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던 마무리가 중요한데 마무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멋쩍게 쳐다보면서 눈을 마주치며 밝게 말을 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가식의 말을 삼킨 뒤였다.

　쪼그려 앉아, 싱거운 미소로 눈을 흘기며 어부바 자세로 업히길 기다리고 있지만 어머니가 업히지는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흔한 말로 어리광 정도였다. 쪼그려 앉아 어머니가 업히길 기다리며, “엄마! 어부바!”, 라고 하면서, 개울 건너 맞은 편에 있는 집 주위를 보고 있다. 동산 골과 집 사이에는 개울과 논과 오른 쪽 귀퉁이에 변전소도 보인다. 변전소가 갓 들어올 때부터 변전소는 골치덩어리였다. 비옥했던 논 정 중앙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영역을 표시하듯 송전탑이 꽂혀져 버렸다.

　몇 백 미터 옆에 있는 전답들이 재개발의 붐으로 뜨겁게 불이 붙을 때 수리 부모님은 울화병으로 가슴만 뜨겁게 이글거렸지만 변전소도 송전탑도 허물 수 있는 어떠한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논이 있는 그 곳은 작은 건물 따위는 말 할 필요도 없고 작은 오두막도 지을 수 없는, 볼품없는, 그저 땅으로, 비 오는 날만 되면 고압 전선 줄 아래로 걷는다는 것은 쏟아 내리는 포탄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동네로 변해버렸다. 빗방울 하나라도 몸에 떨어지면 감전된 것과 똑 같은 전율을 느껴야 했고 눈 앞에 보이는 길은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다.

　전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혜택을 본 사람이 더 많지만 수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처럼 가혹한 희생을 강탈당한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럼 나도 이 동네를 떠나 혜택을 받는 사람들 틈새로 들어가야 하나? 그러나 이 동네에 변전소가 들어설 때는 절반의 압력에 어쩔 수 없었지만 자기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혜택도 없는 고생길을 자초했기 때문에 원망할 대상이 없었다.

　이미 늦었다. 변전소를 향한 원망의 눈 아래로 씁쓸한 미소가 번질 때, 이런 피해로 인한 아픔을 초월한 어머니 음성이 들릴 때, 수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며 자문하며 자책한다. 가슴과 뇌에는 상속이 잠시 머물러있었다. 지금 당장 현실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마무리한 밭을 한번 더 빙 둘러보던 어머니는 싱거운 소리로 마음을 숨기고 싶어하는 수리를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우울한 분위기를 이끌 한숨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덩달아 맞장구를 쳐준다.

　“싱거운 놈! 얼른 일어나. 누굴 할망구로 아나? 빨리 가자! 배고파서 더 겉늙어 보이겠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말이었다. 피둥피둥한 부잣집 할머니와 어머니는 너무 상반된 얼굴이었다. 제법 비탈인 밭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차를 타고 출발한 지 일 분쯤 지났을 때였다. 집으로 가는 길 옆은 강이 아닌 도랑이고 그 위로 철로 다리가 있다. 무심결에 돌린 고개가 아니었다. 어떤 사물이 수리 눈을 잡아 당겼다. 철로 다리 밑에 경운기나 리어카가 있었으면 수리는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잠깐만!”

　차를 세우고 어머니가 앉은 조수석 옆 차창을 열어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사진기를 꺼낸다.

　“어리석은 놈들!‘우리 도둑질하고 있소 라고 광고를 하는 구만. 하필이면 우리 집 앞에서 재수없게.”

　50미터쯤 떨어진 거리다. 차에서 내려 사진기를 들이대면 바로 눈치를 챌 거리다. 젖 달라고 칭얼대는 아기 때로 돌아가야 한다. 너무 장성해 무릎 위에 앉을 수 없어 잠시 기대기로 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 속에서 담아야 할 광경은 아니다. 저런 짓을 저들의 어머니가 원했던 저들의 미래였나 도 떠올린다. 그럼 ‘나도!’를 떠올린다. 벌써 저질렀다. 불법이다. 그때 어머니가 묻는다.

