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리님이 확실이 책임지시죠? 말로는 안 됩니다. 문서로 주던가 적어서 사인해주세요.”

　한쪽으로 치켜 올라간 입 꼬리. 비웃고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하루 이틀 했어요? 다음 달에 삼만 톤 들어오면 그때 조절하면 되지”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박한철에게 그럴 힘은 없지만 화물을 다른 저장소에 저장한다는 정도의 말은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백기를 들어야 했다. 한 놈을 제압했으니 다른 놈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빨리 서류 만들어 보네 주세요. 통관이 급합니다.”

　박대리가 검정회사 직원을 노려보며 닦달을 했다.

　“두 분이 합의했으니 우리는 책임 없다는 확인서 하나 써 주세요. 나중에 우리가 잘못한 거로 책임을 물릴 수 있잖아요.”

　갑 을 병 정 중에 정의 반란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이 잘못해서 수량이 부족하잖아. 당신 누구 돈 받고 일하는 지 몰라?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이 새끼가 겁 대가리도 없이. 확! 잘라버려!”

　확실한 갑 질이었다. 상대도 만만찮았다. 가소로운 듯이 박대리를 곁눈질로 흘겨보다가 가까이 다가섰다. 박대리가 뒷걸음을 쳤다.

　“이 새끼? 다시 말해봐! 한 주먹도 안 되는 놈이 어디다가 새끼라고… 그래! 이 도둑놈 새끼야! 내가 모르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래 한판 붙어보자.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뭐! 도둑놈! 증거 있어?”

　멱살은 벌써 서로 붙잡은 상태였다. 탱크터미널 직원들과 다른 검정회사 직원들이 몰려 와서 두 사람을 뜯어말리는 바람에 유혈혈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흥분을 가라 앉히는 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조용해질 무렵 검정회사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술이 굳게 다물어지는 걸 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옆에서 쳐다보던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제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서 조절할 수 없습니다.”

　이 말만 하고 계산기와 서류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박대리를 안쓰러운 눈으로 한참 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에서는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조리 알고 있다는 멸시가 쏟아지고 터미널 담당자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가는 직원과 눈을 마주친다. 박대리에게 받은 무시로 인한 감정의 교감이 같다는 표시였다. 박대리도 순간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직원은 한번 더 능멸하는 눈으로 노려 보고 난 뒤에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시간에 생산 과에서는 난리가 나 있었다. 생산이 문제가 아니라 원료가 없어 생산공정을 중단하고 재가동할 경우 발생할 피해였다. 부장 전화기가 생산 과에서 닦달을 하는 전화로 불이 나고 있었고, 부장은 조금만 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끝내는 생산 과에서 공장장과 본사에 전화 해 현 상황을 알리고, 본사에서 자재과에 이 사실을 알렸다.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는 생산 과도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본사에 먼저전화를 하고 공장장은 그 뒤였다. 이런 허술한 보고 체계가 형성된 데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슬그머니 생겨난 책임 회피 풍토에서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 선수를 치느냐에 따라서 봉변을 당하느냐 면하냐의 문제기 때문에 이 일을 가지고, 이런 일에 미꾸라지처럼 빠지는 데 달인인 이부장과 자기에게 먼저 보고하기 않았다고 생산 과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공장장도 잘 알고 있었다.

　생산 과의 예상이 적중했다. 부장은 영악한 인간이었다. 하늘은 언제나 그의 위에 있어 하늘을 함부로 핑계됐다가는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바다에는 평생 동안 갈 일이 없다는 걸 염두 해 둔 것 같았다. 감히 바다를 입에 올린다.

　“바다 날씨가 나빠서 배가 늦게 들어온 걸 내보고 어쩌란 말이야? 생산하는 놈들이 재고 파악도 안 했어?”

　생산 과의 예상이 적중한 걸 보여주는 견본이 될만한 사례다. 바다를 핑계로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 생산 과 책임으로 떠 넘겨버린다. 재고 관리는 박대리와 부장이 할 일인데도 말이다. 더 가관인 것 지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바다 탓을 모두 들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처럼, 안달이 난 것처럼, 위엄을 과시하듯이 쩌렁쩌렁한 고성으로 사무실에 메아리까지 울려 퍼지게 한다.

　그러나 곧 헛다리를 짚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직원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당황한 기색만 드러낸다. 영업 팀에서 벌써 검정회사에 전화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한 뒤란 걸 부하인 차장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알게 된다.

　“제가 확인했으니 일단 부족한 수량으로 수입신고를 하고 출하부터 하세요.”

