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압박용 무기. ‘그 놈의 카메라 사준다고 제주도 못 갔다’

　만성이 될 만할 때도 됐지만 이 말은 수리 가슴에 박힌 비수였다. 갑갑해지고 있었다.

　제주도 여행도 보내 드려야 하고 창업하는데 빌린 빚도 갚아야 하고. 벌렁 누워버렸다. 몇 년 안에 갚을 수 있을까? 천정을 향해 눈을 지긋이 감고 3년 이면 36개월이니 한 달을 평균 30일로 잡고 곱하면 1,080일. 하루에 얼마씩에 제주도도 끼워 넣어 암산에 들어갔지만 마음만 급해지고 계산은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1,080 1,079 1,078 1,077 돈 계산은 하지 않고 목표로 한 날짜를 꺼꾸로 세다가 1,070도 못 세고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고 더듬거리며 쥔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수리 인상이 바로 똥 밟은 얼굴로 변해 버렸다. 외사촌 형인 이건호가 빨리 자기 회사로 와서 컴퓨터를 고쳐달라는 전화였다.

　“형님! 야근하고 잠들기 직전이었습니다. 한숨 자고 갈게요. 그리고 웬만하면 경리 뽑으세요. 직원 채용하는 건 형님이 알아서 하잖아요. 이 참에 여직원 한 명 뽑아요.”

　“야 임마! 네가 수리잖아. 수리가 수리해야지. 뭐 하려고 돈을 들여. 그리고 여직원은 못 뽑아. 전부 너 같이 험상궂은 놈들뿐인 회사에 여직원이 버티기나 하겠어. 빨리 와! 급해. 너 원하는 대로 실컷 사 주마.”

　천근만근 같은 몸을 꾸역꾸역 세웠다가 다시 뒹굴다가 깊이 잠들어버린 수리를, 이건호가 얼마나 급했으면 바로 쫓아와 깨우지도 않고 황소 같은 수리를 거든히 울러 매 차에 실어가서 기어이 목적을 달성해 버리고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또 밤을 세우게 했다.

　건호처럼 급한 사람이 사도유화에도 있었다.

　“안주임! 통관은 어떻게 됐어? 지금 공장 불 끌 지경이라고 생산 과에서 난리가 났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

　출근길에 어떤 놈이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살인자가 될뻔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있는 순희 뒤에서 성깔머리 고약하기로 소문이 난 부장인 이완호가 고함을 지르고 있다.

　순희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할 일은 생산 부 보내온 일일 생산 량과 계량 실에서 보내주는 일일 출하 수량을 받아서 비교하는 내수 업무다. 수입과 수출과 관련한 업무와 통관은 옆에 앉아 있어야 할 박대리 소관이다.

　동네 주변에서 단기사병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3년이나 늦게 입사한 박한철은 3년도 지나지 않아 대리가 되고 순희는 여전히 고작 주임이다.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박한철에게 업무를 가르쳐주고 키워놨다. 나이도 한살이나 어리다. 항상 그랬듯이 속이 또 이글거린다. 차라리 그 놈을 박아버리고 사고가 났다면 차 사고 때문에 늦었다거나 아니면 조사를 받는다고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불쾌한 말을 또 듣지 않았을 텐데 란 생각도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출근 해야 할 시간 3분전이다.

　“부장님! 박대리… 님이 담당인데 곧….”

　순희는 다음 말을 잇기 못했다. 3분이 지나야 ‘조금 늦네요’라고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곧 출근할 거란 말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끝낸다. 부장이 눈알을 부라린다. 입가와 광대뼈와 눈이 한쪽으로 비틀어져 거의 붙은 상태로 고함을 지른다.

　“곧! 뭐? 지금 생산 과에서 불 끌 지경이리고 난린데 뭐하고 있어. 그 일을 박대리가 꼭 해야 해. 순희가 했던 일이라면서. 그래서 내가 여직원은…..”