　“왜? 저놈들 지금 도둑질 하는 중이냐?”

　씁쓸한 목소리를 전한다.

　“응! 기름 실어 다니는 탱크로리인데 말로만 듣던 도둑질이 실제로 벌어지는 걸 보니 가슴이 쿵덕거리네. 내가 도둑질하는 것 같이 떨리고 무섭네. 그 참! 별일이네. 주먹질 할 때는 단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찌푸려 눈에서 그렇게 자랑할 일이냐는 책망의 의미를 수리는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많이 놀라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주먹질이란 얘기만 나오면 눈살만 찌푸렸지 이렇게까지 가슴이 쿵쿵거린 적은 없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기댄 수리 어깨로 놀란 마음을 전해준다. 쿵쿵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낀 수리가 서두르고 있다.

　“아이고! 애야! 빨리 가자! 나도 무섭다.”

　잠시 고개를 갸웃할 때 어머니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아는 사람이야?”

　오리발부터 내밀고 어깨를 으쓱하며 사지를 떨면서 너스레도 떨었다.

　“제 주위엔 저런 놈 없습니다. 그런데 도둑질하는 놈의 심정은 어떨까? 가끔 주먹질하러 가면 상대가 한 주먹도 안 되는 어린 아이 같아도 엄청 떨리 거던. 그 마음하고 같을까? 진짜 궁금하네.”

　어머니가 눈꼬리를 짓궂게 한쪽으로 치켜세워 올리며 말한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내가 도둑질을 해 봤냐? 그렇게 궁금하면 가서 물어봐라. 글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건데. 얼른 가봐.”

　“그러지 말고 같이 해 볼까? 현장 경험이 중요하잖아.”

　말을 하는 순간에 문득 자격증 임대가 떠올라 씁쓸히 웃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단속이 나올 까? 불안과 초조한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기분과 도둑놈들의 기분이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야! 가지 마라. 무섭다.”

　그러나 벌써 철로 위를 달려가 반대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수풀 속에 몸을 잔뜩 웅그려 숨어서 두 탱크로리간에 이송작업이 마칠 때까지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귀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이 씨’하고 만다. 엉킨 풀숲에 미끄러져버렸다.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 가다가 손가락을 호미 대용으로 쓰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손톱엔 진흙에 엉킨 잡초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그러나 손톱 청소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며 봉투가 전달되는 장면까지 찍고 그 자리에서 벌렁 누워버린다. 하늘이 수리를 보고 있었다. 그때 약간 토라졌다. 자기에게 주던 관심을 도둑놈에게 돌려 버려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가벗은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를 보는 것도 모자라 몰래 찍은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진 가슴이 요란하게 쿵쿵거리고 있었다. 여유 있게, 유유자적, 못 본 척 걷고 있지만 본인이 도둑질한 것처럼 쿵쿵거리는 가슴은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범한 척 하자는 주문을 외며 걷는 철길 양 옆으로 때이른 코스모스도 도둑질 현장을 봤는지 얼굴이 울긋불긋 변해 있었다.

　여느 날보다 더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있을 수 없는 현장을 목격하고 씁쓸히 걸으며, 살랑거리며 인사하는 코스모스와 눈을 마주쳐. 답례하려고 간 손을 내려 놓았다. 사악한 인간의 손에 있는 독성이 코스모스에게 전이돼, 코스모스의 생을 단축시키지나 않을까? 보는 즐거움마저 잃어버리나 않을까? 코스모스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눈 요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이 좋은 세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진을 왜 찍었을까? 차라리 너를 찍을걸. 코스모스가 거세게 거절을 한다. 저러다가 목 빠지겠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글만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저런 추잡한 글도 써야 하나? 그럼! 어떻게 쓰지? 코스모스가 쓰러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더러운 생각을 여기서 하지 말라는 듯이, 귀에 들어가는 걸 피하는 것 같았다.

　코스모스에게 쫓겨나 철로에 엉덩이를 붙여 생각에 빠지려다가 철로에게도 거절당한다.

　“아이! 뜨거워! 아이 씨!”

