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11 13:59
[스토리테마파크] /가족, 영원한 동반자/ 흰옷 벗을 날이 없도다 - 이어지는 국상과 왕릉 이전, 그리고 할머니의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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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작협
조회 : 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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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PHS_0028 [229] |
1846년 4월 18일, 서찬규는 흰 옷에 흰 띠를 두르고 곡반에 들어갔다.
수릉의 땅을 파기 전, 종묘에 무슨 일인지 사유를 고하는 의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과 신정왕후 묘를 이장하기 위해서이다. 윤5월 12일에는 익종의 관을 꺼냈으므로 서찬규는 곡반에 들어갔다.
윤5월 20일에는 임금의 묘를 하관하는 날이다. 비에 막혀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행단 아래에 자리를 설치하여 국오 족숙 및 여러
족친들 함께 망곡하였다. 서찬규는 1849년 6월 11일이 되어서야 소식을 들었다.
지난 6월 6일 정오 12시에 헌종이 승하했다고 한다. 종사를 맡길 후사가 없어 백성의 염려와 아픔이 더욱 더했다.
그런데다가 6월 13일 오전 10시에 서찬규는 할머니 상을 당했으니, 애통함이 끝이 없었다.
6월 15일에 안동의 신재기[자는 범여(範汝)] 씨가 와서 제복을 만들었고 이튿날, 상복을 입었다.
이후 인사온 손님은 부의록에 실었다.할머니가 사망한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조정의 이 내렸다.
국장 전에 사가에서는 크고 작은 모든 제사를 중지하라는 이었다.
8월 18일에 여러 족친들이 모두 모여 옥산 선영 아래 30보 지점에 할머니 묘 자리를 정했다. 종중에서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종회에서 비로소 허락을 받았다. 어렵게 허락받았건만 8월 19일에 풍수가인 감여가가 ‘옥산 지점의 산을 버리라’고 했다.
다시 할머니 산을 구해야 한다.
9월 27일에 산격 선영 아래에 산지를 정하고 여러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이튿날부터 산격과 남산 사람을 일꾼으로 사서 산일을 시작했다.
9월 30일에는 일꾼이 복현암의 일을 했다. 이튿날인 10월 1일에는 증조모와 조고 두 분의 묘에 떼를 입히고 다듬는 일을 했다.
10월 3일 새벽에 발인하여 낮 12시에 하관했다. 100여 의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주었다.
10월 6일, 장례와 우제(虞祭)를 지냈다. 아버지가 너무 슬퍼하셔서 기운이 상할까 염려된다.
1년 뒤인 1850년 6월 13일에 서찬규는 띠와 두건을 둘렀다. 세월이 빠르게 바뀌어 조모의 중상(仲祥)이 되니 마음이 슬프고 애통했다.
아버지가 끝없이 울부짖으셔서 기력을 잃으실까 더욱 초조하고 걱정된다. 각처에서 와서 모인 이들도 모두 돌아갔다.
10월 26일에는 헌종의 발인곡반(發靷哭班)에 참여했고, 이튿날은 성으로 들어가 인봉곡반에 참여했다.
1년 뒤, 제삿날이 되어 1850년 6월 5일 저녁에 성부(城府)에 들어가 곡반에 참여했다.
또 1년 뒤인 1851년 6월 5일에도 저녁에 성에 들어가 곡반에 참여하고, 새벽에 바로 나왔다.
1855년(철종 6)에는 인릉(仁陵 :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능)의 천장지를 구했다.
8월 16일, 서찬규는 흰 옷과 흰 띠를 둘렀다. 임금의 관을 꺼내는 날이라 서찬규는 흰 옷과 흰 띠를 두르고 곡반에 참여했다.
열흘 후 8월 26일에 관을 하관했다. 서찬규는 곡반에 참여했다.
1857년 8월 8일, 대왕대비(순조 비)께서 4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백성들이 통곡하고 있다고 했다.
신재하·이석규·최의발 등과 함께 곡반에 들어갔다.
8월 13일에는 성복을 하고 곡반에 참여했다.서찬규는 1859년 4월 28일, 철종의 원자께서 23일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백성들이 원통해했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국상
서찬규의 삶 중 세 명의 임금이 사망했다. 서찬규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이 겪은 일이다. 1834년(순조 34) 11월, 45세로 순조가 사망한다. 서찬규 나이 10세 때이다. 1849년(헌종 15), 헌종은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사망했다. 서찬규 나이 25세 때이다.1857년 8월 4일에는 순조비가 사망했고, 1859년 4월 23일에는 철종의 원자가 사망했다.1863년(철종 14) 12월 8일, 철종이 33세로 사망했다. 서찬규 나이 39세 때이다.국상 외 1846년 4월, 헌종은 아버지 익종과 신정왕후의 묘를 이장한다. 게다가 헌종이 사망한 며칠 후 1849년 6월 13일에는 할머니가 사망한다. 실제 임재일기를 보면, 서찬규에게는 헌종의 사망보다 할머니의 사망이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국상은 국가의 기본 오례를 규정한 국조오례의를 따라 행했다. 순서는 1. 국휼고명과 촉광례 2. 고복과 빈소 3. 목욕례와 습 및 반함 4. 염과 입관 5. 성복과 졸곡제 6. 시위와 반교서 7. 상시책봉과 장사 차례였으며, 왕의 장례 기간은 100일 이상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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