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에 화살을 걸어라--!"
"시위에 화살을 걸어라--!"
처억-! 처억-! 처억-! 처억-! 처억-!
부관에서 기사들에게, 기사들에서 병사들을 향해 하달된 명령에 성벽위의 전병력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화살을 장전한 활대를 일제히 들어올려 그대로 엔트들을 향해 겨냥했다.
은으로 도금된 수천의 활대가 성벽위를 밝히기 시작했다.
"부관. 서둘러 결계를 발동시켜라. 곧 놈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플레타는 발사 준비가 완료된 엘븐 병력들을 보고는 얼른 부관을 향해 명했다.
결계의 발동이 조금이라도 늦어진다면, 병력들이 채 화살을 쏴보기도 전에 엔트들이 투척하는 바위에 그대로 압사를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명령을 받은 부관이 서둘러 뿔나팔을 꺼내드는 것이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성벽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엘븐 정령사들에게 결계의 발동을 알리는 신호 전달용 뿔나팔 이었다.
뿌우우웅-! 뿌우우웅-! 뿌우우웅-!
부관의 뿔나팔이 성벽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엘븐 정령사들이 하나둘 팔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태초의 계약에 따라, 그대들의 힘이 이곳에 발현되기를 원한다."
"태초의 계약에 따라, 그대들의 힘이 이곳에 발현되기를 원한다."
정령사들의 입을 타고 결계 발동을 위한 주문 영창이 일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영창이 이어짐에 따라, 초록색 장막이 서서히 '그라니아' 요새를 뒤덮어 갔다.
"....."
플레타는 조금씩 시야를 가리기 시작하는 초록생 장막 너머의 카피탄(지휘관) 엔트를 굳은 얼굴로 바라 보았다.
푸르르르-
카피탄 엔트의 초록색 이파리가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 꾸드드득! 플레타여. 마지막 기회를 줬겄만, 기여코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 그대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엔트들이여-! '그라니아 요새' 를 향해 바위를 투척하라---!
-꾸드드득!
-꾸드드득!
후웅-! 후우우웅- 후웅-!
아돌토(성인) 들이 하나둘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이 한번 휘저어 질때마다 집체만한 바위들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그리고 그 바위들은 곧 '그리니아' 요새를 향해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슈화아아악-! 슈와아악- 슈화아아악-!
플레타는 고개를 들어 올려, 낙하해 내리는 바위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직, 결계의 장막이 요새의 상공까지는 완전히 뒤덮지 못한 상태였다.
떨어져 내리는 속도를 봐서는 두개 정도의 바위가 장막이 완성되기 이전에 요새를 덮칠 듯 보였다.
"활을..."
플레타는 부관에게 손을 뻗어 자신의 활을 가져올것을 명했다.
"여기 있습니다."
곧 손 위로 보통의 활과는 다른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자신의 애병인 '비엔토 보우' 만의 남다른 무게감이었다.
플레타는 2미터가 넘어가는 '비엔토 보우' 를 집어든 채 천천히 그 활대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의 엘븐 나이트들이 서둘러 투창을 옮겨오기 시작했다.
활대의 길이만 해도 2미터가 넘는 '비엔토 보우' 이다보니, 일반의 화살로는 사격이 불가능 했기 때문이었다.
'비엔토 보우' 의 활시위에 투창이 메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레타의 허리가 점점 더 뒤로 젖혀져 나갔다.
"흐으으읍-!"
플레타는 낙하해 내리는 바위를 향해 '비엔토 보우' 의 활시위를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끼리리릭--!
활대가 휘기 시작하면서, 활의 마찰음이 귓가를 통해 들려왔다.
플레타는 떨어져 내리는 바위를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지긋이 응시했다.
중심점을 찾아, 보다 정확한 타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투창의 날끝이 날카로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확-!
플레타의 오른손이 시위를 놓았다.
쑤와아아악---!
시위를 떠난 투창이 거칠게 바람을 가르며 바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비엔토 보우' 의 마찰음이 성벽에 울려 퍼졌다.
끼리리릭--!
투확-!
쑤와아아악---!
두번째 투창이 처음 발사된 투창의 꼬리를 물며, 마찬가지로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선두로 떨어져 내리는 두개의 바위를 향해 발사된 두 자루의 투창.
플레타는 활대를 내리고는 굳은 얼굴로 하늘을 응시했다.
1초. 2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져 내리는 바위와 쏘아져 올라가는 투창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위와 투창이 서로 맞닿는 그때.
꽈과가아아아앙-! 꽈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두번의 폭발음과 함께 두개의 바위는 사방으로 폭산했다.
투두두둑-! 투둑- 툭!
"......"
"......"
"......"