　순희는 어쩔 줄 몰라서 난감한 표정이 아닌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다그치고 있는 부장을 보고 있다. 그러나 속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 새끼! 저게 무슨 말이야? 똥 덜 닦은 듯 남긴 저 끝. 저 말! 뭐야! 내보고 닦아달라는 말이야? 꼭 저런 식으로 곧 뒈질 놈처럼 어벌쩡 얼버무리는 저 투! 네가 알아서 상상하고 추리해 행동하라. 잘 되면 내 조언 탓이고 못 되면 네 탓! 저 18새끼! 으으으~’

　부장은 늘 이런 식으로 숨쉴 겨를을 주지 않고, 잠시라도 늦으면, 혹시라도 말할 기회를 잃을까 안달이 난 사람처럼, 다그치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견님에게 미안하지만 통상적인 속어. 개보다 못한 새끼. 그 증거로 닦달을 한 후 닦달을 받은 사람이 그의 지시대로 허둥댈 때 그는 항상 입 꼬리를 한쪽으로 치켜 올려 흡족해하는 미소를 보란 듯이 흘렸기 때문이었다. 누구던 약점을 보면, 눈곱보다 작은 꼬투리를 잡으면, 그는 눈덩이처럼 부풀려 물고 늘어지는 인간이었다.

　그는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상냥함과 친절로 위장한다.

　그가 행한 친절에 가려놓은 술책들은 오래 전부터 본사에도 퍼져 있었다. 하물며 몇 발자국밖에 되지 않는 부서에 근무했던 부장의 품행을 이 부서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순희도 마찬가지다.

　순희가 있는 부서는 말만 자재과이지 통관과 자재와 물류와 운송 등 잡다한 일들을 한다. 부장은 작년에 공무 과에서 자재과로 왔기 때문에 이 부서에서 최 고참은 안주임인 순희인 셈이다.

　부장이 처음 왔을 때 순희는 부장의 과도한 친절을 경계하며 징그럽게 여겼다. 어디 수작을 부릴 때가 없어 회사에서 부리냐는 시선으로 부장을 쳐다봤다.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장은 과도한 신체 접촉도 스스럼없이 했다.

　부서원들간에 끈끈한 유대관계를 위한답시고 남자 직원에게는 하지도 않는, 스킨 십으로 끈질기게 치근덕거렸다. 순희는 당연히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끝내 포기한 이완호는 경계하는 보답을 무시로 일관해주었다. 무시를 받지 않기 위해 못 먹은 떡 찔러나 보는 그의 의도를 꿰뚫은 순희는 절대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상상해보았다.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난 뒤에 받아 들여야 할 그와 그 주변의 시선과 주둥아리. 아직도 여자를 성적 도구로 취급하는 그 주변 짐승들의 차디찬 모멸의 시선과 뒷담화. 그때마다 네 마누라도 딸도 시중잡배에게 반드시 더 더럽게 겁탈당하길 기도하마란 사악한 생각도 순희는 했다. 가끔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의 마누라도 딸도, 오히려 그보다 더한 색정에 빠져 주변 남자들의 푹신한 침대 노릇을 하며 황홀경에 빠진 희열의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중이란 상상을 하며 비웃기도 했다.

　또한 부장은 서서히 업무와 분위기를 파악한 후부터 공무 과에 들었던 말대로 구시대의 독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오로지 부장 말만이 법이 된 부서에서 순희는 구시대에 여자가 존경을 받은 적은 극히 드물었듯이, 부장의 치근덕거리는 행위를 거역한 죄값으로, 부장 눈밖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부장에게 순희는 무시 받는 여자로서의 자격도 상실된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시각에 부장에게 총애 받는 박대리는 회사로 오지 않고 탱크터미널(석유화학제품 저장소, 보세장치장)에서 탱크로리 기사인 임운영과 노닥거리고 있다. 그때 터미널 직원인 최동호가 옆으로 다가가 담배를 물고 같이 희희낙락이면서 흥을 돋구기 시작한다.

　“이번에 만 톤이 들어왔고 다음달에 또 3만 톤 들어온다던데 임기사님 바쁘시겠습니다”

　빈둥대듯이 지껄이는 동호 말은 들은 둥 만 둥 박대리가 물어본다.

　“검정회사 왔어요? 통관시켜야 하는데.”

　“글쎄요! 나는 못 봤는데 고객 지원 실에 있겠죠. 벌써 시간이 몇 신데.”