　뜨끈하게 익어버린 엉덩이에 손이 가기도 전에 정수리의 정수리가 철로에 퍽 소리를 냈다.

　“어이 씨! 아이고 대가리야.”

　헛디뎌 비틀대며 나자빠지다가 천만다행이 철로를 짚은 한쪽 손이 수리 생명을 살렸다. 정수리가 깨지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이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아차!’ 분량을 늘리려면 탱크로리 차 번호인 4949에서 화물을 받은 탱크로리의 최종 도착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글이 이어진다. 여기까지였다. 콧방귀를 튕긴다.

　이 직종에 들어온 것도 길다가 우연찮게 전봇대에 붙어있는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왔듯이 도둑놈 중 하나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누가 더 부담스러울까?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을 안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자격증을 빌려 창업을 했다. 도둑질과는 다르지만 엄연히 불법은 불법이다. 업종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 헤쳐나갈 길만으로 충분하다. 가시밭길을 걷는 지금 괜히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들도 분명히 가슴을 졸이며 저 짓을 한 게 분명했을 것이다. 내 코가 석자다. 관심도 신경도 끊자. 땅! 땅! 땅! 판결 끝.

　양말이 뜨끈뜨끈해 지면서 밤잠을 설친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쏟아지는 졸음이 끝내는 취침 상태를 유도했다. 이번에도 무방비 상태로 철로에 데굴데굴 구를뻔한 수리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을 친다.

　한마디로 뱀 공동묘지다.

　장마철에 몸을 말리러 철길에 온 뱀들이 불행히도 지나치는 기차에 깔려 운명을 달리한 서글픈 현장이다. 멀리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린다. 도랑 건너 맞은 편 동네 산 속에서 기차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죽어서 말라 비틀어진 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한다. 계속 주접을 떨고 앉아 있다가 졸음이 잠이 될 뻔 한 순간에 너덜거리는 뱀을 만났다. 천만다행이었다.

　밤새도록 꿀렁거리는 배위에서 만난 뱃멀미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후에 석유화학제품 분석에, 고구마 모종에, 터줏대감에 대한 원망에, 도둑놈에게 놀란 가슴에, 거의 녹초가 된 상태에서 뜨끈뜨끈한 구들목 같은 철길에 앉았을 때 정말 깊이 잠들뻔했다. 만약에 잠들었다면 터줏대감의 족쇄에 묶인, 도둑질을 보고도 신고 못한, 서른 살 청년이 세상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풍문도 못 퍼트리고 안녕할 뻔한 순간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방으로 들어간 수리는 잠은 잠시 미루고 고구마나 감이나 과일 등등이 있는 저장 창고나 다름없는 옆 방으로 들어간다. 한쪽 귀퉁이에 사무실에도 있는 암실을 만들어놨다. 인화한 사진을 보며 도둑놈의 마음은 지금 자기 마음과 분명히 같을 것이란 말을 붙여 놓고 작업을 마친다. 사진 한 장을 USB에도 담는다.

　이 놈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도둑질을 할까?

　그때 어머니가 눈만 살짝 보이게 문을 열어 보면서 투덜거린다.

　“종이 아깝게 그런 사진은 뭐 하려고 빼냐?”

　획 돌린 수리 눈을 본 어머니 뒷걸음에 전자 장치를 달아 놓은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엄마! 이 사진은 절대 손대면 안돼! 잘못하면 쇠고랑 차!”

　“내가 언제 네 사진에 손 댔다고. 나를 아예 도둑년으로 취급하는구나. 에이 좁쌀 같은 놈!”

　미닫이 문에서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닫았다가 다시 찍 소리가 요란하게 날 정도 문을 연 어머니가 수리 뇌에 한번 더 강력하게 각인시켜 주는 말을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동시에 수리 입도 닫혀버렸다.

　“야! 이놈아! 나! 아직 제주도 한번도 못 가봤다. 에이 도둑놈 같으니라고. 잘 기억해 둬!”

　다시 쾅 소리가 났다. 그 뒤로 들리는 투덜거리는 말. 파렴치한 놈으로 매도가 아닌 사실만 얘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