영민: 너 그날 해월관에서 본 거 누구한테 말했냐?
고하람: 뭐....사실은 쟤 여자인 거....?
조영민: 조용히 말해 임마..!! 누구한테 말했어?!
고하람: 그런 걸 누구한테 말한다고!! 그리고 아깐 내가 실수 했지만 나 남의 비밀 막 함부로 떠들고 다니고 그런 개념 없는 짓 같은 거 안 하거든!!
하람과 영민은 혹여 신아나 다른 누군 가가 들을까 봐 티격태격하면서도 찰싹 붙어서 자기들 딴 에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속닥이고 있었다. 덕분에 신아는 두 사람의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에 너무나 좋은 그림이였다. 오밤중에 인적 드문 골목에서 남정네들 둘이 저렇게 찰싹 붙어 있으니.....이상한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조영민: 너 개념 없는 거 맞거든?
고하람: 누구 보고 개념이 없다는 거야?! 너 나랑 친해??
정말 유치하게 싸우고 있는 영민과 하람의 모습에 되려 신아는 뒤에서 미소를 보였다. 오랜 시간 영민과 알고 지내면서도 영민이 저렇게 나 누군 가를 편하게 대하는 건 신아도 처음 보는 모습이였기에 낯설면서도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영민은 하람과 얘기를 하다 말고 신아에게로 뛰어와 신아의 손에 들려진 손수건을 낚아 채 하람 에게 거의 던져 주다 싶이하며 말했다.
조영민: 자! 이제 용건 다 끝났지? 우리 간다.
고하람: 야 이걸 왜 네가 줘!!
조영민: 누가 전해주든 무슨 상관이야. 돌려 받았으면 됐지!!!
다섯 걸음을 사이에 두고 소리를 고래 고래 질러가며 싸워 대는 영민과 하람의 모습에 점점 가운데 낀 신아만 피곤해졌다. 영민이 신아의 어깨를 잡고 골목을 빠져 나가자 그 뒤를 무섭게 쫓아오는 하람이다.
고하람: 아 같이 가!!!
조영민: 왜 따라와! 왜 같이 가는데? 우리가.
고하람: 너 따라가는 거, 아니거든?? 얘 따라가는 거거든?
하람은 영민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두 사람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조영민: 그니까 걔를 왜 따라 가냐고.
고하람: 싫으면 네가 다른 쪽으로 가던가!
이제는 아예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두 사람이다.
류신아: 둘 다 시끄러워.
결국 보다 못한 신아가 하람과 영민의 이마를 꾹 눌러서 둘을 떨어 뜨리 고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건 신아가 말에 힘을 줄 때 나오는 버릇이다.
류신아: 길바닥에서 뭐 하는 짓이야. 애도 아니고.
신아의 단호한 어조에 둘은 한 마디도 못했지만 입만 다문 거지 눈은 죽기 살기로 째려보고 있었다.
류신아: 우린 이제 해월관에 가야 해. 약속이 있거든.
신아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는 하람 쪽으로 몸을 돌려 어제 못한 술 파티에 대한 약속을 말했다.
고하람: 약속? 무슨 약속인데??
조영민: 술 약속.
고하람: 술 약속?! 그거 혹시 중요한 약속 아니면,,,,나도 가도 돼??
술 약속이라는 말에 갑자기 눈을 반짝 거리며 또 아이 같은 웃음을 짓는 하람을 보며 영민이 앞에 있는 신아의 어깨를 살짝 밀어 하람 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조영민: 네가 끼긴 어딜 껴! 우리 형님들 만만한 분들이 아니라고.
잠시 후
고하람: 캬 이걸 진짜 재희 형님이 직접 만드신 거예요?? 경성에 있는 술집이란 술집은 다 가봤는데 이렇게 쭉쭉 들어가는 술은 처음이에요!! 혹시.....술 담그는 장인...?
송재희: 하하하 내가 태어날 때 부터 술이랑은 우애가 좀 남달랐지!!! 놀랍게도 독학이다.
고하람: 어이쿠! 우리 중현 형님 술잔이 비었네. 받으세요. 형님!!
박중현: 아 그래 그래 요놈 아주 그냥 싹싹 하니 마음에 든다 내가!!
고하람: 와 해균 형님. 팔뚝이 무슨 술통 보다 도 더 두껍네요. 남자다. 남자~
태해균: (흐믓)
고하람: 아 무성 형님, 희석 형님. 주세요.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서희석: 아 그래줄래? 고마워.
김무성: 혼자 들기에는 좀 무거운데.
고하람: 아잇 이 정도로 무겁다 그러면 어디 가서 사내 소리 못하죠~
김무성: 그럼 조심해서 들고 가.
영민은 지금 자기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살아 생전 영민과 신아가 친구를 데려 온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해월관 까지 온 하람을 보고 조직원들은 감격의 찬 눈으로 하람을 무작정 데리고 들어가 같이 술을 마시자고 권유했다. 붙임성이 좋은 건지 성격이 좋은 건지. 어느 샌가 조직원들 모두와 친해져 같이 술 판을 버리고 있는 하람과 조직원들의 모습에 신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조영민: 왜?
류신아: 그냥. 좀 신기해서.
조영민: 뭐가?
신아는 영민의 말에 눈짓으로 하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류신아: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들이랑 저렇게 거리낌 없이 금방 친해질 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저런 웃음을 지을 수가 있지........
신아와 영민은 줄곧 조직원들 빼고는 모든 사람을 다 경계하고 의심하며 살았다. 누군 가를 쉽게 믿어서도 마음을 놓아서도 안되는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두 사람 다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버릇이 생겼었다.
조영민: 그러게.....
하지만 그런 두 사람도 하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떠한 경게도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자신들의 본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하람을 처다 보고 있는 신아와 영민이다.
허 영: 얘들아~~!!거기서 뭐해! 너희도 얼른 와!!
영민과 신아는 무턱대고 가기가 부끄러웠는지 영의 부름에 쉽사리 테이블로 몸을 옮기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고하람: 빨리 안 오고 뭐하냐!! 친구 하나, 친구 둘!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하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을 보이고는 영민과 신아 쪽으로 다가가 뒤에서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친구......신아와 영민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단어였지만....꼭 싫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기뻤던 것 같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또래 친구라고는 서로 밖에 없었던 영민과 신아 에게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새로운 친구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또 하나의 가족 같은 소중한 사람들 에게로 향하기 위해 내딛는 그 발걸음이 앞으로 세 사람이 걸어야 할 무겁고 잔혹한 발걸음의 시초자 시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