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11 13:54
[스토리테마파크] /가족, 영원한 동반자/ 많은 자손들, 겹치는 제사에 나누어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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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작협
조회 :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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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CEJ_0071 [235] |
1617년 2월 6일, 아침에 아들 김숙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대기(大忌)라 좌재(坐齋)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2월 7일, 김택룡의 아들 김숙의 첩이 김택룡에게 왔다. 서손(庶孫) 중겸(重謙)을 데리고 왔는데, 숙이 다시 그들을 데리고
임하로 갔다. 그의 처남 대상(大祥)인데 3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김택룡이 아들에게 가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김택룡의 집안에도 제사가 있었지만, 이쪽에는 제사에 참여할 손자가 많으므로 보낸 것이었다. 이 날은 또 김택룡의 생일이었다.
그는 제사 지낼 음식을 감독하고 준비하였다.
2월 8일, 날이 밝을 무렵 집 대청마루에서 기제사를 지냈다. 생질 정득 · 조카 김형 · 아들 김각 · 중길 등 손자 세 명이 제사에 참여하여 모두 제사를 돕고 책방에서 음복하였다. 심학해 · 정극인(鄭克仁)도 와서 참여하였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기제사
2월 8일은 김택룡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3년 상이 끝난 후 부터 매년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를 기제사(忌祭祀)라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전날인 2월 7일은 김택룡의 생일이었다. 1612년 2월 7일의 일기에서 김택룡은 “좌재(坐齋)하였다. ... 이날은 내 생일인데 직접 제수를 차리니 비통한 감정이 마음속에 교차하였다. ...”라고 쓰며, 자신의 비통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김택룡의 아버지 제사이니, 큰 아들 김숙에게는 조부의 제사인 셈이다. 그래서 김숙이 제사에 참여하려고 미리 좌재하기 위해 본가로 돌아왔던 것인데, 마침 그의 첩이 제 아들을 데리고 김택룡을 만나러 왔다. 김택룡이 사정을 듣자하니, 큰 아들이 제 첩의 남동생 즉 처남이 죽은 지 3년이 되도록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 처남의 대상(大祥)이 다가왔는지라, 김택룡이 아들에게 명령하여 그 쪽 제사에 참여하도록 시킨 것이었다. 자신의 집안 제사에는 참여할 수 있는 아들과 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아름다운 제사의 전통이 아닐까?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마음 그것이 제사를 지내는 본질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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