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말이 돼요?”
“위험천만한 유적을 갔다 왔다니까요?”
“근데 이거 밖에 못 받아요?”
세리아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표식을 흔들며 말했다.
“준 것만 해도 어디야.”
“더는 안돼 돌아가.”
“이 각박한 세상.”
“제가 꼭 이 각박한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간 세리아는 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
“네네네 얼른 밥이나 먹죠.”
셜리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안젤리아가 안 보이는데?”
“안젤리아님은 어제의 피로가 아직 덜 가신 모양이십니다.”
“그럼 밥은 안 먹겠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흐흐흐.”
“오늘 아침은 고기를 먹겠군.”
세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해, 안젤리아 언니 밥은 어떡해요?”
“뭐? 그럼 너가 밥을 안 먹고 안젤리아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아...치사해요 진짜”
“원래 인생이 그런거란다. 꼬맹아.”
세리아는 스테이크를 시키며 말했다.
그녀는 이 식사에 어제 번 돈의 전부를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주인님.”
“저는 빵을 먹을 테니 안젤리아님에게도 식사를.”
“맞아요 마왕 님에게는 제 식사를 나눠드릴게요.”
세리아는 머릿속으로 잠깐의 계산을 한 뒤 그 조건을 흔쾌히 허락했다.
아마 자신에겐 손해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모양이다.
“근데 오늘은 뭐해요?”
셜리는 자신의 고기를 마왕군의 접시에 덜어주며 말했다.
마왕군이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임무를 수행해야겠지? 술...아 아니 돈을 벌어서 자금으로 써야 하니까.”
세리아는 본심을 잠시 들어냈지만, 이내 진정하고 말을 끝냈다.
“에엑?”
“그렇게 임무만 수행하면, 저희는 언제 마왕을 잡아요?”
셜리는 실망한 듯 말했다.
“원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조급할 필요가 없어.”
“여러 임무로 팀 워크를 다지고 힘을 기르는 거야.”
세리아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평범한 리더가 말했으면 그럴 듯했겠지만 세리아는 달랐다.
“에이 그냥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요.”
“윽...”
세리아는 셜리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그 반응을 본 셜리는 공격을 이어갔다.
“아~하! 혹시 마물들이 두려워서 그래요?”
셜리는 웃으며 말했다.
“아...아니? 3급 마물인 알파를 제압했는데 두려울 게 뭐 있어.”
“아. 그래서 부부가 되셨어요? 마왕님이랑?”
셜리는 당황한 세리아에게 트라우마 공격을 가했다.
셜리의 말을 듣고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세리아는 머리를 감싸고 ‘아 안 들린다.'를 연신 외쳤다.
“엄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엄마. 엄마...”
셜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세리아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아 알았어 알았어.”
“가면 되잖아. 그래 잡으러 가자. 아니 가야 해.”
세리아가 결심한 듯 큰소리로 말했고 그 대답을 들은 셜리는 ‘야호'를 연신 외쳤다.
“마왕군, 저번에 그 친구들은 어디에 있어?”
“어 마왕님이 안 계셔요.”
“그러네.”
그들은 뒤늦게 마왕군의 빈자리를 발견했다.
“일단 먹고 생각할까?”
“네 좋아요.”
셜리가 점점 세리아를 닮아가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그들은 방으로 돌아갔다.
“오셨습니까?”
마왕군이 그들을 맞이했다.
“안젤리아는 밥을 좀 먹었어?”
“네, 지금은 나갈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오호.”
“있죠 있죠 마왕님”
“오늘 어디 가는지 알아요?”
“저번에 만났던 마물들 잡으러 가요”
셜리가 신나서 말했다.
“뭐 그렇게 됐다.”
세리아는 체념한 듯 말했다.
“마왕군, 혹시 그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아...베타와 감마 말씀이시군요”
“그자들은 아마, 알파와 같은 곳에 서식하고 있을 겁니다.”
“이름이 베타랑 감마야?”
“풉.”
세리아가 크게 웃었다.
“있잖아요, 마왕님.”
“근데, 그 급이라는 건 어떻게 나눠요?”
“실례지만, 마왕님은 혹시 몇 급이에요?”
셜리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그걸 설명 안 드렸군요.”
“제가 잠깐이나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자. 여러분.”
“옛날이야기는 가면서 들을까요?”
세리아가 셜리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마왕님, 그러면 출발할 때 알려주세요.”
마왕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의 정비 후 다시 모이죠 여러분.”
정비를 할 필요가 없는 세리아지만 일단 팀원들을 해산시켰다.
“하...침대야 이제 못 볼지도 몰라.”
그녀는 침대와의 작별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어서 출발해요.”
셜리는 신난 듯 말했다.
“그래 그래, 뛰다가 넘어지지 말고.”
“아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넘어진 셜리다.
…
“그래서, 어떻게 나뉘어요?”
“음...”
“쉽게 말해, 마물은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힘을 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물들 사이에도 실력의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그것을 급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 급을 나누는 기준은 인간과의 동화 정도입니다.”
“즉 인간과 비슷할수록 급이 높아집니다.”