잘게 부서진 바위 조각들이 비가 되어 병사들의 갑옷 위로 떨어져 내린다.
병사들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이 바위비를 그저 묵묵히 고개를 들어 조심히 올려다 보았다.
초록색 장막이 '그라니아 요새' 의 상공을 반구 형태로 완전히 뒤덮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커다란 바위들이 하나둘 빠르게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꽈과앙-!
커다란 폭발음이 병사들의 머리 위를 울렸다.
하지만 병사들의 눈동자는 그 폭음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평온할 뿐이었다.
왜냐면 병사들 역시 이 폭팔음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의 예상대로, 곧 엄청난 굉음이 '그라니아 요새' 를 가득히 울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쿠광-! 꽈아아앙----!
장막이 흔들렸다.
병사들의 다리가 흔들렸다.
병사들이 딛고선 성벽이 흔들렸다.
그렇게 '그라니아 요새' 전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크윽...!?"
"커흐으윽!"
병사들은 흔들거리는 성벽위에서 바닥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 한명이 주저 앉으면, 주위의 모든 병사들의 사기 역시 바닥을 향해 떨어질 것이라는 걸, 모두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텨라-! 절대 쓰러지지 말아라-!"
"활시위를 놓치지 말아라-! 끝까지 버티는 거다!"
엘븐 나이트들의 외침이 병사들 사이를 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쁘게 성벽을 오가며, 흔들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계속해서 진작시켰다.
"사령관님. 결계를 유지하는 정령사들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새하얀 망토를 펄럭이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엘븐 나이트들을 보고 있을때, 돌연 부관이 물어 왔다.
플레타는 고개를 돌려 정령사들을 바라 보았다.
콰아앙--! 쿠광-!
"커허....억-!"
"푸화아악--!"
바위가 결계를 강타 할 때마다, 그 부근의 결계를 담당하고 있는 정령사들이 붉은 선혈을 토해내며 몸을 비틀대는 것이 보였다.
부관의 말대로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대로 계속 결계를 유지했다가는 투척이 끝날 때 쯤이면, 대부분의 정령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투척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결계를 유지하도록 하게."
플레타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결계를 해제 했다가는 더 큰 희생이 병력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생존을 위해서는 소수의 희생은 눈 감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전장이란 곳이었다.
플레타는 병력의 보존을 위해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콰아아앙--! 쿠광-!
엔트들의 바위는 계속해서 날아왔다.
그리고 그 바위들이 결계를 때릴 때마다, 정령사들이 하나둘 피를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져갔다.
"꺄아아악--!"
굉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돌연 플레타의 귓가로 가녀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린 정령사 하나가 비틀대는 몸으로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으윽..."
정령사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플레타를 바라 보았다.
그에 플레타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
"......"
붉은 선혈이 흐르는 그녀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지는 게 보였다.
그 미소가 마치 자신은 아직 괜찮다고, 아직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때, 둘의 사이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화아아악--!
집채만한 크기의 거대한 바위덩어리였다.
그리고 그 방위덩어리는 그녀가 담당하고 있던 결계의 부근을 강하게 때렸다.
콰아아앙--!
"끄흡...?!"
뚝- 뚝-
뚝- 뚝-
붉은 핏방울이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플레타는 지면을 적시는 핏방울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미소가 지어진 그녀의 입가를 붉은 핏물이 덮고 있는 게 보였다.
조금 더, 조금 더 시선을 위로 향했다.
"......"
어린 정령사의 커다란 두 눈망울에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핏물은 이내 공중을 향해 흩뿌려졌다.
털썩-!
"......"
꽈아악-!
검집을 움켜잡은 플레타의 손에 꽈악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슴속에 맹렬한 분노가 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노에 몸을 맡기기에는 플레타의 어깨에는 너무도 많은 목숨들이 짊어져 있었다.
플레타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두 눈을 질끈 내리 감았다.
그리고, 외쳤다.
"전병력-!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라---!!"
"자리를 지켜라--!"
"자리를 지켜라--!"
'그라니아 요새' 의 내성에 위치한 '수호자의 방'.
길다란 두 귀를 감싸쥔 채, 패티리샤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콰아앙-! 꽈앙!
사방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속해서 폭음이 들려왔다.
그에 패티리샤는 폭음이 들릴 때마다, 더욱 몸을 웅크렸다.
"아으으.. 무서워..! 패티는 무서워... 이 쾅쾅거리는 소리가 무섭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무섭고.. 또 꺼져가는 엘프들의 생명이 무서워... 클로에, 패티를 안아줘..!"
패티리샤의 울먹임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조용히 '수호자의 방' 에 울려 퍼졌다.
"패티리샤님.."
패티리샤의 수호기사 '질풍의 클로에' 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패티리샤를 내려 보았다.