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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신이 죽은 세계: 엔드게임
작가 : 제비비
작품등록일 : 2017.12.3

이능력을 지닌 인간들의 세계. 어느 날, 신이 나타나 말한다.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나를 위해 싸우고, 죽어라."

 
진짜 능력자4
작성일 : 17-12-07 23:01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4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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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연하와 견우가 떠나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만이 남은 곳에 단발머리 여자가 발을 들였다.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연합을 하자며 접근한 정수찬일행에게 속아 가져온 물건을 모두 빼앗겼다. 그들끼리 하는 얘기를 엿들은 덕분에 험한 꼴은 면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했다.

 

 "으으으..."

 

 앓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낭자한 혈흔과 시체는 정신이 아늑해질 만큼 적나라했다. 특히 머리에 손도끼를 꼽은 채 눈을 뜨고 죽어 있는 남자는 꿈에 나올까 두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여길 벗어난 다음 기억을 씻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 광경을 반드시 견뎌내야 했다.

 그녀는 눈을 바늘 같이 뜨고 시체를 살폈다. 하지만 빼앗겼던 가방과 무기는 찾을 수 없었다. 쫓아오다 버린 모양이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죽기만큼 싫지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엄한 곳을 바라보며 머리에 박힌 손도끼의 손잡이를 쥐었다.

 

 쯔억!

 

 도끼가 뽑히면서 끔찍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그녀는 그 감촉을 견디지 못하고 도끼를 냅다 던지며 뒤로 자빠졌다.

 

 

 "아악!"

 

 통증과 함께 설움이 밀려왔다. 이토록 처량하고 외로운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눈물이 당장이라도 범람할 것처럼 맺혔다. 포기할까 싶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다름 아닌 '그 남자'였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나타난 남자. 멀어서 얼굴은 못 봤지만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들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을 감싸줬다. 그렇게 구해진 목숨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날아간 손도끼를 주웠다.

 

 그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번에는 옆에 있던 남자 때문에 못 했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는 반드시 하리라. 그녀는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걸음을 옮겼다.

 

 12※

 

 일이 생겼다고 한 견우는 아까처럼 재촉하면서 괴롭히지는 않았다. 대신에 무척 산만하게 굴었다. 연신 곁눈질로 쳐다보는가하면, 시계는 분침이 움직일 때마다 쳐다봤다. 뭔가 말할 것처럼 입을 달싹거리면서도 정작 말은 뱉지 않았다. 정작 할 말이 있냐고 물으면 아니라는 말로 일관했다. 연하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도 이제는 작별이었다. 견우로부터 구원해줄 동아줄이자 길고 긴 싸움의 종착지가 심미안에 포착됐다.

 

 “찾았다. 두 명이야. 이번에도 내가 먼저...”

 "아까 여자를 도운 건 안일한 행동이었어."

 

 얘기를 하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견우가 말했다. 연하는 견우를 쳐다봤지만 그는 눈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연하는 돌렸던 고개를 바로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지. 나도 몰랐어. 내가 생전 처음 본 사람을 도울 줄은."

 

 그러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하는 견우가 입을 열거라 믿고 기다렸다. 겨우 그 말 하려고 계속 입술을 달싹거렸을 리는 없었다.

 나란히 걷던 견우는 돌연 걸음을 멈췄다. 연하는 몇 발짝 더 가서 따라 멈췄다. 몸을 돌려 견우를 쳐다봤다. 그러자 견우가 말했다.

 

 “네 행동이 문제가 아냐. 네가 그랬다는 점이 문제지.”

 

 견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베풀고 싶으면 힘을 길러. 호의는 힘 있는 자의 권한이다.”

 

 견우는 연하를 무심히 지나쳐갔다. 앞장서서 가는 견우를 향해 연하가 말했다.

 

 “이쪽인데?”

 

 견우는 멈칫하더니 연하를 슬쩍 쳐다봤다. 그리고는 조용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하는 그에게 따라 붙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 쉽지. 나 같은 C급 나부랭이는 내일 해를 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엔드게임은 믿어야한다."

 "응? 그게 무슨..."

 "시간 지나면 알게 될 거야. 더 많이 알고 있는 입장에서 해주는 조언이니 새겨들어."

 

 참으로 신기한 화법이었다. 조언을 해주는데도 고마운 기분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연하는 조금만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덧나냐는 식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 정도도 이해 못하면 살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잠시 뒤, 적의 모습이 안개 너머로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확인한 바로는 남녀 한 쌍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들은 운동선수와 모델 커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남자는 체격이 좋았고, 여자는 키가 크고 몸매가 좋았다. 그리고 긴장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꼭 붙어선 쉴 새 없이 애정행각을 하는 것이 해외여행 온 신혼부부 같았다.

 이목구비가 구분 될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깨가 쏟아지는 모습은 여전했다. 남자는 곁눈질로 연하와 견우를 쳐다보고는 여자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키득거리며 웃었다.

 

 “요즘 커플은 웃으면서 유언을 남기나봐?”

 

 견우가 커플을 보면서 말했다. 겨우 한마디 했을 뿐인데 커플의 눈빛이 달라졌다. 연하는 견우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성격 고약한 걸로는 어디 가서 안 질 줄 알았는데 견우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성질 돋우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남자였다.

 

 "뭐래는 거야, 저 븅신은."