“급에 따라 능력치가 더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고”
“그래서, 3급 마물부터 인간의 형상을 조금씩 띄기 시작하는데”
“각 급간의 실력차이가 매우 심합니다.”
“그리고 3급 이상의 마물들은 각자 서식지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 생애를 통틀어 말을 가장 많이 한 마왕군이다.
“인간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힘이 강력하다는 거지?”
힘들어하는 마왕군을 보고 세리아가 대신 요약을 해줬다.
“네 맞습니다. 역시 세리아님."
“뭐 이 정도쯤은 기본 아니야?”
“아닌데요?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어요.”
셜리는 잘난 척을 하고 있는 세리아를 약 올리듯 말했다.
“아야야 아파요 아파.”
세리아는 셜리의 볼을 꼬집었다.
“어으으아. 다아아왔어요.”
셜리는 볼을 꼬집힌 채로 말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었다.
나무조차 하얀 눈으로 덮인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들 이외에도 모험가가 왔다 갔는지 늑대들이 보이진 않았다.
드넓은 공허한 설원을 가득 채운 건 눈을 밟는 소리뿐이었다.
“근데, 어떻게 잡을 생각이에요?”
셜리의 그 물음에 눈 밟는 소리가 멈췄다.
“다 방법이 있지.”
세리아는 생각이라곤 전혀 없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뭔데요 뭔데요?”
셜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리아곁에 다가와 말했다.
“기다려봐 가서 다 설명해줄게.”
셜리의 그 순진한 눈빛을 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세리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치... 너무해”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마왕군은 뽀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셜리에게 말했다.
방법이 없었던 세리아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아 일단 안젤리아를 기다릴까?”
“엑? 웬일이에요?”
“설마 작전이 생각 안 나서?”
“아니지. 늑대가 언제 공격할지 모르잖아. 안젤리아가 위험해져도 좋아?”
“아... 죄송해요. 당연히 기다려야죠.”
순간 뜨끔한 그녀지만,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눈사람입니다.”
“이건 마왕 님 눈사람이에요.”
“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셜리님.”
“와. 마와님도 잘 만드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열심히 작전을 생각하고 있는 세리아는 안중에도 없는 그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놀고 있다.
“아 됐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세리아는 멀리서 걸어오는 안젤리아를 보고 말했다.
“어 다 됐어요?”
어느새 4명의 눈사람을 모두 만든 셜리가 말했다.
“일단 안젤리아가 오면 얘기하자.”
비틀거리며 걸어온 안젤리아를 보자 세리아가 목을 가다듬었다.
“친구들...”
“아니 친애하는 동지들...”
갑자기 그들에게 경위를 표하는 세리아다.
“사실 방법은 없어.”
“아 뭐예요오오오.”
셜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쉿. 아직 안 끝났어.”
세리아는 시동을 건 셜리를 진정시켰다.
“그대신, 약간의 도박 정도는 가능할 거 같아.”
“이 위대한 마법사를 두고 고작 도박따위를 한다고요?”
“그럼 너네 가 조금 더 쓸모 있어지던가.”
세리아는 셜리의 모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일단. 너가 마법으로 시선을 끌어.”
“소리가 큰 마법으로.”
“네? 제 마법은 고작 시선 끌기 용이 아니에요.”
“그 소리를 들은 베타랑 감마는 분명 한 명만 나올 거야.”
“왜요?”
“알파가 나왔을 때도,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한 거였잖아?”
“그 게으른 친구들이 같이 나올 리 없어.”
“만약 같이 나오면 어떡해요?”
세리아는 셜리의 질문은 가볍게 무시했다.
아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소리를 듣고 나온 한 명을 우리가 제압하는 거야.”
“너는 다인전에 유리할지 몰라도, 나랑 안젤리아는 개인전에 유리하니까.”
그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했다.
“자 그럼 됐지?”
이번에도 용케 잘 빠져나간 세리아다.
“그럼 가볼까?”
“알겠지? 무조건 소리가 큰 마법이야”
“네”
그들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긴장이 된 모양이다.
즐거워했던 셜리조차 긴장한 것 같다.
“다왔네...요?”
셜리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할 수 있지? 우리 셜리.”
“이 언니는 우리 셜리 믿어!”
세리아는 셜리와 점점 멀어지며 말했다.
“같...같이가요”
“버리지 마요.”
“아...알았어 옆에 있어줄게.”
그들은 커다란 나무 뒤에 자리를 잡았다.
“기억하지? 소리가 큰 마법이야.”
“네.”
셜리는 원을 그리며 대답했다.
“나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
“그와 동시에, 만물의 진리를 깨친 자.”
“위대한 마법사 셜리가 명한다.”
“격동하는 불의 정령이여, 너의 힘을 뽐내거라.”
“익스플로젼.”
이윽고 베타와 감마의 아지트 근처에 엄청난 소리와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전에 봤던 익스플로젼보다 더욱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 때문에 숨어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갔다.
“이야 됐어요 됐어.”
“지금까지 중에 젤 큰 폭발음이에요.”
셜리가 소리치며 말했다.
자신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동료들을 본 셜리는 ‘버리지 마요’를 연신 외쳤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세리아는 들러붙은 셜리를 때어내며 말했다.
“어?”
“뭐야”
세리아가 놀라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