　“새끼들! 빨리 검정을 해야 출고를 하지. 참! 임기사님 어제 몇 대 가져다 줬어요?”

　“두 대 했는데 조금 더 달라고 하던데요.”

　“지금 들어오는 배에 실려 오는 거 보내면 되겠네. 이번에는 양이 많아서 표시가 안 나잖아요.”

　지금 재고가 바닥이 나 있어 당장 생산을 중단할 지경인데도 박대리 마음도 콩밭에 가 있었다. 이 기회에 많이 빼돌리자는 마음은 누구나 같은 심정이지만 박대리만큼은 이러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해요. 확실히 두 대 맞죠?”

　미심쩍은 눈으로 박대리가 임기사를 본다. 동호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숨기고 있다. 탱크로리 한대에 실리는 수량은 대부분 18톤이다. 두 대면 36톤이다. 제품 1톤의 가격은 약 46만원이고 두 대면 36톤이고 금액으로는 약 천육백십육 만원이다. 지금 이들은 도둑질을 했기 때문에 이 금액은 아니고 훨씬 낮은 돈을 받았겠지만 박대리가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자기 몰래 한대 던 두 대 던 더 빼돌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박대리에게 전화가 했다.

　“예? 육십 톤요?”

　깜짝 놀라며 임기사와 동호를 번갈아 쳐다본다. 임기사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지는 반면에 동호가 무덤덤하게 말을 한다.

　“그 새끼들이 정확히 검정을 안 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다시 확인하라고 하세요.”

　세 사람의 눈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시선들이 오고 갔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할 때 박대리가 동호를 보고 다그치듯이 말을 한다.

　“동호씨가 직접 올라가서 계측을 다시 해 보세요. 검정 사 직원 데리고.”

　“뭐 하려고 해요. 다음달에 3만 톤 들어오면 그걸로 퉁 치면 되지. 박대리님이 검정회사 직원에게 알아서 수량을 조절하라고 하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물 담당자 말이 곧 법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대리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두 사람을 밖에 두고 혼자 고객지원 실로 들어 갔다. 박대리가 눈에 보이지 않자 임기사가 빙긋이 웃으며 동호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탱크로리 차에 올라 바로 사라졌다.

　“제대로 검정 한 건 맞습니까?”

　박대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검정회사 직원에게 추궁하듯이 닦달을 하고 있다. 검정 회사 직원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분이 뚜렷이 보였다. 사색도 약간은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원인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웃듯이 한숨을 내쉴 때 터미널 화물 담당자가 박대리와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한다.

　“장부 재고 실제 재고가 지금 200톤이나 모자랍니다. 다음 달에 3만 톤이 들어온다고 해서 또 이번처럼 모자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부족한 수량에 대해 박대리님이 책임지면 제가 바로 조절을 해 드리죠.”

　검정 회사 직원은 한숨만 내쉬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 박대리가 검정회사 직원을 한심한 눈으로 보면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하면서 검정회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명령하듯 말한다.

　“좀 제대로 하세요. 이렇게 해서 같이 일하겠습니까? 소장님! 도대체 검정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당장 터미널로 오세요.”

　당장 쫓아오라는 말투의 호통을 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소장에게 명령하듯이 하대하는 말투에 심기가 뒤틀린 검정회사 직원 입술이 한쪽으로 비틀어 치켜 올라가면서 자리를 박차며 일어선다. 일어선 채 박대리를 아래로 눈을 흘겨 내려다 쳐다보고 박대리는 앉은 채로 고개를 위로 올려 시선을 마주친다. 직원이 가소로운 눈빛으로 한참을 보다가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소장님이 오신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그럼 알아서들 잘해보세요.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그때 박대리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예! 조금만 있으면 통관이 됩니다. 잠깐만요. 저기 잠깐만 기다려봐요.”

　휴대폰 스피커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밖으로 나가는 직원을 급히 부른다. 문을 열다 만 직원이 인상을 찡그려 쳐다보고 있다.

　“저기! 수량을 좀 맞춰주세요. 제가 책임질 테니.”

　터미널 직원에게 박대리가 고개를 돌려 거의 애걸하듯이 말을 하고 터미널 직원은 귀를 의심했는지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