 

 여자가 표독스럽게 말했다. 남자는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겨우 몇 발짝 나왔는데 덩치가 커서 여자가 완전히 가려졌다.

 그는 대뜸 상의를 탈의했다. 딱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를 벗자, 각자 진한 개성을 지닌 근육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몸이 드러났다. 연하는 생각을 정정했다. 그는 운동선수가 아니라 보디빌더였다.

 그는 여자에게 티셔츠를 맡긴 뒤 견우와 자신의 상체를, 연하와 자신의 상체를 눈으로 비교했다. 그러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요상한 포즈를 취했다.

 

 “남자의 아름다움은! 근육에서 나오는 법! 아름답지 못한 남자는! 남자의 수치!”

 

 포즈는 말이 한 번 끊길 때마다 변했다. 움직임만 놓고 보면 보디빌딩 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만약 여기 심사위원이 있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높은 점수를 줬을 수도 있지만 여기는 대회장이 아니었다. 연하와 견우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은 남자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 했다. 견우는 특히 그랬다.

 

 “징그러워 보이는데.”

 

 빠직!

 

 순간 화가 치미는 게 소리로 들린 것 같았다.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는 이마에 나타난 십자혈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견우의 한마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급소를 파고들었다. 연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남자의 아름다움을 모독하다니...!”

 

 남자가 몸에 힘을 잔뜩 줬다. 근육들은 화가 났고 혈관이 튀어나왔다.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

 

 단추를 터뜨리면서 범람하는 배처럼 오른팔이 갑자기 부풀었다. 한쪽만 이상하리만치 발달한 기이한 모습도 잠시. 똑같은 현상이 왼팔에서도 일어났고 이내 몸 전체에서 일어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덩치가 두 배가 됐고, 세 배까지 부풀어 올랐다. 신축성이 뛰어난 운동용 반바지가 아니었더라면 바지가 터져버렸을 것이다.

 그야말로 변신이었다. 피부만 살색이지 화가 나면 변하는 녹색괴물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변신하느라 막대한 체력을 소모한 그는 거칠게 호흡을 내뱉었다. 연하한테는 그 호흡마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연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3레벨, 혹은 그 이상이었다.

 

 “10초. 그 안에 박살내주지.”

 

 파악!

 

 남자, 아니 근육괴물이 달려들었다. 단순히 땅을 박찼을 뿐인데 대지가 흔들렸다.

 

 “물러서.”

 

 견우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연하는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서있었다. 연하는 근육괴물의 기백에 눌려서 완전히 눌려있었다.

 

 “쯧.”

 

 견우는 혀를 차더니 연하의 뒷덜미를 잡고 뒤쪽으로 내팽개쳤다.

 

 콰아아앙!

 

 영화관에서나 들을 법한 엄청난 파공음이 울렸다. 근방의 새들이 푸덕이며 달아났다. 연하가 정신을 차렸을 했을 때는 근육괴물의 주먹이 입을 꿰맨 망령의 손에 저지당해있었다.

 근육괴물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혼신을 다해 내지른 주먹이 아무렇지 않게 막히다니.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유 부릴만 하네. 지금껏 본 사람 중에 제일 쌔.”

 

 견우도 그를 인정하는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말과 반대로 손은 여전히 주머니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주머니에 있는 두 손이 닿아 없어질 때까지 빌게 하리라 결심했다. 그때 망령의 입을 꿰맨 실밥 사이로 길쭉한 혀가 빠져나와 근육괴물의 두꺼운 팔뚝을 훑고 지나갔다. 근육괴물는 섬뜩함을 느끼고 뒤로 성큼 물러났다.

 

 “별일이네. 녀석이 네가 마음에 드나봐.”

 

 길게 뱉은 혀를 다시 집어넣는 망령의 뒤에서 견우가 말했다. 그의 여유 넘치는 모습이 적잖이 아니꼬웠던 근육괴물은 얼굴을 구기더니 다시 한 번 땅을 박찼다.

 아까보다 빠른, 아니 강력한 속도로 접근해서 아까보다 매섭게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망령의 가드는 뚫을 수 없었다. 다른 각도에서 공격해도 마찬가지였다. 불 같이 포악한 주먹은 망령에게만 닿으면 온순해지기 일쑤였다.

 

 “내 기준에는 10초 넘은지 한참 됐는데. 아름다운 남자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나?”

 “이... 개새끼가!”

 

 묵직한 한 방이 또 한 번 급소에 꽂혔다. 근육괴물은 넘어갈 듯한 숨을 고르다말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승패는 거기서 정해졌다. 근육괴물은 강했다. 지금껏 만난 어떤 플레이어보다도.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상태로는 견우를 이길 수 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빤히 보이는 정직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견우는 망령에게 손목을 잡아채도록 지시했다. 날뛸 만큼 날뛰었으니 이제는 고삐를 찰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망령의 손이 근육괴물의 손목을 붙잡지 못하고 통과해버렸다. 망령에게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근육괴물의 실체가 없어진 것이었다.

 손목뿐만 아니라 아예 망령을 통과해버린 근육괴물은 그대로 견우에게 달려들었다. 견우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급하게 가드를 올렸다. 그런데 근육괴물은 견우마저도 통과해버렸다.

 

 “...?”

 

 무슨 상황이지? 하는 얼굴로 자신을 지나 계속해서 달려가는 근육괴물을 쳐다봤다. 그때 측면에서 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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