　전화를 걸고 끊은 사람은 본사 차장인 송영석이었다. 감히 차장이 부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전화도 자기 할 말만 하고 바로 끊어 버렸다. 부장의 허연 눈자위가 허공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공장장이 뒤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공장장을 험담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그의 시선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송차장의 지시를 바다의 응징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며 얌전히 따랐으면 상한 자존심에 티는 나지 않을 것을 그는 지금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짓으로 돌진하고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쥐어진 휴대폰으로 검정회사 김성태소장에게 전화를 하지만 받지도 않고 회사에도 전화를 했지만 자리에 없다는 말만 듣고 치를 떨면서 지시를 이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김성태소장은 작년에 이 부서로 오면서 이전 담당 부장에게 업무를 인수받을 때 같이 인수받은 사람이었다. 부족한 수량이라도 세관에 신고하려면 김성태가 있는 검정 회사에서 검정한 수량 보고서를 세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검정한 서류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부장도 다른 방법이 있는 걸 모르기 때문에 똥줄만 태우고 있었다. 조바심이 일면 일수록 이성과 냉철도 사라지고 있었다. 불법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던 기술도 단절돼 버렸다. 이때만 법을 지키려고 하는 행태가 한마디로 가관이란 생각을 보세장치장 직원은 하고 있었다.

　부장의 언행과 박대리의 행실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보세장치장직원도 검정회사 직원과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같아서가 아니라 어디를 가나 손가락질을 받는 부장과 박대리의 행실이 같아서였다. 그건 어떤 부류에서나 같다.

　저 사람이 왜 나를 이상하게 볼까?

　이상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거만한 언행에 몸에 베인 사람들은 뒤에서 손가락질을 한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자기만 잘 난 줄 안다. 부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그는 복수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다. 박대리에게 전화를 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런데 통화를 끝냈다는 증거인 신호음이 가는 데도 받지 않아 부장 가슴은 더 타 들어가고 있었다. 하필 그때 투명인간으로 취급한 순희가 눈에 들어 왔다.

　“안주임! 빨리 터미널에 가봐.”

　다급했던 모양이었다. 개 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부장 화색이 밝아지면서 옷에 뭍은 먼지 털어내듯이 손목만 까닥했다.

　항상 저런 식이니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지시는 어처구니없는 지시였다.

　입사해서 지금까지 부두가 어디에 있는 지는 알지만 배가 있는 부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탱크 터미널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전적으로 순희의 업무 태만의 결과는 아니었다.

　이전 상사들 중 거기에 가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사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며 상사에게 데려 가 줄 것을 요청했지만 여자가 갈 곳이 아니라며 하는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핀잔만 들었다.

　그 후로 자존심이 상해 배가 들어온다는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어쩌다가 바다 옆 도로를 지나치다가 배가 보이면 그 상사의 핀잔이 귀에 앵앵거리며 소름이 끼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후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여름 휴가 때 친구들이 해수욕장을 가자고 하면 손사래를 쳤고 바닷가에 가자고 하면 온갖 핑계로 빠져 버렸다.

　그때 순희 머리서 순간적인 재치가 떠올랐다.

　‘그래! 시외터미널이나 고속터미널에 가자. 탱크터미널이 뭔지 몰랐다 하면 그만이다.’

　얼마나 갑갑했으면 이런 멍청한 생각까지 떠오를까 하는 생각도 뇌리를 스쳤다. 어정쩡하게 일어서면서 혹시나 부장이 자신의 망언을 알아차리고 번복을 하지나 않을까 기대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뭐해? 빨리 가지 않고.”

　“아! 예!”

　대답을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부장이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체 넋이 빠져 있었다.

　“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돼? 신입사원이야? 어이 씨! 그래서 여직원은 안 된다고 했는데”

　신입사원까지는 고함소리였지만 그 뒤로는 혼잣말이었다. 차라리 입을 막고 구시렁거리거나, 나가고 난 뒤에 고함을 지르던, 확성기에 대놓고 떠들던, 순희는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상사와 부하간이지만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따로 있다. 순희는 부장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뭐해? 할말 있어?”

　쳐다보던 그 순간에 뇌리에서는 ‘여직원이 왜요?’라고 당장 항의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고함소리가 그 생각을 잠재워버렸다. 부장이 한 말은 분명히 여자라고 무시하는 말이었지만 지금 그걸 가지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개 새끼인 줄 알았지만 하필이면 이런 일이야? 무시 당하기 딱 좋은 일을.’

　벌써 순희의 허리는 구부러질 때로 구부러져 지시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는 마음 가짐을 보이고 있었다..

　“아뇨! 아니! 아닙니다.”

　순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 과에서 다시 부장에게 전화를 한다. 재고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에 도달해서 세 시간 뒤에는 생산을 중단해야만 한다는 최종 통보였다.

　다시 박대리에게 전화를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부장 속이 타 들어가면서 번개같이 탱크로리기사이며 오래 전부터 작물아비 역할을 해왔고 이번에도 같이 작당을 한 임운영을 떠올린다.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어이! 임기사! 차에 화물 있어?”

　“방금 넘기고 하나도 없습니다.”

　“빨리 다시 받아서 공장으로 가져와. 공장 불 꺼야 할 지경이야. 급해.”

　“알겠습니다. 빨리 전화부터 해 볼게요.”

　임운영이 빼돌린 화물을 실어간 탱크로리 기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이미 공장에 전달한 뒤라고 한다. 그 공장 사장은 부장하고 잘 아는 사이였고 임운영도 부장 모르게 그 사장과 밀거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